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모전전탑 여행
안동시하면 전통문화를 떠 올린다. 안동시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 중 하회탈로 알려진 하회마을을 둘러본 후 건너편 부용대에서 내려다 보는 절경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병산서원을 잇는 유교문화길이 스토리텔링으로 떠오르지만 오늘의 여행은 안동시에서 만나는 독특한 석탑인 모전전탑을 따라 여행하는 코스이다.
▲ 모전석탑과 모전전탑의 차이는 전탑은 벽돌모양으로 찍어내어 탑을 쌓은 것이고, 모전석탑은 벽돌모양처럼 돌을 다듬어 만든 것
이다. 위 사진은 안동 동부동 5층 전탑으로 벽돌모양으로 구워 만든 탑이다.
안동시 모전석탑으로 안동대사동모전석탑(문화재자료 제70호)이 있으며, 모전전탑으로 안동 동부동 5층전탑(보물 제56호),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제16호), 안동 조탑리5층전탑(보물 제57호) 등으로 오늘은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를 내려서면부터 시작된다.
남안동IC- 1.4km - 조탑리5층전탑 - 17.4km - 동부동 오층전탑 – 700m – 태사묘 – 6.2km – 제비원 – 7.8km – 신세동7층전탑 – 3.1m - 월영교 월영공원 순으로 여행 순이다.
조탑리5층전탑
보물 제57호
남안동IC를 내려선 후 914번 지방도로 들어서는 첫 마을 조탑본길에서 만날 수 있다. 마을로부터 떨어진 터에 자리잡고 있는 조탑리5층전탑은 지금 수리중으로 뒤편으로 마을과 앞쪽으로 작은 지천인 송양천이 흐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보수를 했던 전탑이 기울면서 2014년 12월까지 보수를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금 탑을 해체보수 중으로 이 탑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전탑 중에서 1층 몸돌을 화강석으로 만든 그 수법은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조탑리5층전탑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자리한 탑은 우리나라 석탑과 일본의 목탑, 중국의 전탑으로 경북 칠곡, 안동 지역에는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은 전탑이 유독 많이 있다. 특히 조탑리에 있는 5층 규모의 전탑은 보물 제57호로 감실입구에는 인왕상을 조각한 화강석판석을 벽에 끼우고 감실 중앙에는 각형 목심주가 확인되며, 기단부만 화강암으로 만들어 중심이 흩어러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탑에 사용된 벽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인동무늬와 당초무늬가 정교하게 벽돌에 새겨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지만 일본이 탑을 해체복원하면서 탑 최상층부에 시멘트로 발라버린 후 대정4년(1915)를 새겨 탑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에서 시멘트로 봉합해 버린 탑이 지금 복원중이 듯 일제는 우리문화재에 시멘트로 오히려 더 피해를 입혀 놓았다.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는 탑은 총 높이 8.65m로 상륜부는 분실되었다. 탑 주변에는 삼국시대연화문 수막새 3점 및 통일신라 소조불상 4점, 통일신라 연화문수막새 1점, 고려시대 암수 기와, 청자조각 및 조선 초기 분청조각이 절터로 추정되는 일대에서 발굴되어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안동동부동5층전탑
보물 제56호
경북 안동시 운흥동 안동역 역사 오른편에 자리한 동부동오층전탑(보물 제56호)및 운흥동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제100호)는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지역에서 유독 많이 확인되는 흙으로 구워 벽돌을 만든 후 쌓은 탑으로 5층 규모이다.
경북 안동시 운흥동 역사앞 오른편에 자리한 동부동오층전탑(보물 제56호) 및 운흥동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제100호)는 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지역에서 유독 많이 확인되는 흙으로 구워 벽돌을 만든 후 쌓은 탑으로 무려 5층 규모이다. 동부동오층전탑은 각 층에 감실을 두고 2층 남쪽에는 화강판석에 인왕상을 조각하고 끼워 넣는 독특한 방식을 하고 있으며. 치마 끝에는 나무를 얹고 기와를 올려 목탑양식이 절충된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안동 역 구내에 편입된 옛 법림사의 전탑으로 본래 규모는 칠층전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옛 법림사 전탑으로 동부동 5층 전탑은 높이 8.35m로 전탑에서 보이는 문양이 없는 벽돌인 무문전을 사용하여 조성하였는데 각 층에 감실을 두고 초층 남면에는 다른 감실과 달리 높이 47cm, 너비 55cm의 테두리를 두었으며, 2층 남면에는 신라 말기로 추정되는 2구의 인왕상이 조각된 화강판을 넣어놓았다. 동부동오층전탑에 사용된 흙벽돌은 길이 27.5cm, 폭 12.5cm, 두께 6cm이며, 총 탑의 높이는 8,35m, 기단 폭은 3.65m이지만 본래 탑 규모는 정확하게 알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으며 특히 한국전쟁 당시 파손된 것을 1962년 복원하였다. 상륜부 복발은 지금은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나 선조 31년(1598) 명나라 군인이 금동제였던 상륜부를 절취해 갔다고 한다.
탑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7층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무너져 선조 31년(1598)에 5층으로 개축하였다. 탑에 사용된 벽돌의 대부분이 무늬가 없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몇몇 벽돌에는 무늬가 보이는데 제각기 다른 문양이 확인된다. 아마도 보수과정에서 끼여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전탑 뒤에는 운흥동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제100호)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법림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높이 2.6m의 간결하고 소박한 당간지주로 한국전쟁 당시 상부가 파손되고 지주와 지면에 깃대를 받쳤던 주좌만 확인되고 있다.
태사묘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안동역 건너편 구.안동시장으로 가는 길 끝자락에 위치한 안동 태사묘는 고려 태조와 함께 후삼국 통일(936)에 앞장선 삼태사(김선평, 권행, 장정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일종의 사당으로 성종 2년(983) 안동부사에 의해 첫 의식을 거행하면서 “삼공신 묘”라 부르다 광해군 5년(1613) 태사묘로 개칭 후 증축을 계속 하였지만 한국전란으로 소실된 후 1958년 재건하였다.
태사묘 누각 아래로 들어서면 양쪽에 동재와 서재 그리고 중앙에 숭보당이 자리 잡고 뒤편으로 위패를 모시고 있는 태사묘가 있지만 접근을 할 수 없다. 숭보당 오른편 문으로 나가면 또 하나의 공간이 열리는데 삼태사 유물을 보관하는 보물각 그리고 삼태사와 관련된 차전놀이용 동채를 보관하는 차전각 외에 전사청과 임진왜란 당시 위패를 안전하게 모신 할머니를 기리는 안묘당이 있다.
이천동석불(제비원미륵)
보물 제115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등장했던 거대한 불상 이천동석불(보물 제115호)은 안동시에서 제비원 미륵불로 더 알려져 있다. 10m 화강암 수직석벽에 옷맵시와 손을 자연 석불을 최대한 이용하여 새긴 후 바위 정상에 2.5m 높이의 불상 머리 부분을 올려놓았다.
제비원 근처 일찍 부모를 잃은 연(燕)이란 처녀가 마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는데 워낙 출중한 미모로 마을 총각들부터 과거시험보로 가다 잠시 머무는 과객까지 사모하는 마음을 품을 정도였다 한다. 그런데 마을에서 자기만 아는 김부자집에 외동아들이 연이를 사모하였지만 갑자기 죽게 되고 염라대왕을 만나니 생전 악행을 많이 하여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나라고 하자 김부자집 외동아들은 소로 태어는 것이 싫어 다른 방법을 물어보니 마을에 사는 연이가 공덕을 많이 쌓아 놓았는데 그 공덕을 빌려 쓰면 환생할 수 있다하여 저승에서 빌어 사용하고는 환생하였고 이승으로 돌아온 김부자집 외동아들은 자신의 재산을 절반 나눠주니 연이는 그 재산으로 절을 짓게 되었다.
절이 거의 완성되던 날 법당 위 마지막 기와를 올리던 와공이 발을 헛딛고 떨어지는데 순간 와공은 제비가 되어 날아가자 절을 제비사, 연미사로 불렀으며, 38살이 되던 동짓달 스무사흘 날 연이가 죽자 천둥번개와 함께 법당 아 바위가 가라지면서 석불이 나타나자 연이의 혼백이 부처가 되어 태어났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애불은 다른 불상과 다리 곱상하게 생겼다.
대한불교 조계종 연미사가 지금 한창 중창불사를 하고 있다. 이천동석불 옆에 있던 전설의 사찰 연미사는 2008년 8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축을 자랑하는 법당이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석불 건너편 바위를 울바위라 한다. 앞에 있는 바위에 부처님을 새기고 자기에게는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자 바위가 울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바위 밑에 “나무아미타불” 한글과 한자를 나란히 새겨 놓았다, 이천동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제비원 석불 위편 왼편 벼랑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단층 기단 위 삼층을 올린 형태로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 한 것으로 높이가 약 3.5m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비원에서 비석 하나를 만날 수 있는데 연미사중수비이다. 제비원에는 앞쪽에 연구사, 뒤쪽에 연미가 있어 제비의 모습이라 하였다. 제비원에 얽혀있는 구전으로 명나라 이여송이 나온다. 임진왜란이 종결되자 이여송은 전국에 있는 장군 혈을 찾아 맥을 끊어놓기 시작하였는데 하루는 안동 제비원을 지날 무렵 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아 주변을 살펴보니 큰 바위에 불상이 있는 터라 이여송은 미륵불의 목을 쳐서 떨어뜨리자 그제야 말이 움직였다 한다. 당시 흔적으로 가슴에는 핏자국과 왼쪽 어깨는 말발굽 흔적이 있으며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목을 봉합하면서 흔적을 가리기 위해 염주를 목에 두른 모습처럼 만들어 놓았다 한다.
이천동석불은 고려시대 자연석 암벽에 목과 얼굴을 제외하고 조각 후 그 위에 얼굴을 올린 마애불로 요즘말로 미소년 얼굴이다. 고려시대 제작된 불상으로 높이 9.95m, 너비 7.2m 암석에 2.43m 높이의 얼굴을 올려놓아 총 12.38m 크기이다. 이천동석불은 부처 얼굴치고는 전국에서 가장 선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은 흔적이 많이 지워진 듯 보이지만 이 불상에 입술을 비롯하여 붉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듯하여 멀리서 보면 햇살에 반사되는 모습이 흡사 분단장을 한 곱상한 미남형이다. 석불은 본래 삿갓을 쓰고 있었지만 파손되어 지금은 육계가 노출되어 있는데 얼굴 두상을 전체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측면에서 보면 훼손되어 이상하게 보인다. 제비원 앞은 성주풀이의 본향으로 알려지면서 무속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곳을 2007년 1월 주변을 정리하고 솔씨공원 조성을 시작하여 2008년 11월 공사를 완료하였다.
안동신세동칠층전탑
국보 제16호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국보 제16호)는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조성한 국내에서 가장 큰규모와 가장 오래된 전탑으로 1층 기단 위 7층 탑신을 올린 형태로 전탑 총 높이 16.8m, 기단 폭 7.75m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탑 아래 지상부에는 팔부중상 및 사천왕상을 새긴 판석을 동 남 북 3 면에 6장씩 세우고 정면에 단층기단을 두고 상륜부에는 본래 있던 금동제 노반은 유실되었으며, 1487년 개축 되었다. 전탑 남쪽에는 계단과 감실을 만들어 두었으며 탑신에 기와를 올린 흔적이 남아있어 목탑을 모방한 전탑으로 보여진다.
월영공원
월영교-안동석빙고-월영대-안동객사-월영공원
안동댐 수면위에 살포시 드리워진 월영교의 반영은 호수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 올 만큼 아름다운 목책교는 우리나라 목책교 중 가장 긴 다리로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월영교는 이 지역에 살았던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리는 특별한 장소이다. 450년 전 고성이씨 이응래의 무덤에서 발견된 한 장의 편지는 현대판 사랑과 영혼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애잔한데 요절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구절구절이 써내려 가고 있는 편지와 함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 한 켤레를 삼아 보낸다. 지금의 월영교는 지어미의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미투리 모양을 담아 다리를 형상화하였다.
경북 안동시 상아동 물 전시관 옆으로 난 목교는 2001년 착공하여 2003년 개통된 후 2007년 보수, 2009년 다시 재개통하였다. 길이 387m, 폭 3.6m이다.
월영공원은 안동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지역의 보존 가능한 가옥을 옮겨다 놓은 곳으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는 곳이다. 월영교를 지나면 언덕을 따라 석빙고를 시작으로 월영대와 객사를 거쳐 월영공원내 안동시립민속박물관을 비롯 안동민속촌이 자리잡고 있다.
안동 석빙고는 보물 제 305호로 본래 옛 예안면 동부리 산기슭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수물지역으로 부득히 이곳 성곡동으로 옮겨 온 것이다. 안동 석빙고는 예안군 읍지인 "신성지"를 통해 현감 이매신이 조선 영조 13년(1737)에 부임하여 3년 재임기간 중 사재를 털어 석빙고를 축조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일대에 은어가 많이 잡혀 나라에 진상할 목적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월영대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중앙에 사각홈을 파고 월영대를 새겼다. 본래 이 바위의 바로위에 "금하제"라는 정자가 있었다 전하며, 월영대는 1972년 안동댐 수몰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선성현 객사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조선 숙종 38년(1712) 예인현감 김성유가 개수한 조선시대 전형적인 한일자형 객사로 객사 중앙건물에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올렸던 곳이며, 객사로 활용 되었다.. 객사 중앙은 정면 5칸, 측면 3칸, 양쪽으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을 하고 있는 총 6칸 대청에서 1칸씩 툇마루를 두고 있다. 본래 예안면에 있던 것을 1976년 수몰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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