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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천황산 깊은곳 금강폭포

허영꺼멍 2011. 6. 30. 09:56

 

 

 

 

 

 

 

출입금지 밀양 금강폭포 가는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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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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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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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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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폭포를 보지 않고는 폭포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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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소리에 밀양으로 봇짐을 꾸렸다. 어쩌면 천황산 골짝 숨통 틔이는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무작정 밀양시 표충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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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 느린터라..표충사에서 어느 코스를 잡고 오르는가를 결정해야 했다. 오른편을

따라 오르면 흑룡폭포와 층층폭포로 향하게 되며, 왼편으로 접어 들면 금강폭포를 따

라 오르게 된다. 왼편을 살펴보니 표충사에서 천황산까지 4.3km, 한계암 그리고 금강

폭포까지는 1.3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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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금강폭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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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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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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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로 진입하는 숲길이 답답한 마음을 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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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 있는 부도탑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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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작은 부도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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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내원암을 들렀다 다시 내려선 후 금강폭포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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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부터 천황산은 3.700m, 금강폭포까지는

700m 이다. 금강폭포까지 계속을 따라 산길을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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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가 폭포의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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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흔들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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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담한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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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한켠에 햇볕을 받고 있는 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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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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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내려선 후 표충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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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스님이 숲에서 자란 장작 위 연기되어 열반에 드시고, 계절의 길목을 지켜 왔을까. 한

때는 1천여 명스님이 머물렀지만 그 세월도 잠깐이라 폐허가 되니 불심이 사라질 법도 하지만

광해군 2년(1610) 혜정이 중창하여 또다시 불심이 부흥을 꾀하지만 현종 연간에 이르러 또 다시

폐사지경에 이르니 영정사의 업보이련가. 흥덕왕 4년(829) 서역승이 맑은 물을 이용해 환자를 고

고쳐주며 주민들이 뜻 모아 만든 영정사는 일년스님이 머물기도 하였지만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

지는가 싶더니 현종5년(1839) 사명당의 법후손 월파스님이 예조의 승인을 받아 무안의 표충사

옮겨 "표충사"라 부르니 오늘날 모습을 비로소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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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가 옮겨간 텅 빈 그 자리는 표충비만 남아 지금도 나라의 힘든 일이 생기면 을 흘리니

이것이 바로 사명대사의 영험한 예언이 아닐까 싶다. 무안은 표충사와 가까운 거리로 사명대사

 고향이다. 표충사는 유교서원과 불전이 공존하는 특이한 사찰이다. 표충사 경내에 자리한 표충

서원에는 사명대사 유정, 서산대사 휴정, 기허대사 영규 세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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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신라 석탑형식을 가진 표충사 삼층석탑은 기단은 단층이며 면석은 5매로 구성되고

우주와 탱주1주가 있어 각면을 2구로 구분하고 있으며 보물 제467호로 지정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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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창건 후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 불렀다. 흥덕왕 4년(829)

인도스님 황면선사가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시고 한반도를 유람하던 중 재약산 오색서운을

보고 삼층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게 된다. 당시 홍덕왕의 셋째왕자 풍병으로 고생하며

영산 약수를 찾던 중 죽림사에 머물게 되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병이 완쾌되자 왕이 사세를

확장하고 절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라 한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으로 사찰은 폐허로 변

하자 현종5년 사명당 법후손 월파스님이 무안의 표충사를 표충서원으로 옮겨 임진왜란 당시

의승대장인 사명, 서산, 기허 세분을 모시면서 영정사는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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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는 고려시대 일연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탈고 하였으며, 충렬왕은 "과연

천하명산"이라 감탄하여 동방제일의 선찰이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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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는 오른쪽 방향을 따라 폭포를 경유해서 사자평까지...가을에 예약을 하며 돌아

오는 길에 석골사 폭포가 생각나 잠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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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골산에서 한 등산인이 거침없이 폭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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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골사 폭포 열람하기

http://blog.daum.net/okgolf/546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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