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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선종가람 남원‘실상사’ | 여행일자 : 2016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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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전경
화엄사 번창의 시기 그리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되고 폐허로 변해버려 인근 암자인 백장암을 사찰로 승격시키고 그곳에서 머물렀다. 1679년 벽암대사가 다시 부활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1690년 침허대사, 1821년 의암대사에 의해 불사가 이루어 졌지만 1882년 일부가 유생들에 의하여 소실되고, 1884년 월송사에 의해 재건되었다. 실상사에서 만나는 석장승 ▲ 실상사 초입 해탈교 건너 사찰영역을 지키고 있는 3기의 석장승 한떄는 석장승을 찾아 전국을 헤메였다. 그때 만나게 된 실상사 석장승과의 인연은 지리산 자락을 여행할 때면 꼭 들렀다 가곤 한다. 해탈교 입구 외롭게 서 있는 석장승은 본래 2기가 수문장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1936년 홍수로 유실된 후 지금은 1기가 위치해 있고 "해탈교" 건너 2기가 마주하고 있다. 해탈교 전후로 4기가 존재했던 것이다. 툭 불겨진 부리부리한 눈과 해학적으로 묘사된 도깨비 형상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하나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장군석이라 생각한다. 석장승 하면 나주 불회사를 떠올릴 수 있다. 불회사 석장승이나 운흥사 석장승이나 모두 남녀 한쌍이 기본이지만 실상사 석장승은 모두 남성이다. ▲ 옹호금사축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높이 290cm, 둘레 118cm, 두께 40cm, 너비 48cm), 대장군(大將軍/높이 253㎝, 둘레 170㎝, 두께 34㎝, 너비 40㎝ ),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높이 253㎝, 둘레 165㎝, 두께 27㎝, 너비 50㎝)등으로 어찌된 영문인지 한결같이 장군이다. 즉 남자라는 것인데 본래 장승은 남, 여 1기씩 배치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지 않은가. 특수한 경우 경남 사천의 석장승은 2기씩 남,여를 배치하여 마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이처럼 남 장승만이 몰려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 유실되어 사라져 버린 석장승 1기를 대신하고 있는 작품 장승은 목장승과 석장승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으며, 지방에 따라 장승, 장성, 벅수, 법수. 당산, 수살목 등으로 불리며, 설치한 목적에 따라 제각기 달라 진다. 주로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사찰 입구에 세워 잡귀의 출입을 막거나 사찰 지역임을 나타 내고, 마을에서는 돌림병으로부터 받기위해 세우기도한다.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장승으로 도갑사, 보림사, 쌍계사, 불회사, 운흥사, 통도사, 봉은사 외 많은 사찰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실상사 장성의 연대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으로 "옹정(雍正) 3년 3월" 이란 명문과 대장군은 "雍正 三年乙巳 三月 入東述" 이라고 새겨져 있음은 옹정(雍正)은 중국 청대의 연호이며 "雍正三年"은 조선 영조1년(1725)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절집으로 ▲ 대웅전을 중심으로 석등 그리고 조금 뒷편 양 옆으로 2기의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실상사는 1법당 1탑 구조로 시작하였으나 사찰의 살림이 커지면서 쌍탑, 3법당 가람배치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 사찰 내 가람의 배치는 사천왕사를 지나 진입하면 석등과 연못, 종각이 첫 번째 자리 잡고 정면에 보광전, 오른편에 약사전, 왼편 안쪽으로 극락전이 자리하고 약사전 옆에 명부전이 있으며, 명부전 옆으로 목탑자리로 추정되는 자리에 주출돌이 있다. 실상사 성보 문화재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 ▲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 제39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보물 제39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보물 제39호)는 극락전으로 들어서는 문 정중앙 앞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극락전 출입문을 중심으로 왼편 끝에 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가 모셔져 있는 배치방식을 하고 있다. 증각대사탑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비석은 홍척스님을 추모하여 옆의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증각은 홍척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칭호이며, 일명 남한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유명한 스님으로 이곳 지리산자락에 실상사를 처음 세웠다. 아쉽게도 현재 비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에는 용머리 모양으로 표현하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그대로 조각하였다. 비의 장식이 전체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사실적이어서 우리나라 고전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 실상사종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부도탑은 통일신라말 홍척 홍척스님을 추모하여 세운 것으로, 경내에 함께 있는 그의 제자 수철스님의 부도탑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었다. 당나라에 다녀온 홍척스님은 선종을 널리 전파하였으며,실상사를 처음으로 열었다. 탑 몸체에 새긴 문짝 무늬는 윗부분이 반원형인데,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세밀하게 새긴 것이 눈길을 끈다. 지붕은 목조탑의 모습을 본 따 정교하게 조각하였으며 탑의 높이는 2.4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후반기의 우수한 조각술을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 극락전 문 앞에 매화가 만개했다.
그러나 고종 때 함양과 산청 출신 유생들이 절터를 가로채고자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후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건물을 복구하였다. 건물 정면에는 정(井)자 문살로 짠 문짝과 빗살로 짠 문짝을 번갈아 달아 다채로움을 더하였다. 둥근 기둥은 위아래 굵기의 변화가 없고, 천장은 바둑판 모양으로 짜 넣었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이 절을 창건한 홍척스님의 제자인 수철스님의 부도탑과 탑비를 모셨다. 극락전 왼편과 오른편은 실상사의 제1대와 2대 스님이 편안하게 쉬라는 의미로 극락전 좌,우에 모신 듯 보여진다. 남원 실상사수철화상탑은 보물 제33호이며, 실상사수철화상탑비는 보물 제34호이다. 남원 실상사수철화상탑(보물 제33호) ▲ 남원 실상사수철화상탑(보물 제33호)
높이 3m인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부도탑으로 팔각형을 기본형태로 삼고 있다. 탑 몸체 각 면에는 사천왕의 모습을 새겼다. 목조건축의 형식을 본 따 세밀하게 조각해 놓은 지붕에서 석공의 뛰어난 조각술을 엿볼 수 있다. 남원 실상사수철화상탑비(보물 제34호) ▲ 남원 실상사수철화상탑비(보물 제34호)
비에는 수철스님이 태어나 불가에 귀의.뜩도하여 세상을 교화한 후 열반에 들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기려 탑을 세운 경위를 차례로 적어 놓았다. 아쉽게도 현재는 글자가 거의 닳아 없어져 판독이 어렵다.’ 실상사삼층석탑 (보물 제37호) 실상사에서 대표적인 한국 탑을 만날 수 있다. 국보 10호인 실상사 백장암의 석탑과 함께 보탑이 아름다운 실상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후기의 작품으로 빼놓을 수 없다. 두기의 석탑이 나란히 배치되어져 있지만 정상 부분의 보륜대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탑에서 상륜부는 거의 파손되거나 보륜대는 없는것이 대부분이지만 두기의 탑이 모두 완벽하게 남아 있으며,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돌출하여 올렸다.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는 신라 흥덕왕 3년(282) 실상사 창건과 운명을 함께한 통일 신라 쌍탑으로 총 높이가 5.4m이다.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삼층석탑 중 동탑은 상륜부 원형보존이 완벽하지만 서탑은 수연이 없다. ▲ 실상사 쌍탑 그리고 석등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높이는 5.4m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을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고, 각층 몸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 아래 면은 수평이나, 윗면 모퉁이 부분은 위로 치켜올려졌다. 받침부가 비교적 커서 균형감은 덜하나 전체적인 모습은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쪽 탑은 아쉽게도 꼭대기 일부를 잃어버렸으나, 두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 있어 그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 ▲ 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 석등 앞에 불을 켜기 위해 올라서는 걔단 석조물이 남아있다.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 면 모두에 큼직한 사각창을 내었다.’ 보물 제35호 실상사 석등은 보광명전 앞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화사석에 불을 밝히기 위해 오르는 돌계단(동계)이 함께 있다. 팔각 지대석 위 기대석을 안치하고 측면에 안상을 새겨놓고 낙수면에 8엽 단판연화로 전면을 치장하고 있다. 실상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 ▲ 실상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가 모셔져 있는 약사전은 대웅전으로 부터 오른쪽 안쪽 전각이다. 약사전이 좁다는 생각은 철불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실상사 사찰 전각이 한결같이 작은 편이라 약사전 역시 큰 불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좌상을 한 철불전은 보기드문 작품으로 현재 보물 제41호이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통일신라 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 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높이는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 손도 근래에 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루뭉술한 머리 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가름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뛴 이 불상은 온유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 말 불상의 변천 양상을 가늠케 한다.’ 실상사 동종(전북시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높이 123㎝, 입 지름 83㎝의 숙종20년(1694) 만든 종으로 도선국사비기에 실상사가 잘돼야 나라가 부흥한다는 말에 따라 일본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경고하기 위해 종신 하단에 일본 지도를 새겨놓고 동경 위치를 당좌로 삼아 스님이 매번 종을 쳐 일본지도가 닳고 식별이 어려울 지경이다. 실상사 독특한 건물 칠성각 ▲ 맞배지붕에 활주까지 서 있는 칠성각
칠성각은 1932년 남성법 스님이 조성하였으며, 거암 김봉관 글씨의 현판을 내걸었으며, 법당 안에는 탱화가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를 돌아 나오며 ▲ 보광전을 중심으로 양쪽 쌍탑이 자리잡고 있다. 실상사는 사젝 제309호이다. 사찰에 관하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절은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흥척스님이 처음 세웠다. 신라말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실상사가 그중 하나이다. 정유재란(1597)때 모두 불타 숙종(1674-1720)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 ▲ 연못이 메워지고 매화가 활짝 피어 반겨주고 있다. ▲ 극락전 수조에 비친 봄 ▲ 약사전 꽃문살 ▲ 세월호 천일기도단 실상사는 천왕문을 시작으로 옛 목탑터에서 수습된 기와로 탑을 만든 기와탑 그리고 종각을 거쳐 삼층석탑과 석등을 지나 중심건물인 보광전으로 이어진다. 보광전 오른편으로 약사전을 두고 약사전 앞에 명부전이 있다. 왼편으로 칠성각이 있으며, 들어서는 입구인 천왕문 왼편으로 종무소와 해우소 그리고 극락전이 있다. 해우소 앞에 있던 연지와 종무소 앞에 있던 연지는 모두 메워졌다. ▲ 실상사에서 만난 백매 ▲ 해탈교 아래를 흐르는 계곡 ▲ 실상사 석장승 해질녘 도착하여 방문하다보니 아쉽게도 실상사 부도(보물 제36호) 및 백장암을 들러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 기회를 약속하며 이번 여행을 실상사에서 마무리 한다. ▲ 해탈교 건너 쉬어가는 숲 불교문화재로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국보 제10호),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호), 실상사석등(보물 제35호), 실상사부도(보물 제36호),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 제39호), 실상사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보물 제421호), 남원싱상사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5호), 실상사극락전(전북 시도유형문화재 제45호), 실상사위토개량성책(전북유형문화재 제88호). 실상사동종(전북시도유형문화재 제137호), 실상사일원(사적 제309호) 등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산청 생초에서 잠시 ▲ 지리산 오도재 관문 ▲ 지리산 오도재 ▲ 생초 민물고기 메운탕
언제나 보면 실상사는 남원을 방문하거나 지리산을 넘어 돌아오는 길목에 들러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쫒겨 버린다. 사찰을 거닐다 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어둠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백장암을 들러 실상사에 도착 그리고 지리산 산길을 따라 돌면서 서암 벽송사를 거쳐 떠나는 사찰 여행을 한번 해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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