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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어린시절 생가여행 | 여행일자 : 201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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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생가-세종대왕릉-효릉왕릉-하리& 창리 & 영월루-신륵사-고달사지-파사성 & 마애불-포츠골미륵좌불-도곡리석불좌상 |
▲ 명성황후 생가 전경
생가로 알려진 곳은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묘(향토유적 제5호)를 지키기 위해 숙종 13년(1687) 묘막을 짓게 되었고, 명성황후(1851~1881) 어린 시절인 7~8세 까지 여주 능헌리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여, 1995년 여주시에서 생가복원을 하였다.
▲ 명성황후 안채
철종의 3년상이 끝나고 왕비를 책립하는데 바로 명성황후이다. 만 14세 이었던 명성황후는 고종3년(1866) 궁에서 왕비로 맞이한다는 조칙이 반포되고, 3월 22일 문무백관의 하례속에 상견례를 거행하면서 국모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으며, 고종 32년(1895) 양력 10월 8일(음.8월 20일) 새벽 명성황후는 일인에 의하여 시해당하면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며 비운의 국모가 된다.
명성황후 생가는 1995년 3동의 건물이 준공되었다. 본래 건물은 1687년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안채만 남아 있던 곳을 1995년 행랑채, 사랑채, 별당체를 복원하였다. 현재 생가는 경기도유형문화재 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성황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1895년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어 일생을 마친 명성황후의 생가로 1851년 이곳에서 태어나 8세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 조선 숙종 13년(1687)에 숙종의 장인이며,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95년도에 사랑채, 행랑대, 별당을 복원하였다. 생가 주변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비와 민유중선생 묘 신도비, 하마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95년도부터 명성황후의 뜻을 기리고자 명성황후생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명성황후 기념관, 공연장, 추모비, 동상, 조각공원 등을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명성황후 탄강구리비
비석 뒷면에는 [광무팔년갑진오월 일배수음채경서]라고 새겨져 있는데 광무팔년(1904년) 오월 어느 날 두 손을 맞잡고 공손히 절하며 눈물을 머금고 썼다라는 뜻이다. 명성황후의 아들이자 조선 제27대 임금인 순종황제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민유중은 1650(효종 1)에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무원과 예문관 등의 요직을 거쳐 충청도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묘에는 민유중과 선생의 부인이 합장돼 있으며, 봉분 주위에는 호석이 둘러져 있다. 신도비에는 민유중의 업적을 소개하고 그를 찬양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의 기단석의 몸통은 거북이 형상이며, 머리는 용의 문양으로 오른쪽으로 틀어져 묘소를 향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150m 지점에 민유중의 묘가 있다.’
▲ 명성황후 추모비
‘명성황후추모비’는 김남조씨가 글을 짓고, 구자승님이 글씨를, 이영선, 신건화님이 조각하였다. 추모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추모비는 명성황후의 애국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가리기위하여 제작되었다. 두 개의 직사각형은 과거와 현대를 상징하는 기둥이며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비문으로 표현하였고 조각 상층부에는 빛의 표현으로 우리민족사에 길이 빛날 명성황후의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 명성황후순국숭모비
‘명성황후순국숭모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명성황후는 개화기에 개혁을 추진하던 중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북궁에 있는 건청궁 내 옥후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 당하였다. 1981년 건형궁 내 동쪽 구릉지에 건립하였던 이 숭모비는 건청궁의 복원과 개방으로 인하여 이전 대상지를 물색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 제112주기를 맞이하여 2007년 10월 8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 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기념관에서 명성황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전시실은 주차장 앞에 있는 현대식 건물 전시관으로 면적 520㎡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을 중심으로 여흥 민 씨의 유물관련 자료 및 시해장면과 장사행렬 등이 소개되고 있다.
여주시 여행의 시작은 명성황후 생가를 시작으로 진행된다. 네비입력 (경기 여주시 능현동 247) 입력하면 주차장으로 곧장 진입되며, 입장료 및 주차비를 받고 있다. 명성황후 생가를 탐방하는 동안에는 뛰거나 큰소리로 떠들지 말아야 한다. 생가에서 세종대왕릉으로 향하는 이유는 세종대왕릉을 거쳐 효종왕릉을 여행하고 왕릉 입구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좋기 때문에 순서를 바꿔 여행하면 된다.
명성황후생가에서 세종대왕릉까지 8.2km 15분 소요되며, 세종대왕릉 방문을 하지 않을 경우는 곧장 여주대교 입구에 위치한 영월루(명성황후생가에서 6.2km)로 이동하여 영월루와 청리삼층석탑을 만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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