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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25-18 울산광역시 울주군 "간절곶" 나사해수욕장 등대 - 간절곶 - 진하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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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어 좋은 날 간절곶 [艮絶串]
▲ 태풍 당시 간절곶 앞 바다 전경
한때 감탄과 탄성이 이어지던 해안길이 가로 막혀 우회를 하여 진입한다. 간절곶에 가면 국내에서 제일 큰 우체통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소중한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배달까지 해주는 우체통이 있는 간절곶은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최근 간절곶의 진입로가 사라졌다. 해안가를 따라 조금은 엉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던 길커피까페도 사라졌다.
풍차에서 바다향기를 느끼다.
▲ 간절곶 풍차
간절곶에는 1920년 3월 첫 점등된 유인등대이자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선정된 간절곶 등대와, 해맞이 축제 상징 조형물로 제작한 간절곶 소망우체통이 있다. 우체통은 엽서를 이용하여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무료배달을 해 준다. 또한 최근 정비를 통해 간절곶 공원 내 높이 15m 풍차와 MBC드라마 메이퀸, 욕망의 불꽃, 친구2 등 촬영한 드라마하우스가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차 없는 도로 덕분에 공원 구역 내 거닐기는 한결 쉬워졌다. 풍경속 소소한 것들과 눈을 맞추며 사방 탁 트인 조망 그리고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을 만큼 공원구역은 조용해 졌다. 평탄한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우체통을 만나고 상쾌한 아침을 깨우는 등대도 만난다. 북적북적 했던 옛 기억들이 망망대해로부터 찾아든 해풍에 꾸덕꾸덕 말려 진다.
▲ 차 없는 거리 이전 주차장으로 사용된 공간에 연초록 공간으로 변했다.
간절곶은 항상 바람이 분다. 바위주변으로 엉성하리 만큼 줄기를 뻗은 해국이 소복소복 자리 잡고 파도는 쉼 없이 육지로 밀려와 하얀 포말을 허공에 뿌려 놓는다. 데크 산책로를 따르는 연인들의 즐거운 비명과 작은 속삭임이 빨간 우체통 속에서 들려온다. 일출여행지로,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바다여행지로, 먼 길 달려와 머물다 가는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는 간절곶은 해올제부터 옛 카페 촌이 있는 등대 아래까지 약 900m 구간을 차 없는 도로로 지정하면서 분위기가 아늑해 졌다.
간절곶(갑)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바라보면 흡사 감이나 과일을 따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긴 장대(간짓대)처럼 보인다하여 간절이란 지명이 붙고, 곶은 육지가 뾰족하게 바다 속으로 돌출한 부분으로 이를 합쳐 간절곶이라 부르지만 조선 초에는 넓고 길다는 의미를 가진 이길곶으로, 일제강점기 당시는 우리나라 지명을 통해 기운을 꺾기위해 간절갑으로 불렀다.
간절곶 등대는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속하는 명승지이자 동북아시아 대륙의 첫 새벽을 여는 장엄한 일출과 마주하는 곳으로 ‘艮絶旭肇早半島(간절욱조조반도)’ 표현처럼 간절곶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는 의미이다. 멋진 해안 조망과 함께 간절곶에서 만나는 일출의 아름다운 장관을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한번 떠나 보면 어떨까 한다.
간절곶 소망우체통
▲ 소망우체통
소망우체통에 편지를 적어 넣으면 무료배달을 해 준다. 우체통 모형 입구에 편지를 넣는 것이 아니라 우체통 뒤편으로 돌아가면 입구가 있으며, 입구로 들어서면 그 안에 부착된 또 다른 내부 우체통이 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소망엽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소망엽서는 전방 500m 앞 간절곶 해올제 매점(까페베네 건물 1층)에 비치되어 있다. 소망엽서를 적기 위해 다시 까페베네로 다녀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다들 편지를 적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편지를 적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풍차 옆에 위치한 까페베네를 찾아야 한다는 것. 엽서가 왜 그 먼 곳에 비치되어 있는지는 영업전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망 우체통은 1970년 체신부에서 사용하던 우체통 모습으로 2006년 12월 22일 성진지오텍(주)에서 제작하여 지금의 장소에 설치하였으며, 울주군 남울산우체국에서 편지를 수거한다. 우체통은 가로 2.4m, 세로 2m, 높이 5m, 중량 7톤이며, 까페베네에서 무료엽서를 이용하여 소망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간절곶 등대
▲ 간절곶 등대 방향 전경
1920년 3월 첫 등불을 밝힌 간절곶 등대 그리고 2001년 6월 1일 새롭게 등장한 간절곶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새천년 가장 빠른 일출을 볼 수 있다 매력 때문에 많은 인파가 해맞이를 위해 찾는 이곳 간절곶은 일출 여행지로 자리를 굳힌 곳이다. 등대에 올라서면 구등대와 함께 신등대가 위치해 있으며, 간단하지만 등대박물관도 있다. 특히 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보는 간절곶 풍경도 빼 놓을 수 없다. 1979년 1월1부터 2001년 5월까지 20여 년 동안 동해안을 밝혀오던 등대를 새천년을 맞이하여 신등탑을 건립하면서 기존의 등탑을 철거하게 되었다. 2002년 12월 기존등대의 등통과 등명기를 설치하여 상단부를 복원하고 옛 사진을 내부에 배치하여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간절곶에 위치한 등대는 1920년 3월 26일 위도 : 35°21′22″, 경도 : 129°21′46″에 세운 높이 17m의 등대로 2001년 5월 31일 등대 개축과 함께 전망대 형식으로 8각 몸통에 10각형 지붕을 올려놓고 3마일 바다 길안내는 하고 있다.
▲ 구. 등대 옆에 있는 로도스섬의 거상 태양의 신 핼리오스의 청동상
등대로 올라선다. 태양의 신이 정원에서 기다린다. BC 292~280년경 소아시아 인근 로도섬에 세워진 청동상. BC 407년경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로도스는 마케도니아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높이 36m의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을 세웠다. BC 225년경 지진으로 파괴된 후 1000년 가까이 방치돼 있다가 AD 654년 로도스를 침공한 아랍인들이 부서진 거상의 나머지를 분리하여 시리아의 유대인에게 팔았다고 전해진다.
박제상 이야기
내물왕 35년(390) 일본은 침략하지 않는 조건으로 왕자 한사람을 볼모로 둘 것을 요구하자 셋째 아들인 미사촌을 볼모로 보냈는데 그 후 실성왕 11년(412)에는 고구려가 화친을 내세워 볼모를 요구하게 된다. 이미 일본으로 미사혼을 보냈지만 어쩔 수 없어 미사촌의 형인 북호를 보내게 된다. 눌지왕이 왕위를 계승하고 두 아우를 데려오기 위하여 사신을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자 충신 박제상을 고구려로 보낸다. 고구려에 도착한 박제상은 "한 뿌리의 후예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며 강하게 항의하였고 인질로 붙잡혀 있던 묵호를 데려오지만 일본에 붙잡혀 있는 미사혼을 구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는 그해 7월 일본에 도착하여 "신라왕이 나의 부모를 죽이고, 나를 해치려 하므로 도망쳐 왔소."라며 거짓 망명을 하게 된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종손인 파사왕의 현손(5세손) 물품의 맏아들로 내물왕 때 십량주의 태수를 지내는 등 사리에 밝고 지혜가 뛰어남을 익히 알고 있는 왜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곧 신라를 칠 때 미사혼과 그를 앞잡이로 내세우려는 속셈이었다. 박제상은 왜왕의 의심을 풀기위해 신임을 차츰 쌓아가면서 어찌하면 미사혼을 돌려보낼 것인가에 골몰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던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하자 여느 때와 같이 바다로 나와 뱃놀이를 하는 척 하면서 안개 속을 뚫고 신라로 돌려보내게 되었지만 박제상은 함께 돌아오지 않고 남아 있었다. 만약 미사흔이 없다는 것을 알 게 된다면 모든 계획은 실패하기 때문이었다.
감시를 하던 왜인이 와서 물어보면 "왕제(미사흔)는 몸이 피곤하여 주무시고 계시오."라며 배가 멀리 사라질 때 까지 감시병을 따돌리는데 성공하였지만 박제상의 모든 음모가 발각되어 왜왕에게 끌려 나가 문초를 받게 되었지만 박제상은 당당하게 맞섰다. 왜왕은 "나의 신하가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며 회유를 해 보지만 박제상은 "나는 계림(鷄林)의 신하이다. 나는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망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을 것이며, 계림의 모진 종아리는 맞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을 것이다"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왜왕은 괘심하여 발바닥을 벗겨 갈대밭을 끌고 다니면서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였지만 박제상은 그럴수록 더욱 "계림의 신하다"라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불에 달군 철판 위로 끌고 다니는 고문을 하였다. 하지만 끝내 거부하여 목도로 유배시킨 후 불태워 죽여 버리자 부사로 간 김철복이 의복을 수습하고 매장한 후 사건을 혈서로 써 말의 입에 물려 바다로 쫒고 자신도 자결을 하였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불태워 죽일 때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청청벽력으로 소리 내어 왜왕이 놀라서 달아나는가 하면 태워 죽인 군졸이 피토하고 죽는가 하면 다음해 신라를 치기위해 바다로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몰살당하였다고 한다. 한편 김철복의 애마는 바다를 건너 궁궐에 도착한 후 혈서를 토하고 죽자 양산에 비를 세워 충절을 기렸으며, 후세인은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하여 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치산서원과 효충사, 춘추원, 동계사, 운계서원이다.
박제상에게 부인이 있었다. 고구려에서 묵호왕자를 데려온 박제상이 이번에는 일본으로 떠나자 박제상 부인은 마을 뒤편에 있는 치술령으로 첫째딸 아기(阿奇)와 셋째딸 아경(阿慶)을 데리고 치술령 정상 부근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 잡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었지만 미사흔만 돌아오고 남편의 죽음을 전해 듣고 두 딸과 함께 치술령에서 자진하게 된다. 훗날 치술령에는 박제상 부인의 육신이 망부석이 되고 넋은 치술조로 변하여 바다건너 묵도까지 날아가 남편의 넋을 맞아 신라로 왔다고 한다.
그 후 왕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왕이 거처하는 곳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구슬프게 소리 내는가 하면 "묵도의 넋을 맞아 고국에 돌아오니 위라서 알리요"라는 글을 부리로 쪼아 놓고 날아가자 왕은 신하를 시켜 그 새를 뒤쫒게하니 치술암 바위 속으로 숨어들어가더란 것이다. 왕은 이에 그 새가 박제상의 부인이 죽어 혼백이 새가 된 것을 알고 그 바위를 은을암이라 부르고 그 옆에 영신사를 세워 제를 지냈다. 훗날 세종대왕은 "신라 천년에 으뜸가는 충신이다"며 그를 기렸고 정조 또한 "그 도덕은 천추에 높고 정충은 만세에 걸친다"며 극찬하였다. 박제상 부인의 이야기는 사후에 이곳 백성에 의하여 치술령곡이란 노래를 남겼다고 하지만 내용은 알 길 없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에 겨우 유래만 전해져 올 뿐이다
사랑의 하트 등대
▲ 간절곶 항구 내 하트등대
드라마 하우스를 내려서면 작은 포구와 함께 붉은 등대와 함께 등대 사용설명서가 있다. 상품도 아니고 무슨 사용설명서냐 묻는다면 등대 이름처럼 누구나 한번쯤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남자가 등대 앞 큰 하트 위서고 여자가 등대 위 작은 하트에 서면 3초 후 프러포즈 노래가 나온다. 그리고 여자가 내려와 남자 하트 위 올라서면 축하송이 나온다.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
▲ 드라마 세트장
간절곶 관광회센터를 돌아 해안길을 따르면 독특한 하얀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울산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이 촬영된 세트장으로 드라마하우스이다. 대서양그룹 회장의 별장으로, MBC ‘메이퀸’에서는 해주의 아버지를 죽인 장도현의 저택으로 나온 이곳은 카페와 전시실로 새롭게 꾸며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즐겨찾는 명소 ‘간절곶’은 거친파도와 바람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숨쉬는 자연의 축복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탐방로 끝자락에서 만나는 풍경의 절정은 간 밤 삼켜버린 색을 다시 토해내는 새벽을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새벽부터 발길이 잦은 곳이다. 간절곶은 아름다운 해안 살포시 껴안는 햇살과 장쾌한 시야가 압권으로 바람부는 날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는 변화무상한 풍경을 연출한다.
진하해수욕장
울산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진하해수욕장은 1km 해안과 40m 너비 모래벽사장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고운 모래와 동해바다 특유의 파랗게 수놓은 시원한 전망과 독특한 모습의 아름다운 2개의 해중암 이적도와 소나무가 자라며 일출의 명소로 알려진 명선도 그리고 해안도로변 좌·우·후면에 송림이 자리하고 있는 천혜적인 조건을 갖춘 곳이다. 특히 겨울 이곳에서는 만나는 일출은 붉은 파도와 함께 신비롭기까지 한 곳이며, 안개가 끼는 날 쪽빛 물색을 물들이는 해오름을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다.
청정해역 진하해수욕장은 타원형 지형으로 인하여 완만한 모래사장을 이루며 그 앞 명선교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명선교에 올라서면 다리 아래로 뱃길이 있어 어선의 왕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진하해수욕장의 또 다른 묘미는 최근 조성된 명선교의 아름다운 전망탑 겸 강양과 진하를 연결하는 결속의 다리로 총 87억이 투입된 최장 길이 145m, 높이 17.5m, 폭 45m로 힘들이지 않고 원만한 곡선을 따라 오르도록 설계되었으며 교량 전망대에 올라서면 희야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과 명선도 주변 하얀 속살을 들어내는 파도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야간 조명을 설치하여 밤이면 진하해수욕장을 아름답게 수놓는 곳이다. 교량은 원전특별지원금으로 건립되었으며, 사장교의 주탑과 케이블은 한 쌍의 학을 형상화하고 있다.
명선도는 면적 1만900여㎡ 크기의 무인도로 일출 명소의 포인트로 빼 놓을 수 없는 소나무와 해송 40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팔각정 앞으로 2월~4월이면 명선도를 잇는 바닷길 약 100m 가 열리는데 이를 두고 울산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명선도 모세의 기적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부정기적으로 물길이 열리는 곳이다.
나사해수욕장 등대
나사해안으로 향하는 바닷길에서 잠시 머물러 간다. 새파란 하늘을 삼킨 코발트빛 바다 속에는 다양한 해조류와 해산물이 있어 해녀를 자주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해안을 배경으로 탁 트인 공간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 만큼 상쾌한 바람이 많이 불면, 태풍이 오면 이 일대에서는 파도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거센 바람을 만나면서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신비한 모습으로 파도를 둘둘 말거나 밀어가며 흩날리는 모습은 가슴이 서늘할 만큼 끝없이 밀려오며 펼쳐진다.
간절곶을 떠나 나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해안길로 접어들면 동해바다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깊고 푸른, 끝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 그리고 절벽위 서 있는 나사등대와 언덕을 넘어서면 만나는 나사해수욕장과 항구의 붉은 등대와 도로변 방파제 끝자락 최근 세운 조형미가 아름다운 흰색등대가 반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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