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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77-3 천불천탑의 신비 '화순군 운주사' |
도선 국사는(827~898)으로 신라 승려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영암출신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도선국사실록에 보면 우리나의 형국이 배와 같아서 땅덩이가 안정되지 못하므로 도선 국사가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조성해 국토의 안정을 이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운주사는 지금 천불천탑은 없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탑과 석불을 모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운주사 와불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서도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어 당시에 천불천탑의 존재는 사실로 인정되며, 사찰의 존재도 그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고 현재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가 남아있다. 현재는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운주사 입구에서 만난 전경
화순 운주사지 일원은 현재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져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운주사는 돌로 된 석불석탑이 각각 1천구씩 있었던 우리나라의 유일한 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석불 93구와 석탑 21기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석불 석탑 각 1천구씩이 있다고 지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초기까지는 분명히 실재했었다고 판단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석불상은 10m 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불상들이 산과 들에 흩어져 있다.”
▲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 본 운주사구층석탑
보물 제796호 운주사 구충석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에 그 안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다. 특히 하부에 사선이 새겨진 지붕돌은 납작하고 넓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형식을 하고 있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일 높지만 상대적으로 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픔으로 추정된다.”
▲ 운주사층상응회암 & 불상군
운자사층상응회암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운주사의 다양한 불상과 탑은 백악기 응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이곳 노두에서 잘 바달된 러필리 응회암 층리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의 화산쇄설물(화산재, 라필리, 화산암괴)과 층리면에서 당시 화산폭발과 휴지기의 화산활동 기록이 잘 남아있다. 사찰 내 수 M 높이의 절벽 노두들 앞에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여러 불상들이 놓여 있어 한층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기하학적 무늬의 애용은 불상의 기하학적 주름과 더불어 이 운주사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으로 크게 주목된다. 이처럼 특이한 석불 석탑 천여구씩이 한 절안에 봉안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예이어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높이 평가되며, 아울러 미술사 내지 불교사 연구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운주사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지만 운주사의 정확한 창건시대와 창건세역, 조성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히지 못하여 여전히 신비로운 사찰로 남아 있다.”
▲ 입구 왼편 운주사 와불이 있는 언덕 전경 ▲ 칠성바위 옆에 자리한 석탑 ▲ 입구에서 바라 본 운주사 공사바위 방향 ▲ 입구에서 만나는 불탑과 불상
안내글에는 불상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이들 불상은 대게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못주름, 둔중한 기법 등은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에 지방화된 석불상 양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아마도 석인상을 제작하던 석공드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 석불상이라 하겠다.“ ▲ 운주사 칠층석탑 ▲ 2기의 칠층석탑
운주사 칠층석탑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이다.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상자모양으로 다듬은 기단 위에는 원형의 1단괴임을 만들었고 그 위에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탑신부가 자리 잡고 있다. 초층과 2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되었고 각 면의 모서리에는 기둥형식이 조각되었다. 3층 이상의 탑신은 모두 1매석이며 각 면에는 우주가 모각 되었다. 각층의 두툼한 지붕돌은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고 추녀와 처마가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상륜부는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신라 전형양식을 계승한 우수한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9.6m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2기의 칠층석탑 뒷편에 자리한 불상군
▲ 운주사 석조불감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은 보물 제797호이다. 석조불감은 양쪽으로 문을 열고 부처가 모셔진 독특한 방식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건물 밖에 단독으로 만들어진 감실의 대표적인 예이다. 운주사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 중 석조불감은 골ᄍᆞ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앞뒤로 각각 탑이 1기씩 있어 야외 불당의 주존불 구실을 하는 배치를 보이고 있다. 불감은 팔작형태의 지붕을 갖추고 그 위에 용마루 등이 조각되어 있는 목조 건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감실 내부는 남북으로 통하게 하여 불상 2구가 등을 맞댄 형태로 배치하였다. 이들 좌상은 단순화된 형태를 보이는데, 경직되고 도식적인 평면화 된 표현은 고려시대의 지방화 된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사례를 찾을 수 없으며, 등을 맞댄 쌍배불상 또한 유례가 없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목된다.”
▲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 대웅전 앞 다층석탑
즉 돌을 작은 벽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것이 아니라 통돌을 계단형으로 깎은 것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드문 예로서 각 층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에서는 가벼운 반전이 있으며 강진 월남사지 모전석탑과 비교된다. 전체 높이는 3.23m 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 광배를 갖춘 불상
운주사 불상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크기도 제각기 다르다. 석탑 역시 제각기 다른 형상이며, 석탑에서 특이한 기하학적 문양이 발견되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정말로 운주사에 떠도는 미완성석불 와불이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오는 걸까?
▲ 항아리 모양을 한 석탑 ▲ 공사바위에서 바라 본 전경
좌대는 8개의 연꽃무늬가 복련으로 음각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의 구분이 없어 무릎 위쪽까지만 음각선 문으로 표현하였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운주사 석불군 가운데 유일한 마애불이며, 광배나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5.18m로 규모가 커서 가치가 있다.”
▲ 운주사 거북바위 위 자리한 오층석탑 ▲ 와불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불상군 ▲ 와불로 향하는 입구에서 만나는 거북바위 위 오층석탑과 교차문 칠층석탑과 마애불 ▲ 화순 운주사 와불
와불의 전설은 소설 장길산을 통해 고달근의 밀고로 위기에 처한 장길산은 도주하면서 조정의 부패와 백성의 어려움을 이 운주사를 통해 새로운 획을 긋기 위해 노력하면서 운주사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럼 장길산 누구며, 이 운주사와 관련이 정말 있는 걸까? 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 해서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한 도둑의 두목이었는데 왜 장길산이 와불 속으로 들어 왔을까? 그건 17세기 이후 어려운 사회를 통해 서얼, 승려, 농민 등 다양한 층이 결합하여 새로운 왕조를 만들 꿈을 통해 이 와불로 연결짓게 된 것이다.
▲ 칠성바위
운주사는 우주를 옮겨 놓은 세상이다. 와불을 북극성으로 칠성바위를 북두칠성으로 본다면 우주 전체의 별자리를 지상에 내려놓은 것으로 우선 칠성바위가 북두칠성의 크기와 무게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둥글게 깍아 만든 돌이 제각기 다르며 놓은 형상이 영락없이 북두칠성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석탑과 불상을 잃어버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양쪽 산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바위에 꼭 석탑을 안치할 이유가 있다면 꼭 그곳에 자리잡아야 하는 큰 별자리였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지금의 일부 석탑과 불상은 1800년 대대적 수리를 당시 자우스님이 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석탑을 옮겨 오거나 민가에 있던 것을 찾아와 옮겨 놓는 과정에서 원래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
칠성바위는 7개의 원반형 석재로 다듬은 것으로 놓여진 위치 및 배열의 크기로 짐작하건데 북두칠성 별자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곳 운주사의 숨겨진 키워드를 풀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천불천탑은 우주의 진리를 대지위에 펼쳐 놓았다는 것은 칠성바위에서 알 수 있다. 칠성바위는 일명 호떡탑처럼 탑을 쌓기 위해 깍아 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둥글게 깍아 낸 것으로 북두칠성이라 단정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다. 우리는 옛날부터 북두칠성을 섬겨왔고 별자리를 바위에 옮기는 행위를 많이 했다. 경남 함안군 도항리 고인돌에는 무수한 별자리를 동심원과 크고 작은 성혈로 표시해 놓았고, 고분 천장에서도 많이 확인되고 불교에서는 더욱 별자리를 중시 여기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 천불천탑은 우주를 상징하며, 단지 만든 사람이 당시의 토착세력이 아니라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로 불상의 표정이 어둡고, 섬세하지 않은 조각기술, 보통 삼층 또는 오층에 불과한 탑의 구조와는 달리 9층탑과 4층탑이 적은 반면 7층탑이 많이 있다는 점과 탑의 형식이 둥글거나 보탑형식인 점, 기하학적 문양이 많이 동원되었다는 점, 위험한 벼랑 위 또는 산 기슭을 따라 탑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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