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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는 경주 “첨성대”

허영꺼멍 2020. 7. 3. 20:11

◎ㅕ행  하 는 "청 개 구 리" 우 물 밖 세 상 이 야 기


점점 기울고 있어 한국판 피사의 사탑 “첨성대(瞻星臺)

GPS: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1-1


사계절 첨성대 주변 꽃이 피고진다. 최근에는 첨성대 주변 유적발굴 과정을 통해 꽃의 정원이 상당수 줄어들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계절마다 색다른 즐거움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7월 초입 첨성대 주변에는 백일홍이 꽃 피기 시작하면서 연꽃과 더불어 피어난다.

 

▲ 첨성대 전경

첨성대(瞻星臺)란 밤하늘 별을 관측하기 위해 높이 쌓은 대를 두고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별자리 관측을 통해 국가의 길흉을 점치거나 농사를 짓는데 사용될 만큼 소중한 것이었고 신비스러운 것이었다.

 

첨성대는 높이 9.16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로 한 변이 1m 인 정사각형 문을 달고 사용된 돌은 17단으로 262개로 12단까지 흙과 돌을 채웠다. 19~20, 25, 26단에는 한문 우물정자형의 장대석을 설치하고 바깥으로 돌출시켜 판석을 설치하고, 네모난 창틀에 사다리를 이용하여 오르내린 흔적이 있다. 창은 남쪽으로 북두칠성을 향하고 "첨성"이란 별을 우러러본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신라 첨성대는 삼국유사 외 다양한 옛 문헌을 통해 선덕여왕(632~647년 재임 당시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에는 상방하원(上方下圓)이며, 높이는 195, 위의 원둘레가 216, 아래 원둘레가 357척이며, 중간 이상이 위로 뚫려서 사람이 그 속으로 오르내리며 별을 관측하였다 한다. 실제 경주 첨성대(국보 제31)에는 사다리를 딛고 오른 흔적이 있다.

첨성대로 알려진 이유는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첨성대와 선덕여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선덕여황 시절 돌을 다듬어 대를 쌓고 위는 모나고 아래는 둥글며 그 속이 트여 사람이 왕래하며 천문을 관측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아 첨성대를 두고 왕릉을 지키는 망루,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재단, 상직적 예술품, . 등으로 논란에 휩싸여있다. 첨성대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창문이 하나며 오르내리기가 불편한 점, 위쪽이 열려 있고 낮은 지대에 있다는 점 등이다.

 


첨성대 앞에 위치한 고분군으로 동부사적지대라 한다. 사적 제161호로 신라의 여러 사적이 나눈 구역으로 동서는 안압지에서 교동까지, 남북은 월성남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까지가 동부사적지대이다.

 

 

 


뭉크의 절규 장엄한 핏빛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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