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는 잊혀져 가는 가야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대도시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와
김해 허씨의 시조 허황옥의 만남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해시 오늘날 허황옥 왕비릉
담장을 따라가면 흡사 버선발을 뒤집어 놓은 듯 보이는 바위하나가 텅빈 공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서 있는데 바로 구지봉이다.
가야사 이야기를 하려면 몇날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만큼 가야사에 관한 자료는 학설에 따
라 제각각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가야사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음모
는 결국 오늘날 독도처럼 우리것이지만 주장하지 못하고 눈치보는 가슴아픈 현실처럼 가야
사 역사 역시 덮어놓고 보자는 식으로 학계에서는 침묵하였는데 작년 드라마 "김수로"의 방영
을 통해 가야사가 꿈틀꺼리기 시작하였다.
구지봉은 김수로 탄생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구지가"가 알려져 있다.
김수로 방영으로 인하여 김해시에는 또 하나의 가야사를 보여주는 공간이 생겨났다. 김해에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면서 가야사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추후 가야사를 알리는데 김해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해IC를 빠져나와 곧장 직진을 하면 인제대학을 지나 가야랜드 그리고 김해 천문대로 향하
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가야테마파크와 천문대 갈림길 조금더 들어서면 분산 정상에 해은사
와 봉수대 분산성벽이 나온다.
평소 남해고속도로에서 천문대로 바라보면 분산 정상에 띠를 두른 듯 보이는 분산성을 오늘
은 오르리라 큰 마음을 먹고 올랐는데.. 테마파크에서 주차를 놓치고 더 진입하다보니 좁은
산길을 너머 도로끝에 도착하니 눈 앞에 산성이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
천문대에서 걸어 분산성을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김해 어방동 분산성내 해발 330m의 정상에 자리잡은 해은사는 2000여년전 가락국이 탄생된 7년 후
인도 아유타국에서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풍랑을 피하기 위해 불경과 파사석탑 돌을 싣고 왔는데 그
돌과 함께 바다길을 순탄하게 해준 용왕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만장대에 세운 사찰이 혜은사로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말사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내 민간신앙을 만난다. 그동안 민간신앙을 흡수한 사찰이 전북 부안군 내소사 내 당산나무
가 유일하리라 생각했는데..그 생각이 어김없이 깨어져 버렸다.
해은사는 서천축 인도로부터 바다건너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최초의 전법도량으로 전하는 곳이다.
가락국의 원찰이였던 혜은사는 전란과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다 30여년전 영산전을 재 중건
하면서 다시 중건하면서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 영정과 김해 허씨 시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허왕후가 인도 망산도에서 가져왔다 전하는 봉돌이 있는데 신비한 영험이 있어 소원을 들어
준다 전한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글귀에..돌을 한번 들고..
메일 주소를 남겨 본다. okgolf@korea.com
여행의 동행..., 삶의 동행을 할 분은 멜로 연락을 주시라..
소원을 들어 준다길래...ㅋㅋㅋ
산신각에 도착하니 떠억하니 버티고 있는 글귀 "시방법계에 지극히 신령스럽고 정성스러우신
산왕대신이 모셔져 있는 산신각은 김해시를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만장대 정상에 위치한 기도
도량이다. 특히나 산신각 입구 괴석은 남근을 상징 자손번창은 물론 많은 불자님들의 소원 성
취를 이룬 영험있는 곳이다.라며 기록하고 있는데 암만 봐도 남근석은 아닌것 같은데...
타고봉에는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인도 아유타국으로부터 올때에 불경과 파사석탑을 싣고 왔다고 전
하는 그 탑을 원형에 근접하게 복원 후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멸의 적멸보탑이 봉안되어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서기 42년 김수로에 의해 가락국이 탄생되었고 가락국 탄생 후 7년이
되던해 인도 아유타국 공주 일행이 해안에 도착하여 왕후가 되고 중궁전 동편에 호계사를 건립하고
파사석탑을 안치하니 우리나라 최초 탑, 사찰이 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탑과 사찰이 파손되자 당시
김해부사 정현석이 허왕후 릉 앞에 옮겨 놓았다.
충의각으로 가는 길 앞에 정국군 박공 축성 사적비 해석문이 자리잡고 있다
충의각은 분산성의 수축내력 등을 기록한 4개의 비석을 보존하기위해 건립한 건물로 "정국군박공
위축성사적비"는 고려말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박위장군의 업적과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김해
부사 정현석이 고종 8년(1871)에 세운 것이다.
"홍선대원군만세불망비" 2기는 김해부사 정현석이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후 이를 허가해 준 홍
선대원군의 뜻을 기리기 위헤 세운 것으로 비석에는 고려말 정몽주가 쓴 분산성 관련 글도 새겨
져 있다.
부사동정대부정헌식영세불망비는 분산성을 보수하여 쌓은 정현석부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 고종
11년 (1874)에 세운 것이다.
김해시는 외적 침략을 막기 위한 이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매년 양력 10월 28일 충의각에서 제
례를 지내고 있다.
김해시내와 평야를 너머 낙동강과 남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가락국의 최고봉 분산(330m)의
정상부에 띠를 두른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산성으로 오늘날 시내를 내려다 보는 경사면에 약 9
00m 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분산성(사적 제66호)은 고려 말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옛 산성을 돌로 쌓았고, 조선말 1871년에 김해부사 정현석이 고쳐 쌓았다 한다.
낙동강물이 휘감아 흐르는 오늘날의 김해 평야는 가락국 당시 바다였을 것이다.
만장대로 알려진 분산성은 조선시대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전하며 그 증표로 분산성 봉화대 아래 바위
에 "만장대"라는 글과 도장이 새겨져 있는데 대원군의 친필이라 한다.
김수로 방영 후 드라마 촬영장을 포함 주변에 가야사 역사관련 테마건축을 통해 가야사를 알리고자
조성하고 있는 가야역사테마파크는 현재 조성 중으로 입장을 할 수 없다.
천문대로 향하는 길목이지만..개방 시간이 맞지않아 일단은 철수를 결정하고 내려와야 했다.
가야사는 우리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될 역사의 한부분이자 왜곡되어서도 안되는 가야사의
현장으로 김해시에는 김수로왕릉, 허황옥왕비릉, 구지봉, 대성동박물관, 대성동고분군, 봉황
동 유적지, 봉황동 패총전시관 외 많은 가야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제4의 제국 가야를 통해 우리는 많은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겠다. 역사란 누
군가로 부터 맹목적인 교육이 아니다. 국사과목을 무시하면서 우리는 삼국시대만 겨우 이해
하고 있지만 제4국 그리고 발해를 포함하면 제5국의 존재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야사 관련 학생 권장도서
가야사 이야기/이소정 지음/원성현 그림/이영식 감수/리젬/1만2000원
김해 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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