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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울산 울기등대

허영꺼멍 2015. 1. 26. 11:40

 

 

 울산 대왕암 울기등대

| 등대여행 | 울산광역시 동구

 

 

 

바다에서 심장이 흔들리는 소리를 온몸으로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해무가 송림 사이를 헤집고 등대는 흔적조차 없이 감춰 버린다. 눈을 가려 버린 등대는 걸걸한 목소리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한다. 투박하면서도 긴 여운은 해무를 뚫고 퍼져 나간다. 해무가 밀려오는 날 울기등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무산소리라 한다. 등대는 안개. 해무가 발생하면 낮에도 소리를 내어 향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1906년 울기곶 끝자락 언덕 위 울기등대를 세웠다. 1962514일 울기등대 주변을 울기공원으로 부르기 시작하다 1987년 신 등탑으로 교체, 1992년 군부대 이전 및 2004224일 오늘날 대왕암공원으로 개칭하였다. 문무대왕비의 전설이 있어 대왕암공원으로 불리지만 인근 경주 문무대왕릉과 비슷하여 여행에 혼선을 주는 이곳을 울기곶 공원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 독특한 볼트 형식 입구 

▲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06호 구.등탑 

 

고종 광무 10(1906) 일본은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일제의 강요에 의해 울산 울기곶에는 등대가 세워지게 된다. 1906326일 석유로 불을 밝히는 울기등대가 완성되었다. 오늘날 등대보다 낮은 모습과 등대 앞에 돌출된 입구 형태 즉, 볼트 형식의 현관을 만들고 6m 높이 팔각형 등탑을 올렸다. 등대가 생겨난 이후 동해안을 해상권을 장악한 일본은 조선을 침탈하였고 조선은 주권을 잃어버린 비극의 역사 일제강점기(1910.8~1945.8)에 들어간다.

등대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등대가 있는 이곳은 송림으로 우거진 산으로 대왕바위산, 혹은 대양산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호국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다 대왕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일본이 19052월 이곳에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러.일 전쟁 시 군사목적으로 등대명칭을 울기등간이라고 하였으며, 이곳 지명 또한 울기로 부르게 되었다.

 

일본이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러.일전쟁(1904.2.8.~1905.9.5.)을 일으키면서 일본해군이 동해와 대한해협에서 해상군 장악을 목적으로 19052월 긴급히 등간을 설치하여 발트 해에 있던 제정 러시아의 유럽 공격 주력함대였던 발틱함대를 격침하는데 이용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등간은 향해안전 목적이 아닌 군사전략용으로 보인다. 그 이후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하여 높이 6m 돔형의 등대를 설치하였고(고종 광무 103월 추정) 197211월 기존의 등탑에 3m 수직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울기등대 구등탑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 해송들이 자라남으로 인하여 해상에서 구등탑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12월 높이 24m 의 신등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구등탑은 백색 하부원형 상부 팔각형 구조로 높이 9.2m 이며, 신등탑은 백색 팔각형 구조로 높이 24m 이며, 구등탑은 구한말 시대 건축양식으로 200494일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신등탑은 촛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울기등대 구 등탑은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19052월 목재로 만든 후 19063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현재의 장소에 높이 9m의 등대를 만든 후 19871212일까지 80년간 불을 밝혔다.

  

▲ 1987년 12월 조성된 등탑   

 

 

▲ 신 울기등탑

 

울기등대는 1906년 높이 6m 등탑 석유등에 첫 불을 밝힌 이후 1945년 석유등을 전등(후렌치식)으로 교체, 1964년 전화 설치, 197211월 등탑을 3m 증축하였다. 울기등대가 조성될 당시 키가 낮았던 해송이 자라나면서 등대를 가리는 해송나무 가지치기를 하였으나 한계에 다달하자 198712월 등탑 개축 작업을 통해 오늘날 백색팔각콘크리트 구조를 한 높이 24m 촛대형식의 등대를 세웠다. 새로운 등대가 세우지면서 구한말을 시작으로 80년간 불을 밝혀왔던 구 등탑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지정하고 임무교대를 하였다.

 

▲ 울기등대 전경

 

동해안 등대 조성은 오늘날 동해안을 향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한 등대 역할보다 일본이 러.일 전쟁을 위해 대한해협에 등간을 설치하는 군사 전략용으로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는 추정과 함께 이곳 울기등대 역시 일본에 의해 세워진 등대였다. 등대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개방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 17:00 이다. 최초 점등일은 1906324일이며. 회전식 대형등명기와 무신호(에어사이렌) 기능이 있다.

 

 

 

 

대왕암 공원으로 내려서다

 

▲ 대왕암 전경

 

토함산맥은 장기반도에서 토함산과 무룡산을 거쳐 울기곶에 도착하면서 화강암층을 이루며 다양한 지형을 해안가에 펼쳐 놓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대왕암이며, 개발로 사라져 버리거나 막혀 버린 어풍대와 방어진 꽃바위 등이 있다. 왕실에서 바다 여행을 하면서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긴 양산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일산(日傘)이라 하였고 배를 타기 위해 찾았던 오늘날 일산해수욕장 주변을 일산진이라 부르며, 오늘날 일산지명이 되었다. 일산해수욕장에서 왼편 현대방향 끝자락이 어풍대이며, 오른쪽이 대왕암이다.

 

▲ 해안에서 바라 본 대왕암 전망대

 

울산 대왕암 주변 바위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용이 살았다는 용굴은 해식동굴로 청룡 한 마리가 살았는데 심술이 심해 어부들의 뱃길을 방해하자 용왕이 청룡이 굴속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 전설을 시작으로, 부부소나무에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찾아오면 백년해로 한다는 현대판 전설까지 전해진다.

 

▲ 대왕암 송림 숲길

 

조선시대 말을 방목하던 목장으로, 이후 왜적의 침입을 대비한 군사요충지역으로, 1908년 국내 3번째 등대인 울기등대가 설치된 지역으로, ·일 당시 일본 해군 주둔지로, 1962년 울산 제1호 공원으로, 근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간첩침투를 방어하는 군사지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은 덕분에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송림과 개발로부터 손이 뻗치지 못해 자연 상태로 보존된 공간으로, 2004년 일제잔재 청산 일원으로 대왕암공원으로 개명하였다.

 

▲ 대왕암 공원 휴게실광장

대왕암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송림

대왕암의 자랑꺼리 송림숲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시상식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곳은 거센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 맡기고 있는 해송 숲과 소나무 그리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어우러진 매우 이색적인 바다 여행지로 해안길을 따라 슬도까지 산책하듯 거닐 수 있다.

 

 ▲ 부부소나무  ▲ 할미바위(남근석)  ▲ 탕건바위

 

 ▲ 거북바위  ▲ 고이  ▲ 사근방

 

▲ 대왕암 전망대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방향

 

대왕암 송림지역이 일제가 군사기지 은폐용으로 조성하였다는 울산동구 향토연구회의 주장이 나왔다. 조선 정조 10(1786) 울산 읍도에 군사요충지로 표기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지점으로 일제가 이 일대 포진지를 만들고 해송을 이식했다는 주장이다. 해송의 나이를 역추적하면 동국여지승람에 말이 뛰어놀던 초원지라는 것으로 "방어진 12경 중 3경 마성방초(馬城方草)4경 용추모우(龍湫募雨)"라고 언급했다는 것과 1999년 동구청이 발간한 울산 동구지에는 1934년 울기등대 조성과 함께 인공림이 조성되었다는 것으로 10살 된 나무를 심었다하여도 송림은 80~90살로 추정된다.

  

▲ 전망대로 오르는 탐방객

 

대왕암의 전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30대 문무왕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 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바위로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진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을 이곳을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이 줄어 댕바위(대왕암)라 하였으며, 또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옛 울기공원인 대왕암공원은 여전히 많이 찾고 있는 울산의 명소이다. 울창한 숲으로 한줌의 햇살과 옷을 여미게하는 찬바람, 해안길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탐방길에서 만나는 수려한 자연은 고단함을 잊게 한다. 묵묵한 바위길 탁월한 조망, 댕바위를 향해 달려오는 드센 파도의 소리가 숲을 후려친다. 순탄한 산길과 바위 사이로 이어지는 해안 전망대를 들락날락하다 보면 대왕교에 도착하게 된다.

 

하늘빛 삼킨 바다는 겹겹의 능선을 만들고 짭쪼롬한 낮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다. 끝이 어딘지 막연한 바위길은 미로를 만들고 탐방객의 체력을 테스트 한다. 먼거리도 아닌 전망대까지 단숨에 뛰어갈 것 같지만 느린걸음 보듬는 주변에 시선을 팔다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짧은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울산대왕암공원은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다. 스트레칭 좀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면 슬도로 향하게 된다.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