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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바둑바위~용장사지~신선암~칠불암~서출지

허영꺼멍 2013. 8. 9. 10:33

 

기획 시리즈

경주 남산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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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 삼릉 ~ 상선암 ~ 용장사지 ~ 약수골마애대불 ~삼릉계곡 석불좌상

~ 상선암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 상사바위, 바둑바위 ~ 용장사지 ~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칠불암 ~ 염불사지 ~ 남산리삼층석탑 ~ 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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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으로 오르는 길은 부자집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길을 터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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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

며, 금호봉 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탐방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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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에서 출발을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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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낀날 빛내림이 좋아 사진작가를 불러 모우는  삼릉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은 54대 정명왕

53대 신덕왕, 8대 아달라왕의 왕릉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잠시 가볍게 눈인사 올리고 천년의 숲

을 향해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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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에서 만난

첫 불상의 잔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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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초입에서 만나는 부처는 세월에 노출되어 깍여 세부적 표현을 알 수 없다.

얼굴은 이미 사라져 버린 탓에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신라인의 당당한 기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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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을 떠나 초입에서 만난 목없는 석불과 석재의 파편들이 오른쪽 탐방로에 모여 있다. 아마

이 일대가 사찰이 있었던 사지였을 터이다. 또한 이 일대는 일본에 의해 또는  다른 이유로 인

해 부처의 목은 온천치가 못한것이 대부분이라 보는 이들의 가슴이 안탑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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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혀 있었던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초입 불상을 만난 후 조금 더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오르면 목이 없는 불상과 바로 윗편에서

바위에 새겨진 1구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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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k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

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

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소중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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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유형문화재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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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으로 부터 왼편

언덕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불상은 풍만한 얼굴에  삼면보관을 올린 관음보살상으로 돌기

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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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관음상과 석조여래좌상을 거쳐 산길을 오르면 약간의 언덕길과 계곡이 이어진다. 물소리 철철

넘쳐나야 봄이 제맛이지만 계곡은 목마르고 언덕길을 따라 호흡을 힘들게 할 무렵 선각육존불 20m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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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돌다리 건너

선각육존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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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육존불은 제법 넓은 공간을 앞에두고 있으며,  바위면 2개를 이용하여 독특하게 불상을 표현

하고 있는데 꽃을 공양하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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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로 남산에서 확인된 부처 중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개 바위면에 각각 3구씩 표현되어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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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바위에는 서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보살이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꽃을 공양하고 있

는데 아마타삼존으로 부르며, 불상을 보호하는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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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육존불을 구경하고 다시 계곡을 건너면 삼릉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어지면서 가파른 언덕이 시

작된다. 상선암으로 가는 길목에서 저 멀리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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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삼릉계석불좌상

보물 제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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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삼릉계석불좌상은 삼릉에서 올라오면서 만나는 보물 제666호로 상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위치

하고 있다.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으로 불상은 불두와 불신

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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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이 심했던 불상을 보수하여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조각

수법으로 8새기 후반에서 9세기 초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높이 1.42m, 대좌 높이 0.96m

불상의 총높이 2.38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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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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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으로 오르는 경사길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꾸역꾸역 올라

야 하는 인내의 길이다. 상선암 불경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다 언덕에 올라서는 순간  벚꽃이

바람에 흩뿌린다. 천년의 길에서 만나는 벚꽃의 도도한 자태에 봄이 이미 스쳐가고 있다는  사실

을 느끼고 약수물을 한컵 받아들고 절집 한귀퉁이에서 등줄기 땀을 식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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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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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158호 남산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지금 동편의 암반에 균열 박리되어 위험하여

조심하여야 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상선암에서 오른지 5분도 안돼 큰 규모의 좌상이 자연석을 광

배로 한 모습으로 공간 시선을 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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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유형문화재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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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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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158호 남산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지금 동편의 암반에 균열 박리되어 위험하여

조심하여야 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상선암에서 오른지 5분도 안돼 큰 규모의 좌상이 자연석을 광

배로 한 모습으로 공간 시선을 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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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바둑바위 남쪽 중턱  오르막길 왼편 벼랑 위 돌출된 자연석을 다

듬어 조성한 불상으로 겹겹이 형성된 자연석을 광배로 활용하여 따로 광배를 만들지 않은 독특

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광배를 만들려다 그만 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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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m로 냉골에서는 가장 큰 불상으로 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해 앉아 있으며, 입체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아래편에서 올려다 보면 앉은 발을 모습이 크게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오른

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가지런하게 무릎에 올려놓고 결좌

부좌를 하고 있다. 작품은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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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좌상은 현재 유형문화재  제 15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지만 바위에 균열이 심하고  풍화가

진행되어 급급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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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갈림길에 위치한

상사바위, 바둑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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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바위 뒷편에 자리한 상사바위는 여느 산이면 다 있는 상사바위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바위의 규모는 압도적이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낮는다는 속설이

있다. 바위 중앙에 재단을 만들어 놓았으며, 머리가 없는 작은 석불 1구가 비스듬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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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당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소원을 빌던 곳으로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 있다고 동경잡기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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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바위와 석불을 금오산 정산 능선에서 넌저시 바라보니 천년고도 신라인은 남산 골짝을 따라 종

교적 이념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위에 부처를 새기고 극락장생을 빌었는지..  왜 이곳에

집중적으로 조성했는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 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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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에서

가슴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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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상골용장사지삼층석타

보물 제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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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용장사터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저술한 사찰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석탑과 석불상이 

남아 그 옛날의 모습을 회상하게 만든다. 삼층석탑은 대웅전 윗편에 자리 잡고  자연암반을 이용

밑단을 만들고 그 위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가 하나의  석탑으로

만들어 일체감을 조성한 것이 특징으로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며,주변

파손된 몸돌로 보아 당시 이곳  2의 석탑은  제각기 형태를 달리한  탑으로 남산리 삼층석탑과 유

한 모전석탑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싶다. 석탑 아래에는 옛 용장사터로 추정되는 장소와함께

불상군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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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6호 경주 남산 용산사곡 삼층석탑은 법당터 보다 더 높게 세워진 통일신라시대 작품

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으로 하늘과 맞 닿을듯 웅장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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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00m를 따라 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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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 삼륜대좌불

보물 제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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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에서 바위길 난간을 내려서면 불상 1기가 눈에 고정된다. 목이 잘려나간 상태로 있는 안타

까움...일본인에 의하여 목이 잘려버렸다 한다. 불상은 삼륜대좌 위 올려진 특이한 모습으로 미륵장

육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려진 삼륜대좌는 조각 솜씨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석공

섬세함을 엿볼 수 있으며,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8세기 중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석불

은 입체감이 훌륭하여 목만 존재한다면 흡사 살아있는 모습으로 사실감이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용장사는 신라 유가종의 대덕 태현스님이 주지로 있었다고 전하며, 남산일대에서 가장 정교한 불상

으로 삼륜대좌는 흡사 원형삼층석탑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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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보물 제9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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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좌상 뒤편 바위에 또 하나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

남산 일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마래불로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머리둘레의 두광과 몸

둘레의 신광 두 줄기를 표현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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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어깨에 글씨가 새겨져 있지만 알 수가 없고 단지 날짜만이 확인된다. "태평2년8월" 그 다음은

알길이 없지만 이 마애불의 조성시기가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불은 남산에서 발견되

는 다른 마애불 보다 얼굴이 둥글고  귀가 무척 길고 손가락이 몸집에 비하여 턱없이 큰 편으로 입

체감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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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길고 긴 능선을 따라 칠불암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걷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다 잠시 경주시내를 내려다 보고 또 걷다보면 점점 가까워지는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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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을 빠져 나오면 경사지역에 도착한다. 경사로를 올라서면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이정표를 용장사지로 잡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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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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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뒷편 깍아지런 절벽 위 아슬아슬한 경사면에 홈을 파고 새겨놓은 마애불로 구름 위 좌선을

하고 있는 보살상 그림을 새겨 놓았다.

보살상은 오른손에 꽃가지 왼손은 가슴에 올려 놓은 형태로 독특하게 오른다리를 내려 놓고 있는

예술성으로 볼때 통일신라시대 후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1.4M 높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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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보살반가상은 왼손을 가슴까지 올려 설법하는 모습으로 천하를 아래에 두고 설법을 하는

부처의 모습으로 다리 부분 한쪽을 내린 모습을 취한 특이한 자세이다.  마애불의 광배는 자연

석을 깎아내고 뒤쪽 벽면의 원형을 이용하여 일체감을 최대화 시켜놓고 아래로 구름문양을 그

려 놓았다. 구름 위 연꽃이 피어나 있고 솟은 돌에 편하게 걸터앉은 자세로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풍만한 얼굴에 삼면보관을 머리에 올려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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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국보 제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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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선암 마애불 아래 아담한 절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칠불암이다.

사각의 네모돌 사면에 불상을 4구 새기고 그 앞에 3분을 더 새겨 총 7분으로 이를 두고 칠불암이

라고 한다. 국보 제312호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은 남산 봉화골에 위치한 불상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우수한 불상으로, 풍만한 얼굴과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작품으

로 추정하나 사면석불형태의 돌이 옮겨 왔거나 위에 지붕 또는 탑 등 뭔가 올려진 흔적의 홈이

바위 윗면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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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 삼층석탑

사적 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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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앉아 나무아

미타불을 부르는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는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

하여 열불사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염불사에 모시고 그가 살

던 곳을 염불사로 고쳐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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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는 흩어진 부재를 1963년 불국사 입구 구정광장에 세웠으나 2008년 1.24 해체하여 2007년

6월 13일 복원을 시작 2009년 1월 15일 정비 완료하여 오늘날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석탑은 7세 말~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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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리삼층석탑

보물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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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의 조성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할 뿐 조성 경위는 알 수 없다.  동탑은 모전석탑 방식의

7.04m 로 서탑보다 높은 3층탑으로. 이형기 단위 탑신을 올렸지만 상륜부는 보이지 않으며, 전혀

장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정면에 네모꼴 감실을 얇게 만들어 문을 표시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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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은 네모진 돌을 마치 벽돌을 쌓아올린 모습으로 바닥에서 여덟개의 돌을 서로 맞대어 자리잡

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서탑은 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동탑이 무뚝뚝한 네모진 큰돌을 사용하여 쌓듯 올렸다면 서탑은 신라후기양식을 반영한 여성적인

미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배열과 흡사하며. 이중 기단 위 3층 몸돌을 올려두고, 윗 기단

몸체에 부처의 세계인 수미산을 표현하는 팔부신중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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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 설화가 전해지는

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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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는

신라 소지왕 당시의 설화가 묻어져 있는 곳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준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소지

왕이 궁 밖을 거둥하는데 쥐가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한다. 왕이 이 말을 따라서

연못에 가까이 오니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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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 을 화살로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에 맞고 죽었

죽었다 한다. 그 후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며,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 이 생겨났으며, 지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까마귀밥을 만들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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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와 관련하여 설화를 살펴보면 왕이 거동한 틈을타서 왕을 시해하려는 무리가 거문고 갑에

숨었는데 누군가 서출지에 당도한 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시해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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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불교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민간신앙과 신흥불교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

23대 법흥왕 때 비로소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고 그 이전에  불교가 진입하는 과정에 있었다...

서출지 주변은 온통  베롱나무와 연꽃이 지천에 피어나며 조선 현종5년(1664)에 임적이 만든 이

요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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