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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 - 부산 범어사를 조망하며 가을을 만끽하다.

허영꺼멍 2016. 11. 1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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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가을 단풍을 품다

| 여행일자 : 2016년 11월 16일

 



부산 가을 끝자락 마지막으로 머물다 가는 곳이 바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本寺)인 범어사(梵魚寺)를 품고 있는 부산의 진산(鎭山) 금정산(金井山 802m)이다. 금정산성을 따라 다양한 등산로를 자랑하는 만큼 가을의 향연을 어디서나 조망하며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원효대 아래에서 바라 본 범어사 전경

▲ 범어사 가을 전경. 뒷편으로 계명봉 배경

범어사 산중 암자 '원효암' 그리고 가을

부산 금정구 청룡동 551

★★★★★


부산의 가을 마지막 뜨거운 절규가 들려오는 가을 산행을 시작한다. 범어사에 주차를 한 후 걸어서 북문방향 계곡 입구 암괴류에서 다리 건너 원효암(元曉庵. 부산 금정구 청룡동 525) 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만추의 계절을 즐기기 위해 약간의 수고를 기꺼이 한다. 범어사 북문 갈림길에서 원효암까지는 약 1.3km 구간이다.


범어사 암자 중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원효암이다. 30여분이면 도착 할 거리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길과 어설픈 등산로가 발목을 잡는다. 그만큼 인적이 뜸한 곳이라 등산로가 잘 표시되어 있지 않은 너덜겅지대를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원효대사가 미륵암과 함께 세웠다는 곳이 바로 원효암이다.




원효암 의상대로 향하다.


원효암(元曉庵)에서 의상대(義湘臺)로 향하는 길에 이정표도 없다. 단지 알아서 능력껏 찾아야 되는 길이다. 범어사에서 원효암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언덕을 넘어서는 고개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왼편 바위를 따라 진입하면 된다. 의상대로 오르기 위해 밧줄을 타고 바위를 올라야 한다. 곧장 바위로 오를 길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밧줄을 이용하여 오르지만 등산을 좀 한다면 양팔로 버티고 올라갈 만큼 높이가 낮다.


▲ 북문 갈림길에서 암괴류와 계곡을 건너 왼편 등산로를 따라 진행하여야 한다.


범어사에서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이정표가 정확하지 않다. 원효암으로 오가는 신도의 발걸음과 등산객이 산길을 휘감아 오르다 보니 등산로가 무질서 하지만 오직 하나 확실한 것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오르다 보면 철망 구간이 나오며, 철망 구간을 통과하여 조금 더 진행하면 언덕 갈림길에서 왼편이 의상대 방향이며, 언덕을 넘어서면 원효암이다.




의상대에서 쉬어가다


스님들의 좌선 장소로 알려진 의상대에 오르면 20~30여명이 좌선 할 수 있는 너른 바위와 엄지바위, 고당봉 정상, 회동수원지가 조망된다. 능선 끝자락 돌출된 봉우리 주변으로 불쑥 돌출된 다양한 바위들이 서 있거나 서로 기대어 있는데 장수를 기원하며 새긴 이름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의상대에 오르면 지척인 금정구와 멀리 해운대구까지 조망된다.


▲ 의상대

▲ 의상대 오르기 전 갈림길에서 들어서는 입구 바위

▲ 엄지바위 일명 '따봉"


의상대는 금정팔경 중 한곳으로 금정산 최고 전망대로 알려져 있다. 범어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반대편 계명봉과 이곳 의상대에서 조금 내려선 바위 전망지점 등 두 곳으로 가을이면 범어사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아는 사람만 가을이면 곶감 빼먹듯 찾는 최고의 전망지점이다.


금정산 숨은 여행지

아는 사람만 아는 범어사 최고의 전망지점


의상대에서 제일 고당봉 방향 안쪽 왼편 숲길을 따라 내려선다. 일부 등산객이 이용하는 좁은 등산로이며, 내려서는 길에는 조릿대를 헤집고 내려서야 한다. 의상대에서 약 50m 정도 길을 따라 내려서면 시야가 트이면서 암봉 지형에 도착한다. 그리고 암봉에 올라서면 너나없이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풍경을 담기 시작한다.


▲ 범어사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계명봉, 왼쪽이 장군봉이다.


유서 깊은 고찰 범어사를 중심으로 고당봉(801.5m), 장군봉(734.5m)), 계명봉(602m)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가을 산하 대자연이 그려내는 무르익은 가을빛이 알록달록 울창한 숲 그리고 불심이 깃든 암자들이 숨박꼭질하듯 숨어 풍경의 절정을 그려내고 있다. 범어사를 중심으로 내원암, 청련암, 계명암, 대성암, 지장암, 금강암을 조망할 수 있다.


▲ 범어사 전경

혼자보기 아까운 풍경, 가을 계절의 색이 사그리 사라져 버리기 전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은 서서히 다음 계절을 향해 내 딛고 있는 계절의 항변이요, 절규다.


▲ 범어사 전경. 뒷편으로 계명봉이 조망된다.

송두리째 마음을 앗아가 버린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발 밑 펼쳐지는 탁월한 조망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쾌함은 내장산에서 내려다보는 황홀한 가을 풍경과 비겨도 전혀 손색이 없지만 가을은 짧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겨울의 문턱 앙상한 잎사귀 매달려 있는 겨울이 시작된다.


범어사 주변 암자 가을 전경


▲ 계명봉에 자리잡은 계명암

계명암은 관음기도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일주문에 사천왕상이 반겨주지 않아도 문턱을 넘어서면 경건함이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해수관음보살입상 그리고 비를 피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법당을 뒤로하면 가을날 온산을 불태우는 추색이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 북문 입구에 위치한 금강암

산중암자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며, 세심교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모든 현판이 한글로 되어 있는 특별하고 친근한 공간이다. 금강암(金剛庵)1803년 취규선사(就奎禪師) 창건하였으며, 1863년 응허(應虛)화상이 중건, 1899년 영남 최초의 선원을 개설하여 영남 선원 시효가 된 곳이다.


▲ 대성암

범어사 대성암에 관한 창건의 역사는 알 수 없다. 대성암에 관한 기록으로 순조 3(1803) 범어사 금강암과 함께 중창사업을 한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창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 대성암

▲ 지장암

▲ 청련암

범어사 청련암(梵魚寺 靑蓮庵)은 범어사로부터 계명암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만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산내 암자 중 한 곳이다. 청련암의 창건에 관하여 알려져 있는 기록이 없지만 숙종 35(1709) 신주 대사(信珠大師)가 중창하였다 하며, 3.1 운동 당시 부산 지역 본거지였다 한다.




원효암에서 쉬어가다.

 

원효임 입구 부도와 탑을 만나다.


의상대를 내려와 다시 등산로를 따라 진입하면 원효암 입구에서 부도3기와 1기의 탑을 만나게 된다. 부도 3기는 독특한 모습으로 부도에는 한문으로 음각해 놓아 누구의 부도인지 알 수 있는데 입구 앞쪽에부터 경봉만 선관대사 방광탑(慶峰堂 善寬大師 放光塔). 광무 신축 춘립(光武 辛丑 春立), 춘곡당 민오사리탑(春谷堂 玟梧舍利塔). 응화 이구오삼년 하립(應化 二九五三年 夏立) , ??당 부오 대화상방광탑(00堂 玞珸 大和尙放光塔) 등 세분이지만 그들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 원효암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3기의 부도

3기의 부도탑 앞으로 1기의 석탑이 초라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는지 아니면 옮겨져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안내글에는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으로 안내하고 있다. 석탑 주변은 활엽수와 편백나무가 도열하며 원효암으로 향하고 그 중간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밭의 경계를 삼고 있다. 이 깊은 산중에 도둑 걱정이 되어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을까 싶다.


▲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은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입구에 있는 탑은 무너진 탑을 일부 보수한 탑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신라 말 고려 초의 3층 석탑이다. 지금 원효암 입구의 동쪽 공터에 있으며, 큰 지대석 위에 3층의 탑신부만 있다. 탑의 형식상 이중 기단 위에 3층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가 있었을 것이나 기단부와 상륜부가 없어졌다. 각 층 옥개석의 전각 파손이 위층일수록 심한 것으로 보아 무너진 석탑의 부재를 수습하여 기단 없이 다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고,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조각하였으며, 옥개석의 층급 받침은 4단씩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탑신의 옥신석과 세 번째 탑신의 옥신석은 비례나 재질로 보아 뒤에 보충한 것이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10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비장으로 석탑이 전파되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섬약한 기법이 나타나고 있다. 또 원래의 위치에 재건되었기 때문에 원효암 금당의 위치와 창건 시기를 알게 하는 좋은 자료이다.‘


원효암에 발을 딛다.

 

절집으로 들어서니 범어사 산중암자가 맞을까 싶을 만큼 오지에다 입구에서 만난 작은 탑과 크기가 유사한 또 하나의 탑과 부도 1기를 만난다. 본당 건물과는 멀리 떨어진 일주문 위에 자리 잡고. 전각에는 목조관세음보살(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96))을 모시고 있다.


▲ 절집 가을옷을 벗은 은행나무의 흔적이 깔려 있다.

 

▲ 엄지바위에서 바라 본 원효암

금정산으로 오르는 수 많은 등산로 중에서 가장 사람이 적게 찾는 등산로가 원효암을 통과하는 엄지바위를 돌아보고 원효봉으로 향하는 코스이다. 그래서 일까? 절간은 찾아갈 때 마다 마무리가 되지 않은 듯 어수선 하다. 절집이 주는 고요함과 묵직함은 느낄 수 없다. 웰까...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


최근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이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고려 초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은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서북쪽 30m 지점에서 옮겨 온 탑으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2호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

이 탑은 신라 말 고려 초의 3층 석탑이다. 지금의 원효암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었던 것을 원효암 경내인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원래는 탑의 양식상 이중 기단 위에 세워졌던 것인데, 지대석과 하층기단을 구성하는 하대중석과 상륜부가 없어졌다. 하대갑석 위에 상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다. 하대갑석은 2찬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윗면의 상대중석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형 석재는 다른 석탑의 부재를 개조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각 층 옥개석에는 3단의 층급 받침이 있고, 옥신석에는 귀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이 탑은 옥개석의 전각이 파손된 것으로 보아 무너진 것을 재건한 것 같다. 2층과 3층의 옥신석은 뒤에 만들어 끼운 것으로 조립시 위치가 약간 어긋나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담한 석탑이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전립연대는 동편 3층 석탑과 같아 10세기경에 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규모와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무관하게 제작된 것 같다. 지방으로 석탑이 전파되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지방적인 특징이 가미된 석탑이다.’


원효암 내에서 부도 1기를 만난다. 탑에 관한 안내글은 있지만 부도에 관한 안내 글이 없다. 요사채 뒤편 홀로 우뚝 서 있는 부도탑은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잘록한 허리부분까지 꽃문양을 새겨 원효암 입구 3기의 부도와는 차별되지만 누구의 부도인지 기록이 없다.


의상대는 범어사보다 일찍 가을이 떠나갔다. 절간 입구 은행나무는 가을을 훌훌 벗어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서 있다. 엄지바위를 거쳐 원효봉으로 오르는 산객 한 팀이 들어와 절간이 다소 소란스러워 먼저 엄지바위로 향한다.




엄지바위로 향하다


원효암에서 큰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철책문을 통과하여 엄지바위에 도착한다. 차가운 벼랑끝 용케도 뿌린 내린 철쭉이 철을 모르고 꽃을 피웠다. 일기예보에서 맑은 날씨라 하였지만 먹구름은 이미 머리위에 진을 쳤고 금방이라도 빗줄기가 시작될 듯 하여 서둘러 엄지바위를 둘러보고 되돌아가기로 결정을 해야 했다.


▲ 엄지바위 앞에서 잠시 쉬어간다.


엄지바위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눈 아래 청룡동 범어사로 가로수 은행나무는 이미 절정을 향해 아우성이다. 산 허리춤을 붙잡고 소문난 먹꺼리부터 쉬어가는 공간까지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다. 의상대에서 미처 만나지 못한 숨은 1인치의 풍경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 엄지바위에서 바라 본 원효암 전경

▲ 엄지바위에서 바라 본 의상대 전경

▲ 범어사로 전경



가을색을 오롯이 담기위해 선글라스를 벗었다. 절벽 아래 경이로운 가을이 꿈틀 꺼린다. 이제 곧 하산하면 나도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가을의 배경이 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이는 형상 일명 따봉 바위가 되는 셈이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회동수원지와 멀리 해운대 센텀지역까지 조망이 가능하지만 굿은 날씨에 포기해야만 했다.




엄지바위에서 되돌아

범어사 경내로 내려서다.


영남의 3대 사찰중 하나인 범어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18년 의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설과 홍덕왕 당시 세웠다는 설이 있지만 시대별로 연결해 보면 문무왕이 바다로 침입하는 왜구에 대항하기 위하여 창건하고 홍덕왕 때 중창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무왕은 바다로부터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의상대사에게 명하니 문무왕 18년에 그 뜻을 받들어 678년 창건 해동 화엄종 십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다.


▲ 범어사 전경

범어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금정범어(金井梵魚)라는 말을 한 두 번은 들었음직 할 정도로 이곳은 범어와 관련 그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부산으로 상륙하여 해적질을 일삼는 왜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문무왕이 고심하는 와중에 현몽을 꾸게 된다. 금빛고기가 노니는 곳에 사찰을 세우라는 꿈을 꾼 문무왕은 당시 고승인 의상에게 명하여 부산일대를 둘러보니 금정산 정상에 범어가 노닐어 현몽에서 일러주신 그곳이라 범어사를 만들었다 한다.



범어란 금정산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고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고 둘레는 10여 척이며, 깊이가 7촌쯤으로 물이 항상 고여 황금색을 이루며,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그 속에서 노니 금샘이라 산 이름을 부르고 하늘나라의 고기라 하여 "범어"라 한 후 범어사를 만들었다고 동국여지승람에서 전하고 3.1운동 당시 안용운 선생이 범어사에서 범어사 학림의거 독립만세운동을 할 당시 전국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만든 곳이다.


범어사 580년 된 은행나무


▲ 범어사 은행나무 주변으로 주차장과 건물이 애워싸고 있다.


범어사 주차장 주변에 눈부신 레몬빛 은행나무 한그루 묵직한 세월의 향기 전하며 가을 예찬에 푹 빠져 있다. 범어사 은행나무는 580년 된 보호수이다. 나무둘레가 6.8m 이며, 높이가 25m 이다.



범어사은행나무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후 노승 묘전스님께서 옮겨 심은 것으로 수령이 약 580년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무의 은행이 열지 않아 3백 년 전에 절에서 맞은편에 은행 수나무 한 그루를 심어줘 그 후부터 한 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90년 땅벌을 쫒기 위해 연기를 피운다는 것이 그만 나무에 불이 붙어 아직까지도 불에 탄 자국이 역력하다.


이 나무는 범어사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며 소원성취를 비는 수호목으로서 범어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장수목이며 사랑과 관심으로 보호해야 할 보호수이다.’




여행을 마치며


▲ 엄지바위에서 내려다 본 범어사로 은행나무 가로수길


오늘 길은 험하지도 않은 짧은 산행 길이었지만 가을이 농익어가는 풍경과 기암괴석이 그려내는 자연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하산을 하였다는 것에 만족하며, 혹시 며칠 사이 청명한 시야, 맑은 하늘이 열리는 날 다시 한 번 올라와 오늘 못다 채운 가을을 향한 욕심을 채워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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