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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3 신라 패망 그 이후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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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9세기 말 신라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시작되었다. 신라 56대 경순왕(재위 927~935)은 고려 태조 왕건의 신흥세력에 굴복하며 결국 고려에 귀부를 청하게 되었지만 큰아들인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는 고려에 귀부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경순왕 9년(935) 10월 경순왕은 군신회의를 통해 고려에 항복을 논의하였고 마의태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려에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었다.
▲ 상덕주사마애여래불
천년고도 신라를 떠나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문경 관음리에서 하루 묵게 되는데 꿈속에서 관음보살이 현몽을 하길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넓은 터가 있는데 그곳에 절과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마애불을 세우면 많은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라’ 하였고 그 흔적이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 마의태자는 미륵대원지를 불사하였고, 덕주공주는 월악산 영봉 아래 마애불을 새겼는데 미륵대원지 석불은 불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북향을 하고 덕주공주가 만든 마애불은 남향을 하며 서로 마주보고 있어 흥미롭다.
신라패망과 함께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麻衣)을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며 여생을 보냈다 하여 마의태자로 불리는 그의 또 다른 이야기로 마의태자와 신라부흥을 위한 노력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패망 후 신라를 떠날 당시 덕주공주와 일군의 무리가 따랐고 그 흔적이 월악산 자락에 남아 있는데 덕주공주가 만들었다는 덕주사와 마애불 그리고 미륵대원사지로 마의태자는 절을 완성하고 금강산으로 향하지만 덕주공주는 덕주사에서 여행을 보냈다는 마의태자와 덕주옹주의 히스토리가 있는 이곳이 오늘의 여행지이다.
월악산 남쪽 자락 덕주산성
▲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96 에 위치한 덕주산성
전하는 구전에 의하면 신라패망 후 금강산으로 가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덕주사를 짓고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면서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산성으로 부르며, 덕주사 못미처 도로변에 있는 산성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성이 내성이라 한다. 월악산 남쪽 자락에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시 월악 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로,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중요한 곳으로 최근 남문의 문루를 복원하였다.
덕주사를 오르며 만나는 덕주산성
▲ 덕주사 안내소를 출발하면 곧장 만나는 수경대
597번 지방도 덕주골에 위치한 월악산 덕주휴게소 옆으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덕주사로 향하는 길로 호젓한 산길을 약 1km 남짓 숲길을 따라 올라야 덕주사에 도착한다. 덕주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첫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송계8경에 속하는 덕주골 수경대이다.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천의식을 치루는 곳으로 반석 옆 부분에 수경대라 새겨져 있다.
▲ 덕주사로 향하는 탐방로. 혼자는 언제나 외로워 보인다.
▲ 덕주산성 동문을 잇는 성벽
덕주산성은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이다. 덕주산성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산성은 월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성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헉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칩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큰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 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덕주사를 둘러보다
영호남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덕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고려사 등 문헌에서 덕주산성은 백제의 옛성(B.C18-A.D660)으로 신라 말 덕주공주의 피난처이자 덕주사 창건한 곳으로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나라를 바치러 갈 때 머물던 곳이라 한다. 덕주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덕주산성은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고군이 침입하자 충주사람이 이곳에서 난을 피하기 위해 찾아들었고 그때 만들어진 산성으로 둘레가 약 32.670자로 약 15km 정도가 되는 충정지역의 가장 큰 산성이다.
▲ 1996년 조성한 덕주사 중심건물 대웅보전
덕주사에서 안내하는 창건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6)에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월형산 월악사였으나 신라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손국한뒤 경순왕의 제일녀였던 덕주공주가 높이 15m의 거암에 마애미륵불(보물 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였으나 일생을 마친 후 산의 이름을 월악산으로 절 이름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 덕주사 왼편 끝자락에 자리한 산신각
덕주사 산신각은 단기 4326년 영봉의 맥을 따라 자연스런 신품으로 조화를 이룬 터에 성일화상이 가로 180cm, 세로 210cm의 화강암에 산신도를 양각하여 봉안한 곳이다. 산신각은 두 개의 바위 사이에 절묘하게 지붕을 잇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
▲ 덕주사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
이 비문에 관한 안내글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후기 성행하던 수능엄경에 있는 능엄주를 새겨 넣은 것으로 불교수행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 실천과정은 어떠해야 하며, 수행자들의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 비석의 능엄주는 제7권에 나오는 다라니로서 모든 마군과 외도를 항복받고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황해도 해주의 대불정다라니당 등 몇 점의 범자비가 있는데 남한 지역에서는 이것이 유일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크기는 높이 161cm 너비 163cm 이다.”
▲ 덕주사 남근석
덕주사에는 옛 사찰입구에 남근석이 있었다. 덕주사 뒤편 수산리 쪽에서 바라보면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모습과 닮은 형태라 하여 월악산으로 부르며. 음기가 강한 산으로 이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세웠는데 바로 덕주사 남근석이라 한다. 덕주사 남근석은 총 3개로 크기는 제각기 다르다.
▲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이 불상은 원래 제천시 한수면 익리 덕상골의 전. 정금사 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위치하였는데, 충주댐 건설로 1983년 4월 현 위치로 옮겨 봉안되었다.”
상덕주사 마애불로 향하다.
▲ 월악산 영봉 비석 옆으로 계곡을 건너면서 약 1.6km 거리를 올라야 한다.
덕주사에서 약 1.5km 산길을 따라 오르면 내성을 거쳐 마애불 극락보전 아래 위치한 요사채에 도착한다. 요사채에서 100m 오르면 마애불이며, 마애불로부터 영봉까지는 3.4km 구간이다.
마애불을 만나다.
▲ 상덕주사 대웅보전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덕주사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상덕주사는 동편계곡으로 1.5km 올라간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금은 마애미륵불, 우공탑, 삼층석탑 그리고 극락전과 요사터만 남아 있다. 상덕주사는 1951년 12월 화재로 소실된 후 석축만 옛날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 마애불 위에 보탑 형식의 탑이 올려져 있다.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사로부터 약 1.6km 산길을 따라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산길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이어지며, 덕주사 마애불까지는 산길이 넓다. 덕주사 마애불은 영봉 갈림길에서 요사채를 통과하거나 옆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100m 오르면 정면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산신각과 극락보전 그리고 탑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조성하여 만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일행은 그 장소를 찾아 석불 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 마애불이다.“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보물 제406호이다. 고려시대 조성된 마애불로 높이 13m의 거대 불상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월악산 남쪽 기슭의 상덕주사 극락보전 동편의 큰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다. 불상은 곧추선 모습의 입상으로 얼굴은 두드러지게 새겼지만 신체는 얕게 새기었다. 불상을 새긴 바위에는 목조전실을 만들기 위한 구멍이 남아있다.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동국여지승함의 기록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 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머리가 크고 비만하게 표현된 양식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감로수
마애불 옆이자 산신각 아래 위치한 바위틈으로 들어서면 그곳에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방문 당일 가뭄으로 계곡이 메말라 있었지만 석간수에는 맑고 달콤한 물이 계속 솟아올랐으며, 이를 마애불 감로수라 한다.
▲ 대웅보전 앞 우공탑 처마에 누군가 올려 놓은 돌탑에 잠자리가 앉아 묵언수행중이다. ▲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전경 ▲ 마애불 위에 올려져 있는 탑
대웅보전 추녀 아래서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권력의 무상함보다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당시 그는 용기일까 아니면 자신의 한 목슴 살고자하는 몸부림이었을까? 마의태자는 아버지에 이어 왕이 될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서 신라의 부흥을 꽤하였을까? 아니면 진정 당시 그 모든 것이 백성을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왕의 백성사랑이었을까?
▲ 하산하는 등산객 ▲ 하산길에 만난 엄지손가락만한 새
찌는듯한 무더위에 산신각 아래 감로수를 연거푸 들이켜 본다. 세상에 억울할 일도 없고, 억울해 할 필요도 없는게 어차피 한세상 살다가는 길이지 않던가. 갈증이 나면 목을 축일 만큼의 물만 있으면 되듯 산속 마애불을 지키는 스님은 오늘도 묵언수행중이시다. |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석탑이 자리한 산자락 옆에는 맑은 계곡이 너럭바위를 거쳐 흐르다 물길도 쉬어가는 계곡 위쪽에 자리한 보물 제94호 사자빈신사지사층석탑은 고려시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석탑으로 높이 4.5m이다. 석탑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석탑 네 귀에 제각기 표정을 달리한 네 마리 돌사자가 갑석을 떠받치고 중앙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불상 정수리부분 갑석 아래는 화려한 연꽃잎 16판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중석에는 고려 현종13년(1022) 새겨진 명문이 남아 있다.
사자빈신사지사층석탑은 석탑의 일부가 유실되면서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대략 9층탑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옥신은 5층까지, 옥개석은 4층까지만 남아 4층 석탑으로 부르고 부처가 삼매에 들면 위엄을 통해 불법을 믿지 않는 자와 자기만을 이롭게 하는 자들을 항복케 하였다는 사자빈신삼매를 따서 사자빈신사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월악산 계곡을 따라 오르다 만난 독특한 불탑 속에는 석공의 불심을 엿볼 수 있을 만큼 정교함과 세련미를 더해주며, 자신만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빈신사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탑으로 상층기단부에 사자 4마리를 배치하여 탑신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네 모서리에 한 마리씩 배치한 사자는 사방을 경계하듯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4마리의 사자상 한 가운데 비로자나불상을 모셔두었다.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상은 특이하게도 두건을 쓰고 있으며 뒷머리에 나비매듭 과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
▲ 79자 해서 명문
탑에 관한 내용으로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하층기단 정면에는 적힌 이탑의 내력을 통해 원래 9층탑이었고. 탑이 만들어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어 다른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층기단 정면에 적힌 명문은 모두 10행 79자의 해서이며, 고려현종 13년(1022)에 ‘몸쓸적들이 아주 물러갈 것’을 기원하면서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석탑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종 당시 거란족이 빈번히 고려를 침입하였기에 이탑은 블력으로 거란족의 침탈을 막아 태평안민을 기원하고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은 보물 제94호이며, 1022년 세운 탑으로 현재는 높이 4.5m 이다. 탑의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대반석 위에 사각의 하대가 놓여있고 상부에 두꺼운 테를 둘렀으며, 하부에는 안상을 오목하게 새겼다. 안상 안에는 꽃모양을 새겨 고려시대 수법을 나타내고 있고, 중석의 4면에는 넓은 모서리 기둥인 우주를 새겼으며, 이곳에 79자의 명문을 새겨 확실한 연대를 알게 하였다. 특히 상층기단의 중석은 가장 특색있는 부분으로 네 귀에 형상이 각기 다른 네 마리의 사자를 얹혀 갑석을 받치고, 중심에는 비로자나불좌상을 안치한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원래 9층이던 이 탑은 현재 5층 이상은 상실 되었으나, 고려시대 석탑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명문에 의해 고려 현종 13년(10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탑이다.”
덕주사를 시작으로 덕주산성과 상덕유사 마애불 그리고 다시 길을 내려 선 후 미륵리절터로 향하면서 잠시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을 둘러 본 후 계곡에 발을 담가본다. 시원한 물이 그리운 뜨거운 햇살아래 나라를 잃은 마의태자 일행도 분명 이 계곡을 머물다 갔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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