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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포석정 ~ 부흥사 ~ 능비봉 ~ 바둑바위 ~ 삼불사 ~ 망월사

허영꺼멍 2013. 8. 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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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리즈

경주 남산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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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포석정 ~ 금오산 정산 ~ 삼불사 ~ 포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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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마애여래좌상-부흥사-늠비봉오층석탑-팔각정-국사골 상사바위

-금오산 화장실 앞 갈림길 - 바둑바위.상사바위 - 서방곡마애여래입상 -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망덕사-포석정 순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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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패망을 지켜본

포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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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칼날 앞에 스스로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신라의 종말. 한때 젊은 화랑도를 앞세워

삼국대업을 이룩한 신라의 국운이 잠재워지는 순간 포석정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왕건과 견흰의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망각에 사로잡혀 국운이 다했는지

아니면 문무왕이 건네준 만파식전을 믿고 태평성대를 누렸는지 결국 비운의 왕으로

패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포석정을 두고 신라왕이 술판을 벌린 곳이자

망국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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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포석정을 들러 잠시 살펴본 후  리기다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니 오전이라 피톤치드 기운을

듬뿍 받는 느낌으로 남산 골짝을 하나씩 찾아 헤에는데 제일먼저 윤을곡 마애여래 입상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산길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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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을 통과하여 오르는 문화유산 답사길은 잘 조성되어져 있으며, 중간 중간 유적지 이정표가

나오는데 경주 남산은 워낙 많은 이름없는 불교흔적까지 산재해 있어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며

여행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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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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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포석정 주차장에서 0.9km 지점에 운을곡마애불좌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70m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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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기억자형 바위면에 정면 2분 측면 1분을 새겼는데 약사여래불로 약한 돋음새김 조각수법으로

 독특하게 2분을 동시에 제작되었다. 불상은 연꽃 대좌에 앉아 왼손은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민간신앙 때문에 코와 눈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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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된 불상 북쪽면 왼쪽 불상의 왼쪽 어깨 위쪽에 명문이 남아 있는데

태화9년 을묘라는 글로 보아 신라 홍덕왕 10년(835)에 조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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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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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에서 1.6km 지점에서 산 윗쪽 이정표를 따라 160m 오르면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불상 앞에 누군가 만든 듯 보이는  단상이 많이 허물어져 있고  바로 위에는 공동묘지를

연상하게 만들만큼 무덤이 모여있어 한층 더 오싹한 기운은 감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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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서 만난 아담한 사찰

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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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사에서 식수를 공급받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밥먹을 시간..늠비봉 오층석탑 가는길

이정표를 앞두고 고민하다 결국 절간에 걸터앉아 빵 하나로 점심 떼우고 다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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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복원한

늠비봉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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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비봉 오층석탑의 잔해가 널려져 있고 벼랑 앞에 날렵하게 생긴 늠비봉 오층석탑이 위용을

과시하며 서 있는데 주변 석재의 잔해를 통해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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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비봉 오층석탑을 뒤로하고 또다시 산길을 따라 오르기를 계속

팔각정까지 숨을 내몰며 오른다..오르막길이 갑자기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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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 도착하니 경주 남산 일원이 조망되면서 이곳 일대가 천년의 역사를 품은 신라의 수도로서

수많은 유적과 기념물을 보유. 2000년 남산을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세계인류 문명에 주목할

만한 문화적 업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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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길을 잡고 떠난다.

가자 바둑바위 갈림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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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골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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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골 상사바위 앞에서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예나 지금이나 남자란 자우턴.. 나이를 막론

하고 어찌 이러는지..상사바위의 사연이 기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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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골 상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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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국사골 어귀에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외롭게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했으며 그 중에서도 "피리"라는 소녀를 무척

귀여워했다.. 소녀도 외로운 할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과일이랑 맛있는 음식도 갖다 드리고

때로는 말벗이 되어 주었다... 어느듯 피리는 처녀가 되어 다른 마을로 이사가자 할아버지는 홀로

남아 피리를 그리워하였고 그리움에 목매 자살하였는데 죽은 할아버지는 큰바위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피리 소녀는 날마다 꿈속에 큰 뱀으로 변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는 꿈을 꾸게되었고 하루는

피리를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죽어서도 잊혀지지못해 꿈속에서 찾아왔다며 더 죽을 수 없는 자신

을 용서해 달라며 하소연 하자 피리소녀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것에 할아버

지와 같이 바위에서 자살하였는데 할아버지 바위 옆에 또 하나의 작은 바위가 솟았는데 훗날 사람

들은 그 바위를 상사바위라 불렀다 하며, 바위 아래 붉은 반점이 피리의 핏자국이라고 전설로 전

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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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다시 유적을 찾아 주차장과 가까운

삼불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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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 바둑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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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정은 금오산에 있던 정자였는데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가 거문고를 타며 즐기던 곳이다.

금송정이 있었다는 이곳 냉골 바위산은 그 모습이 괴상하고 거대한 바위 더미로 밑에서 쳐다보면

정상은 구름이 걸린 듯 드높아 보인다.

옆의 금오봉 방향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는 상사암이라 한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 삼아 거문고을 뜯어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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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곡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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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산.. 도로에서 주행 중인 차 소리가 들려온다.. 다 왔다는 느낌이 들 무렵..눈 앞에

다시 신라의 흔적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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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보물 제63호로 본래 선방사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경주 남산지역에서 발견된 불상과는 달리 당당한 체구와

풍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본존불 중앙에서 왼편에 모신 불상은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상이고, 오른편은 연꽃 위 서 계시는 대세지보살상이다.

조각양식을 통해 삼국말기인 7새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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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사 새 소리에 넋놓고 있다가 잠이 들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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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는 18개 불교 종단 중 대한불교원효종 사찰로 1963년 경주 해인스님이 신라 원효를 종조로

“대한불교원효종포교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망월사 창건기록은 없지만 신라시대 선덕왕

당시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폐사된 사찰을 훗날 재건하였지만 오늘날까지

건물은 변변치 않다. 사찰 내에는 겨우 지탱하는 건물과 달리 연화탑이 연당 중심에 세워져

있는데 연화탑 삼층석탑은 독특하게 연당에 자리 잡고 각 층 옥계석 틍급받침부분에 연화무늬가

 3개씩 새겨져 있다는 것과 둥근 형태의 연당이 아니라 보그드문 9각 형태의 연당을 두었다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곳으로 나말여초에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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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포석정 출발 금오산 정상 그리고 삼불사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차량도로가 이어져

보행하는데 큰 불편은 없지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신라의 손길은 미미하기만 하다.  

 

문화재를 만날려면 큰 도로는 포기하고 유적코스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서 산길을 올라야만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삼릉계보다 찾는이가 거의 없고  길이 협소하여  조용하게

둘러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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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okg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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