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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충절 정신의 요람지 ‘부산 충렬사’를 방문하였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통해 조선을 침범하였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민관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무너져 버린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선열의 영령을 모시고 오늘날 조상의 호국충절 정신을 배우는 산 교육장의 공간이기도 하다. ▲ 충렬사 8월 첫주 '배롱나무 꽃 피우다'
충렬사로 들어선다. 입구부터 탐스럽게 핀 붉은 꽃망울이 미풍에 그네를 탄다. 충렬사 입구에는 높이 28.6m 충렬탑(忠烈塔)이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무명용사 들이 수천에 달하였다고 한다. 탑은 임진왜란 항전을 상정한 탑으로 민, 관, 군, 봉수지기, 나팔수, 연인 등 6인의 군상이 조각되어 있다. 부산 충렬사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주차를 한 후 충렬사로 향한다. 진입로 좌,우 도열해 있는 배롱나무의 모습에서 숙연함이 느껴진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기 위해 목슴을 아낌없이 내던진 민관군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다. 조선 선조 38년(1605) 동래부사 윤휜(尹暄)이 처음 동래읍성의 남문 내 충렬공(忠烈公)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을 모시고 송공사단(宋公祠壇)라 부른 것이 시초가 되었다. ▲ 충렬사 배롱나무 충렬사 대표적인 배향인물로 충열공 송상현, 충장공 정발, 증병조참판 윤흥신, 증호조참판 조영규, 증도승지 노개방, 충장공 정운, 재생 문덕겸, 증좌승지 이정헌 그리고 별전 24공신과 수영 25의용, 계유병자입절공신 16위, 의열각 신위 4위 등 모시고 있다. ▲ 충렬사 전경 충렬사 조성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현 충렬사는 1605년(선조 38년)에 동래부사 윤휜에 의하여 동래읍성 남문 안에 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송공사가 세워졌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1624년(인조 2년)에 선위사 이민구의 건의로 충렬사라는 사액을 받고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충장공 정발(鄭發 1553~1592)을 모시게 되었다. 그 후 1652(효종 3년)에는 충렬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선열의 충절과 학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고 하고 사우와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 충렬사에는 젊은 청춘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연못 주변에서 바둑을 두거나 연못 속 잉어를 향해 먹이를 조금씩 나눠 준다. 충렬사 인근 주민들은 충렬사 문이 개방되면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비단잉어가 대오를 이루고 몰려들면 깊게 페인 주름살의 굴곡만큼 조금씩 먹이를 나눠준다. 한꺼번에 주면 눈 깜짝할 사이 다른 사람을 향해 모여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료함을 그렇게 달래고 있는 것이다. 송상헌공명언비 송상현이 말하길 戰死易假道難(전사이가도난) 일본의 전국시대를 무력으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의 안정과 영토욕을 채우기 위하여 조선을 침략한다. 조선은 혼란스러운 정국과 맞물려 무기력하기만 하였으니 왜적과 대항하여 싸우기 보다 도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모두가 도주를 한 것이 아니었다. ▲ 전사이가도난 충렬공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은 자(字)는 덕구(德求), 호(號)는 천곡(泉谷),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명종 6년(1551)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15세 나이로 승보시(陞補試)에 장원, 20세 진`사를 거쳐 조선 선조9년(1576) 당시 26세였던 송상현은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조24년(1591) 동래부사로 부임 그리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장 히라요시가 이끄는 왜군에 동래성이 함락되자 갑옷 위에 조복을 덮어 입고 선조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왜병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후 충렬공 묘소는 선조 28년(1595) 흥덕구 수의동으로 이장되었고 부산 동래구에서 배향하였으며, 충렬사 내 송상현공명언비를 세워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있다. ▲ 동래읍성 역사축제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축제를 진행한다. 왜적의 침입 그리고 목숨을 던지며 지켜야 하는 결의가 잘 나타나는 ‘戰死易假道難(전사이가도난)’ 즉,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내용을 새겨 놓았다. 이는 일본이 저항하지 말고 길을 터라는 답변 내용이다. 소졸당 그리고 기념관 가파른 계단 층마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담장 문하나 열고 들어서면 소졸당과 기념관이 서로 마주보며 반겨준다. 잠시 기념관을 들러 임진왜란 부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민, 관, 군의 의로운 죽음이 시선을 붙잡는다. 소졸당 마루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과 은근한 매화 향에 마음의 사치를 누려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계단을 딛고 오르면 의열각과 충렬사정화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소줄당은 매년 춘, 추 음력 2월8일 중정일 에 거행되는 안락서원 향사때 시.중경원장들이 모여 제관 선정 및 제향 준비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1983년 9월 15일 건립된 건물이다. 충렬사는 매년 5월 25일 오전 10시 충렬사 본전 및 의열각에서 제향 의식을 치르며, 충렬사 안락서원 제향 의식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5호로 등록되어 있다.
소줄당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의 위국충절과 호국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효종3년(1652) 세운 강당으로 소줄당이란 한유의 이제송에 나오는 "소호일월 부족위명, 줄호태산 부족위고"의 머리글로 임진란 선열의 충정은 일월보다도 밝고, 태산보다도 높다는 뜻이다. ▲ 소졸당 내부 안락서원 현판이 내걸려 있다.
소졸당 주련은 다음과 같다. 使君忠節冠千齡, 古廟秋風木葉零(사군충절관천령, 고묘추풍목엽령) 송부사의 충절은 천년에 뛰어 났는데, 옛 사당에 가을 바람이 불어 낙엽이 지는구나 精返雲天添列宿, 氣成河嶽護生靈(정반운천첨열숙, 기성하악호생령) 넋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되고, 장한 기개는 산이 되고 강이 되어 이 나라 백성을 호위하도다 深羞徹地何年雪, 怒髮衝冠一夜星(심수철지하년설, 노발충관일야성) 깊은 부끄러움은 땅에 사무치는데 이를 어느 해나 씻을고, 밤새도록 잠 못 이루어 성난 머리카락이 관을 찌르는구나 試上萊山山上望, 蠻煙萬縷至今腥(시상래산산상망, 만연만루지금성) 짐짓 래산에 올라 산 위에서 바라보니, 오랑캐의 연기가 일만가닥으로 아직도 피비린내나는 것 같도다
소졸당과 마주하는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부산분전순국도 즉, 동래성전투 모습이 시선을 끈다. 부산 첨사 정발장군이 왜군을 맞아 죽음으로 싸우는 처참한 기록화이다. 기념관 내에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그려놓은 기록화 6장면과 당시 갑옷과 투구 외 고서와 유품 102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록 현재 남아 잇지 않지만 안락서원 모형도를 제작해 놓았다.
4신위(神位)를 모신 의열각(義烈閣) 정화기념비 의열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녀들을 모신 사당이다. 동래성전투에서 왜적과 기왓장으로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義女)와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공과 부산첨사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金蟾), 애향(愛香) 두 열녀(烈女) 등 모두 네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의열각 반대편에는 충렬사정화기념비와 함께 동백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다.
본전으로 향하기 전 의열각과 정화기념비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의열각에서는 참배를 할 수 있으며, 정화기념비에는 항전하는 군관민의 모습과 창 세워놓았으며, 원형은 북을 형상화 하였다. 주변에는 배롱나무와 동백나무가 계절을 번갈아 가며 붉은 꽃을 피운다. 89신위(神位)를 모신 본전(本殿) 본전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을 모신사당이다. 부산 지역에서 전사한 선열 23명과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위패 4위, 의병 62명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본당으로 제일 위에 자리 잡고 있다. ▲ 본전 전경 인조 2년(1624)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소청으로 충렬사(忠烈祠) 사액을 하사받고 부산진성에서 순국한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장군을 함께 모셨다. 효종 3년(1652) 성내에 있는 사우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안락서원(安樂書院)을 함께 병설하여 사우(祠宇)와 서원(書院)의 기능을 하였으며, 옛 송공사단이 있던 곳은 숙종35년(1709) 별사를 세우고 여러 인문을 배향하였다. 그 후 고종2년(1865) 대원군이 47개 서원 외 철폐령을 내렸을 당시 제외되었으며, 1976년~1978년 성역화를 과정에서 안락서원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에 75위 위패를, 1991년 이후 91위의 신위를 모셨다. 충렬사는 매년 5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충렬사 '군관청'을 아시나요? 군관청으로 오르는 길은 충렬사에서 따로 통제하는 곳이다. 입산통제구역으로 매년 11월 1일~ 다음 해 5월 31일까지 통제가 되며, 입장시간은 오전 09:00~16:30분 까지이며, 산길을 따라 오르면서 군관청을 거쳐 동래읍성지로 오른다.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군관청은 충렬사 내 위치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조선시대 동래부사청 건물 중 하나로 군관들이 군사일을 보던 곳으로 1982년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졌다. 군관청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군관청 앞 배롱나무도 꽃이 피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군관들의 집무소였다. 동래부는 일본과 인접한 국방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1655년(효종 6)에 동래 독진이 설치되었다. 그 뒤 양산군과 기장현의 군사도 통합. 지휘하게 되자 군병의 수가 늘어났으며, 그들의 집무소인 무청도 늘어낫을 것이다. 장관청과 함께 군방을 담당하는 중추기관으로 세워진 것이지만,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1675년(숙종 1)에 동래부사 어진익이 중창하였고. 이루 숙종 연간에 두차례 고쳤으며, 1982년 해체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812년(순조 12)에 동래부사 조정철이 다시 증축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관아 건물로서의 기능을 잃고 오래동안 방치되었다. 해방 이루 주변의 도시화로 고층 건물들에 가리게 되어 좁은 공간에 다시 보수하더라도 보존과 활용이 어려워지자, 1982년 충렬사 경내로 옮겼다. ▲ 담장 안으로 바라 본 군관청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부연이 없는 흩처마로 된 팔작 지붕의 단층집이다. 정관청과 함께 부산지방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관아 건축 가운데 무청으로서 희소가치가 큰 건물이다. 원래 수안동 신한은행 자리에 있었으나, 훼손되고 활용이 곤란하자 1982년 충렬사 경내로 옮겼다.” 충렬사 정상 '동장대(망월대)' 충렬사 입구를 시작으로 계단을 따라 본전까지 오른 후 본전 건물 외삼문으로 다시 나와 산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오르면 만나는 정상에 위치한 동장대(망월대)이다. ▲ 동장대 전경 망월산 정상에 위치한 망월대 또는 동래읍성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장대로 불리는 곳으로 마루바닥의 훼손이 심해 2012년까지 복원계획이 수립된 곳으로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인생문으로 성벽이 뻗어나가지만 탐방로는 굳게 닫혀 있어 충렬사를 나간 후 인생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동래읍성 일부 성벽 구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충렬사는 전국에 걸쳐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민관군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위치한 동래 충렬사 역시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선열을 모시고 있다. 조선 선조 38년(1605) 동래부사 윤휜이 처음 동래읍성의 남문 내 충렬공 송상현을 모시고 송공사라 불렀는데 인조 2년(1624) 충렬사 사액을 하사받고 효종 3년(1652)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 오늘날까지 사원과 서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년 5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충렬사를 떠나며 충렬사의 봄은 백매가 피어나면서 시작된다. 한바탕 봄 향기가 충렬사를 머물다 가면 동백꽃과 산수유꽃이 피어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 놓은 영혼을 위로한다. 여름이 시작되면 충렬사 길목부터 백일홍이 피어나 가을 문턱까지 붉은 자태를 뽐낸다. 부산 동래구에서 해운대구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한번쯤 충렬사를 들러보면 어떨까 하는 바램을 하며 충렬사를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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