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여행 | 경상북도 포항시 |
호미곶등대(대보등대) |
옹기종기 모여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장엄한 시간, 긴 침묵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해를 맞이하려 항구를 떠나는 배 소리가 아침바다를 깨우면 상생의 손 너머 움추렸던 추위를 녹이며 요령피우지 않고 일출이 시작된다. 어둠이 깨어나고 찬란한 빛이 스며들면 한순간 여행자의 마음을 배앗아 가는 곳이 최동단에 위치한 호미곶이다.
최동단에 위치한 호미곶은 우리나라를 호랑이보 볼 때 꼬리에 해당되어 호미곶(虎尾串)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
새천년 일출로 알려진 호미곶에 2001년 경북지역에서 최초로 풍력발전기 1기를 주변에 세워 시험가동을 하였으며, 1903년 국내 최대 규모 등대와 1985년 국내 최초 등대박물관이 자리 잡은 일출명소이자 바다여행지이다. |
▲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전경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이 영양인 사람이 예언이 유명하여 선조 때 동서분당을 미리 예언하는가 하면 1592년 임진왜란을 명종 말기에 예언해서 유명한 풍수지리학자 남사고의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 한반도를 두고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백두산이 코에 해당하고 호미곶이 있는 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며, 김정호는 이곳을 우리나라 최동단 지역임을 기록하고 있다. |
▲ 해안길에서 바라보면 대보등대, 상생의손, 해안전망대 순으로 조망된다.
호미곶은 이후 동을배곶(冬乙背串), 동배곶(冬背串), 동외곳(冬外串), 장기곶(長鬐串)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오늘날 호미곶은 2001년 호랑이꼬리정기회복운동 일환으로 개칭된 지명이다. 조선시대 동을배곶, 동배곶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동외곶, 행정구역상 장기현이라 장기곶이라 부르다 1918년 일본식 표현인 갑(岬)을 사용하면서 장기곶(長鬐串)은 강기갑(長岬岬)이 되었다. 그 후 1988년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일제 강점기 변경된 갑을 곶으로 개칭하면서 호랑이 끝자락 꼬리에 해당한다하여 2001년 최종적으로 호미곶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호랑이 꼬리부분에 관해 일본은 우리나라의 정기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힘없고 어리석은 토끼로 비유하여 불렀다. |
▲ 대보등대 옆으로 새천년기념관 그리고 경북최초 실험용 풍력발전기
바다를 향해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 시비(詩碑)가 놓여 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본다. 1939년 8월 ‘문장’을 통해 발표한 청포도는 다음과 같다.
내 고장 七月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문장> 1939년 8 월
이육사는 한학자였던 사촌형 ‘이종형’이 포항에 살았고 건강이 좋지않아 휴양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동양최대 포도농장이였던 삼륜포도원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남긴 시가 바로 청포도이다. 포도원을 다녀 간 후 중국에서 교정을 하여 국내로 보내져 문장을 통해 발표하였으며, 이를 기념하여 1999년 12월 29일 호미곶 광장에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 연오랑 세오녀 기념비
호미곶은 일출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경 중 하나로 손꼽았을 정도로 일출을 자랑하며, 고려 초기 박인량이 쓴 설화집 수인전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부부였는데 신라 아달라왕 4년에 연오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역을 따로 나갔다가 바위에 올라섰는데 그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일본의 어느 섬으로 가게 되었다. 연오랑이 없어진걸. 뒤늦게 알게 된 세오녀는 바다를 찾아가 남편을 그리워하는데 남편은 일본의 작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보통사람이 아니라며 그곳의 왕으로 추대 되었다.
어느 날 세오녀는 남편이 벗어둔 신발이 올려진 바위를 보고 그곳에 올라서자 세오녀도 갑자기 바위에 실려 떠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정작 사라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없어져 버렸고 놀란 왕은 일관을 불러 점을 쳐보니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고 말하자 왕이 급히 사신을 보냈고 사신은 연오랑과 세오녀를 만나 자초지경을 이야기 하니 이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돌아는 갈 수 없지만 세오녀가 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을 내주면서 돌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다시 해와 달의 정기를 되찾을 것이라 하였다. 사신은 비단을 들고 와 제사를 지내니 정말 해와 달이 밝아졌는데 당시 제사를 지낸 곳이 영일현으로 지금의 영일만으로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두 부부의 조각상을 두고 있다. |
▲ 상생의손 |
해맞이 광장은 새천년 한민족해맞이 축전 개최장소이다. 넓은 공간에는 상생의 손과 성화대, 불씨함, 연오랑세오녀상, 햇빛채화기, 공연장, 주차장과 관리소가 있다. 해맞이 광장에서 만나는 상생의손은 청동을 이용하여 육지와 바다에 각각의 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왼손 앞에는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호미곶에서 채화된 새천년 불씨,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갖고 온 불씨로서 영원한 불이 타고 있다. ▲ 마주보고 있는 상생의 손 |
상생의손은 1999년 6월 김승국(54)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 교수팀이 제작에 착수하여 12월 완공된 조형물 중 육지에 높이 5.5m 왼손을, 바다에 8.5m 오른손을 위치하면서 이를 상생의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상생의 손은 20세기를 떠나보내고 21세기를 통해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 즉,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서로 돕고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생의 손은 일출 여행을 하는 사진작가들에게 좋은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가락 위에 갈매기 날아들고 일출이 걸리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
▲ 새천년기념관 옥상에 전망대를 운영하고 있다.
해맞이 광장 중심건물인 새천년기념관은 2009년 개관하였다. 1층에는 ‘빛의 도시 포항속으로’ 주재를 하고 있는 전시실과 2층은 화석관을 운영하여 옥탑 전망대에서 탁 트인 동해안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
▲ 대보항 전경 |
▲ 호미곶 광장 |
▲ 호미곶(대보) 등대 |
▲ 등대박물관 전경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전문박물관이 호미곶 해안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등대박물관에는 등대의 변천사와 세계등대 사진 그리고 향로표지와 시설 및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1층, 2층 전시실을 비롯하여 야외전시장에는 이름난 국내 등대모형을 전시하고 해양수산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관은 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입장료는 없다. |
▲ 등대박물관 내부 전시 |
▲ 해양수산관 |
▲ 호랑이조각상 |
등대박물관은 1985년 2월 7일 개관 및 다음해인 1986년 4월 18일 박물관으로 지정, 1993년 시설확충을 거쳐 2002년 4월 19일 확장개관을 하였다. 박물관 1층 전시공간에는 등대에 필요한 향로표지용품 320종, 해양관련 자료 3,000점 중 500점을 전시하고 있다. 2층 전시관은 등대관과 등대유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
▲ 호미곶 등대(대보등대) 전경
호미곶에 우뚝 서 있는 호미곶 등대는 대보면에 위치하여 대보등대라 부르기도 한다. 1908년 4월 13일 착공하여 12월 20일 완성한 높이 26m 팔각등대로 날씬한 조형미가 일품이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등대는 인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이며, 광무5년(1901)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청국의 세력을 몰아내고 러시아를 상대로 한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7년 9월9일 대보(호미곶) 앞바다 큰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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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수산강습소 실습선이던 ‘가이요마루’가 대보 앞바다에서 암초로 인하여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조선의 항만시설 때문으로 책임을 돌렸고, 결국 조선 동해안 자락을 따라 등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등대 이름은 동외곶등대이다. |
▲ 해안 전망대 어린이 조각상 호미곶 해상 전망대에 돌문어 작품이 놓여있다. 국내 최대 문어 생산지인 호미곶 돌문어 우수성을 알리는 축제를 통해 만들어 진 작품이다. |
하늘을 집어삼킨 코발트블루 바다색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람이 그려내는 하얀 파도와 해안 가까이 수없이 널려 있는 검정바위 그리고 바위에 머문 갈매기가 그려내는 호미곶 앞 바다 전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
대보항(대보방파제등대) |
▲ 대보항에서 바라 본 좌,우 대보항 방파제등대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만나는 어항으로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대보항은 동명으로 불리다 태부로 개명 그리고 대부로 개칭된 항구로 호미곶과 이어져 있는 항구이다. 항구를 지키는 대보항 등대는 2002년 2월 27일 착공하여 2002년 12월 30일 준공된 등대이다. |
호미곶 상생의 손을 대보항에서 만난다. 대보항 트릭아트 벽화길에서 만나는 평면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그려놓아 등대로 향하는 탐방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트릭아트는 대보항 방파제로 가는 바닥을 따라 호미곳 상생의 손을 그려 놓은 세계최장 160m에 그려진 작품이며, 방파제에는 총 3개의 아트 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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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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