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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서출지~칠불암~신선암~용장사지~서출지

허영꺼멍 2013. 8. 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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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리즈

경주 남산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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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 통일전~칠불암~신선대~용장사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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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소지왕 당시의 설화가 묻어져 있는 곳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준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소지

경주 여행을 자주하는 여행객이라하여도 막삭 경주 남산여행을 권하면 시간이 없거나 산길을 오

를 힘이 없다며 다들 기피하지만 적절한 코스를 배분하여 산을 오른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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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코스로 통일전에서 출발하여 칠불암을 거쳐 용장사지로 가는 코스는 대표적인 문화재를 만나

는 코스길로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꼭 힘들다면 칠불암을 거쳐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까지는 꼭

다녀 갈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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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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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서출지-경주 남산리 삼층석탑-염불사지-칠불암-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삼화령-

용장사지 삼층석탑-용장사지 삼륜대좌불-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순환도로-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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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설화가 전해지는

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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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는

신라 소지왕 당시의 설화가 묻어져 있는 곳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준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소지

왕이 궁 밖을 거둥하는데 쥐가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한다. 왕이 이 말을 따라서

연못에 가까이 오니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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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 을 화살로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에 맞고 죽었

죽었다 한다. 그 후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며,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 이 생겨났으며, 지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까마귀밥을 만들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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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와 관련하여 설화를 살펴보면 왕이 거동한 틈을타서 왕을 시해하려는 무리가 거문고 갑에

숨었는데 누군가 서출지에 당도한 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시해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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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불교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민간신앙과 신흥불교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

23대 법흥왕 때 비로소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고 그 이전에  불교가 진입하는 과정에 있었다...

서출지 주변은 온통  베롱나무와 연꽃이 지천에 피어나며 조선 현종5년(1664)에 임적이 만든 이

요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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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리삼층석탑

보물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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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의 조성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할 뿐 조성 경위는 알 수 없다.  동탑은 모전석탑 방식의

7.04m 로 서탑보다 높은 3층탑으로. 이형기 단위 탑신을 올렸지만 상륜부는 보이지 않으며, 전혀

장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정면에 네모꼴 감실을 얇게 만들어 문을 표시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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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은 네모진 돌을 마치 벽돌을 쌓아올린 모습으로 바닥에서 여덟개의 돌을 서로 맞대어 자리잡

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서탑은 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동탑이 무뚝뚝한 네모진 큰돌을 사용하여 쌓듯 올렸다면 서탑은 신라후기양식을 반영한 여성적인

미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배열과 흡사하며. 이중 기단 위 3층 몸돌을 올려두고, 윗 기단

몸체에 부처의 세계인 수미산을 표현하는 팔부신중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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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 삼층석탑

사적 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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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앉아 나무아

미타불을 부르는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는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

하여 열불사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염불사에 모시고 그가 살

던 곳을 염불사로 고쳐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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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는 흩어진 부재를 1963년 불국사 입구 구정광장에 세웠으나 2008년 1.24 해체하여 2007년

6월 13일 복원을 시작 2009년 1월 15일 정비 완료하여 오늘날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석탑은 7세 말~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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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국보 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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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선암 마애불 아래 아담한 절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칠불암이다.

사각의 네모돌 사면에 불상을 4구 새기고 그 앞에 3분을 더 새겨 총 7분으로 이를 두고 칠불암이

라고 한다. 국보 제312호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은 남산 봉화골에 위치한 불상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우수한 불상으로, 풍만한 얼굴과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작품으

로 추정하나 사면석불형태의 돌이 옮겨 왔거나 위에 지붕 또는 탑 등 뭔가 올려진 흔적의 홈이

바위 윗면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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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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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뒷편 깍아지런 절벽 위 아슬아슬한 경사면에 홈을 파고 새겨놓은 마애불로 구름 위 좌선을

하고 있는 보살상 그림을 새겨 놓았다.

보살상은 오른손에 꽃가지 왼손은 가슴에 올려 놓은 형태로 독특하게 오른다리를 내려 놓고 있는

예술성으로 볼때 통일신라시대 후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1.4M 높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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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보살반가상은 왼손을 가슴까지 올려 설법하는 모습으로 천하를 아래에 두고 설법을 하는

부처의 모습으로 다리 부분 한쪽을 내린 모습을 취한 특이한 자세이다.  마애불의 광배는 자연

석을 깎아내고 뒤쪽 벽면의 원형을 이용하여 일체감을 최대화 시켜놓고 아래로 구름문양을 그

려 놓았다. 구름 위 연꽃이 피어나 있고 솟은 돌에 편하게 걸터앉은 자세로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풍만한 얼굴에 삼면보관을 머리에 올려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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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을 빠져 나오면 경사지역에 도착한다. 경사로를 올라서면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이정표를 용장사지로 잡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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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의문 삼화령

불상은 없고 불상을 모셨던 대좌만 남아 있는데..그 대좌는 자연석의 상부를 깍아 만들고

그 위에 올려진 부처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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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에 다가올 무렵 만나는 삼화령은 삼화수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곳으로 용장사지에서 올려보면 흡사 자연석 그 자체가 거대한 불상을 닮고 있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이란 분이 현몽을 하길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 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

려가 풀을 묶어 놓으며"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

다. 다음날 스님이 그곳에 가보니 과연 풀이 묶여 있어 땅을 파헤져 보니 미륵불이 나와 산위에

모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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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보면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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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에서

가슴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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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상골용장사지삼층석타

보물 제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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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용장사터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저술한 사찰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석탑과 석불상이 

남아 그 옛날의 모습을 회상하게 만든다. 삼층석탑은 대웅전 윗편에 자리 잡고  자연암반을 이용

밑단을 만들고 그 위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가 하나의  석탑으로

만들어 일체감을 조성한 것이 특징으로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며,주변

파손된 몸돌로 보아 당시 이곳  2의 석탑은  제각기 형태를 달리한  탑으로 남산리 삼층석탑과 유

한 모전석탑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싶다. 석탑 아래에는 옛 용장사터로 추정되는 장소와함께

불상군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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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6호 경주 남산 용산사곡 삼층석탑은 법당터 보다 더 높게 세워진 통일신라시대 작품

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으로 하늘과 맞 닿을듯 웅장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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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00m를 따라 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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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삼륜대좌불

보물 제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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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에서 바위길 난간을 내려서면 불상 1기가 눈에 고정된다. 목이 잘려나간 상태로 있는 안타

까움...일본인에 의하여 목이 잘려버렸다 한다. 불상은 삼륜대좌 위 올려진 특이한 모습으로 미륵장

육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려진 삼륜대좌는 조각 솜씨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석공

섬세함을 엿볼 수 있으며,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8세기 중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석불

은 입체감이 훌륭하여 목만 존재한다면 흡사 살아있는 모습으로 사실감이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용장사는 신라 유가종의 대덕 태현스님이 주지로 있었다고 전하며, 남산일대에서 가장 정교한 불상

으로 삼륜대좌는 흡사 원형삼층석탑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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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보물 제9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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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좌상 뒤편 바위에 또 하나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

남산 일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마래불로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머리둘레의 두광과 몸

둘레의 신광 두 줄기를 표현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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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어깨에 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알 수가 없고 단지 날짜만이 확인된다. "태평2년8월" 그 다음은

알길이 없지만 이 마애불의 조성시기가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불은 남산에서 발견되

는 다른 마애불 보다 얼굴이 둥글고  귀가 무척 길고 손가락이 몸집에 비하여 턱없이 큰 편으로 입

체감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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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마애불을 먼발치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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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곡 제2사지 마애석불은  남산의 마애불 중에서 가장 못난이지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인 국사곡 남쪽 계곡 국사곡 입구를 지나면서 왼편에 있는 계곡 위 돌출된 자연석에 조각되

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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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이용시에는 통일전에 주차를 하거나 염불사지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시작할 수 있

는데 하산을 고려하여 통일전에서 출발하는것을 권장한다.  택시로 진입할 경우는 염불사지

에서 하차 후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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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입구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너머서면 칠불암에 도착하고 여기서 식수를 보충한 후 다시

신선암으로 오르는데 이 구간이 급경사지역이지만 짧다. 신선암 마애불을 본 후 체력과 시간

을 체크한 후 용장사지로 갈지 하산할지를 결정하면 된다. 용장사지까지는 능선을 따라 이동

하며. 용장사지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갈 수 있다. 반대편 용장골로 내려서면 더 많은 문화재를

만날 수 있지만 출발점의 반대편이라 되돌아 오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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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okg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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