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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동단 포항 호미곶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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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항-구룡포해수욕장-삼정리 주상절리-해국자생지-호미곶 등대박물관-호미곶 일원 |
부산에서 울산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서는 고속도로가 연결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접하였지만 포항까지 갈 특별한 일이 없어 차일피일 다음기회에 한번 가보자며 미루었고 모처럼 장마날씨가 걷혀 날씨도 화창한 평일 그렇게 울산-포항간 고속도로를 따라 포항 호미곶으로 향했다. 부산 원동IC에서 부산-포항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38.6km 구간으로 약 1시간 50분 소요되는 거리였다. ▲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대부분 구간이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구룡포(九龍浦)항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954-7 전국 대게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해안 최대어항 구룡포를 찾는다. 구룡 즉,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구룡포(九龍浦)로 불리는 곳. 신라 진흥왕 당시 장기 현감이 용주리를 막 지나갈 때 천둥과 함께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구룡이라 불렀다 한다. 바다에서 무슨 아홉 마리나 되는 용이 승천을 하였을까? 현대적 과학으로 보면 용오름 현상을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 구룡포항 전경 구룡포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항구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동해안 앞바다는 엄청난 수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울산 장생포와 함께 이곳에서도 1947년까지 고래잡이가 성행하였고 1978년 국제포경위원회인 I.W.C에 가입하면서 동해안 고래잡이는 중단되었지만 이미 수많은 고래를 일본에 의해 포획, 거의 멸종이 되었던 시기였다. 구룡포 전성기였던 일제강점기 당시인 1920년에는 일본어선 900여척과 조선어선 100여척이 모여 들었다한다. 구룡포항은 고래잡이 중단이후 1990년 접어들면서 동해안에서 건져 올린 청어(관목어.貫目魚)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호미곶 인근 까꾸리게 해안에 파도가 심하게 몰려오면 청어가 바위까지 밀려와 까꾸리로 긁을 만큼 많았다 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진상했던 청어과메기는 이후 청어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꽁치가 청어를 대신하고 있으며, 꽁치도 대부분 북태평양에서 잡은 원양산으로 부산 감천항에서 공급을 하고 있다. 구룡포해수욕장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리 505-2 ▲ 본격적인 무더위를 앞두고 해수욕장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구룡포 해수욕장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동해바다의 물색을 원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구룡포해수욕장은 동해바다 해수욕장 중 조용한 피서를 즐기려는 피서객이 찾는 곳이다.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리 963-10 삼정리 주상절리를 만난다. 포항에는 이곳 삼정리 외에도 내륙 달전리에도 주상절리가 이미 확인되었다. 구룡포항을 출발하여 해안 마을길을 빠져 나가면 삼정리주상절리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에 무슨 절리가 있나 싶겠지만 내려서면 탁틔인 동해안을 조망하며 돌출된 해안자락을 따라 독특한 모습의 주상절리군을 만나게 된다. ▲ 주상절리가 이어지는 해안 전경 구룡포 해수욕장에서 지방도를 벗어나 곧장 해안도로를 따라 들어서면 만나게 된다.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외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절 리가 벌집구조를 하고 있는 반면, 이곳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형태로 화산이 폭발하는 모양을 연상할 수 있는 사선으로 용암이 분출되어 있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해국자생지 해안도로 ▲ 삼정3리 인근 해안전경 ▲ 매바위 가는 길 ▲ 매바위 흑암, 매바위, 황암
매바위 이정표를 따라 진행하여도 매를 닮은 바위가 없다. 해안가 특별한 바위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를 두고 매바위라 하는지 궁금하였지만 낚시하는 사람조차 모르는 매바위를 도로가 끝난 구간에서 이미 지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바위가 있는 해안에 돌출된 바위로 흑암, 매바위, 황암 등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바위 전체가 검은 흑바위가 있고 울창한 송림(흑송)주변으로 해안 주상절 리가 발달하여 절경을 이루는데 그 가운데 매같이 생긴 매바위가 우뚝 솟아있어 장관이며 예부터 우리 선조들이 바다에서 와선(돛단배)으로 향해 할 때에는 고지(기점)로 삼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매바위 남쪽에는 유달리 노란색의 바위(황암) 틈새에서 해풍을 맞으며 피는 해국화가 아름답다.’ ▲ 무더운 날씨에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 해안길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간절곶 최동단 호미곶에 도착하였습니다. 최동단에 위치한 호미곶은 우리나라를 호랑이보 볼 때 꼬리에 해당되어 호미곶(虎尾串)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새천년 일출로 알려진 호미곶에 2001년 경북지역에서 최초로 풍력발전기 1기를 주변에 세워 시험가동을 하였으며, 1903년 국내 최대 규모 등대와 1985년 국내 최초 등대박물관이 자리 잡은 일출명소이자 바다여행지이다. ▲ 호미곶 전경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이 영양인 사람이 예언이 유명하여 선조 때 동서분당을 미리 예언하는가 하면 1592년 임진왜란을 명종 말기에 예언해서 유명한 풍수지리학자 남사고의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 한반도를 두고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백두산이 코에 해당하고 호미곶이 있는 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며, 김정호는 이곳을 우리나라 최동단 지역임을 기록하고 있다. 호미곶은 이후 동을배곶(冬乙背串), 동배곶(冬背串), 동외곳(冬外串), 장기곶(長鬐串)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오늘날 호미곶은 2001년 호랑이꼬리정기회복운동 일환으로 개칭된 지명이다. 조선시대 동을배곶, 동배곶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 동외곶, 행정구역상 장기현이라 장기곶이라 부르다 1918년 일본식 표현인 갑(岬)을 사용하면서 장기곶(長鬐串)은 강기갑(長岬岬)이 되었다. 그 후 1988년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일제 강점기 변경된 갑을 곶으로 개칭하면서 호랑이 끝자락 꼬리에 해당한다하여 2001년 최종적으로 호미곶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호랑이 꼬리부분에 관해 일본은 우리나라의 정기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힘없고 어리석은 토끼로 비유하여 불렀다. 국립등대박물관 국립등대박물관으로 들어선다. 국립등대박물관에는 호미곶을 찾은 탐방객에게 무료 주차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 등대 박물관 입구 등대 등룡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전문박물관이 호미곶 해안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등대박물관에는 등대의 변천사와 세계등대 사진 그리고 향로표지와 시설 및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1층, 2층 전시실을 비롯하여 야외전시장에는 이름난 국내 등대모형을 전시하고 해양수산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관은 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입장료는 없다. 등대 등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 자리한 등대 등룡은 1952년 전남 여수 오동도에서 사용하던 내경 2.0m, 높이 3.85m의 등대이다. 등롱은 등대 불빛을 바다로 비추기 위해 투명 유리로 만든 등실(燈室)이다. ▲ 야외 전시중인 전국 이색 등대 조형물
등대박물관은 1985년 2월 7일 개관 및 다음해인 1986년 4월 18일 박물관으로 지정, 1993년 시설확충을 거쳐 2002년 4월 19일 확장개관을 하였다. 국립등대박물관은 야외에 우리나라 유명한 등대 모형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박물관 내에는 소장하고 있는 총 320종 4천736점의 유물 중 385점을 전시하고 있다.
호미곶(대보등대) 등대 호미곶 등대는 철근 구조가 아닌, 벽돌로 세운 높이 26.4m 등대이다. 1908년 등대는 동해안 바다에 첫 점등을 한 이후 올해로 108년이 된 건축물이다. 등대는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며 하얀 탑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 호미곶 등대 호미곶 등대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 39호이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등대는 대한제국 융희 원년(1907)에 일본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의 팔각형으로 서구식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기초에서부터 등탑의 중간부분까지 곡선을 그리면서 폭이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며, 다른 고층 건물과는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등대 내부는 6층으로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호미곶에 우뚝 서 있는 호미곶 등대는 대보면에 위치하여 대보등대라 부르기도 한다. 1908년 4월 13일 착공하여 12월 20일 완성한 높이 26m 팔각등대로 날씬한 조형미가 일품이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등대는 인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이며, 광무5년(1901)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 청국의 세력을 몰아내고 러시아를 상대로 한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1907년 9월9일 대보(호미곶) 앞바다 큰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동경수산강습소 실습선이던 ‘가이요마루’가 대보 앞바다에서 암초로 인하여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조선의 항만시설 때문으로 책임을 돌렸고, 결국 조선 동해안 자락을 따라 등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등대 이름은 동외곶등대이다. 새천년기념관 해맞이 광장 중심건물인 새천년기념관은 2009년 개관하였다. 1층에는 ‘빛의 도시 포항속으로’ 주재를 하고 있는 전시실과 2층은 화석관을 운영하여 옥탑 전망대에서 탁 트인 동해안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천년의 불씨 ▲ 상생의 손 앞에 천년의 불씨가 피어 있다. 해맞이 광장은 새천년 한민족해맞이 축전 개최장소이다. 넓은 공간에는 상생의 손과 성화대, 불씨함, 연오랑세오녀상, 햇빛채화기, 공연장, 주차장과 관리소가 있다. 해맞이 광장에서 만나는 상생의손은 청동을 이용하여 육지와 바다에 각각의 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왼손 앞에는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호미곶에서 채화된 새천년 불씨,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갖고 온 불씨로서 영원한 불이 타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 ▲ 연오랑과 세오녀 동상 호미곶은 일출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경 중 하나로 손꼽았을 정도로 일출을 자랑하며, 고려 초기 박인량이 쓴 설화집 수인전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부부였는데 신라 아달라왕 4년에 연오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역을 따로 나갔다가 바위에 올라섰는데 그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일본의 어느 섬으로 가게 되었다. 연오랑이 없어진걸. 뒤늦게 알게 된 세오녀는 바다를 찾아가 남편을 그리워하는데 남편은 일본의 작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보통사람이 아니라며 그곳의 왕으로 추대 되었다. ▲ 연오랑과 세오녀 동상 뒷편 조형물 어느 날 세오녀는 남편이 벗어둔 신발이 올려진 바위를 보고 그곳에 올라서자 세오녀도 갑자기 바위에 실려 떠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정작 사라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없어져 버렸고 놀란 왕은 일관을 불러 점을 쳐보니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고 말하자 왕이 급히 사신을 보냈고 사신은 연오랑과 세오녀를 만나 자초지경을 이야기 하니 이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돌아는 갈 수 없지만 세오녀가 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을 내주면서 돌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다시 해와 달의 정기를 되찾을 것이라 하였다. 사신은 비단을 들고 와 제사를 지내니 정말 해와 달이 밝아졌는데 당시 제사를 지낸 곳이 영일현으로 지금의 영일만으로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두 부부의 조각상을 두고 있다. 상생의 손 ▲ 상생의 손 ▲ 육지의 손 그리고 바다의 손 상생의손은 1999년 6월 김승국(54)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 교수팀이 제작에 착수하여 12월 완공된 조형물 중 육지에 높이 5.5m 왼손을, 바다에 8.5m 오른손을 위치하며 이를 ‘상생(相生)의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상생의 손은 20세기를 떠나보내고 21세기를 통해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 즉,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서로 돕고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생의 손은 일출 여행을 하는 사진작가들에게 좋은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가락 위에 갈매기 날아들고 일출이 걸리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 신년 떡국을 끊여내는 대형 무쇠솥 ▲ 해파랑길 쉬어가는 탐방객 ▲ 전망대와 상생의 손 ▲ 해안 전망대 ▲ 측면에서 본 상생의 손 바다를 향해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 시비(詩碑)가 놓여 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본다. 1939년 8월 ‘문장’을 통해 발표한 청포도는 다음과 같다.
내 고장 七月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문장> 1939년 8 월 이육사는 한학자였던 사촌형 ‘이종형’이 포항에 살았고 건강이 좋지않아 휴양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동양최대 포도농장이였던 삼륜포도원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남긴 시가 바로 청포도이다. 포도원을 다녀 간 후 중국에서 교정을 하여 국내로 보내져 문장을 통해 발표하였으며, 이를 기념하여 1999년 12월 29일 호미곶 광장에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호미곶 해상 전망대에 돌문어 작품이 놓여있다. 국내 최대 문어 생산지인 호미곶 돌문어 우수성을 알리는 축제를 통해 만들어 진 작품이다. 하늘을 집어삼킨 코발트블루 바다색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바람이 그려내는 하얀 파도와 해안 가까이 수없이 널려 있는 검정바위 그리고 바위에 머문 갈매기가 그려내는 호미곶 앞 바다 전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동해바다를 여행하는 만큼 싱싱한 횟감이나 물회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더 없이 좋으련만 날로 먹는 것이 금지되어 버린 신세이고 보면 눈에 보이는 식당은 전부 건너뛰어야 했다. 마땅히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그렇게 길을 내려서다 어느 골목을 돌아 스쳐갈 즈음 나타난 열무국수집에서 한끼를 해결하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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