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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서악지구 따라 숨은보석찾기

허영꺼멍 2011. 5. 25. 18:00

 

서악지구 여행지별로는 따로 올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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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하늘색이 마음에 들었다. 둠벙에서 낚시질 하기 딱 좋은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폐활량 체크를 위해 산천을 떠돈다. 오늘의 코스는 경주시에 위치해 있지만 여행지로는 거의 외면을 받는 서악지구로 가끔 수학여행을 온 단체를 제외하면 거의 인적이 뜸해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의 여행코스는 서악 즉, 선도산 정상에 위치한 삼존불을 만나기 위한 코스로 우선 굿모닝프레지던트 영화촬영지인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일대를 한번 돌아 본 후 시내를 가로질러 서악지구로 진입하여 서악서원-선도산-삼존불-서악서당-무열왕릉 코스로 여행을 계획했다.

 

 

 

 

 

1. 경상북도 산림연구원

 

연구원 건너편에 주차를 하고 도로를 건너와야 한다. 일반인에게 공개는 되어져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부분이 통제되는 산림연구원은 산림수목원과는 사뭇 다른곳으로 식물의 품종 개량화 작업 및 산림육성 및 보호를 위해 운영되는 곳으로 테마별로 산책길을 연결하여 공원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는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주변에 서출지, 통일전 외 경주 남산자락 불교유적지가 산재해 있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코스 쉼터로 권장하는 곳이다.

 

 

 

 

 

 

 

 

 

 

 

 

 

 

 

서악지구 여행의 출발점인 서악서원

서악지구는 선도산(3880) 정상을 중심으로 서악동, 효현동, 충효동이 포함된다.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선도산은 안탑깝게 산 능선이 화재로 인해 거을린 소나무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가득 매우고 있다. 서악지구는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묘(사적 제20호)를 필두로 서악고분군)사적 제142호), 선도산 정상에 보물 제62호 마애석불상, 서악서원 외 여러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시도기념물 제19호 서악서원은 서악동 내 김유신 장군과 최치원, 설총을 푸모하기 위해 조성된 서원으로 조선 명종 18년(1563)에 만들었다. 사악서원을 만들 당시 문신이던 이정(1512∼1571)이 경주부운 벼슬로 지방유림의 뜻을 모아 만들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1602년 묘우, 1610년 강당과 동. 서재를 다시 짓고 인조 원년(1623) 나라에서 인정하여 서악이란 이름을 내렸다.
 
서악서원 현판은 퇴계 선생이 짓고 직접 쓴 글로 최초 서악정사로 부르다 훗날 서악서원으로 바뀌고 당시 서예가 원진해가 현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도산에 오르다.

서악리 삼층석탑을 올려다 보며

서악서원을 나와 왼편 담벼락을 따라 마을을 빠져 나가면 마애불로 향하는 산길을 만날 수 있다.

 

 

 

 

경주 서악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 65호로 경주에서 보기드문 형식을 하고 있는 화강암 석재를 사용한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으로 보편적인 석탑이 아니라 안동지역에서 확인되는  모전 석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선도산 자락에 위치한 서악리 삼층석탑은 높이 4.06m로 서악서원 뒷동네 마을 뒷산 언덕너머 고분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탑 1층 몸체 남쪽 문틀 양쪽에 인왕상이 새겨져 있다.       

 

서악리 삼층석탑 주변에는 크고작은 릉이 선도산 자락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 초입에서 만나는 2기의 왕릉으로 신라 문성왕릉과 현안왕릉이다.

 

 

 

 

2기의 초라한 왕릉

 

 

 

 

초입에 위치한 첫번째 이름이 확인된 무덤으로 신라 문성왕릉이다. 능은 사적 제178호로 신라 제46대 문성왕(839~857)의 릉으로 지름 20.6m, 높이 5.5m로 왕릉으로는 규묘가 크지 않고 주변에 별다른 표석이 없는데 신무왕 아들로 신라 쇄퇴기에 왕이되어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한 왕이다. 

 

추사 김정희의 신라진흥왕릉고에 의하면 무열왕릉 위 위치한 서악동 고분 4기는 진흥. 진지, 문성, 현안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성왕릉 바로 옆 왼편에 위치한 왕릉으로 주인은 신라47대 현안왕(857~851)으로 고분은 문성왕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름 15.3m, 높이 4.3m로 봉토 주변에 자연석을 둘렀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고 묻혀 있다. 신무왕의 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어 농경정책을 장려한 인물이다.

 

 

 

 

 

 

 

선도산 삼존불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다.

이제부터 본격 산행(?)준비하여 선도산을 올라보자.

 

 

2009년 5월 11일 유품을 불태우던 여행객의 부주의로 인해 산이 불타버려 앙상한 가지만이 능선을 따라 이어져 인간이 자연에게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는 표현이 맞을련지..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은 아쉽게도 아직도 수리중이다. 보물 제62호 삼존불은 조각하기 힘든 암석에 높이 6.85m의 여래입상을 돋을 새김하고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왼쪽은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상 그리고 오른쪽은 대세지보살상을 세웠는데 본존불과 달리 협시불은 화강암을 옮겨온 돌에 조각한 7세기 전후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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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불을 만나고 하산하는 길에 지천에 널려진 고사리 그리고 산 아래로 서악지구 고분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선도산에서 곧장 경사로 내려서면 산 아래에 작은 건축물이 하나 보여진다. 바로 도봉서원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7호로 조선 성종 당시 학자 불권현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중종1년(1545) 추보재라는 재실을 만들고 이후 훼손된 것을 1915년 후손이 힘을 모아 본재의 자리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하였다.

 

도봉서원에서 다시 길을 재촉하여 마을길로 접어들어 무열왕릉으로 향하면 된다.

 

 

 

 

 

왕릉 앞에는 국내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태종무열왕의 비(국보 제25호)를 모신 건물이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거북등에 정교한 조각으로 귀갑문과 비운문 등 다양한 문양을 새기고 비신은 사라져 버렸지만 이수는 6마리용이 양쪽 3마리씩 반결쟁주하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화려함과 정교함을 더해주며, 피장자의 신분을 과시하는 한편 중앙부에 높이 42 cm, 폭 33 cm 네모공간을 만들고 전서체로 "太宗武烈王之碑/ 태종무열대왕지비"을 2행 8자로 양각해 놓고, 비신은 무열왕 둘째 아들 김인문이 글씨를 적었다 전해지며, 사라져 버린 비신은 숭불정책에 의하여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비신의 조각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태종무열왕릉비에서 주목할 것은 용의 머리에 거북형상을 한 것이 아니라 거북모양을 하고 비석을 짊어진 상태로 이수를 올리는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비로 기록되고 있다. 귀부 높이는 1.03 m, 길이 3.8 m, 폭 2.49 m, 이수(首) 높이 1.06 m, 폭 1.36 m, 두께 0.36 m, 비좌(碑座) 1.73×0.86 m이며, 도로 건너편 김인문의 비와 거북이 발가락 숫자만 다를 뿐 거의 유사하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 김인문과 함께 당나라 세력을 통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재위기간 654-661년)으로 등극한다. 김유신과 교분을 쌓은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동생 김문희와 정략결혼을 하여 김유신과 처남 매부지간이 되며, 자신의 딸이 머물던 대양성이 642년 무너지면서 사위부부가 죽자 김춘추는 복수를 다짐하여 고구려 연개소문을 만나 동맹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일본과 동맹 역시 실패하자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무너뜨린 후 고구려를 치려는 준비를 하던 와중에 죽음에 이르고 서악동 구릉지역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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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무열왕릉은 사적 제20호로 미발굴고분이며, 높이 약 13m, 주위둘레 약112m로 내부는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분의 피장자 신분으로 추정할 때 고분 주변에 호석이나 다른 장식이 있을 것 같지만 고분에는 자연석 호석을 돌린 상태로 일부 몇 개의 호석이 겨우 돌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국도를 따라 고개를 너머서면

 

 

 

 

무열왕릉을 떠나 건천 방향으로 조금만 달리면 효현교 승강장 앞에 법흥왕릉 및 효현리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보물 제67호로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화강암에 조각된 높이 4.6m 3층석탑이다. 석탑은 경주에서 만나는 규모로는 작은편으로 1973년 해체 복원되었는데 탑이 있는 이 일대가 동경잡기에 의하면 애공사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마을입구 축사 뒷켠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 자료 더 보기 http://blog.daum.net/okgolf/5464330

 

 

 

 

 

 

 

서악지구는 이 외에도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가 하면 인근에 김유신장군릉을 비롯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문화재도 만날 수 있다. 서악지구를 여행하면서 또 하나 볼것으로는 경주 두대리 삼존불상 [ http://blog.daum.net/okgolf/5464065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