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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주왕산 장군봉~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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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주차장 - 0.7km - 대전사 - 0.1km - 백련암 - 2.1km - 장군봉 - 3.0km - 금은광이삼거리 - 1,8 용연폭포 - 0.6km - 절구폭포 - 1km - 용추폭포 - 1.9 - 대전사 -0.7km - 주왕산 주차장 |
▲ 청송 주왕산 입구에서 바라 본 전경
주왕산은 온통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암릉구간 등산로는 사실 거의 없다. 오늘 따라가는 코스는 대전사레서 장군봉을 거쳐 금은광이삼거리를 거쳐 폭포로 따라 내려서는 약 5시간 코스이다. 대전사에서 잠시 머물다 ▲ 봄을 기다리는 대전사 주말이지만 찬바람이 부는 탓인지 산객을 만나기 어렵다. 주차장을 거쳐 대전사로 들어서니 때 아닌 찬바람이 불었고 잠시 대전사를 둘러보며 몸을 풀기로 하였다. 대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이 창건 또는 고려 태조 2년(919) 보조국사 지눌이 주왕의 아들 대전군도를 위해 창건했다는 창건설이 전해진다. 대전사 우물을 메운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우물을 막아버린 사연은 조선시대 매일 냇물을 길어다 부처님 청수를 공양하였지만 거리가 멀어 스님들은 절에 우물을 파기로 하고 앞뜰에 우물을 만들어 청수로 사용하니 대전사는 화재로 큰 피해를 입자 성지도사가 찾아와 지세를 살펴본 후 대전사 터는 배가 바다로 떠서 항해하는 혈자리로 우물을 판 곳이 배바닥에 해당되어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 후 우물을 막아 버렸다 한다. 그 외 대전사 보광전 앞 석탑은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모아 다시 조립하면서 사라진 부분은 새로운 석재로 보강하여 조성하였다. 확인된 석재를 통해 하층 탑신 각 면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상층 탑신에는 보살상을 새겼지만 정확하게 원형이 몇 층인지 알 수 없고 단지 쌍탑이 존재하였다고 전한다.
주왕산과 관련하여 또 다른 설로 신라의 주원왕이 수도를 한 산이라 주왕산으로 부른다는 설도 있다. 대전사는 거듭되는 화재로 인하여 사찰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사찰터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과 규모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찰로 지금은 보광전과 명부전이 남아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로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하던 곳으로 알려진 호국사찰이였다. 주왕산에 관한 다른 기록으로 주왕사적에 의하면 신라 말 진성여왕 6년(892) 낭공대사가 창건하고 임진왜란 이전에는 4방(열선당, 탐진당, 수월당, 한산전) 4불(보광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3루각(용화루, 범종각, 응향각) 및 금강탑이라 부르는 쌍탑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사찰 발굴과정에서 1968년 절터 옆에 있는 밭에서 높이 5.5cm - 15.2cm 소형금동여래입상 7점을 발굴하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높이가 6.3cm, 아래 너비가 9.6cm 금동이불병좌상도 함께 발굴되어 보관되어 있다. ▲ 주왕산 기암단애 이외에도 대전사는 이여송 장군의 친필 목판(가로 42.5cm, 세로 24.5cm)이 있는데 원판은 분실되어 복사판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이여송이 승병을 훈련시키고 있던 사명대사에게 보낸 편지글로 내용은 의승도대장 사명대사에게 나라의 일이 위급하니 세상의 명예와 지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불도와 선도만 배우지 말고 서둘러 의승병을 모두 데리고 산을 내려오기 바라는 글이다. 贈義僧將松雲大禪伯 行拂下/ 無意圖功利/ 傳心學道仙/ 今聞王事急/ 摠攝下山顚/ 天朝將 太子少傳 李如松 謹稿 주왕사 창건은 주왕사적을 통해 보면 신라 헌덕왕 당시 김헌창의 난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종무열왕의 차남 김인문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웅천주 도독으로 있던 당시 822년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어 국호를 장안국으로, 연호를 경운이라 하였으나 반란은 실패하고 주방산(주왕산)으로 피신하여 옥정(주왕굴)에 숨어 있다 신라 장군 마일성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하자 그 후 아들 김법문이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전사를 짓고 다시 고달산적 수신 등과 난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였다. ▲ 기암 맞은편 바위를 딛고 오르면 전망대가 있으며, 장군봉은 뒷편 봉우리이다. 대전사보광전(보물 제1570호)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조선 현종 13년(1672) 보수된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한 다포계양식의 건축물로 본존불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건물 공포는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대전사보광전석가여래삼존불(경북시도유형문화재 제366호)는 조선후기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대전사보광전석가여래삼존불은 현종 13년(1672) 조성된 것으로 본존불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협신불은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을 모시고 있다, |
장군봉으로 오르다 ▲ 대전사 앞 다리를 건너면 백련암을 거쳐 오른다. 장군봉으로 오른다. 백련암을 잠시 들른 후 곧장 들어서니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장군봉을 경유하여 기암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면 잠시 들러 가려하였지만 등산로는 곧장 장군봉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오른다. 쉴 공간도 없이 나무데크 계단이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바위 암릉구간에서는 제법 배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만나는 전망대에 올라서니 주왕산 기암 단애의 모습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 장군봉 오르다 바라본 대전사 전경 ▲ 장군봉으로 오르는 계단길 ▲ 철책 난간도 만난다. 진입하는 순간부터 지그재그로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700m 지점에서 나무계단을 딛는다. 그리고 1.3km 구간부터 급격하게 가파른 나무데크가 기다리고 있다. 숨이 곧 멎을 것 같은 오르막을 딛고 오르면 정상이 아니다. 나무데크가 끝나면서부터 이번에는 쇠철난간을 잡고 오르는 바위등산로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전망대를 만나면서 장군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 비로소 접어든다. ▲ 제법 고도를 높여 내려다 본 대전사 전경 ▲ 전망대로 향하는 마지막 난간 구간 장군봉으로 오르는 이유는 산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마주하며 전망을 즐기기 위함이다. 힘든 구간인 만큼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을 쉬어가며 바라본다. 어쩌면 주왕산 산행에 있어 가장 주왕산 답다 할 수 있는 코스가 바로 대전사에서 장군봉을 잇는 중간 지점인 전망대 구간 전후가 아닐까 싶다. 전망대에 오르다 ▲ 주왕산 최고의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기암이 도열하고, 금방 스쳐지나온 대전사 사찰이 조망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 년 전 화산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분출하였고, 화산재와 부석이 공중에서 낙하하여 저지대에 두텁게쌓였고, 몇 차례에 걸쳐 층을 이룬 화산재는 빠르게 식는 과정에서 수직방향으로 갈라진 절리가 생겨나고 그 절 리가 풍화작용으로 침식을 거치는 과정에 오늘날 바위산 지형을 만들었다. ▲ 측면에서 마주하는 기암 단애(Giam Cliff)
단애란. 수직이나 급경사를 이룬 암석의 절벽으로 등산로가 없어 오를 수 없으며, 전해지는 이야기로 주왕의 군사가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하여 기암이라 부른다. 전망대에서 기암으로 향하는 흔들다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능선이 돌아가면서 깊숙한 협곡을 만들고 그 안에 온갖 바위들을 다 모아놓은 듯 하다. 전망대에서 장군봉까지 300m 국내 3대 암산(岩山)으로 설악산, 월출산, 주왕산을 손 곱는다. 주왕산(周王山)에는 암봉이 유별나게 많아 바위가 병풍처럼 쳐져 있다하여 석병산(石屛山), 바위산이 방과 같이 둥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 속세를 피해 숨어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대둔산(大遯山), 신라왕 김주원 즉, 주왕(또는 중국 당나라 주도)이 피란하여 숨을 거둔 곳이라 하여 주왕산(周王山) 등으로 불린다. ▲ 장군봉 장군봉(687m)에 오른다. 대전사로부터 약 2.3km 구간이며, 주변 전망은 없지만 장군봉으로 오르기 전 충분하게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을 거쳐 왔고 장군봉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능선길을 따라 금은광이삼거리로 이동한다. 장군봉에서 금은광이삼거리까지 약 3.0km 구간으로 전망이 거의 없는 능선 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 서너개를 넘어야 한다. 상당한 체력이 필요되는 구간이며, 이 일대는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장군봉에서 금은광이 삼거리를 걷다. ▲ 좁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독특한 바위가 모여있는 지점 ▲ 갑작스런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생수통 대전사에서 출발하여 장군봉을 오르면서 체력고갈이 되었고, 장군봉에서 금은광이삼거리까지 서너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진행하여야 한다. 갑자기 매서운 찬바람이 능선을 흔들었고 순식간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자칫 이러다 여기서 어찌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갈 만큼 전혀 예상하지 않은 강추위였다. 급히 더운물로 커피한잔을 마시고 달달한 것을 먹고 바람을 피했다. 얼마나 추웠던지 생수통이 꽁꽁 얼어 버렸다. 이제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왔다 생각하며 오른 산에서 갑자기 닥친 겨울 추위에 더운물이 없었다면 급격한 체력저하와 저온증세로 어찌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혹시나 싶어 베낭에 넣어둔 여벌옷을 전부 꺼내입고 바람이 잦아지는 걸 확인하고 다시 길을 이동하였다. ▲ 금은광이삼거리 도착 금은광이삼거리(719m)에 도착한다. 지난 태풍으로 등산로 주변에는 숱한 소나무가 죽어 있었다. 금은광이삼거리라하여 잠시 쉬어 갈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금은광이삼거리에서 용연폭포까지 1.8km 내려서야 한다. 반대 방향인 달기약수터가 있는 방향으로는 월외공원지킴이 7.0km, 달기폭포 5.1km 구간을 따라 내려서야 한다. 용연폭포를 경유하여 대전사로 내려서다. |
▲ 눈이 내리고 있는 등산로 용연폭포로 내려서는 계곡에는 얼음이 꽁꽁얼어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는 차가운 얼음장 밑으로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거나 새까만 구름이 몰려와 눈을 흩뿌린다. 대전사를 시작으로 한명의 산객도 만나지 않은 채 이동하던 중이었는데 계곡에서 컵라면으로 추위를 녹이며 허기를 달래는 사람을 만났다. 용연폭포가 다시 얼어 붙고 있다. ▲ 얼어버린 폭포
용연폭포는 주왕산에서 가장 큰 폭포로 물이 두 줄 기로 흘러 내려 쌍폭 또는 용폭이라 부르기도 한다. 2단 폭포인 용연폭포는 1단폭포에 의한 침식혈과 폭호가 존재하고, 전체적인 낙수차는 10m 내외로 형성되어 있으며, 유량에 따라 폭포의 모습은 달리 하고 있다. ▲ 하부폭포 전경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폭포면이 차츰 뒤로 밀려나가게 됩니다. 지금의 폭포면에서 가장 먼 부분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차츰 후퇴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동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식동은 폭포나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동굴이다. 절구폭포 ▲ 탐방로를 잠시 벗어나 계곡 안으로 들어서야 만나는 절구폭포로 향하는 계곡길 전경 ▲ 꽁꽁 얼어있는 절구폭포 절구폭포는 다른 폭포에 비하여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습기가 많은곳으로 응회암 위 이끼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2단 폭포로, 1단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 구혈이 있으며, 2단 폭포 아래에는 폭포가 잘 형성되어 솜씨 좋은 조각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용추폭포로 내려서다. ▲ 제3폭포에서 제1폭포인 용추폭포로 가는 길은 많은 탐방객이 찾는 곳으로 길이 넓다. ▲ 용추폭포 전경 용추폭포는 용꼬리에 해당된다하여 불리는 지명으로 낙숫물이 만든 원형의 깊은 구멍인 구혈과 주변을 따라 바위를 깎아 휘감는 폭호가 잘 발달되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시루봉과 학소대를 지나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석문이 열리듯 길을 터고 그 속살에 용추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용추폭포는 총 3단으로 주왕산으로 들어서는 첫 폭포이기도 하다. 계곡에서 흘러든 물줄기와 위에서 쏟아지는 낙수지점에 구혈과 폭호가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곳으로 용결응회암 특성을 볼 수 있다. 주왕산은 화산재에 의해 형성된 회류 응회암으로 침식에 약하여 풍화차이에 따라 다양한 비경을 자아내고 있다. 약 7천여만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생대 백악기후기 지질로 봉화 청량산과 달리 지질이 약해 낙석이 심하고 바위가 단단하지 않아 물의 흐름에 다양한 모습으로 홈을 파 계곡을 이루는데 제1폭포라 말하는 용추폭포는 주상절리와 회류 경계면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학소대 시루봉 급소대를 거쳐 내려서다. 청송 주왕산은 독특한 지형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암석지질작용으로 인하여 7개 큰 봉우리로 만들어진 기암단애와 급수대 주상절리를 통과하면 골마다 하나씩 감춰 놓은 듯 노루용추폭포,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 달기폭포와 연화굴, 무장굴, 주왕굴이 있다.
엄지손가락 하나 치켜든 모습을 한 바위기둥 하나가 계곡에서 우뚝 솟아 있다. 바위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데 떡을 찌는 시루를 닮았다하여 시루봉이라 부르며, 측면에서 보면 사람 옆모습을 하고 있다. 시루봉에 전해지는 전설로는 옛날 추운 겨울 도사가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시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과 함께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 전하고 있다. 급수대 주상절리는 등산로에서 위로 올려다보아도 까마득한 높이로 응회암에서 주상절리가 형성된 독특한 절리로 응회암이 용결 냉각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주상절리이다. 급수대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 왕)의 6대 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지만 경주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 올 수 없자 대신들이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주원은 김경신이 왕으로 추대되자 주왕산에 피신하여 자신의 성을 만들고 지냈는데 당시 산 위에는 물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는데 그 바위가 급수대이다. ▲ 자하성 자하교 앞 쉼터에서 왼편으로 작은 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곳이 바로 자하성의 옛 흔적이다. 당과의 전쟁에서 패한 주왕이 주왕산에 숨어 든 후 당의요청을 받은 신라 군사를 저지하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약 12km(30리) 돌담을 쌓았다한다. 당시 돌문과 창고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성터의 흔적만 겨우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일부는 축성시기가 주왕 전설 당시인 삼국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하는 주장이 있다. ▲ 수달래군락지 수달래(산철쭉)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특히 이곳 수달래는 신라말기 당나라에서 피신한 주왕의 원한이 전해지는 곳으로 “수단화”로 불리기도 한다. 주왕은 자신을 잡으로 온 마장군의 공격을 피해 주왕굴에 숨어 있던 어느 날 주왕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던 중 마장군이 쏜 화살에 죽게 되자 그 핏물이 주왕골을 따라 흘러 내렸는데 그때 핀 꽃이 수달래로 주왕이 죽고 난 후 피었다 하여 수단화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주왕의 전설과 함께 오늘날까지 매년 5월이면 수달래 축제를 한다. ▲ 아들바위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만나는 주왕산 계곡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 경관부분 우수상을 수상한 곳으로 거친 암석과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며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 아들바위는 주왕계곡 입구에서 약 100m 지점에 있는 네모반듯한 큰 바위로 그 위에 작은 돌이 소복하게 올려져 있다. 아들바위는 바위를 등지고 다리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득남을 한다는 전설이 있다. 주왕산에 여러 지명과 관련하여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스스로 부르며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자 신라 석병산으로 후퇴하여 숨었는데 당나라는 신라왕에게 주왕을 척결 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냈다. 암굴에 숨어 있던 주왕이 폭포수에 세수하러 나왔다 마장군의 화살에 운명을 다하게 된다. 이후 주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나옹화상이 석병산을 주왕산으로 고쳐 부르면 이 고장에 복이 온다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석병산에서 마장군에게 주왕이 최후를 맞이하자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이 자신의 이름으로 지은 사찰이라 전하는 대전사 왼편 계곡을 올려다보면 주왕산(720m)을 상징하는 암봉 하나 우뚝 솟아 있으니 깃대봉이다. 주왕이 마장군에게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암봉에 볏짚을 씌워 노적가리(곡식 따위를 한데 수복이 쌓아 둠)처럼 보이게 하고 쌀뜨물을 흘러 보냈지만 마장군이 쏜 화살이 튕겨 나오자 그것이 바위라는 걸 알고 마장군이 주왕을 물리친 후 깃발을 꽂았다하여 깃대봉이라 부른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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