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전여행/01월 여행

일 만 마리 금어가 사는 " 만어사 " 가는 길

허영꺼멍 2014. 1. 5. 09:51

 

 

 

 

 

성냥갑 같은 서랍을 열면 미처 다림질을 끝내지 못한 아픔이, 이제는 무관심을 보일 때도 되었는데 창 밖 얼룩이 새파랗게 질려 사선으로 내달리는 날이면 나무 끝 뭉텅하게 매달린 화약은 결국 스스로 몸을 불사르고 결국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 간다. 춥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결국 하루를 무의미하게 사는 것이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길을 나서본다.

 

 

길을 떠난다.

일만마리 물고기의 안녕을 일일이 물어보기 위하여,

낙동강 자락을 너머 산에 산다는 전설속 만어석을 찾아서

 

만어사

독수리를 만나다.

낙동강에서 만어사까지 약 10.3km이다. 출발하여 잠시 삼량진교 앞 마사교에서 엉뚱한 곳을 향하기도 하였는데 눈에 독수리 무리가 들어왔고, 몇 일전 독수리를 만나기 위해 화포천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여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던 터라 무척 기쁜 마음에 만어사로 가던 길을 잠시 잊어버리고 독수리 앞에서 한동안 넋 놓고 있었다. 날개에는 41번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되는 독수리였다. 무거운 몸집으로 곧장 하늘을 차고 날지 못하는 독수리는 앞으로 성큼 한 발짝 옮긴 후 날아오른다. 하늘의 제왕답게 급하게 날아오르는 법이 없다. 하늘을 빙빙 선회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58번 국도를 이용하여 삼량진교를 건너기 전 마사교차로 오른쪽 들판에 독수리 무리를 포착하여 잠시 독수리를 따라 무척산 방향으로 이동해 보았다.

 

얼마전 독수리를 만나기 위해 화포천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던 독수리로 인해 여간 아쉬운게 아니였던터라 반가운 마음과 탐조하는 중 가만 살펴보니 독수리 무리중 한마리는 국제 보호 숫자가 부착되어 있었다.

 

 

 

철교를 바라보며

 

낙동강 12경중 제 3경으로 은빛물결의 울렁임(김해밀양)이 있다. 그리고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도로가 물빛에 흡수되듯 빨려 스쳐간다. 낙동강 3경에서 만나는 딴섬 생태누리외에도 낙동강을 가로 질러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비롯, 철교까지 총 5개의 교량이 낙동강 위에 놓여 있다.

 

▲ 58번 국도를 이용하여 김해 생림면에서 밀양 삼량진으로 진입을 하는 삼량진교는 왕복 4차로이다.

 

 ▲ 금곡로를 따라 마사교를 건너 삼량진교를 통과하는 일명 콰이어강 다리는 편도 1차선으로 건너편 차량진입을 확인하고 반대편

에서 주행을 하여야 한다.

 

  

 

 ▲ 콰이어 다리 전경

 

 ▲ 삼량진교

 

 

 ▲ 삼량진을 거쳐 한림정으로 향하는 삼량진 고속철교

 

 

       

 

 

삼랑진을 거쳐 한림정으로 향하는 삼랑철교, 금곡로를 따라 마사교를 건너 삼랑교를 통과하는 일명 콰이어강의 다리. 생림 마사로를 따라 이동하다 마사교회에서 건너는 철교, 58번국도 삼림대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낙동대교이다.

 

 

 상부동 마을에서

후조창유지 비석군을 만나다.

 

밀양과 양산, 김해의 접근 지역이자 경부선과 경전선이 머물다 가는 철도의 중심지이다. 밀양강이 낙동강으로 합류되면서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 하여 삼랑진으로 불렀다. 낙동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포구 중에서도 삼랑진 포구는 큰 포구로 영조41(1765) 후조창이 설치되었으며, 지금도 그들의 공적비와 불망비가 상부동회관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후조창유지 비석군이라 하며, 그 위로는 삼강사 비가 자리하고 있다.

 

  

   

후조창유지 비석군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93호이다. 밀양시 삼량진읍 삼랑리 612번지 상부동회관 옆 마을입구에 위치해 있다. 옛 조창이 설치된 곳으로 조창을 관리하던 부사, 관찰사 등의 역대 관원들의 유애, 선정비, 불망비로 8 비석이 나란이 서 있다.

 

조창이란 수로를 통해 조정에 보낼 물품을 보관하던 곳으로 뱃길에 위치해 있다. 비석으로는 부사 김인대 애유애비, 부사 홍후이간 영세불망비, 관찰사 조상국인영 조운정 영세불망비, 차사원겸 도호부사 조공운표 영세불망

비, 부사 이후정재 선정비, 순찰 김공세호 영세불망비, 부백 이후철연 영세불망비, 부사 이후찰연 영세불망비이며,영조 42년(1766) 부사 김인대가 삼랑진에 후조창인 삼랑창을 증설하여 조선 15척으로 밀양, 양산, 현풍, 창녕, 영산, 울산, 동래 등 인근 7개 군현의 조세를 밀양부사 책임하여 징수하여 왕정으로 수송, 병납하는 것은 제포만호가 담당했다고 한다.

 

 

      

 삼강사의 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이다. 후조창유지 비석군 위에 위치한 고택의 주인으로 김종직(1431~1492)의 문인이던 여흥, 민씨, 5형제의 효성과 우애,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민씨 오형제는 중종5년(1510) 삼랑루가 있던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함께 살면서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천거하였지만 사양하였고 그 정신을 기려 오우정이란 정자를 지어 후세에 남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명종 18년(1563) 지역 선비들은 오우사라는 편액을 내걸고 사당을 지어 봄과 가을에 제례를 지내며 따로 비석을 만들어 효행과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으로 정자와 사당을 비롯 모두 소실되어 버렸고, 숙종 28년(1702) 다시 서원을 짓고, 영조 51년(1775) 오늘날의 비석을 세웠다 한다.

 

 

삼랑진 송지시장

삼랑진 시장은 4, 9일이다. 옛날에는 멀리 양산 사람이 시장을 올 만큼 큰 시장 이였지만 도로가 생겨나면서 시장은 줄어들었고 시장을 찾는 사람 역시 줄어들어 이제는 겨우 장터를 열어갈 정도로 축소되어버렸다. 상인들은 교통편이 좋아져 부산 양산이 가까워 다들 그곳으로 가버리니 어쩔 수 없다 말씀하신다. 한편에서는 아예 도로에 횟집을 만들어 가까이 가보니 민물 붕어와 잉어가 겨울철을 맞이하여 횟감으로 즉석에서 포를 뜨고 있었다.

 

 

       

우리네 삶의 과거에도 그러했다. 겨울이 되면 늪지를 찾아가 꽁꽁 얼어있는 얼음 위에서 가만 보면 추운 날씨에 몸이 둔해진 잉어, 붕어, 가물치 등이 슬금슬금 움직이면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가래를 그 위에 올려놓고 잡아 횟감으로 먹던 주민들을 보았는데 당시 다들 간디토마로 고생들 하셨다. 그런데 삼랑진 송지시장에서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붕어와 잉어를 구입하였고 아예 도로에서 손질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아찔하였지만 이곳 시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닌가 싶었다.

시장에서 겨울을 맞아 잉어부터 붕어까지 칼날에 쓰러진다. 만어산에 사는 1만 여 마리 중 몇 마리는 오전나절 시장에서 죽임을 당하고 지저분한 칼날에 살점 도려내어 접시에 오르고 투박한 손길은 주저 없이 초장에 찍어 입속으로 넣는 겨울 아스팔트 위 은빛 고기비늘은 왜 그리도 반짝이던지 서둘러 만어사로 향해본다. 만어사 일만의 물고기는 안녕하신지…….

    

 

          ▲ 다양한 곡물을 팔고 있는 노점상           ▲ 갈치를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              ▲ 시장가면 있는 도너츠

 

▲ 시장 외곽부근에 꼼장어구이집이 있으며, 허름한 공간으로 들어서면 선지국수를 팔고 있다. 물런 선지국밥과 연탄구이꼼장어

를 팔고 있다. 선지국밥은 가격이 2014년 1월 현재 4,000원이다.

 

 

 

만 어사

산길로 접어들어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 운전이 휠 쉬워졌다. 도로를 따라 오르다 만어사 이정표를 보고 들어서면 절간 주차장이며 곧장 일만 마리의 만어석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안녕하시지 여쭙고 싶었던 일만의 물고기는 비늘을 잃어 목이 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두들겨 훼손해 놓은 모습과 큼직하게 적어 놓은 이름들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만어산 정산부근에 위치한 만어사 만어석은 비가 오는 날이면 만 마리의 물고기가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고 헤엄치는 착각에 빠져든다. 너덜겅 사이 스며든 빗물이 수증기 되어 올라오는 모습은 보기 드문 풍경을 자아내고 운무 속에 빠져든 만어사 삼층석탑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음의 빗장을 열어놓고 너덜겅 사이를 거닐어 보면 앞선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와 길을 인도하였는지 돌 표면이 반질반질하다. 전설 속 물고기들은 입을 수면으로 내밀고 헤엄쳐 주변으로 몰려드는 착각은 비오는 날 만어사에서 만날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빗방울은 뽀송뽀송하고 감미로운 재즈음악을 바위에 튕기며 연주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 말사로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4번지에 위치한 만어사는 서기 1181년 동아보림 대사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며, 주변 지형은 지질학적으로 2억 년 전 고생대 말 중생대 초의 퇴적암 청석 즉 녹암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산길이 가파르다 싶을 즈음 너덜겅 상부 작은 암자를 연상케 하는 만어사 대웅전이 자리 잡고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보물 제466호 만어사삼층석탑 1기가 도량을 지키고 있다. 만어산(670m)에 자리한 천년고찰 만어사는 신라시대 왕이 찾아와 불공을 드린 장소로 약 5천여 평 일대 돌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돌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가락국 당시 용왕의 아들이 수명을 다하자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물고기 1만 마리를 데리고 전국을 찾아다니다 만어산에 도착하여 용왕의 아들은 미륵바위가 되어 미륵전을 지키고, 물고기는 돌로 변했는데 이를 만어석이라 부르고 있으며, 돌을 두들기면 맑은 쇳소리가 난다하여 종석이라고도 한다. 만어사는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에서 만 마리의 물고기로 비유한 이후 소설가 유익서씨의 바위물고기가 알려지면서 더욱 발길이 늘어났고 최근 영화 청풍명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신비한 바위를 찾는 연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미륵바위가 영험하여 기도하면 아들을 점지한다는 속설과 나라가 어려우면 땀을 흘린다는 속설이 있다. 만어사의 신비한 이야기는 또 있다. 육지 그것도 산중턱에서 부처의 가사를 빨았다는 전설의 우물은 바다의 조수 영향에 따라 물의 양이 변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 마리의 만어석은 신기하게도 서로 두들기면 쇳소리를 내다. 쇳소리를 경험하려는 많은 여행객은 조용해야 할 사찰 앞을 돌로 찧으며 소리를 듣기위해 길 가장자리 여러 군데 자국을 남겨 놓았다.

 

 

만어사 전설은 삼국규사와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신라시대 왕이 찾아와 불공을 드린 장소로 이용되었다 전하며, 경내 유일한 보물로 만어사 법당 앞 만어사삼층석탑(보물 제466) 또는 보현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기단1층 위 3층 탑신을 올린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고 탑의 머리장식으로 연꽃모양의 보주를 올린 형태로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의 기록을 빌려 고려 명종 11(1181)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위치와 대웅전의 위치가 지금은 서로 방향이 맞지 않다는 것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는 대웅전 복원과정에서 탑 앞으로 전각을 만들면서 대웅전의 위치가 바뀐 결과로 추정된다. 또한 탑을 두들기면 탑에서도 신기하게 종소리가 들린다 전하지만 확인이 어렵다.

 

    

산기슭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용왕전 문안인사 여쭙고 하나 둘씩 제각기 자리를 찾아 내려앉는 만어석은 그야말로 전설이요,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에 기록한 일연스님의 생각이 너덜겅 돌무덤의 소리를 만 마리 물고기로 비유하였을 것이다.

 

만어사에 사는 만 마리의 물고기는 유익서씨의 바위물고기 소설을 펼쳐보기 그 이전부터 살아왔다. 해발 670m 산 중턱에 동해의 용왕 아들이 만 마리의 물고기와 함께 만어사를 찾아 불교에 귀화하면서 용왕의 아들은 미륵바위가 되고 함께 데려온 물고기는 만어석이 되어 조금 멀리서 보면 흡사 물고기가 수면 위 고개 내밀고 있는 형상이며, 미륵불의 붉은 얼룩은 자연현상으로 바위에 미륵불을 자연스럽게 그려 놓아 이적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만어석을 두고 한때는 편경을 만들기 위해 세종대왕 시절 이곳의 돌을 가져갔다는 설과 일본이 자기네 나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신비한 곳이라 많은 여행객이 찾아오는 곳이자 밀양의 3대 미스터리 중 한 곳이다.

 

 

 

 

 

 

 

 

만어석을 두들겨 보면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올 것 같지만 정작 만어석은 다르다. 어떤 것은 맑은 편경소리가 나는가 하면 어떤 것은 둔탁하기만 하여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며, 워낙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돌을 두들겨 훼손하는 바람에 사찰에서"만어석에 이름을 새겨 훼손하면 이를 보는 많은 이들의 저주대상이 되어 세상살이에 많은 장애를 받게 된다…….는 협박성에 가까운 내용이 적혀 있다.

 

 

 

만어석 일만의 물고기를 둘러보고 미륵전에 들러 잠시 눈인사를 청하고 산길을 내려서니 발자국소리 끝자락에 맑은 편경소리가 오늘따라 한 박자 느리게 들려온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 저녘무렵 이곳을 찾아와 일만의 황금물고기를 만나 안녕을 물어봐야 겠다.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