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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色四季 "여행속으로"
GPS: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리 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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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애는 800년을 훌쩍 넘긴 암 수 두 그루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402호)가 있다. 한동안 세상 살기 바빠 잊고 지낸 세월의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추억으로부터 재회의 시간이다. 오랜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을 모질게 버티며 지켜온 노거수(老巨樹) 적천사(磧川寺) 은행나무에게 인사를 건네며 여행을 시작한다.
고려 명종5년(1175)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께서 오백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적천 사를 중창 할 당시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원효(元曉 617~686)대사가 토굴로 오갈 때 쉬어가던 절간 입구에 심었다 한다. 2020년 보조국사 지눌이 열반에 든 807주기이니 보조국사가 심은 지팡이에 싹이 돋아난 은행나무는 올해로 845살이 되는 셈이며, 강희 33년(1694) 은행나무 앞 비석을 조성하고 ‘축보조국사수식은행수게(築普照國師手植銀杏樹偈)’ 기록을 남겨 놓았다.
적천사 은행나무는 두 그루가 있다. 열매를 맺는 800년 이상 된 암나무와 500년 이상 된 수나무 두 그루이며, 맹아(새로 난 싹)와 유주(乳柱. 가지에 뿌리 방향으로 매달려 자라는 혹)가 잘 발달되어 있다. 유주가 남성을 닮아 득남을 원하는 여성이 유주를 잘라 삶아 국을 끊여 먹으면 득남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그루 은행나무 중 오른쪽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웅장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적천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무려 28m 가슴둘레가 11m에 이른다. 적천사 은행나무는 매년 11월 첫 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 적천사
천왕문으로 올라선다. 두 눈 부릅뜬 사천왕상이 불심검문을 하듯 양쪽에서 주시하고 있다. 적천사 목조 사천왕좌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이다.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청도 적천사 사천왕상은 높이가 3.4m~3.8m로 규모가 큰 편이며, 사천왕상 속에서 수습된 유물을 통해 조성시기가 조선 후기 숙종 18년(1690)으로 확인되었다. 칼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 악기를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 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이 양쪽을 호위하고 있으며, 왼 발 밑에는 악귀가 짓눌려져 있다.
천왕문 지나 무차루 누문을 올라선다. 정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천왕문 방향에서는 무차루, 올라서면 화악산적천사 현판이 걸려 있다. 그리고 예불을 드리려면 대웅전이 아닌 무차루로 들어오라는 안내판이 보여 들어서니 창 너머 대웅전이 조망되며, 인각 대사가 남긴 편액이 걸려 있다.
隔林遙聽出山鍾 知有蓮坊在翠峰(격림요청출산종 지유연방재취봉) 숲 넘어 산에서 종소리 멀리 들려오니 푸른 봉우리에 절간이 있겠구나 / 樹密影遮當戶月 谷虛聲答打門(수밀영차당호월 곡허성답타문) 나무가 빽빽하여 문 비추는 달빛 가리고, 골짜기가 비어서 문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대답하네 / 水鋪白練流全石 虹曳靑蘿掛古松(수포백련유전석 홍예청라괘고송) 물은 흰 갑(비단)을 깔아 갖춘 돌에 흐르고, 무지개는 푸른 갑(비단)을 끌어다 고송에 걸었네 / 莫怪老人留數日 當年普照示遺(막괴로인유수일 당년보조시유) 늙은이 며칠 머물음을 괴이타 마라. 그 옛날 보조가 유적을 보았네.
앞에는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다. 당간지주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1701년으로 1960년 사천왕 제작과 함께 당시 대대적인 불사를 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명문에는 강희 40년(1701) 거사 경순(敬順)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현재 당간지주와 적천사괘불탱은 보물 제14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북 청도 화악산(華岳山. 937.5m) 자락 인적이 뜸한 적천사(碩川寺) 가을 여행을 떠났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 말사 적천사는 문무왕 4년(664) 원효(元曉. 617~686)대사가 수도를 위해 토굴을 만든 것이 시초가 되었다. 신라 헌덕왕 3년(828) 헌덕왕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 명종 5년(1175) 지눌(知訥)에 의해 사세가 확장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건물 일부가 소실, 현종 5년(1664) 왕이 하사금을 내려 중수하면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성하였으며, 숙종 20년(1694) 태허(泰虛)에 의해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무차루를 지나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1호)을 만난다. 중심건물 대웅전 좌측 뒤편으로 영산전을 두었으니 우측 뒤편에 산신각이 있으며, 산신각 앞으로 명부전과 적묵당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3분합 문에 빗창살문을 하고 있는 단출한 모습이며, 최근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보조국사가 절을 중창하려 하자 도적 떼들이 모여 있어 국사는 ‘이 곳에 절을 중창하려 하니 너희들은 이 곳에서 물러가라’ 하였으나 도적들이 오히려 대항하려 하자 국사는 남산에 올라 신통력으로 가랑잎에 호(虎. 범 호)자를 써서 바람에 날라니 큰 호랑이가 되어 도적을 내쳤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4년(664) 태종 무열왕은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며 통일신라를 완성하는 시기였고 많은 백성이 전쟁터로 나아가 사상되자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 바로 오늘날 ‘적천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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