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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바다 그리고 기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울산광역시 "대왕암공원"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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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해송숲길 그리고 열려있는 동해안 ‘울산 대왕암공원’을 향했다. 대왕암공원은 옛 울산의 상징이었던 울기등대가 있다하여 1806년 등대 설치 이후 울기등대가 자리 잡고 1962년 울기등대가 있는 곳에 자리한 공원이라 하여 울기공원으로 불어지다 2004 오늘날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경주 대왕암과 혼동을 주는 탓에 많은 탐방객이 이곳에서 문무대왕릉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 2015년 새롭게 올려진 교량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울산 동구가 관광자원화를 위해 착안한 동구의 소리길 은 9개로 동축사 새벽종소리, 울기등대 안개가 발생하면 울리는 무산소리, 슬도 구멍 뚫어진 바위로 파도가 스며들며내는 파도소리, 울산의 힘 조선소 망치소리, 방어진항을 출발하는 선박의 힘찬 기적소리, 대왕암공원 몽돌해변 자갈 구르는 소리, 옥류천 계곡 물소리, 마골산 숲 바람소리, 서부아파트 매미소리 등으로 이중에 슬도 파도소리와 대왕암공원 자갈 구르는 소리길을 따라 가 본다. ▲ 대왕암공원 입구 식당가 주변 신라시대 왕이 휴양하며 머물었다는 어풍대로, 조선시대 말을 방목하던 목장으로, 이후 왜적의 침입을 대비한 군사요충지역으로, 1908년 국내 3번째 등대인 울기등대가 설치된 지역으로, 러·일 당시 일본 해군 주둔지로, 1962년 울산 제1호 공원으로, 근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전까지는 간첩침투를 방어하는 군사지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용이하지 않은 덕분에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송림과 개발로부터 손이 뻗치지 못해 자연 상태로 보존된 공간으로, 2004년 일제잔재 청산 일원으로 대왕암공원으로 개명하였다. 해송 숲길을 따라 탐방을 하다 울기공원 진입로는 백년을 훌쩍 넘긴 송림이 자리 잡고 목책이 둘러쳐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중간에는 동백꽃이 피어나며, 산책로가 끝나는 600m 지점에는 2대의 등대가 서 있다. 등대를 지나 해안으로 내려서면 기암괴석과 함께 푸른 동해 바다를 만날 수 있으며 용이 승천하다 떨어져 생긴 용추암 또는 댕바위(일명 대왕바위)는 문무대왕비의 호국룡이야기가 전해지며 그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 한다. ▲ 대암왕 송림지역 대왕암 송림지역이 일제가 군사기지 은폐용으로 조성하였다는 울산동구 향토연구회의 주장이 나왔다. 조선 정조 10년(1786) 울산 읍도에 군사요충지로 표기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지점으로 일제가 이 일대 포진지를 만들고 해송을 이식했다는 주장이다. 해송의 나이를 역추적하면 동국여지승람에 말이 뛰어놀던 초원지라는 것으로 "방어진 12경 중 3경 마성방초(馬城方草)와 4경 용추모우(龍湫募雨)"라고 언급했다는 것과 1999년 동구청이 발간한 울산 동구지에는 1934년 울기등대 조성과 함께 인공림이 조성되었다는 것으로 10살 된 나무를 심었다하여도 송림은 80~90살로 추정된다. ▲ 시원한 해풍이 귓전을 간지럽혀 주는 탐방로 2011년 제12회 아름다운 숲 시상식에서 공존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곳은 거센 바닷바람에 온몸을 내 맡기고 있는 해송 숲과 소나무 그리고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전설이 어우러진 매우 이색적인 바다 여행지이다. 헛개비 벼랑 위 솔숲길 전망대 솔숲길을 따라 진행하다 보면 첫 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는 하트 조형물이 있으며, 전망대에서 울산의 바다 중 일산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일산해수욕장 여름 솔숲길 전망대에 오른다. 일산해수욕장과 연대중공업 그리고 민섬이 시선을 끈다. 일산해수욕장은 뜨거운 팔월 찜통더위를 피해 바다로 나온 시민들의 피서하는 모습과 굉음을 내고 물살을 가르는 제트스키의 요란한 질주와 비명이 여름 바다를 달군다.
솔숲 첫 전망대가 있던 해안으로 돌출된 지대로 바깥 막구지기와 안 막구지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돌출된 해안 끝자락 벼랑길 아래는 낚시꾼의 포인트가 되기도 하며, 이곳에는 옛날 도깨비불이 많이 날아 다녔다하여 햇개비라 부른다. 수루방에서 민섬을 조망하다.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향하거나 급하게 내려서는 길 그리고 왼편 자락으로 향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곧장 직전이나 오른쪽으로 가면 수루방을 스쳐간다. 숲길을 따라 왼편으로 들어서면 수루방을 거쳐 용굴로 향하는 벼랑길이 이어진다. ▲ 수루방 전경 대왕암공원 북쪽의 가장 높은 벼랑바위이다. 수루방은 ‘수리바위’의 음전이다. 수루방이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곳으로 숭어잡이를 할 때 수루방 바위에 망대를 설치하고 고기 잡는 배들에게 신호를 하였다. ▲ 수루방에서 바라 본 민섬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면 정면에 떠 있는 섬이다. 부산의 오륙도를 닮았다 보면 될 만큼 민섬 역시 울산 일산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서 있는 중요한 바위섬이자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민섬은 용궁의 근위대장이 사랑하던 선녀 ‘민’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리오래 가지 못했다. 바다 용궁과 천상의 선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곧 옥황상제에게 알려졌고 진노한 옥황상제는 바위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다. 민섬을 길게 읽어 ‘미인섬’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굴 그리고 안타까운 부부송
수루방 데크를 내려서면 경사지역 절벽을 따라 이동하는 나무데크 탐방로가 이어진다. 봄의 끝자락 나리꽃이 만개하는 곳이기도 하며, 울산 대왕암 산책로 중에서 산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 벼랑길을 돌아가는 나무데크길 수루방 옆으로 난 벼랑길을 따라 내려서면 용굴(덩덕구디)에 도착한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거센 파도가 만든 천연 동굴로 이 굴에는 청룡 한 마리가 살며 오가는 뱃길을 어지럽히자 동해 용왕이 굴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신통력을 부려 큰 돌을 넣어 막아 버렸다 한다.
부부송으로 불리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용굴 바로 옆 산책로에서 해안에 인접한 바위 위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 내리고 서로 의지하는 모습으로 부부를 닮았다 하여 부부송이라 부른다. 부부송이 최근 안타깝게도 왼편에 있던 한 그루가 고사위기에 처했고 살려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끝내 고사되어 가지에는 푸른 잎이 없다.
할미바위(남근암) 그리고 탕건바위 용굴에서 다시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른 후 해안가로 내려서면 큰 바위와 함께 할미바위를 만나며, 할미바위 앞 넙디기 끝자락에 탕건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 할미바위 앞에 노인 한분이 햇살을 피해 앉아 계신다. 해안가 낮은 넙디기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로 돌탑을 쌓아 올리듯 자연이 만든 바위이다. 할미바위는 큰 바위 위 작은 돌이 올려져 있는데 소개하는 간판에는 할미바위 그리고 남근암으로 표기해 놓고 있다. 할미바위 보다는 남근바위가 더 어울릴 듯.. 이 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보다 내려가서 올려보는 것을 권장하며, 내려서면 넓은 바위에 파도를 만날 수 있다. ▲ 탕건바위 넙대기 앞에 돌출되어 있는 탕건바위 또는 탕건암은 그 모습이 흡사 탕건 같이 생겼다하여 불러진다. ▲ 탕건바위와 할미바위가 있는 넙디기 공원 북편 해안 바위 중 가장 넓은 곳으로 할미바위와 탕건바위가 있는 곳으로 독특한 바위형상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거북바위와 고이 ▲ 거북바위 우리나라에는 거북형상의 바위가 몇 없다. 그 중에서 울산 대왕암 내 위치한 거북바위는 공원 북편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예부터 재복을 기원하는 신령한 바위로 알려져 있다. ▲ 고이
공원 내 북편 해안가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바위 모양이 독특한 곳이며, ‘고이’라 부른다. 고이 정상에는 소나무와 전망대 그리고 독특한 바위가 절벽 끝자락에 움푹 패여 있다. 사근방(사금바위) ▲ 사금을 채취하였다 전하는 바위 대왕암 북편 해안에서 대왕암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 휴식공간 앞에 모여 있는 5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옛날 이곳에서 사금을 채취하였다하였다 한다. 탐방로 반환점에서 만나는 대왕암 대왕교 숲길과 해안 바위를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사금바위를 반환점으로 대왕교에 도착한다. 대왕교 입구에는 횟집 천막촌을 비롯하여 휴식터가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울기등대로 향하거나 방어진 슬도를 잇는 탐방길로 나눠진다. ▲ 대왕교 기존 종로아치형 양식의 대왕교가 20년 만에 철거되고 새로운 상로아치교 양식을 한 해상교량이 자리를 잡았다. 대왕교로 향하는 다리는 1995년 현대중공업에서 울산시에 기증한 교량이었지만 해풍과 바다라는 특수성에 노출되어 안전상 D 등급을 받자 2015년 12월 교체 한 것이다. 신설된 대왕교는 길이 50m, 폭 2.5m이다. ▲ 대왕교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 대왕교 건너 바라 본 울기등대 방향 ▲ 대왕암 전망대 입구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방향 대왕교 신설과 함께 1960년대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생겨난 콘크리트 길을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일제히 정리하여 보행과 시원한 탐방로를 열어 주고 있다. 대왕릉 전망대로 이어지다. 대왕암 공원은 경주 대왕암으로 불리는 문무대왕릉 수중릉이 아니라 문무대왕비 무덤으로 전해진다. 몰런 정확한 근거는 없는 전설에 불과한 곳으로 문무대왕이 죽어 뼈를 바다에 안장하자 문무대왕비 역시 죽어 호국룡이 되기 위해 이곳 바위에 안장되었다 한다. ▲ 대왕암 전망대
대왕암으로 향하던 교량이 오래되어 새로운 교량으로 교체되었으며, 울산 댕바위로 불리는 대왕암 바위 주변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하며, 해산물을 따는 해녀들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일출장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 대왕암 대왕교에서 바라 본 전경 울기공원이 대왕암으로 된 사연은 이러하다. 우선 울기등대가 일제강점기 당시 세워진 등대 지명에서 따온 만큼 일제잔재청산 일원으로 전설로 불러지던 대왕암으로 변해졌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바다 호국용이 되어 바위섬 아래에 잠겼다는 이야기로부터 대왕암의 지명이 등장한다. ▲ 겹겹의 바위 너머 보이는 대왕암 전망대 대왕암의 전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30대 문무왕(626년~681년)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 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 대왕암에서 바라 본 슬도 이렇게 장사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바위‘로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진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을 이곳을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이 줄어 댕바위(대왕암)라 하였으며, 또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 대왕암에 사는 고양이 포착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라 슬도까지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비오듯 쏟아내는 땀방울을 훔치며 울기등대를 거쳐 일산해수욕장에서 잠시 머물다 가기로 하였다. 대왕암공원에서 만난 울기(蔚埼)등대 무산소리 본래 이곳은 조선시대 목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당시인 1906년 군사적 목적으로 소나무를 조림, 그리고 국내에서 세 번째 지상 6m 등대를 설치하였다. 등대 아래 입구에는 1984년 2월 군산 어청도 근해에서 잡은 19m 참고래의 턱뼈를 세워 놓았다. ▲ 군산 어청도 인근에서 잡은 고래 턱뼈 울산 12경중의 한 곳인 대왕암공원 입구에는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동해안을 운행하는 뱃길을 안내하는 목재등탑이던 울기등대(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06호)이 세워졌고 이후 콘크리트 등탑이 세워지면서 등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새로운 등대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 신. 울기등대 등대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등대가 있는 이곳은 송림으로 우거진 산으로 대왕바위산, 혹은 대양산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호국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다 대왕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일본이 1905년 2월 이곳에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러.일 전쟁 시 군사목적으로 등대명칭을 울기등간이라고 하였으며, 이곳 지명 또한 울기로 부르게 되었다. ▲ 구. 울기등대 등대는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개방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 17:00 이다. 최초 점등일은 1906년 3월 24일이며. 회전식 대형등명기와 무신호(에어사이렌) 기능이 있다. 울기등대의 건립배경으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이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독점하기 위해 러.일전쟁(1904.2.8.~1905.9.5.)을 일으키면서 일본해군이 동해와 대한해협에서 해상군 장악을 목적으로 1905년 2월 긴급히 등간을 설치하여 발트 해에 있던 제정 러시아의 유럽 공격 주력함대였던 발틱함대를 격침하는데 이용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등간은 향해안전 목적이 아닌 군사전략용으로 보인다. 그 이후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위하여 높이 6m 돔형의 등대를 설치하였고(고종 광무 10년 3월 추정). 1972년 11월 기존의 등탑에 3m 수직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울기등대 구등탑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 해송들이 자라남으로 인하여 해상에서 구등탑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높이 24m 의 신등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구등탑은 백색 하부원형 상부 팔각형 구조로 높이 9.2m 이며, 신등탑은 백색 팔각형 구조로 높이 24m 이며, 구등탑은 구한말 시대 건축양식으로 2004년 9월 4일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신등탑은 촛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울기등대 구 등탑은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1905년 2월 목재로 만든 후 1906년 3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현재의 장소에 높이 9m의 등대를 만든 후 1987년 12월 12일까지 80년간 불을 밝혔다. ▲ 트릭 분수대 울기등대가 있는 입구에는 트릭등대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마치 공중에 등대가 떠 있는 듯 착시현상을 보여준다. 일산해수욕장 울산 대왕암공원을 빠져나와 차를 회수하지 않고 곧장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일산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일산해수욕장 입구에 주차장이 있지만 해수욕하는 피서객의 주차공간을 위해 걸어서 내려선다. ▲ 일산해수욕장은 텐트, 그늘막 설치가 가능하다. 울산광역시 대왕암공원(옛 울기공원) 입구에 위치한 일산해수욕장은 깨끗한 모래로 형성된 사빈해안으로 해수욕장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지만 수질이 나빠 해수욕객 보다 인근 울기공원을 찾는 연인들이 머물러 모래 백사장에 발자취를 남기는 곳 정도로 알려지다, 최근 주변 정비와 함께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곳이다. 여행을 마치며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산 907번지에 자리한 옛 울기공원은 1806년 울기등대가 설치, 1962년 울기공원으로 명명되었다가 2004년 일제잔재청산 일환으로 대왕암공원으로 바뀌었다. 대왕암공원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문무대왕이 죽어 뼈를 바다에 안장하니 곧 문무대왕릉인데 문무대왕비 역시 죽어 호국룡이되기위해 이곳 바위에 안장되었다 구전은 전하고 있다
특히 대왕암 공원 내 1만포기 꽃무릇 식재 및 동백꽃나무 식재로 보다 새로운 모습의 사계절 관광지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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