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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 - 경남 함양 우전마을~황석산성~황석산

허영꺼멍 2017. 10. 2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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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불타고 있는 함양 황석산을 오르다

"우전마을-황석산"

⊙ 2017년 10월 25일 ⊙



가을이 더디게 찾아온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의 남하하는 속도가 조금은 더딘편이다 보니 해발 1,000m 산 정상부분은 이미 단풍이 메마르고 있지만 등산로 입구는 잎사귀들이 청춘이다. 오늘 산행은 우리나라 산중에 위치한 산성 중에서 경남 함양군 황석산성여행이다.


▲ 황석산 정상에서 바라 본 북암 방향


▲ 황석산 정상에 자리잡은 황석산성

여행별점 : ★★★★☆

단풍 산행을 떠나다 '황석산'

임도구간 주차 :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산 44-3


우전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1.9km 더 들어선다. 그리고 황석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등산로 들머리를 만나게 된다. 황석산 정상 2.6km 구간이다. 남들처럼 체력이 좋거나 버스 멀미를 하지 않는다면 유동마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체력에 따라 산에 오르자는 철칙에 따라 우전마을에서 시작한다.

▲ 우전마을에서 바라 본 황석산

▲ 우전마을 담장에 핀 나팔꽃


우전마을 통과를 조심해야 한다. 마을길이 협소하고,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형 차량은 우전마을 입구 거연정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진입하여야 하며, 승용차는 서행을 하면서 마을길을 따라 오르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 주변 주차

피바위로 향하다.


함양 거연정 앞 주차장을 따라 오른다 우전마을에서 등산로 안내가 시작되지만 마을을 통과하여 겨우 차 한 대 진행하는 임도를 따라 오르니 사방댐 옆 화장실과 함께 겨우 차 서너대 주차 가능한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 피바위 전경

숲길로 들어선다. 가장 빠른 길인 만큼 초입부터 고도를 조금씩 높여 가다보면 들머리에서 약 700m 지점 피바위를 만난다. 피바위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선조 30(1597)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명중 우군 27천명이 그해 음력 816일에 왜군의 가또, 구로마 등의 지휘로 이곳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관민남여 혼연일체가 되어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처정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음력 8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왜구와의 격전이 벌어지면서 야인들도 돌을 나르며 부서진 병기를 손질하는 등 적과의 싸움에 온갖 힘을 다하였으나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여인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척의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줄줄이 벼랑으로 몸을 던졌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비극이 아니겠는가. 그때의 많은 여인들이 흘린 피로 벼랑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흔혈이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바위라 한다.’



피바위를 지나 본격적으로 오르다

피바위 - 황석산성 남문


피바위로부터 황석산성까지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단풍 숲 사이 떨어져 나온 바위가 등산로를 연결하고 있지만 낙엽이 많이 떨어져 등산로를 자주 벗어나곤 하였다. 가까운 코스라 등산객이 찾지 않는지 신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낙엽더미에 푹푹 빠져가며 오른다.


▲ 칩엽수와 활엽수의 절묘한 조화





피바위를 우회하는 산 지형을 따라 황석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적한 등산로 아무도 없는 나홀로 산행길이다보니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왜 그리 큰 소리로 들려오던지...


황석산성 남문으로 들어서다

 

숨을 잠시 고른다. 눈 앞에 펼쳐진 황석산성 가을 전경을 원 없이 눈에 담고픈 마음에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들고 쉬어가기로 한다. 산 중턱 왜적으로부터 이곳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가슴 아픈 산성에서 가을은 그날의 아픔을 달래는 듯 술렁이고 있었다.


▲ 황석산성 남문 초입 전경













둔탁한 등산화로 딛고 올라도 힘든 황석산 황석산성에서 결사항쟁을 했던 군관민의 용기에 잠시 고개를 숙여본다. 한동안 등산로를 벗어나 산성길을 따라 걸었다. 산성은 지형상 돌출된 바위를 만나면 지형을 산성과 연결하였고 지금은 산성 복구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가을 숲길을 지나 황석산 동문에 오르다


산성안에는 제법 넓은 평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황석산 정상까지 1km 안내 표시가 왼편, 오른편 두 곳에 있었고 이왕 오르는 길이라면 산성길을 따라 진행하려 오른편으로 접어들자 등산로가 사라져 버렸다. 숲길을 배회하다 다시 이정표로 되돌아 와 이번에는 왼편을 따라 오른다.


▲ 가을 숲이 반겨준다.












한동안 평지 주변 가을을 만난다. 고요함에 작은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마저 반갑게 들려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본격적으로 바위길이 다시 시작되면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다시 숨소리가 거칠게 느껴지면서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옮겨 간다.



황석산성 동문 그리고 황석산에 오르다


황석산 정상을 눈 앞에 두고 황석산성 성벽을 다시 만난다. 포곡식 산성 답게 황석산성 동문 주변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만든 산성의 오묘함에 빠져 들 만큼 아름답다.


▲ 황석산 정상 100m 남겨둔 지점인 남봉에서 바라 본 황석산 정상 





황석산에서 내려다 보면 황석산성을 보기 위해 황석산 정상으로 향한다. 오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 툭 불겨진 암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밧줄과 계단이 이어지고 그렇게 잠깐 오르니 겨우 서너명 오를 수 있는 암봉속에서 정상석을 만나게 된다.











남녘에 우뚝 솟은 황석산(黃石山. 1,190m)은 산 그 자체의 묘한 매력보다 산 정상에 위치한 황석산성의 모습이 던져주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이다.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은 그 흔적 위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죽음으로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이자 아우성의 현장이기도 하다.


▲ 남봉에서 바라 본 황석산성과 황석산 정상 전경

▲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황석산성 동문


▲ 황석산 남봉 암릉구간

▲ 거북바위에서 올려다 본 황선삭 정상


산성을 내려다 본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 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보다 우수한 조총을 든 왜군에게 창과 칼, 화살로 대항하며 지켜내고자 했던 결연한 의지가 뿌리내리고 싹을 틔워 잡초가 되고, 억새가 되어 바람에 온 몸을 맏기고 있다.


▲ 황석산 정상에서 바라 본 거북바위가 있는 북암 방향


▲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황석산성 동문과 남봉 방향

황석산성(사적 제322)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인 황석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는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듯 쌓은 포곡식산성이다. 성벽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다. 성문은 동 서 남 북동쪽에 작지만 문루를 갖추고 있다. 현재 면적은 446,186정도로, 신중동국여지승람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 황석산 정상 암봉(출입금지 구간)



▲ 망월대 방향 능선

▲ 거북바위가 있는 암릉구간

영호남의 관문으로서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통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곡식산성의 구조로 보아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는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왜적과 견적을 벌였으며, 500여명이 순국하기도 하였다.’


거북바위를 오르다


황석산 정상에서 내려 선 후 거북바위를 돌아 원점회귀를 결정하고 정상을 내려선다. 황석산에서 거망산(1,184M)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진행하면 곧장 황석산 정상을 돌아 다시 황석산성길이 이어지며, 자연적 지형을 이용한 암릉구간에서 거북바위를 만난다.


▲ 황석산 정상을 내려서면서 계속 북봉 방향으로 진행하는 산성이 이어진다.

▲ 황석산 정상 전경

▲ 황석산 정상을 내려서는 등산객. 누군가 내 뒤를 따라 오고 있었나 보다.

▲ 거북 바위 입구에서 만난 큰 바위 하나가 사뿐 올라서 있다.

▲ 거북바위 전경









▲ 북봉 우회 등산로에서 만나는 당산나무?? 

▲ 황석산 북봉 전경 



▲ 거북바위에서 바라 본 황석산

▲ 황석산에서 바라 본 거북바위 전경


거북바위 이정표를 만나지 못하여 계속 북봉으로 향하였고, 북봉 아래지점에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고 되돌아섰다. 오늘만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방문하여 다른 계절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북바위에서 하산하는 이정표를 만나지 못하였다. 북봉 끝자락까지 갔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등산로는 낙엽에 묻혀 식별이 어려웠고 도리없이 올라왔던 길로 내려서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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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봉은 진입을 할 수 없다. 절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구역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일부 등산객은 북봉 안쪽으로 진입을 하고 있는 듯 리본이 메달려 있었다. 100대 명산 황석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하산을 시도한다. 정상에서 우전마을까지 4.4km 거리이지만 중간에 주차를 한 만큼 하산까지 2.6km 거리이다. 서둘러 내려서면 1시간 거리다.



황석산 산행을 하면서 만나는 이정표에는 우전마을을 시작으로 황석산 까지 거리가 표기되어 있으며, 정상까지 총 4.5km 구간이며, 왕복 9km 이지만 차량으로 2km 가까이 오른 만큼 실제 정상까지는 2.6km 구간이다.

 

우전마을 사방댐(주차) - 0.7km - 피바위 0.8km - 황석산성 1.2km - 황석산(남문기점) - 0.1km 황석산(1,190m) 정상에 오른 후 다시 갈림길로 내려선 후 거북바위 북봉 초입에서 되돌아 다시 왔던 거북바위 사방댐(차량회수)으로 원점회귀를 하였다.


마을길을 빠져나와 잠깐 들런 거연정


고려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시복거 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추손인 진사 전재학, 전민민 등이 1872년에 세웠다. 육십령 고개를 넘어서면 처음으로 만나는 정자로 해발1,509m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남강의 상류인 서상을 거쳐 서하로 흘러 하림동계곡으로 흐르는 계곡의 완만한 지역에 위치한 정자로 아치형 구름다리를 놓고 8각 주초석을 에워 올리니 바위와 노송의 절묘한 조화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 거연정 가을 전경

함양을 대표하는 정자가 농월정이라면 정자를 대표하는 곳이 이제는 거연정이다. “거연정기에는 영남의 빼어난 경치는 삼동(三洞·심진동, 원학동, 화림동 등 덕유산 남쪽에 형성된 세 고을)이 최고가 되고, 삼동의 경승은 화림동이 최고가 되나니, 화림동의 경승은 이 아름다운 곳에 세운 이 정자를 최고라 할 것인 바라 기록하고 정자로 향하는 아치형 교량을 화림교라 칭하고 흐르는 물을 방화수류천(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이라 부르며, 여덟개의 못과 여덟개의 정자가 있다 고 해서 팔담팔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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