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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 - 대구광역시 팔공산 수태골~서봉~비로봉~동봉~동화사 코스

허영꺼멍 2016. 2. 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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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수태골-서봉-비로봉-동봉-동화사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수태골안내소(1주차장)-서봉 동봉 갈림길-오도재(서봉방향)-서봉(삼성봉)-오도재-마애약사여래좌상갈림길-마애약사여래좌상-비로봉-마애약사입석불-동봉(미타봉)-철탑삼거리(막걸리집)-염불암-부도1-부도암-동화사-수태골주차장(동화사 주차장으로부터 수태골 3주차장 까지 약 2.3km 구간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된다.)



▲ 서봉에서 바라본 비로봉과 동봉 전경


누구는 팔공산 단풍이 좋다며 조언을 하지만 낙엽 떨어져 긴긴 겨울 얼어버린 마음 녹여내는 봄의 문턱 대구광역시 산사람들의 모산(母山)인 팔공산(八公山. 1,193m)을 갑자기 찾아 길을 떠났다. 구정을 보내고 팔공산 갓바위를 다녀오면서 다음 산행지로 수태골 코스가 잡혀 있었고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급하게 하루전날 연락을 받고 수태골 제3주차장을 향했다.


초입에서 시작하다.


▲ 수태골 진입로 구간.수태골 제1주차장에서 곧장 출발지점이다.


수태골 제3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부터 한다. 과연 팔공산 등산로 코스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보니 주차장이 제3공간까지 있어도 주말에는 도로변을 따라 주차까지 이어진다. 준비운동을 하고 오르는 팀부터 개인이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진입을 준비해 본다. 오늘 산행은 정상인 비로봉의 좌, 우 자리 잡은 서봉을 들렀다가 비로봉을 거쳐 동봉을 오른 후 다시 하산하여 동화서로 내려선 후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약 11km 구간이다. 수태골 초입으로부터 동봉까지 약 3.5km 이다.


▲ 수릉.봉산계 표석이 있는 바위

수태(受胎)골은 불임한 여자가 아기를 갖게 해달라며 이곳에서 기도를 하였고 득남을 하니 수태골로 불러지기 시작하였다 한다.


수태골 초입 큰 바위 하나 우뚝 서 있어 살펴보니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표석이라 한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된 표석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이 표석은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수릉은 조선조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을 말한다. 봉산계는 수릉의 유지관리와 제사에 쓰이는 경비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구역의 산림을 보호림으로 정하여 일반인의 벌목과 입산을 금지하는 일종의 푯말이다. 이 표석은 팔공산 집단시설지구 안에 있는 수릉향탄금계표석과 글자의 크기와 규격이 비슷하여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이 일대가 보호림으로 지정되었음을 말해 준다.’


▲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준비하는 팔공산 초입


동화사에서 수태골~파계사를 잇는 단풍터널을 더 아름답게 조성하기 위해 2015년 수태골 초입에 푸른대구가꾸기 시민모임에서 식목일 기념 약 800그루의 단풍을 심었다. 수태골은 봄이면 팔공CC삼거리~수태골 약 2.5벚꽃 길과 여름이면 도심 속 피서지이다, 겨울이면 설산도 빼 놓을 수 없는 사색사계가 또렷한 곳이다.

▲ 너럭바위를 올려다 보니 아찔한데 지그제그로 오르는 사람이 있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북 영천 신녕면, 군위군 부계면을 잇는 산으로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협시불처럼 웅장하게 솟아있으며,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부악(父岳)이라 하였다. 팔공산은 고려태조 왕건이 팔공산 자락 공산전투에서 견훤(甄萱)에게 패하여 휘하 장수 신승겸(申崇謙), 김락(金樂)장군 등 8명의 부하장병이 왕건을 팔공산으로 피신시키고 뒤따라온 견훤에게 결국 전사하는 일이 있었다 한다. 이후 왕건은 8명의 충복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팔공산이라 불렀다 한다.


▲ 추모비

추모비 하나를 만난다. 추모비는 고 진교섭(1963.3.5.)으로 얄룽캉봉동계세계초등(8505m) 19891222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의 뜻을 여기에... 그대! 우리와 함께하리 19903.4일 고벽산악회에서 제작했다고 되어 있다. 진교섭이 누굴까? 히말라야 얄룽캉(8,505m) 동계 세계초등 훈련을 추모비 옆 바위에서 하다가 28살의 나이로 가버린 진교섭 군을 기리는 비석이다.

▲ 얼음이 녹아나면서 물이 흐르는 듯 보여진다.




폭포를 만난다. 긴 겨울을 털어내느라 물소리가 제법 들려온다.


봄이 오는 소리를 잠시 듣기위해 폭포로 향하는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서보니 두텁게 얼어 있던 얼음은 이제 얇은 백지장처럼 점점 녹아나고 있어 기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봉으로 그리고 오도재에 합류하다.


▲ 햇살이 파고들면서 땅이 질퍽해 지기 시작한다. 오도재로 오르는 길

수태골주차장으로부터 약 2.4km 올라서면 동봉과 서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동봉 1.1km, 서봉 0.9km 구간이다.


곧장 동봉을 오르기보다 서봉에 들러 경관을 조망 후 다시 되돌아 동봉으로 오르기로 결정하고 서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른다. 짧은 경사지역이지만 숨소리가 제법 거칠다.

그리고 만나는 오도재에서 다시 이정표를 만난다. 서봉 0.4km, 동봉 0.7km 구간이다. 서봉을 먼저 다녀오기로 하며 길을 따른다.


오도재에서 서봉으로 400m 구간


▲ 하늘로 비상하려는 듯 데크구간이 이어진다.

서봉으로 향하는 약 0.4km 구간에서 조망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되돌아서면 곧 올라가야 하는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동봉 그리고 철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도재에서 서봉으로 향하는 구간에는 나무데크 계단이 자리하여 질퍽한 오르막길은 피해 가지만 끝없이 이어질 듯 오르고 또 오르는 수고가 힘겹다.


서봉으로 향하면서 바라 본 비로봉과 동봉


▲ 비로봉 통신탑과 동봉 사이 마애여래입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비로봉 아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 동봉 전경

▲ 하늘정원 전경

▲ 군위방향에서 올라오는 하늘정원 향하는 길

▲ 대부분 개방된 통신소

▲ 서봉 앞 헬기장

▲ 서봉

헬기장을 지나 곧장 서봉에 도착한다. 동봉까지 1.1km 구간이며, 가장 멀리 이어지는 갓바위 까지 8.4km, 파계사까지 5.1km, 한티재까지 7.2km 구간이다. 정상에서 부인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동봉을 따라 오르는 산객의 모습이 힘겹게 느껴질 만큼 까마득하게 보인다. 정상석인 서봉 바로 뒤편 높은 바위에 옛날 표지석인 삼성봉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로 보면 삼성봉이 있는 곳에 정상석이 있어야 하지만 위험한 공간이라 조금 아래 정상석을 세운 듯 보인다.


서봉에서 바라 본 전경


▲ 부인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 서봉 정상석

▲ 옛날 서봉 정상석인 삼성봉


되돌아 내려선 후 마애약사불좌상을 만나다.



다시 되돌아 내려선다. 서봉을 떠나 오도재를 다시 딛고 갈림길에서 동봉을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접어든다. 잠시 바위구간에서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이번에는 팔공산 마애약사불좌상 이정표를 따라 오르니 곧장 마애불을 만난다.

▲ 마애불약사여래좌상 건너편으로 서봉이 조망된다.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만난다. 큰 등산로를 따라 갔다면 스쳐가기 좋은 위치에서 작은 산길과 함께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 이정표가 겨우 보인다. 일단 따라 올라가 보기로 하며 길을 오르니 얼마가지 않아 제법 큰 자리 터와 함께 마애불을 만난다.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이지만 조각의 솜씨는 보물급에 뒤치지 않을 만큼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은 왼손 바닥에 둥근 약 그릇을 얹어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둔 약사여래좌상으로 자연 바위벽에 돋을 새김 하였다. 불상은 시원스럽게 생긴 콧대에 힘 있는 턱 그리고 뚜렷한 눈썹 등이 얼굴 윤곽과 더불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깨는 둥글고 탄력감이 없으며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었다.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얇은 옷은 옷주름의 간격이 규칙적이며 가슴에서 옷깃이 한번 뒤집어져 8세기 불사의 특징을 보여 준다.

이 불상이 머리와 몸 둘레에는 이중의 원형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빛을 형상화한 광배를 표현하였다. 광배의 안쪽에는 당초무늬를, 바깥쪽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연꽃잎을 아래와 위로 향하도록 조각하고 그 아래에 입을 벌리고 눈을 부라린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 마애불에서 바라 본 서봉

▲ 마애불에서 바라 본 동봉

약사여래불이 있는 곳에서 동봉 자락에도 또 한분의 불상을 만나는데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제각기 다르다. 약사불을 떠나 계속 바위를 딛고 오른다. 되돌아 내려서도 되지만 정상 비로봉이 바로 이 불상 뒤편에 있기 때문에 굳이 돌아가지 않고 바위구간 길을 따라 이동한다.


팔봉산 최고봉 비로봉에 오르다.


▲ 통신소 오르기 직전 뚫어져 있는 철책

▲ 중계소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전경

▲ 비로봉 정상석

▲ 비로봉에서 바라 본 하늘정원

비로봉에서 팔공산하늘정원까지 1,04km, 동산계곡 8.36m, 군위삼존석굴 10.96km 구간이며, 동봉은 0.44km, 서봉은 0.78km이다.


비로봉에 접근하는 산길에 누군가 철책을 제거하여 통과하도록 길을 터놓았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많은 산객이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왁자지껄하다. 산 정상에 자리한 통신탑이 거의 개방되어 있었다. 팔공산 하늘정원도 개방되었다 하지만 통신탑에서 가는 길은 막혀 있는 듯 산객이 이동하지 않는다. 군위에서 올라와야 하는 걸까? 나중에 다시 한 번 길을 확인하기로 하고 정상석을 들른 후 마지막 봉우리인 동봉으로 향한다.


동봉가는 길에서 만난 동봉석조여래입상


▲ 마애불 입상 뒷편으로 동봉이 조망된다.

▲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정상 비로봉을 내려선 후 동봉으로 향하는 중간 능선에 툭 솟아오른 하나의 자연석 바위를 이용하여 그곳에 석조약사여래입상을 새겨놓았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 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두 볼은 풍만하며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바로 선 발 끝은 드러나 있고 발가락 조각도 뚜렷하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다.

오른손은 무릎 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다. 옷의 새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체로 조화를 이룬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다. 이 불상에서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잘 조화되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봉에 오르다


▲ 동봉 정상석

동봉으로 오른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돌아 나오면 곧장 동봉으로 향하는 오르막 나무데크 계단길이 이어진다. 힘겹게 올라온 만큼 마지막 오르막 구간에서 체력 소모가 심하다. 숨을 잠시 고르고 다시 계단을 딛고 오르면 나무계단 끝이 바로 동봉 정상석이 있다. 서봉과는 달리 많은 산객이 올라 서봉에서는 인증사진 하나 남기기 힘들만큼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


동봉에서 바라 본 전망


동봉에서 염불봉으로 이어지지만 다소 체력과 위험한 구간. 다시 석조여래입상으로 내려선 후 염불암으로 향하는 길로 우회하여 동화사로 하산을 결정 후 곧장 내려선다. 하산 길은 돌계단이 계속 이어진다. 올라오는 산객과 눈을 마주치기 미안할 정도로 가파른 계단길이다.


동봉에서 염불암으로 내려서다.


▲ 동봉에서 내려서는 계단길

▲ 염불암으로 향하는 돌계단

▲ 팔공산 유명한 막걸리 파는 곳

▲ 염불암 으로 내려서는 길

▲ 염불암 옆 계곡 전경


염불암에서 쉬어가다.


▲ 염불암 전경

팔공산 남쪽 기슭 가장 높은 지점에 터 잡은 염불암(念佛庵)에 도착한다. 염불암까지는 차량 진입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일반인은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며, 등산객들의 하산 길로 사용되는 도로를 따라 무수한 돌탑을 쌓아 놓고 있다.

▲ 염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

염불사로 내려서면서 잠시 절집에 들러 본다. 동화사 염불암에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과 함께 청석탑이 있으며,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동화사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면의 여래좌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남면의 보살좌상은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고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두 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으며, 무릎 위에 얹은 왼손은 관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면서도 힘 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법당 앞에 사지한 청석탑

청석탑은 대구 유형문화재 제19호이다. 국내에서 몇 없는 청석탑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의 위치를 지키며 현재는 탑신이 결실된 채 옥개석만이 남아 있다. 제질은 흑색점판암으로 지대석 이외에는 기단이 없으며 연판 등의 아무런 조각도 없다. 각 옥개마다 2단씩의 각형 받침을 갖추고 있고 상면에는 1단의 탑신받침이 있다. 옥개석 두께가 얇고 낙수면은 평박하며 네 귀퉁이의 천각은 반전이 심하여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점으로 보아 해인사 원당암 청석탑과 같은 계통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옥개석의 체감률이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졌던 소탑으로 볼 때 매우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 염불암을 둘러보며

▲ 염불암 윗쪽 염불봉 전망


염불암을 내려서다.


▲ 염불암 나서는 길. 이제부터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 부도암 못미처 만나는 부도암 1기

염불암에서 동화사를 내려서다보면 부도암 못미처 등산로 옆에 부도 1기를 만나게 되는데 동화사 부도암 부도이다.


부도는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것이다. 이 부도는 바닥돌과 몸돌, 지붕돌을 갖춘 팔각원당형으로 크기가 작다.

팔각원당형의 부도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한 것이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재석의 구성이 단조롭고 지붕돌의 모서리가 없어졌으며, 그 모습이 투박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화사에 내려서다.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493) 극달이 창건한 유가사를 신라 층덕왕 7(832) 심지 대사가 창건 또는 중건하면서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부른 후 신라 말(934) 영조 선사, 고려 명종 20(1190) 지눌보조국사, 고려 충렬왕 24(1298) 홍진국사, 조선시대 선조 39(1606) 사명대사, 숙종 3(1677) 상숭 대사, 영조 8(1732) 관허 운구 낙빈 청월 대사에 의해 중창 중건되었고 현존하는 전각은 조선시대 중창한 것이며,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보조국사 영정이 염불암에 모셔져 있다.

▲ 동화사 대웅전 들어가는 초입

팔공산 동화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동화사는 봉우리마다 부처님의 미소와 법음이 가득하고, 옛 신라의 화랑정신과 통일의 정기가 어린 민족의 영산인 팔공산에 자리하고 있다.


동화사는 493(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유가사로 불리었지만 832(신라 흥덕왕 7) 심지왕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할 때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서 동화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창 당시 동화사는 금산사, 법주사와 더불어 진표계 법상종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으며, 고려 말 홍진국사와 자정국사가 상주하면서 법상종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면대사가 동화사에 영남승군의 사령부를 설치하고, 승군의 대장인 영남도총섭이 되어 팔공산성을 쌓고 승군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 대구광역시와 경북의 창도, 고령, 성주, 칠곡군 내의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비로암, 부도암, 내원암, 양진암, 염불암, 약수암 등이 있으며, 지정문화재로는 대구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을 비롯하여 경내에는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 대구 동화사 아미타회상도(보물 제1610), 대구 동화사 목조약사여래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607) 11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전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한편 1992년에는 높이 약 33m 통일약사대불을 준공하여 국민안녕과 민족통일을 기원하고 있다.’


▲ 인악대사나무

동화사 내 자리한 느티나무로 인악대사 나무라 부르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인악대사의 속성은 성산 이씨이며, 법명은 의소 이름은 의첨으로서 영조 22(1746) 지금의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때부터 신동이라 불리워졌으며, 인근에 잇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 스님으로부터 금강경, 능엄경 등 불교경전을 배워 비슬산, 황악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불복장원문경찬소, 용주사제신장문이라는 글을 지어 바치니 정도가 크게 감탄하여 그에게 홍제라는 호를 내렸으며,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 51, 법랍 34세로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화엄사기, 금강사기, 기신론사기, 인악집 등을 남겼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 나무로 이름 지었다.’


▲ 보물 제254호 당간지주

대구 동화사 당간지주는 보물 제254호로 지금의 대웅전과는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비석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동화사 당간지주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나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은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동화사 당간지주는 현재 당간은 없어지고 그것을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만 남아 있는데,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기둥 꼭대기를 반원으로 처리한 수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로 만든 지주의 안쪽 위와 아래에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긴 네모꼴과 둥근 무양의 구멍이 있다.’


대구 동화사 금당암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248), 대구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제254), 대구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 대구 동화사 목조약사여래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607),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 대구 동화사 사명당 유정 진영(보물 제1505),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보물 제1772), 대구 동화사 아미타회상도(보물 제1610),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보물 제1773), 대구 도학동 승탑(보물 제601) 외 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


▲ 동화사 부도군

동화사부도군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이다. 10여기로 성암당 해정대사탑, 제월당 대사탑, 기성당 대사탑, 성임당축존대사, 고운당 부도, 함우당 부도. 상봉 정원대사탑, 계영당 극린대사탑. 고한당 부도 외 이름을 알 수 없는 부도 1기가 있다. 부도는 대부분 17~19세기초 조선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화사를 빠져나와 차량회수를 위하여 도로를 따라 되돌아간다. 큰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수태골 주차장까지 약 2.3km 구간이다. 따뜻한 봄날 사월 이 구간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벚꽃길이 너무나 아름답게 수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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