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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청도IC에서 운문사 가는 드라이브 코스

허영꺼멍 2011. 2. 24. 13:46

 

여행은 단순한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맹목적 발걸음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발자국은 무뎌져 이젠 갔던 그 길을 다시 찾으며 옛 향수에 젖어드는 일상의 반복적 삶에 불과한

나의 초라한 일상의 한 귀퉁이 일 뿐이다.                                                                         

 

청도여행을 떠나기전 고민을 했었다. 청도 운문사코스와 합천 해인사코스 그리고 가장 유력했던

창녕 화왕산코스를 두고 시기적 배경을 고려하여 화왕산으로 향하다.... 청도IC에서 그만 이유도

없이 빠져버린것...                                                                                                       

 

운전도중 갑작스레 떠 오른 한장면.. 청도 대비사의 겨울을 빼 놓았던 것이였다.                      

 

이번여행코스는 청도IC에서 빠진 후 운문사 방향을 따라 진행하면서 삼족대-박곡동석조석가여

래좌상-대비사-청도 운문댐-운문사 코스로 길을 따랐다.                                                   

 

 

 

청도 국도변에서 만나는 처진소나무. 보편적 소나무가  위에서 넓게 가지를 뻗는데 청도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뻗어 소나무의 당찬모습은 기대하지 힘들지만 소나무의 기본적 이해

를 뒤엎는 나무이다.                                                                                                

 

 

처진소나무를 떠나 산길을 접어들기 전 강변에 정자처럼 하나 올려져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정자

가 아니라 경북문화재자료 제189호 삼족대이다. 중종 14년(1519) 삼족당 김대유(1479∼1551)가

동창천 암벽 위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한 곳이다.   지금은 거의 폐가로 전략하고 있지만 조선 중

기에는 조식, 박하담, 주세봉 외 여럿 문인이 강론하던 장소로  이용된 곳으로 김대유 를 따서

삼족대라 불렀다.                                                                                                            

 

삼족대는 정면 3칸, 측면 2칸팔작지붕을 하고 여느 다른 정자와는 달리 사방으로 토담을 쌓고

정자로 들어서는 일각문과 2칸의 방, 부엌, 우물이 있어 일반 사가로 보인다.                              

 

 

 

삼족대를 건너면 소요당 박하담의 후손이 살던 운강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고택을 빠져나와 첫번째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난 마을길로 접어들면 금방 끝날것만 같은 도로가

계속 이어지면서 마을을 지나게 된다. 마을길이 협소하여 서행운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자

대비사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비사로 가는 마을길에 만난 박곡리 즉. 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이 모셔진 작은 절집으로 들어

선다.  기거하는 중이 없어니 절집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향불은 끊이지 않고 피어 오르는 곳으

 좁은 공간에 석탑1기와 석조광배 그리고 보호각에 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03호

/840년 조성 추정)을 봉안하고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전체높이 2.76m, 불상높이 1.54.m 로 상당한 규모이며, 통일신라시대 조성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1928년 화재로 인해 심하게 파손 얼굴윤곽은 형체를 잃고 일부

파손되었지만 풍만한 인상 뚜렷한 삼도 그리고 풍만한 가슴 가녀린 허리 등 조각수법에서

인의 세련미와 기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상,중,하대로 구분 및 연꽃모양을 한 대좌위 모셔져

 있다.                                                                                                                            


 

 

 

보호각 앞 1기의 탑은 기단부를 제외하고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망실되어 정확한 탑의 형체를

알 수 없지만 삼층석탑으로 추정되며 상부 초층탑신석에 가로 세로 320mm, 깊이 140mm

방형의 사리공이 확인되며 현재 확인되는 석재를 이용 복원하였는데 탑 높이는 2.78m이다.   

 

청도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이 위치한 마을주변에서 사찰용 기구 와 와병이 발견

되어 이 일대가 당시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로 추정하고 있다. 1928년 마을화재

 얼굴 형체를 잃어버린 청도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은 화강암 재질에 불상높이

1.54m, 대좌높이 1.2m, 전체 높이 2.76m이며, 장타원형 얼굴에 입술을 붉은 색으

 채색하고 두 귀가 파손되면서 상당부분 떨어져나가 얼굴이 함몰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비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불심을 향해 발길을 내 빋는길이 아니라 자연을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정작한 산길에서 만나는 작은 소류지는 아직도 수면 위 고개를 내밀고 있는 버드나

무 그리고 수몰되면서 자연이 빚은 다양한 물색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고...                        

 

 

 

대비사의 정확한 중창기록은 알 수 없지만 신라 진평왕 11년(589)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 고려 인종 때 원응중창하였다는 설과 신라 진흥왕 28년(567)

신승이라 불리는 창건주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대비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향로전, 요사, 요사채, 삼성각, 부도전으로 향

로전은 본래 대웅전 우측에 있었으나 1986년 대웅전 좌측으로 옮겼으며, 대

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보물 제834호로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1685년(조선 숙종 11년)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비사를 떠나면 오늘의 마지막 여행길인 청도 운문사로 들어선다. 졸졸 녹아내리는 계곡 물소리에

취해 잠시 머물며 비록 믹스커피일지라도 한잔 끊여 마시고..  차가움 속에서 봄을 감지하며 콧노래

도 불러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미친놈이나 다를봐 없는 궁색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암자를 만들어 3년간 수도한 끝에 득도하여 7년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고 진평왕 30년(608) 원광국

사가 중창한 후 보양이 중창하면서 오갑사로 부르다 943년 왕건이 후삼국 통일 위해 도왔던 보

양의 공에 보답하기위해 운문선사라 사액하고 전지 50결하사하면서 오갑사는 중 천문갑사를

운문사라 불렀다.                                                                                                            

 

 

 

 

 

 

 

 

 

 

 

 

 

 

봄이 오기전에는 항상 여백의 여유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 그리고 타인들로

부터 따가운 시선과 외면을 차가운 땅 아래서 썩어  곪아 터지지 않고 용케도 봄이면 불안감을 떨쳐

내고 가지마다 꽃 피워 낸다.                                                                                             

 

비록 현실이 어둡다하여 절망하는 습관부터 배우려하지 말자. 지금의 고독은 곧 내일의 행복을 준

비하는 길고도 잛은 하나의 시련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이라 여기고 시련마저 즐길 줄 아는

그런 지혜로움을 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