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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내소사

허영꺼멍 2011. 2. 8. 21:14

 

 

단조로움의 미학을 만나려면 변산반도 제일 가람으로 알려진 내소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아도

좋을 것이다.  변산반도 제일 가람답게 고풍스런 멋과 무채색의 절집에서 풍겨오는 단조로움은 내

소사의 전설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야릇한 절집이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34년(633)에 혜구두타 고승에 의하여 소래사로 창건. 소래사는 대소래사 소소

래사 두 절을 지었으나 대소래사는 화제로 소실되고 현재 소소래사(내소사)가 남아 있으며,  만세

루, 관심당, 설신당을 따라 오르면서 대웅전에 도착한다.                                                       

 

사찰내에는 기역자(ㄱ)모양으로 자라는 소나무 그리고 사찰 경내에 떠억하니 버티고 사는 천년을

지켜온 당산나무 그리고 감싼 금테는 사찰과 민간신앙의 묘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사찰내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설선당)는 보이지만  불전(금당)이 보이지 않는것도 독특하다. 불전이

있어야 하는 자리는 동종이 대신하고 있는 독특한 사찰 내소사는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사찰임은 분명하다.                                                                                               

 

가람의 원칙이 변형된 모습이지만 중전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삼층석탑은 중심으로 약간 기울

어져 있으나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종각3부분을 균형있게 배열하고 건물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4방향으로 바닥 돌을 깔아 두었는데 조경 모습이 독특하다.                                        

 

 

내소사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는 세월이 변해도 언제나 당당하게 금줄을 허리춤에 차고 동네

노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사찰입구에 당산나무가 있는곳은 여기 뿐이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펼쳐지는 숲길은 전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일주문을 시작으로

천왕문까지 대략 500m에 이르는데 약 150년 이상된 고목이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을 빠져

나갈 동안 숲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벚꽃길이 열린다. 봄이면 벚꽃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으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미완성 사찰 내소사의 전설을 찾아보면 내소사를 짓기 위해 목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종이 목

수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목재 하나를 숨겨 버렸는데 목재 하나가 부족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목수는 자신의 불심이 부족하여  이러한 일이 생겼다며 건물을 짓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혜구두타

고승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해 사라져 버린 목재 하나는 빼 놓고 절집을 환성하였다 한다.            

 

 

사찰 중심에 떠억하니 버티고 있는 당산나무는 당시 불교의 유입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해안

지역을 따라 민간신앙이 자리잡았고 사찰은 민간신앙을 수용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는 천신각, 산

신각, 칠성각을 두는데 이곳은 한발 더 폭넓게 민간신앙의 대표격인 당산나무를 모시고 있다.    

 

 

 

 

 

소원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사람, 아예 일기를 적어놓은 사람, 입장료 뒷면에 사연을 적어놓은

쌘스가 돋보이는 사람, 마트 영수증에 사연을 적어놓은 사람 등등.. 그 많은 소원들이 매달려

있다.                                                                                                                    

 

 

내소사의 대웅전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든 독특한 사찰로서 절을 만들 당시 빠져 버린 하

나의 목재 부분이 법당 위쪽에 있는 공포부분으로  살펴보면 한 부분이 빠져있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건물을 만들 당시 목침부분만 아니라 우측벽면을 살펴보면 단청칠을 하지 않은 벽면

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을 만들 당시 화공에 관하여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단청을 채색하기 위해 화공이 부탁을 하였다. 절대 부르기 전까지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하고

들어갔는데 궁금한 상좌 한사람이 잔꾀를 써 고승이 부르니 찾아가 보라 말하자  화공이 잠시

나와 고승을 만나로 나간 틈을 이용하여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니  법당 안에는 한 마리의 오

색 찬란한 빛을 띤 새가 채색하고 있더란 것이다.  그런데 문을 열어두어  열려진 틈으로 새는

날아가 버려 채색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대웅전 뒤편 바위산에는 전설의 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사찰 천장에는 큰 들보를 사이에

두고 열개의 악기가 천음을 연주하고 있는데 제각기  비파모양 피리모양 나팔모양으로 아름답게

조각되어져 있다.

 

 

 

 

 

 

세계 미술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내소사 문짝에 새겨져 있는 다양한 꽃 모양이다. 조각수

법이 섬세하고 정교하며 꽃잎제각기 채색을 달리하여 문짝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때 변산의 4대 명찰로 알려져 왔으나 현재는 내소사만 전해질 뿐이다. 내소사의 이름을 두고

각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절을 중창하고

래소사 라 불렀다고 한다. 래소사란 소정방이 왔다란 뜻이지만 동국여지승람 및 이규보의 남행

월일기를 보면 분명히 소래사로 기록되어져 있어 그 주장은 틀린 것으로 판단된다.                

 

내소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는데 보물 제 277호인 내소사고려동종은 고려 고종 9년(1222)에 청

림사 종으로 제작하였다고 하며 조선 철종 원년(1850)이곳으로 옮겼다. 종의 제작기법은 고려

후기 작품으로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며  입상화문대를 갖추고 종의 종신형은

신라의 기법으로 보이나 유곽사이의 삼존당을 비롯 그 기법을 자세하게 보면  고려후기 종 가

 운데 최고로 인정 할 수가 있다.                                                                                  

 

전내 후불벽 뒤에는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좌상으로 일반인은 접근

할 수 없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사랑을 키우는 연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이 전나무처럼 오랜

세월 쭉쭉 자라기를 소망하며 절집문을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