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여행 | 경상북도 걍주시 |
감포항 송대말(松臺末) 등대 |
감포항에는 북방파제(270m)와 남방파제(370m)가 있으며, 북방파제에 붉은 등대 1기가 항구의 위치를 안내하고 있으며, 뒤편으로 송대말등대와 구.송대말 등대가 나란히 이어진다.
▲ 감포항을 나서는 조업선박
감은사지에서 감포항까지 약 10km 거리로 10분, 읍천항까지 9.6km 거리로 15분이면 도착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 경주 동해안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문무대왕릉에서 일출을 만난다. 경주여행을 하는 외지인이 횟감을 찾아, 바다를 찾아 비릿한 감포항을 찾았지만 지금은 읍천항 주상절리로 인하여 감포항은 동해남부 중심 어항이지만 점점 밀려 퇴색되는 듯 보인다.
▲ 감포항을 나서는 방파제에 붉은 등대와 뒷편으로 송대말 등대가 서 있다. 감포항은 1995년 12월 29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감은사지와 가까워 감은포로 부르다 음이 축약되면서 감포가 되었다 한다. 감포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번창했던 곳으로 항구 끝자락 언덕에 감은사지 석탑을 모델로 만든 새로운 송대말등대와 구 등대가 있다. 감포항에는 참참참이라는 대표적인 수산물로 유명하다. 3참으로 불리는 참참참은 참전복과 참가자미, 참복어이다. |
▲ 구.송대말 등대 주변으로 300년 된 소나무와 뒷편에 새롭게 생긴 기와지붕 건물형식과 감은사지 석탑형식을 응용한 송대말 등대가 위치해 있다.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한 등대 초입에서 오랜 세월 숲을 이루고 해풍을 견뎌낸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松 소나무 송, 臺 돈대 대, 末 끝말 즉 소나무가 있는 언덕 끝이라는 말처럼 초입부터 소나무가 먼 길을 찾아 온 여행객을 반겨준다. |
동해남부 중심 어항 감포항으로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송대말 등대 그리고 주변 해안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낚시 포인트가 산재해 있는 감포항은 해안도로를 따라 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일제 강점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감포항은 1934년 인천항과 함께 개항되었다. |
▲ 등대 앞 절리지역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울산 장승포항, 포항 구룡포항 그리고 경주 감포항으로 몰려들었다. 일본인들이 몰려 든 단하나의 이유는 바로 고래잡이였다. 당시 조선 어부들에게 고래는 천대를 받을 만큼 귀찮은 존재였다. 고래를 잡으면 나라에 진상하거나 높은 양반이 고래 해체작업을 시키는 노동 때문에 고래잡이는 힘든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고래를 잡지 않으니 동해는 많은 고래가 확인되었고 외국인 눈에는 그것이 곧 돈이었다.
1899년 일본 나가사끼항에 있던 러시아 태평양포경회사(께이제를 링그 백작 설립)는 장생포에 고래 해체장을 만들고 고래를 포획하기 시작한 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패하자 일본이 러시아를 대신하여 1905년 국내 포경업을 독점하고 동해안의 고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였고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무려 6,500여 마리의 고래를 포획하였으니 당시 이 일대는 고래산업으로 일본에서 몰려든 왜인들이 늘어나면서 항구마다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고래산업으로 흥행하던 항구는 해방과 함께 일본인에게 월급대신 받은 포경선을 거머쥔다. 그리고 만든 조선포경회사 및 1962년 포경조합 설립(11개 회사) 15,000여 마리 포획하였지만 1978년 미국을 비롯한 축산대국은 국제포경위원회인 I.W.C 가입을 압력행사 하였고 1982년 제3차 I.W.C에서 일시적 상업포경금지를 통과시킨 후 1986년 1월 1일부터 5년간 상업포경 전면금지 모라토라움을 선언하면서 항구는 활기를 점차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포경선은 62년-15척, 66년-29척, 78년 이후-21척 이후 마지막 남은 단 1척이 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이다.
항구는 고래를 잡기 위한 사람과 일본인이 운영하는 선박회사 후리배를 타고 정어리와 멸치를 잡기위해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서 활력이 넘쳐나던 연안항은 1995년 12월 29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감포는 ‘甘’ 달감 모습의 지형과 지척에 감은사가 있는 포구라 하여 감은포로 불리다 음이 줄어 감포가 되었다. |
▲ 소나무 숲길 주변으로 차량 서너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소나무 숲길 끝자락 우뚝 서 있는 송대말 등대를 만난다. 지난 1955년 무인등대로 설치된 후 1964년 유인등대로 그리고 2001년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본따 만든 새로운 등대에게 역할을 건네주고 지금은 퇴역하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 신탑 송대말 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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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탑 송대말 등대 |
등대는 300년 된 소나무에 둘러싸여 절경을 자랑한다. 송대말 등대는 지명은 이 일대가 일제강점기 당시 절리주변에 시멘트로 인공어장을 만들어 해산물을 보관해 두었다가 먹던 곳으로 오다공원이라 부르며 조선총독부 고관과 일본인 유지들이 들락거렸던 곳이라 한다. 조선총독부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감포 송대끝’이라 부르며 기념우표를 발행하였고 오늘날까지 송대말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웃한 호미곶처럼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송대말 등대를 송대곶 또는 감포곶이라 부르면 어떨까 싶다. |
▲ 구. 송대말 등대 뒷편으로 새로운 등대가 보인다. |
▲ 갑방돌 위 우뚝 서 있는 관암등표
새롭게 자리한 감포항 송대말 등대에 우리기술로 만든 신형 등명기로 교체되었다. 350만 촉광으로 해상 48km 가까이 밝혀 기존 미국산 등명기 40만 촉광, 29km 보다 우수한 성능을 탑재하고 20초 단위로 불빛을 깜빡인다. |
등대마다 고유의 불빛 신호가 있다. 경주에서 동해안 자락을 따라 오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송대말등대(34초)이며, 호미곳등대(12초), 후포등대(10초), 죽변등대(20초)이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어선은 밤이면 등대의 불빛을 따라 향해하는데 붉은등은 왼쪽, 녹색등은 오른쪽으로 진입하라는 신호이다. 송대말 등대 앞에 검정몸통에 노란 옷을 입은 등대가 보인다. 정식이름은 관암등표로 갑방돌 위에 세워진 실시간 해양관측시스템이 설치된 등표이며, 송대말 등대의 정식 명칭은 송대말항로표지관리소이다. 구 등대는 촛대처럼 깔끔한 몸매를 자랑한다. 백색등탑과 녹색 소나무 그리고 뒤편으로 보이는 경주 기와지붕과 감은사지 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새로운 등대가 서 있다. |
▲ 절리 주변 시멘트로 막아 수족관을 만들어 놓았다. |
송대말 등대 앞으로 바위가 돌출되어 있으며, 마치 물막이를 하듯 시멘트로 둑을 쌓고 막은 흔적이 남아 오늘날 낚시꾼들의 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방사하여 살려 보관하는 일종의 자연수족관의 흔적이다.
바위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사각형을 이룬 주상절리 돌기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주변으로 갯바위가 수없이 널려 있어 일출이나 안개가 낀 날이면 수목화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
▲ 주택모양의 신.송대말등대 |
▲ 등표 |
▲ 유인등대 숙사 |
▲ 등대 앞 해안 절경
송대말 등대 주변 잔잔한 파도가 밀려든다. 이따금씩 뿌려놓는 하얀 포말에 엉덩이가 무거운 갈매기는 살짝 몸을 돌려 앉을 뿐 익숙한 듯 무신경이다. 시멘트로 만든 수족관 일부구간이 파도에 깍여 높이가 많이 낮아졌지만 아직도 해안가에서 쉽게 만난다. 송두말 끝자락에는 팽팽한 낚시줄과 사투를 벌리는 낚시꾼의 무료함이 갯가에 널려 있다. 출항하는 배가 이따금씩 물살을 만들어 놓는 등대 앞 어항에는 어쩌다 파도에 떠밀려 왔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새끼들이 둔탁한 등산화 소리에 놀라 돌 사이로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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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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