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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을 걷다--- 울산광역시 슬도-대왕암공원 화암추등대-3.9km(차량이동)-슬도-1.9km(도보)-울산대왕암공원(울기등대)-800m(도보)-일산해수욕장-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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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울산 동구가 관광자원화를 위해 착안한 동구의 소리길 은 9개로 동축사 새벽종소리, 울기등대 안개가 발생하면 울리는 무산소리, 슬도 구멍 뚫어진 바위로 파도가 스며들며내는 파도소리, 울산의 힘 조선소 망치소리, 방어진항을 출발하는 선박의 힘찬 기적소리, 대왕암공원 몽돌해변 자갈 구르는 소리, 옥류천 계곡 물소리, 마골산 숲 바람소리, 서부아파트 매미소리 등으로 이중에 슬도 파도소리와 대왕암공원 자갈 구르는 소리길을 따라 가 본다.
▲ 울산 대왕암공원 전망대를 향하는 탐방객
바다와 마주한다. 태고적 풍광이 거대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자연이 빚어낸 천혜의 쉼터이자 회색도심에 모여살며 늘 마음속 꿈꾸던 바다, 탐방로를 따라 느릿느릿 걷는 바다, 자연이 빚어낸 천혜의 자연 용굴과 오랜세월 바위에 뿌리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의 경이로움이 돋보이는 바다,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기 좋은 그 바다가 바로 오늘의 트레킹 코스로 울산이 자랑하는 화암추등대, 슬도등대, 울기등대를 따라 여행하는 감탄과 탄성이 이어지는 그 길에서 첫 등대를 만난다. |
울산 '화암추등대' 화암추등대(울산 동구 방어동 965)
1970년 우리나라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등대로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항구를 통한 선박의 왕래가 잦아지자 1980년 이후 등대의 필요성을 통해 1983년 천년동안 오랜 세월 안전향해를 염원하는 거북 모형의 등대를 세웠지만 10년이란 세월 급속한 주변 매립과 발전으로 옛 등대로부터 약 1km 후퇴하여 1994년 12월 오늘날 등대로 만든 후 2009년 7월 13일 무료 개방하였다. 등대 최초점등일은 1983년 1월 28일이며,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구조(44m) 및 섬백홍호광 20초 1섬광(AIFIWR20s)이다.
▲ 등대 1층 전시실 전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이자 바다와 울산항을 조망하며 등대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반면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장면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운 등대이다. 국내 최초 지하실이 있는 등대이자, 국내 최초 승강기를 설치한 등대이기도 하다. 등대는 상공에서 내려다 보면 비둘기 형상을 하고 있으며, 흡사 관제탑처럼 생겼다. 울산 방어진 주변항으로 상호 연계되는 화암추 등대는 1994년 조성한 등대로 국내 등대 중 유일한 지하 1층 지상 8층으로 높이가 44m 로 동양 최대 높이의 8층 전망타워를 통해 방어진항 앞바다 일원과 석유화학 공단을 조망할 수 있다.
▲ 전망타워에서 바라 본 현대중공업 선박건조 및 해안전경
항구 입구에 암초가 많아 이곳 등대는 백색과 함께 적색 빛도 밤하늘을 가른다. 직원 숙도와 함께 만든 조형미로 인하여 갈매기가 비상하는 모습으로 울산항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울산공단의 오늘날까지 이끈 근현대사의 역군이기도 할 것이다. 방어진이란 지명은 온대성 어패류인 방어가 많이 잡힌다하여 방어진이라 불렀다 전하며, 화암추는 방어진 해안 검회색 바위에 하얀색 꽃문양 닮은 무늬가 있어 꽃바위, 해안을 방어진 12경중 제1경 화암만조라 불렀지만 1986년 항만축조과정 산업화에 매립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 울산 방어진항 전경
방어진항은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 위치한 국가어항이다. 1900년 당시 일본 어부들이 우리나라 동해안을 따라 진출을 했다. 풍부한 어자원과 고래포획을 위해 몰려든 인부와 함게 방어진항은 한때 번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방어진 항이란 지명은 이곳에서 방어(方魚)가 많이 잡혀 방어진으로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울산 화암추등대에서 슬도까지는 차량으로 이동 슬도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후 슬도 여행을 시작한다. |
슬도에서 만나는 파도소리길 슬도(울산 동구 방어동 2-3 )
거센바람이 바다를 깨우면 파도는 몸을 일으켜 기묘한 형상의 바위 쓩쑹 뚫어진 공간을 입마추며 노래를 부른다. 장구한 세월 찾는이 없던 보잘 것 없는 섬, 오늘날 나무 한그루 없는 섬 바로 그 섬이 울산방어진 12경 중 제2경 ‘슬도’이다. 동진성끝마을 끝자락 일부 꾼들이 들어가 무료함을 달래던 황량했던 슬도는 1989년 방파제가 놓이면서 섬이 육지화 되었고 2008년 정천석 동구청장은 방치되던 슬도를 살리기 위해 소공원을 만들 것을 지시하면서 오늘날 슬도 소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이후 드라마 ‘욕망의불꽃(2010년 MBC 주말드라마 50부작)’, ‘메이퀸 (2012년 MBC 주말드라마 38부작)’, 및 영화 ‘친구2(2013년 감독 곽경택)’를 촬영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 슬도 입구에서 바라 본 슬도전경
▲ 입구에서 만나는 작품
방어진 항을 거쳐 방어진항 끝자락 동진(성끝)마을 앞 동진포구를 돌아서면 슬도공원 주차장이 있다. 성끝마을에서 화산암 무인도 슬도까지 320m 방파제 길이 이어지며, 테트라포드에 형광색 페인트 채색과 조개와 불가사리 등 바다생물의 입체 부조 타일이 분위기를 바꾸어 놓고 있다. 작은 낚시로 작은 게를 잡거나 물고기를 잡는 어린이를 동반한 체험형 가족부터 테트라포드에 올라 파도와 맞서 릴대를 잡은 전문 꾼 그리고 방파제 난간에서 손쉽게 투척하는 직장인 낚시꾼까지 다양하게 만나다.
▲ 바다를 향한 염원 / 이 조형물은 반구대암각화 새겨진 그림 중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새끼 업은 고래"를 입체적으로 재현하여 슬도를 방문하는 탐방객에게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염원의 장소가 되고자 기획 제작된 모형이다.
▲ 슬도 등대
슬도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슬도에는 입구에는 선사인이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놓은 고래 조형물을 만나며, 슬도로 들어서면 고래그림이 그려진 흰색 슬도등대가 서 있다. 1958년 점등을 시작으로 2008년 슬도등대를 다시 단장하면서 등대의 광력을 기존 8마일에서 23마일로 대폭 증강하고, 2009년 무인도였던 슬도를 해상소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본격 준비 작업을 진행하였다.
북방파제 아래 데크로 만든 가족낚시터에 가족은 없고 직장인으로 보이는 낚시꾼이 진을 치고 있다. 폭 3.5m, 길이 219m의 데크로 붉은 등대로 가는 방파제 끝자락 해안을 따라 항구 안쪽으로 조성해 놓았다. 방파제에서 조우하는 동해바다는 시리도록 푸르다. 살갗에 닿는 바람, 파도가 드나들며 나지막이 들려오는 속삭임 그리고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슬도를 배회하고 있다.
슬도는 고작해야 해발 7m 바위섬으로 방어진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섬에는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 각 1기씩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가을 슬도 등대 앞 해안 바위에는 보라색 해국이 피어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해풍과 마주하거나 등을 돌린 벤치가 곳곳에 자리 잡고 쉬어가라 유혹하며, 물빛마저 투명한 넘나드는 파도소리에 눈과 귀가 열리는 곳이다.
대왕암공원 가는 해안길
▲ 슬도 앞바다에서 직접 따온 해산물을 입구에서 판매하고 있다.
동구 방어진항이 끝나는 지점 작은 포구와 마을은 슬도로 인하여 부산하다. 방어진항 외곽에 있는 동진포구와 골목을 내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동진성끝마을에 사시는 해녀는 항구 주변에서 물질하여 소라와 해삼 미역 등을 건져 올린다. 나무 한그루 살지 않는 방치되던 섬 슬도는 퇴적된 사암으로 섬 전체가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 덕분에 관광개발이 성공한 사례라 볼 수 있는 곳이다.
▲ 성끝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화
슬도에서 대왕암공원으로 향하는 동진성끝마을 상여바위 앞 해안길 초입에 독특한 청동 조형물을 만난다. 가로 4.8m 세로 3.7m 높이 3.5m의 소리를 시각적 표현으로 나팔 디자인을 하여 이름을 ‘소리의향기’로 부른다. 대왕암공원으로 향하는 약 1.5km 구간은 마을 농사길과 해안길을 번갈아 가면서 만나게 된다.
바람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룬 성끝마을 골목길은 손수레 하나 겨우 지나갈 길 담장에 벽화를 드려 놓아 마을 골목에서 느림의 미학에 빠져든다. 느리지만 느리지 않는 행복한 걸음으로 마을담장 그려놓은 벽화를 꼼꼼하게 만나다 보면 골목을 내고 바다를 일구며 사는 사람들의 미소를 엿볼 수 있다.
▲ 배미돌은 고동섬이 있는 남쪽해안에 우뚝 자리한 바위로 동쪽의 바위를 뜻하는 "샛돌의 새"가 전이되어 내미(뱀) 돌이 된 것이라 한다. (지도에는 상여바위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해안길을 걷다
▲ 성끝마을을 벗어나 대왕암공원을 향해 출발을 하고 있다. 척박한 땅을 딛고 걷는다. 상여바위를 시작으로 소바위를 거쳐 대왕암공원에 도착하는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사색을 하며 걷기 제격이다. 자연과 보폭을 맞추어 걷다보면 복잡하고 분주한 도시의 일상을 비로소 벗어나 흙먼지 나는 울퉁불퉁한 땅이 기꺼이 쉼터로 내 주는 자연에 게 감사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대왕암공원 몽돌자갈 구르는 소리길, 무산소리를 찾아 대왕암공원(울산 동구 일산동 911-1)
▲ 해안길 중간에서 바라 본 대왕암공원
슬도에서 해안 자갈길을 따라 약 1.9km 터벅터벅 걷다보면 만나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대왕암공원에 도착한다. 울산 대왕암 주변 바위에는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용이 살았다는 용굴은 해식동굴로 청룡 한 마리가 살았는데 심술이 심해 어부들의 뱃길을 방해하자 용왕이 청룡이 굴속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 전설을 시작으로, 부부소나무에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찾아오면 백년해로 한다는 현대판 전설까지 전해진다.
▲ 댕기바위가 있는 대왕암 전망대로 거너는 대왕교
신라시대 왕이 휴양하며 머물었다는 어풍대로, 조선시대 말을 방목하던 목장으로, 이후 왜적의 침입을 대비한 군사요충지역으로, 1908년 국내 3번째 등대인 울기등대가 설치된 지역으로, 러·일 당시 일본 해군 주둔지로, 1962년 울산 제1호 공원으로, 근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간첩침투를 방어하는 군사지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은 덕분에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송림과 개발로부터 손이 뻗치지 못해 자연 상태로 보존된 공간으로, 2004년 일제잔재 청산 일원으로 대왕암공원으로 개명하였다.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시상식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곳은 거센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 맡기고 있는 해송 숲과 소나무 그리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어우러진 매우 이색적인 바다 여행지이다.
해송의 나이를 역추적하면 동국여지승람에 말이 뛰어놀던 초원지라는 것으로 "방어진 12경 중 3경 마성방초(馬城方草)와 4경 용추모우(龍湫募雨)"라고 언급했다는 것과 1999년 동구청이 발간한 울산 동구지에는 1934년 울기등대 조성과 함께 인공림이 조성되었다는 것으로 10살 된 나무를 심었다하여도 송림은 80~90살로 추정된다.
▲ 부부소나무 한 그루가 고사직전에 처했다. ▲ 대왕교 전경
대왕암의 전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30대 문무왕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 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바위‘로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진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을 이곳을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이 줄어 댕바위(대왕암)라 하였으며, 또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대왕암공원에서 만나는 울기등대 무산소리
울산 12경중의 한 곳인 대왕암공원 입구에는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동해안을 운행하는 뱃길을 안내하는 목재등탑이던 울기등대(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06호)이 세워졌고 이후 콘크리트 등탑이 세워지면서 등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새로운 등대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 1987년 12월 만든 신.등탑
등대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등대가 있는 이곳은 송림으로 우거진 산으로 대왕바위산, 혹은 대양산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호국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다 대왕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일본이 1905년 2월 이곳에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러.일 전쟁 시 군사목적으로 등대명칭을 울기등간이라고 하였으며, 이곳 지명 또한 울기로 부르게 되었다.
▲ 1905년 목재로 남든 후 1906년 3월 만든 높이 9m 구.등탑
등대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개방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 17:00 이다. 최초 점등일은 1906년 3월 24일이며. 회전식 대형등명기와 무신호(에어사이렌) 기능이 있다. 울기등대의 건립배경으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이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러.일전쟁(1904.2.8.~1905.9.5.)을 일으키면서 일본해군이 동해와 대한해협에서 해상군 장악을 목적으로 1905년 2월 긴급히 등간을 설치하여 발트 해에 있던 제정 러시아의 유럽 공격 주력함대였던 발틱함대를 격침하는데 이용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등간은 향해안전 목적이 아닌 군사전략용으로 보인다. 그 이후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하여 높이 6m 돔형의 등대를 설치하였고(고종 광무 10년 3월 추정). 1972년 11월 기존의 등탑에 3m 수직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울기등대 구등탑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 해송들이 자라남으로 인하여 해상에서 구등탑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높이 24m 의 신등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구등탑은 백색 하부원형 상부 팔각형 구조로 높이 9.2m 이며, 신등탑은 백색 팔각형 구조로 높이 24m 이며, 구등탑은 구한말 시대 건축양식으로 2004년 9월 4일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신등탑은 촛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울기등대 구 등탑은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1905년 2월 목재로 만든 후 1906년 3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현재의 장소에 높이 9m의 등대를 만든 후 1987년 12월 12일까지 80년간 불을 밝혔다.
일산해수욕장
울산광역시 대왕암공원(옛 울기공원) 입구에 위치한 일산해수욕장은 깨끗한 모래로 형성된 사빈해안으로 해수욕장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지만 수질이 나빠 해수욕객 보다 인근 울기공원을 찾는 연인들이 머물러 모래 백사장에 발자취를 남기는 곳 정도로 알려지다, 최근 주변 정비와 함께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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