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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 의문의 부도탑조각 | 여행일자 : 2016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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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황사 대웅보전
겨울 해남 두륜산을 다녀오면서 잠깐 달마산(達摩山.489m) 도솔봉(421km) 능선까지 차로 올라선 후 오솔길을 따라 기묘한 암봉에 자리한 도솔암(兜率庵) 불전을 끼웃거리다 돌아오면서 봄이 되면 이곳에 다시 찾아 올 것이라 달마산과 약속을 하였고 그렇게 찾아온 봄바람을 따라 도솔암 자락 달마봉과 사자봉을 배경으로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 방문을 시작한다. 땅끝지맥 해남 달마산은 온통 날카로운 암석으로 이루어져 남도의 금강산이란 칭찬을 아낌없이 하는 산이다. 바람재를 시작으로 정상 불썬봉(489m)과 도솔봉을 잇는 능선은 거칠다 표현할 만큼 암산으로 현산면, 송지면, 북평면 등 3개의 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미황사 대웅보전(보물 제947호) 일주문을 시작으로 불국정토로 들어서는 돌계단을 딛고 오른다. 달마산 기암 아래 대웅보전을 중심전각으로 몸을 낮춘 모습을 하고 있다. 달마산(489m)은 높은 산이 아니지만 오르기 힘든 산이다. 달마산 도솔봉에는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수도했다는 도솔암이 있으며, 허리춤에 미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법정스님(1932-2010)이 살아생전 고향인 해남 미황사의 부도전과 삼월에 피는 동백을 귀하게 여겼다 한다. ▲ 오랜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대웅보전(보물 제947호)
미황사가 우리나라 불교사에 큰 관심을 받지 않은 사찰이지만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둘러보면 독특한 미황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전설을 통해 인도에서 들여온 남방전래설과 밀접한 연관성을 반영하는 초기사찰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대웅보전은 내소사처럼 단청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인없이 홀로 남겨진 오랜세월 퇴색되어 지금은 아름다운 단청을 볼 수 없지만 내부 법당 공간으로 들어서면 화려함에 감탄하게 한다. ▲ 대웅보전 내 천불도 미황사 대웅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 사적비(1692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가 땅 끝에 도착하였는데, 의조화상과 향도 100여 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을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였고, 2008년에 삼창하였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전각이다. 한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598년에 중창하였고, 1660년, 1754년, 1982년, 2007년에 거듭 중수하였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어지기도 한다.’ 대웅보전에는 목조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은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특히 건물 내 대들보와 도리에는 천불도가 그려져 있으며, 천불로 인하여 세 번만 절하면 과거, 현재, 미래 부처에게 절하는 삼천배를 하는 것이라 한다. ▲ 대웅보전을 지탱하는 기둥 그리고 독특한 조각들을 만나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을 하였으며, 다른 대웅전 건축물에서 볼 수 없는 대웅전 기둥을 막돌허튼층쌓기 형식으로 올렸는데 그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 독특한 연꽃무늬를 비롯하여 자라, 게, 물고기 등 조각되어 있다. 건물 외관 단청이 오랜 세월 퇴색되어 화려하지 않는 반면 내부에는 다양한 벽화와 그림을 통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우리나라 불교 유입은 전진(前秦)의 순도 스님이 고구려에 불상과 경문을 가지고 들어온 소수림왕 2년(372년)이라는 게 통설로 하는 북방전래설과 인도 아유타국 태자이자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을 따라 온 오빠 장유화상 전파설인 남방전래설도 있다. 대법당중수상량문(영조 30년. 1754년)에 의하면 달마는 서천으로 돌아가고 법신은 좌해(左海)에 머물며 남쪽 땅 끝에 석장을 꽂아 제천(諸天)에 복된 땅을 열었으니 본조 신라왕(경덕왕 8년. 749) 즉위 8년 기축년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절을 창건하니 이가 곧 미황사이다. 명종 10년(1555) 일본은 왜선 70여척을 이끌고 호남지방 달랑포를 통해 침입하는 왜변이 일어나니 바로 정유왜변(乙卯倭變)이다. 전라병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은을 살해하고 영암까지 진격하였고 전주부사 이윤경(1499-1562)이 영암성에서 방어 및 평정을 하지만 아쉽게도 미황사는 불타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미황사는 세 차례 중건을 하니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건물 일부 소실되어 1598~1601년 중건, 효종 9년(1658)~현종 1년(1660) 성간(省侃), 수신(脩信) 스님에 의해 중건, 영조 27년(1751)~1754년 보길도에서 목재를 옮겨와 대웅전 및 나한전 중수하였다. 미황사는 18세기 연담유일 스님, 철종 9년(1858) 영허의현 스님이 머물며 유명세를 떨치다 흔허스님이 서산대사진법군고단을 대동하여 완도 청산도 풍년 기원을 하기 위해 뱃길로 이동하던 중 배가 뒤집혀 스님 한분만 겨우 살아나는 일이 생겼고 절은 빈 절이 된 채 백여 년 세월을 보냈다 한다. 1989년 잡초 무성한 절터 잡초를 뽑아내고 재건을 위한 노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지운스님, 헌공, 금강스님이었다. 미황사 응진당(보물 제1183호) ▲ 미황사 응진당(보물 제1183호)
응진당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미황사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은 그 뻬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 이름지어졌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의 한자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 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선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선 맛으로 이름이 높다.’ 미황사 창건 이야기 미황사 창건 설화로 숙종18년(1692) 당시 민암(閔暗,1634-1692)이 쓴 미황사 사적비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황사 사적비명에는 ‘숭정대부 행병조판서 겸 지경연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 사세자좌빈객 민암 장유가 찬하고, 현록대부 낭선군 겸 오위도총관부 도총관 오가 쓰고 아울러 새긴다.’로 창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 8월 12일 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산 아래 사자포구에 정박하니 하늘에서 음악인 듯 범패 소리가 배안에서 들려와 어부가 가까이 가 살피려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 갔다. 의조 화상이 소문을 듣고 장운과 장선 두 사미 그리고 촌주 유감, 향도 백 사람을 데리고 찾아가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니 돌배가 해안으로 다가왔다. 금옷 입은 사람 하나가 노를 잡고 일어나 돛대를 펼쳐 살펴보니 자물쇠 달린 금함에 화엄경 80박과 법화경 7박, 비로자나 문수 보현 40성종과 53선지식 및 16나한 등 화상이 있었고, 금가락지와 검은 돌 각각 한 매씩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물건들을 가지고 내려와 봉안 할 곳을 의논하던 순간 검은 돌이 부서지면서 청흑색 암소 한 마리가 나와 훌쩍 커졌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은 금옷 입은 사람이 나타나 말하길 나는 우전국의 왕인데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전과 화상을 안치할 곳을 구하는 중으로 달마산 꼭대기 일만 분의 부처상이 나타나 찾아왔다며 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은 곳에 경전을 안치하라 한다.
화상은 소에 경전을 싣고 가니 소가 처음 한 곳 땅에 누웠다 일어나고, 산골짝에 다시 누워서는 아름답구나 큰소리로 부르짖고 숨을 거두었다 한다. 처음 누운 곳에 통교사를 짓고, 나중에 누운 곳에 절을 창건 후 미황사라 하였다. 미황사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 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니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라 하여 미황사이다. 미황사에서 부도전을 찾아 나서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산중 천년고찰의 면모 그 뒤 세상에 보여주기 싫은 듯 숨어있는 부도군은 누구라도 쉽게 만나는 곳이 아니었다. 비탈을 따라 올라야 하는, 무심했던 길 따라 오르다 보면 시공을 초월한 선계가 펼쳐지듯 장구한 세월이 머문 곳에 부도암이 있지만 사전 조사를 통해 부도암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이정표를 잘못 확인하고 먼 거리를 다녀 되돌아 와야만 했다. ▲ 이정표를 잘못 확인하여 도솔암 가는 길 까지 다녀왔다. ▲ 헷갈리게 만든 부도전 이정표 미황사 부도전은 미황사를 떠나 산길을 따라가는 큰 길을 진행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건물 하나가 들어오면서 큰 길은 작은 등산로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땅끝으로 향하는 탐방로이며, 오른쪽 부도전을 지나 오르면 산으로 오른다. 여기서 동부도와 서부도는 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위, 아래 인접해 있다. 서부도밭에서 조각에 빠져들다 ▲ 서부도탑이 모여 있는 모습. 진입로는 돌 담장 중앙을 터 놓고 석축으로 계단을 내었다. 이 깊은 산속 수행자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부도탑을 만난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이끼 무성한 차가움에 숱한 사람들의 손길이 다닥다닥 묻어 있다. 부도라 함은 죽은 영혼의 안식처로 엄숙해야 할 공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함은 잠시 내려놓고 경이로운 모습에 수많은 의문과 기묘한 상징적 문양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 부도탑에 빈 공간도 없이 다양한 문양이 동시다발로 새겨져 있다. 서부도에서 만나는 다양한 조각 작품은 상당히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런 이곳이 아닌 일반 부도에서는 만날 수 없는 디자인이기도 하며, 일반적 고찰에서도 흔히 접할 수 없는 묘한 조각을 통해 불교 사상의 또다른 면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왜? 이런 조각을 남겻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든다. 사찰에서 거북이와 게, 물고기, 다람쥐, 계수나무 방아 찧는 토끼 등 비슷한 조각을 접하게 된다. 청도 대조사가 그러하고 경북 영주 영혈사 문짝이 그러하지만 부도에 이처럼 바다생물을 옮겨 놓은 경우는 희귀하다. 이를 두고 인도 불교가 해남 앞바다를 통해 전해졌다는 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서부도밭은 부도암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총 6기가 모여 있으며, 앞선 부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영파당(靈坡堂), 창암당(蒼岩堂), 고압당(孤鴨堂, 18세기중엽),감파당(減坡堂, 1768), 천연당(天然堂), 은곡당(銀谷堂, 19세기후반)의 부도이다. 미황사 동부도암. 동부도 미황사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미황사 부도밭이다. 부도밭은 두 곳에 나뉘어져 있으며, 이 부도탑에서는 독특한 문양에 푹 빠져 들 만큼 다양한 문양을 만나게 된다. 부도가 있는 곳에는 부도암(浮屠庵)이 있다. 부도전 못미처 하나의 부도가 홀로 떨어져 있는데 옥암당 부도이다. 또한 창건설화가 기록된 미황사 사적비를 만나게 된다. ▲ 부도암과 부도군으로 부터 떨어져 홀로 서 있는 옥암당 부도
비는 화강암으로 전체높이 385cm, 비신높이 292cm, 넓이 129cm, 두께 33cm이다. 비문은 민암이 짓고 전서는 이우가 썼다. 오늘날 비석이 묻혀있던 곳을 파 내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해 두고 있다. 미황사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 이 비석은 자연석 바위에 올려 놓은 독특한 모습이다. 만들 당시부터 자연석 위에 올려놓을 생각하였는지 알 수 없다. 동부도에서 조각 작품 찾기에 빠져들다. ▲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동부전 ▲ 1구의 부도에서 많은 조각을 만난다. 흩어져 있던 부도를 모아 놓았다. 제각각 다른 부도이지만 산중에서 호수를 만난 듯 동심으로 돌아간다. 인기척에 놀란 꽃게 한 마리 급하게 달려간다. 그러고 보니 경북 청도 대적사에서도 만난 적 있는 바다생물 조각이 그려져 있다. 지리산 연곡사의 부도처럼 정교하거나 아름다움은 없다. 투박해 보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전남 순천 선암사 극락전 문에 그려진 방아 찧는 토끼를 이곳에서도 만나니 절집 부도 중 가장 해학적이며, 아름답다 칭송하는데 이견이 없다. 부도는 탑비 5기, 부도 21기, 부도 부재 1기, 총 27기가 있다, 연담 유일(蓮潭 有一), 벽하당(碧霞堂), 설봉당(雪峰堂), 정련당(井蓮堂), 미봉당(眉峰堂), 완해당(玩海堂), 정암당(晶岩堂), 송암당(松岩堂), 영월당(靈月堂, 1808), 오봉당(午峰堂, 1788), 송월당(松月堂), 백월당(白月堂, 1841), 죽암당(竹庵堂, 1821), 붕명당(鵬溟堂), 사봉당(師峰堂), 응화탑(應化塔), 혼허당(渾虛堂), 영허당(靈虛堂), 이봉당(?峰堂) 및 당호가 분명하지 않은 2기가 있다. 내려서다 경내에는 해남 미황사 대웅전(海南 美黃寺 大雄殿. 보물 제947호), 해남 미황사 응진당(海南 美黃寺 應眞堂. 보물 제1183호), 미황사괘불탱(美黃寺掛佛幀. 보물 제1342호)가 있으며, 이 일대를 명승 제59호로 지정하였다. 또한 비록 국가 지정 보물급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독특한 불사리탑을 모셔놓은 동부도탑과 서부도탑을 빼 놓을 수 없다. 당일 사정으로 도솔암까지 등산을 하지 못하여 겨울에 갔던 사진 몇 컷 올립니다.
도솔암을 쉽게 가는 방법은 마련마을을 거쳐 산길을 약 3km 따라 오른 후 도솔암 입구에 주차하고 약 800m 산길을 따라 진행하거나 미황사로부터 동부도전-서부도전을 거쳐 대밭삼거리를 올라 도솔암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만불상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큰 암봉을 안을 작은 돌로 10여 m 채워 절집을 올릴 공간을 만들었는데 고려시대 스님이 기도하며 돌을 하나씩 쌓았다는 것이며, 도솔암에서 법당과 삼성각이 전부이며, 스님은 산봉우리 너머 박스 집에서 거주하고 계신다.
도솔암의 창건은 통일신라 의상대사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겨우 목숨을 구한 왜군은 달마산으로 숨어들면서 암자와 절을 불태워 버렸다 한다. 이후 절터는 폐허가 되었고 가끔 무속인 이 우물가를 찾아 기도처로 삼았던 곳을 1987년 통도사에서 출가하여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던 법조스님이 현몽을 통해 도솔암터를 확인하고 2002년 32일 만에 법당을 복원하였다 한다. 도솔암과 비슷한 조각을 만날 수 있는 사찰 청도 대적사 ▲ 청도 대적사 극락전
반야용선이란 진리를 깨달은 지혜로 피안의 세계로 간다는 의미로 피안의 세계로 가기위해서는 배가 필요했고, 곧 사찰에서 배는 불전이 된다. 미황사가 그러하고 소백산 성혈사 사찰 장식이 그러하다. 순천 선암사 ▲ 선암사 원통전
원통전 어간문은 4분합문으로 중앙 2짝에 모한꽃창호로 모란과 자세하게 보면 새가 조각되어 있으며, 양쪽 바깥문 2짝에는 금강저빗살창호로 하였다. 특히 모란도 아래에 있는 궁판에는 어린시절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놓았으며, 그 옆으로 계수나무와 한쌍의 파랑새가 있어 궁금증을 더하는 곳이다. 영주 성혈사 소백산 비탈진 산길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성혈사는 최근 불사한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및 명종 8년(1553) 세우고 인조 12년(1634) 중창한 나한전(보물 제832호)과 석조비로자나불상, 2기의 석등이 있는 초라한 모습의 사찰이다. 본래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인근에 있는 초암사에서 수도를 하다 절을 창건하고 절 아래 성인이 나온 암굴이 있어 성혈사로 불렀다 한다. 성혈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과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꽃창호문을 달았는데 그 모습이 과히 오묘하기 짝이 없는 특이한 그림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건물 내부는 하나의 통칸에 정면 3칸을 한 특이한 구조로 3칸 모두 두문짝을 달았는데 중앙에는 십장생을 새겨놓고 좌우에는 소슬 꽃무늬가 투각되어 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확인되는 꽃살문은 당시 뛰어난 목공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문살 조각은 연꽃, 물고기, 물고기를 잡는 새, 연잎에 올라앉은 개구리, 연꽃 줄기를 붙잡고 있는 동자상, 기러기, 게 등 다양한 조각이 표현되어 흡사 한 폭의 민화를 보는 착각에 빠져든다. 나한전 앞에는 보기 드문 2기의 화사석이 놓여 있다. 화사석등을 따라 용이 휘감고 오르는 모습 또한 과히 일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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