울산 등대 여행
동해안 자락 울산은 예로부터 고래가 회유를 하던, 고래를 잡던 신석기인류가 남긴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아주 오래전 이곳 울산 동해안자락을 따라 인류가 거주했던 곳으로 오늘날 울산하면 고래가 사라진 그 자리를 수많은 자동차와 선박 그리고 정유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울산 해안을 따라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등대가 선박의 길잡이를 하고 있다.
오늘 떠나는 여행은 울산에서 경주 경계를 살짝 넘어서는 등대와 함께하는 작은 항구를 만나고 헤어지며 여행으로 화암추등대, 슬도, 대왕암공원, 주전항, 당사항, 정자항, 강동화암주상절리, 신명길 선돌바위, 양남부채꼴주상절리, 문무대왕릉 순이다. |
화암추 등대 |
숨어도 너무 숨어있다.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방어진 순환도로 끝자락 오른편에 가둬놓은 듯 숨어있는 등대가 바로 화암추 등대이며,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아쉽게도 화암추 등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접근성과 막혀있는 조망권 때문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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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도와 대왕암(옛 울기공원)을 잇는 여행에서 또 하나 추가해야 할 곳이 화암추등대이다. 울산 방어진 주변항으로 상호 연계되는 화암추 등대는 1994년 조성한 등대로 국내 등대 중 유일한 지하 1층 지상 8층으로 높이가 44m 로 동양 최대 높이의 전망타워를 통해 방어진항 앞바다 일원과 석유화학 공단을 조망할 수 있지만 지상으로 내려서면 해안 파도를 막는 높은 장벽으로 인하여 바다를 전혀 볼 수 없다. |
▲ 화암추 등대에서 바라본 뜬방파제 전경
화암추 등대로 들어서면 주차공간과 함께 1층 전시실에서 비록 많은 전시물은 아니지만 등대에 관해 충분하게 알 수 있는 정보가 전시되어 있으며, 등대내 1층과 전망대 9층에 화장실을 두고 있다. 8층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등대에 설치된 승강기를 이용하면 쉽게 8층 전망대까지 이동을 할 수 있다.
원형을 따라 돌면서 바다와 공단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등대 최초점등일은 1983년 1월 28일이며,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구조(44m) 및 섬백홍호광 20초 1섬광(AIFIWR20s)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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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시작은 1970년 우리나라 현대사와 맞물려 있다. 울산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항구를 통한 선박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1980년 이후 등대의 필요성을 통해 1983년 천년동안 오랜 세월 안전향해를 염원하는 거북 모형의 등대를 만들었지만 주변 매립과 발전으로 옛 등대로부터 약 1km 후퇴하여 1994년 12월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졌다. |
▲ 화암추 등대 전망대에 올라보면 뜬 방파제 옆으로 화암추방파제등대가 끝자락에 서 있다 |
화암추 지명은 빙어진 서쪽 해안 검회색 바위에 하얀색 꽃문양을 닮은 무늬가 있어 꽃바위라 부르면서 주변 마을을 꽃방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두고 화암만조라 부르며 방어진 12경중 제1경으로 울산시민의 사랑을 받던 곳 이였지만 아쉽게도 꽃바위는 1986년 항만 축조 과정에서 매립되었다. 항구 입구에 암초가 많아 이곳 등대는 백색과 함께 적색 빛도 밤하늘을 가른다. 직원 숙도와 함께 만든 조형미로 인하여 갈매기가 비상하는 모습으로 울산항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울산공단의 오늘날까지 이끈 근현대사의 역군이기도 할 것이다. 방어진이란 지명은 온대성 어패류인 방어가 많이 잡힌다하여 방어진이라 불렀다 한다. |
슬도명파.슬도 |
울산 방어진 12경 중 제2경 슬도를 찾아 들어선다. 슬도를 여행하려는 연인과 가족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강태공이다. 성끝자락에서 뱃길을 이용하여 일부 낚시꾼들이 들어가던 슬도는 1989년 방파제가 놓였고 덕분에 육지화 되었다. |
파도소리가 흡사 거문고를 켜는 듯 소리가 난다하여 슬도로 불리는 곳으로 슬도에는 독특한 백색등대와 붉은 등대 주변으로는 낚시터가 개발되어 있으며, 대왕암으로 가는 길을 열려져 있어 대왕암과 연계관광하기 좋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
슬도에는 2기의 등탑이 위치하고 있다.
1기는 슬도 내 해안언덕 위 자리잡은 흰색등대와 방파제 끝자락에 위치한 붉은등대가 울산항 방향과 방어진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
슬도로 진입하는 교량에 도착하면 울산광역시의 상징인 고래 조각과 함께 슬도 등대를 만나게 된다. 또한 진입로에서 낚시를 하거나 해녀를 만날 수 있는데 바다에서 다양한 해산물을 건져 올린다. MBC드라마 배경지로 등장했던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슬기등대는 1958년 점등을 시작으로 2008년 슬기등대를 다시 단장하면서 등대의 광력을 기존 8마일에서 23마일로 대폭 증강하고, 2009년 무인도였던 슬도를 해상소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본격 준비 작업을 진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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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도 흰색등대 아래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 바위를 볼 수 있는데 울산에서 보기 드문 지형으로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독특한 소리를 내는데 바로 거문고 소리를 닮았다 하여 거문고 슬(瑟) 을 사용하여 슬도라 하는데 바다끝자락이라 흡사 거제도 바람의 언덕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
대왕암.울기등대 |
울산 바위에는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용이 살았다는 용굴은 해식동굴로 청룡 한 마리가 살았는데 심술이 심해 어부들의 뱃길을 방해하자 용왕이 청룡이 굴속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 전설을 시작으로, 부부소나무에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찾아오면 백년해로 한다는 현대판 전설까지 전해진다. |
신라시대 왕이 휴양하며 머물었다는 어풍대로, 조선시대 말을 방목하던 목장으로, 이후 왜적의 침입을 대비한 군사요충지역으로, 1908년 국내 3번째 등대인 울기등대가 설치된 지역으로, 러·일 당시 일본 해군 주둔지로, 1962년 울산 제1호 공원으로, 근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간첩침투를 방어하는 군사지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은 덕분에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송림과 개발로부터 손이 뻗치지 못해 자연 상태로 보존된 공간으로, 2004년 일제잔재 청산 일원으로 대왕암공원으로 개명하였다.
▲ 슬도에서 바라 본 대왕암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시상식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곳은 거센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 맡기고 있는 해송 숲과 소나무 그리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어우러진 매우 이색적인 바다 여행지이다. |
대왕암 송림지역이 일제가 군사기지 은폐용으로 조성하였다는 울산동구 향토연구회의 주장이 나왔다. 조선 정조 10년(1786) 울산 읍도에 군사요충지로 표기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지점으로 일제가 이 일대 포진지를 만들고 해송을 이식했다는 주장이다. 해송의 나이를 역추적하면 동국여지승람에 말이 뛰어놀던 초원지라는 것으로 "방어진 12경 중 3경 마성방초(馬城方草)와 4경 용추모우(龍湫募雨)"라고 언급했다는 것과 1999년 동구청이 발간한 울산 동구지에는 1934년 울기등대 조성과 함께 인공림이 조성되었다는 것으로 10살 된 나무를 심었다하여도 송림은 80~90살로 추정된다.
대왕암의 전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30대 문무왕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 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바위‘로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진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을 이곳을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이 줄어 댕바위(대왕암)라 하였으며, 또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
▲ 울기등대 관리소 내에는 신.울기등대와 구.울기등대가 있다. |
울산 12경중의 한 곳인 대왕암공원 입구에는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동해안을 운행하는 뱃길을 안내하는 목재등탑이던 울기등대(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06호)이 세워졌고 이후 콘크리트 등탑이 세워지면서 등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새로운 등대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등대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등대가 있는 이곳은 송림으로 우거진 산으로 대왕바위산, 혹은 대양산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호국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다 대왕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일본이 1905년 2월 이곳에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러.일 전쟁 시 군사목적으로 등대명칭을 울기등간이라고 하였으며, 이곳 지명 또한 울기로 부르게 되었다. |
▲ 울기등대 신 등탑 |
▲구. 등탑
등대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개방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 17:00 이다. 최초 점등일은 1906년 3월 24일이며. 회전식 대형등명기와 무신호(에어사이렌) 기능이 있다. 울기등대의 건립배경으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 일본이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러.일전쟁(1904.2.8.~1905.9.5.)을 일으키면서 일본해군이 동해와 대한해협에서 해상군 장악을 목적으로 1905년 2월 긴급히 등간을 설치하여 발트 해에 있던 제정 러시아의 유럽 공격 주력함대였던 발틱함대를 격침하는데 이용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등간은 향해안전 목적이 아닌 군사전략용으로 보인다. 그 이후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하여 높이 6m 돔형의 등대를 설치하였고(고종 광무 10년 3월 추정). 1972년 11월 기존의 등탑에 3m 수직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울기등대 구등탑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 해송들이 자라남으로 인하여 해상에서 구등탑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높이 24m 의 신등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
주전항. 탑 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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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항에는 독특한 해녀 스토리 디자인이 북방파제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주전마을 경관개선사업 일환으로 주전항 179m 방파제를 따라 조성된 벽화로 바다에서 나온듯한 높이 5m 해녀상의 모습과 해녀가 바다 속에서 작업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2014년 제4회 대한민국 경관대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디자인은 고강도 경량 콘크리트를 사용한 부조로 형상화하였다. |
▲ 주전항 전경 |
▲ 주전항 탑등대 |
주전항 북방파제 끝자락에 붉은 탑 모양의 등대가 위치해 있다. 등대가 서 있는 아래는 형광색으로 채색된 테트리포트 4기가 눈길을 끈다. 남방파제에는 날렵하게 생긴 하얀색의 등대가 마주하고 있다. 등탑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3층을 모방하고 있다. 붉은 탑은 바다로 나가는 배들의 안전향해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등대가 아닐까 싶다. |
▲ 주전몽돌해수욕장 |
주전몽돌해변은 까만 조약돌이 약 1.5KM 해안선에 깔려 있으며, 새알같이 둥근 돌 위를 소리 내며 밀려왔다 빠져 나가는 묘한 파도소리와 까만 돌 위 하얀 파도가 그려내는 색의 조화 그리고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다. 주전(붉을 주 朱, 밭 전 田)이란 지명은 18세기 조선 정조3년(1779)부터 사용된 명칭이라 하는데 땅의 색이 붉다는 의미라 한다. |
울산은 동해안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해안을 자랑하지만 공식적인 해수욕장으로는 진하해수욕장과 일산해수욕장 뿐이며, 모래가 없는 대신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몽돌이 해안전역을 따라 이어지는 독특한 해안을 가진 동구 주전해수욕장과 북구 강동해수욕장이 있다. 특별한 배경은 없지만 주변에 고급레스토랑과 커피전문점 그리고 몽돌을 구르는 소리와 밤이면 먼 바닷가 오징어잡이 배들의 조명이 해안선을 따라 연출된다. |
당사항.한옥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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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이 찬바람과 싸우며 연신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당사항이 있는 주변에는 소박한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용바위에서 해상을 잇는 다리를 지나 넘섬까지 가는 당사해상낚시공원이다. 낚시인은 1만원, 일반 여행객은 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다리를 통해 바다로 그리고 다리의 끝자락에서 넘섬에 도착하면 아래 용의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 한옥등대와 뒷편 바다로 향하는 낚시공원 |
뱀과 거북이 살았다, 옥황상제가 천상에서 서로 앙숙이라 지상으로 내쳤는데 옥황상제는 둘 중에서 누가 나쁜 행동을 하는지 분간이 어려웠기 때문에 둘 다 내려 보고 살펴보니 거북이가 나쁜 행동을 일삼는 터라 옥황상제는 뱀을 용으로 승천시켰는데 그때 바위가 둘로 갈라지고 용이 승천하면서 갈라진 바위 덕분에 막혔던 물길이 열려 이때부터 용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
해상낚시공원 옆으로 작은 항구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당사항이다. 당사항 한옥등대(당사항방파제등대)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8각의 기둥 구조물 위 기와지붕을 올리고 한옥과는 다른 서양식 고딕양식의 둥근 장미창 두 곳을 문 앞쪽으로 만들어 놓은 등대이다. |
정자항.고래등대 |
울산광역시 북구 정자동에 위치한 국가어항 ‘정자항’ 방파제 끝자락에 디자인 현상공모로 당선된 2기의 등대 상징물이 조성되었는데 바로 귀신고래 모양이다. 정자항을 중심으로 횟집촌이 성업 중이며 주변에는 위락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
▲ 정자항 방파제 끝자락에 위치한 고래등대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 된 정자항의 지명은 이곳 마을에 24그루 포구나무 정자가 있어 그 후 정자마을로 불리면서 정자항이 되었으며, 북방파제와 남방파제가 어항을 지키고 있다. 가자미로 유명했던 정자항은 2003년부터 대게를 잡기 시작하면서 항구 주변에는 대게를 찾는 미식가들로 주말이면 차량정체가 심한 곳이다. |
정자항에 들어서면 독특한 형상을 한 고래등대를 만나게 된다. 왼편 방파제에 붉은색 고래등대와, 오른편 방파제에 흰색 고래등대이다. 이곳 정자항에 고래등대가 들어 선 것은 예로부터 울산은 고래잡이를 했던 기록이 반구대암각화에 남아 있을 만큼 포구마다 고래잡이가 성행하였던 곳으로 상징적 의미로 세운 듯하다. |
▲ 정자항 전경
고래등대의 모델은 한국 고래로 알려져 있는 귀신고래이다. 2010년 정자항 남. 북방파제를 새롭게 디자인 개량공사를 통해 제작된 높이 10m 등대로 디자인 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명 ‘회유’로 귀신고래가 수면으로 부상하는 모습의 디자인이다. |
강동화암주상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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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해안 오른쪽 바위 주변은 온통 주상절리이다.
울산광역시 북구 산하동 952-1 해역부에 위치한 시도기념물 제42호 강동화암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 형성된 주상절리로 해안에 연필 한 타스를 묶어 넘어뜨려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강동화암 주상절리와 경북 경주시 재돌로 불리는 읍천주상절리는 불과 6.6.km로 해저에서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울산 강동화암 주상절리는 주변에 자갈로 이루어진 모래가 없는 해안 한편에 화산으로 이루어진 큰 바위와 주상절리가 비스듬하게 해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누워져 있는데 해안선을 따라 길이 400m, 너비 100m, 높이 10m 규모이다.
▲ 강동 자갈해변 |
강동화암주상절 리가 있는 해안은 온통 자갈마당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울산해안에서 만나는 주전몽돌, 정자몽돌, 강동몽돌 등으로 몽돌의 크기가 비슷비슷하며, 강동 몽돌이 있는 해안에는 파도에 밀려 작은 자갈언덕을 만들어 놓고 있어 신비롭다. |
신명길.선돌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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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길 해안에서 바라 본 신명항과 붉은 등대 |
울산 북구 신명길은 신명동 332-6번지를 시작으로 신명동 3번지에서 끝나는 총거리 약 1,722km 구간으로 울산 파도소리길이자 해파랑 길로 신명해안이라 부르며, 강동화암주상절리를 떠나 해안 길에 바짝 붙어 이동하다 선돌바위를 만나면서 이곳 해안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사람의 행렬이 거의 없는 해안끝자락은 2008년 9월 22일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된 신명항에 닫는다. |
소규모 신명항에도 붉은 등대 하나가 지키고 있다. 최근 조성된 신명항방파제등대는 손잡이 렌턴형상을 방파제 끝자락에 세워놓은 듯 조형미가 독특하다. 붉은 등탑 위 검정색 타원형 원을 점점 넓혀가며 세워 조형미를 더했다. |
해안자락을 따라 불쑥 솟은 바위가 삐딱해 보이는데 이것은 바위에 그려진 독특한 문양이 비스듬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사자갈기머리를 한 바위 또는 얼룩말이나 감성돔 줄무늬를 연상하게 하는 바위가 해안자락을 따라 이어지면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
▲ 신명항에 붉은 등대가 자리잡았다.
해안길이 잠시 신명항에서 끝이 난다. 인적이 뜸한 항구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방파제를 따라 해안으로 나들이 하거나 지나온 신명길을 따라 선돌바위까지 걸어도 좋다. 운이 좋은 날이면 알록달록 줄무늬를 가진 바위에 갈매기가 올라앉아 멋진 그림을 연출하기도 한다. |
수렴길.군함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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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바위 전경 |
수렴항에 도착한다. 겨울 일출 명소로 수렴항 방파제에서 관성솔밭해안으로 바라보면 해상에 아기자기한 모습을 한 바위를 만나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군함을 닮았다하여 군함바위 또는 주민들은 학이 날아들었다 하여 학바위, 황새바위로 부르고 있다. 최근 수렴항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군함바위에서 12월 말~ 1월이면 바위 위로 올라오는 일출을 만날 수 있었지만 최근 방파제가 생겨나면서 방파제와 군함바위가 겹쳐 인기를 잃어가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
군함바위 일출은 몇몇 작가들만 아는 숨겨진 일출 여행지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항구 앞을 감싸는 방파제가 없었고 군함바위와 일출을 겨울이 되면 교묘하게 삽입하여 촬영이 가능하여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몇몇 작가들이 찾았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유는 방파제 모습이 군함바위와 절반정도 겹치면서 배경을 잃어 버렸다. |
읍천항.주상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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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양남주상절리라 한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부채꼴 모습이 이색적이다.
옛 재돌로 불리는 이곳 경주 읍천 주상절리는 아직 정식 명칭이 없다. 해병대 군부대가 있던 곳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절리는 군부대 철수 후 알려지기가 시작하였는데 동해안 자락에서 만나는 주상절리 중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한 모습 때문에 많은 사진작가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 읍천항에서 하서항을 잇는 해안길은 온통 주상절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주 읍천 주상절리는 수직과 수평 절리가 혼합형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으로 2012년 주변을 정비하고 읍천항 벽화마을과 연계하여 관광지화를 구상하고 있다. |
문무대왕수중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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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유산의 끝자락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도착하면 망망대해 동해바다 해안가에 작은 바위섬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을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라 한다. 사적 제158호 문무왕의 릉이 경주시에서 흔하게 만나는 대형급 고분이 아닌가에 관한 이야기로는 불교 방식으로 죽음 사후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동해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언에 따른 국내 첫 수중릉 무덤인 것으로 대왕암은 둘레가 200m 정도의 암초 안쪽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 정도의 큰 돌이 남북으로 걸쳐있어 그곳에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 문무대왕 수중릉에는 갈매기가 살고 있다. |
개인적 생각으로 수중대왕릉에 접근해 보면 참으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 장례는 4세기 경우 토광묘를 비롯하여 소형 석곽묘에서 적석목곽분(땅을 고른 후 돌을 깔고 나무곽을 세워놓고 그 속에 다시 나무관을 넣는)으로 변화를 하며 6세기는 적석목곽분을 대체하는 횡열식 석실(합장이 가능한 일명 부부묘/황남대총)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왜 문무왕은 최초로 화장을 택했을까? 또한 대왕바위로 알려지기 전에 댕바위로 불리던 곳이 대왕암으로 된 근거를 뭘까 하는 부분이다.
문무대왕릉을 두고 확실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대왕암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에 좌 우가 열십자로 갈라지고 중앙에는 거북등 모양의 큰 돌이 올려놓았으며, 대왕암의 웅덩이 수심은1.5m로 안쪽을 인위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지만 그러면 당시 문무왕의 대단한 인물로 바위에 문무대왕수증릉이란 어떤 표기마저 해 놓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
▲ 문무대왕암 앞에서 갈매기와 마주하고 있는 여행객 |
문무왕은 자신이 죽고 열흘 뒤 화장을 하라고 유언을한다. 화장터는 고문외정(고문의 바깥뜰)인데 당시의 고문와정은 알길이 없고 단지 1970년 형체식별조차 어려운 탑과 불상을 발견하였는데 탑 이름을 능지탑으로 부르며, 일반적인 탑 형태와는 다른 것으로 보아 고문와정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이에 관해 개인적으로 추정해 보면 삼국대업을 이룬 문무왕은 나당연합으로 수세에 몰린 고구려와 패망한 백제 권력층이 일본열도로 들어가자 문무대왕 역시 일본으로 건너가 고구려와 백제 잔당을 치고 세력을 확장하려 하였을 것으로 본다. 만파식전 이야기가 그러한 맥락으로 풀어보면 일본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혹시 바다를 통해 적이 침입하면 언제라도 파도를 일으켜 잠재운다는 뜻이 지원을 오겠다는 문무대왕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문무왕이 죽음을 맞이하자 유골을 수습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뼈를 바다 어딘가 언치하면서 감은사지에 혼을 모신 것은 아닐까 싶다. 감은사지에 있는 두 탑에서 각각 발견된 유물로 똑 같은 위치에서 부처님 사리와 또 다른 사리장엄구는 아마 문무왕의 사리로 짐작하면 전설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울산을 잇는 동해안 자락에는 많은 이색등대가 자리하며, 크고작은 항구가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이 해안을 따라 고래가 찾아와 새끼를 낳고 머물며 미역을 먹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 미역을 산모가 먹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음식문화도 만들만큼 동해안에서 만나는 울산의 해안은 아주오래전부터 바다에서 생업을 하였고 그 덕분에 항구가 많이 생겨났고 그 덕분에 많은 등대가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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