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협곡열차
어린 시절 경전선 철도변에 살면서 기차소리를 알람처럼 듣고 자랐다. 가끔 지축을 흔들고 기차가 지나갈 때면 잘 나오던 TV 화면이 노이즈로 들리지 않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무신경할 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았지만 어쩌다 친구가 찾아오는 날이면 기차소리에 깜짝 놀라는 친구 녀석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라면서 완행버스보다 기차를 이용하여 인근 도시로 나가곤 하였다. 지금이야 힘 좋은 디젤로 못 오르는 곳이 없지만 과거 기차는 언덕길 터널을 통과하려면 시꺼먼 매연을 굴속에 뿜어내면서 힘들어 하면서 겨우 오른다. 설 추석 객실에 사람이 가득 차 좌석이 없는 날이면 화물칸에라도 타고 다녔던 그 기차를 편리한 승용차시대를 살면서 잊혀 버리고 살았는데 백두대간을 통과하는 협곡열차 이야기가 주변에서 자꾸 흘러나오면서 한번 그 열차를 타 보기로 했다.
▲ 분천역이 위치한 마을
백두대간을 달린다는 협곡열차를 타기위해 새벽잠 설쳐가며 봉화로 달렸다. 동트기 전 하늘에서는 계속 눈이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이미 강릉지역은 폭설이라 봉화까지 갈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그러하다하여 과속을 하여 달려 갈 수 없는 도로 사정이라 서행을 하면서 봉화군 분천역으로 향했다. 영주역에서 08시25분 출발한 협곡열차는 09시30분 분천역에 도착 후 분천역에서 10시00분 출발을 하는 첫차를 타기로 했다.
분천역에 도착하다.
봉화군으로 접어들어 36번 국도를 따라 소천리 현동역 근처에 도착하니 조금씩 내리던 눈이 갑자기 함박눈이 되더니 목적지를 불과 2km 남겨둔 내리막 길 부터는 눈길이 이어졌다. 안전장구를 준비하지 않은 탓에 서행을 하면서 분천역에 도착하니 8시 조금 넘었다. 주차장은 눈이 덮여 텅 비어 있었고 급하게 주차를 하고 분천역을 향해 뛰어야 했다. 협곡열차는 인터넷 예매를 하는데 갑작스런 일정으로 인하여 예매 없이 분천역에서 매표를 하려고 하였기 때문. 승차표가 없다면 무임승차라도 감행해야 하는 상황 이였는데 다행스럽게 빈 좌석이 있어 표를 구매하고 역사를 돌아보니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역사가 동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였다.
▲ 기차를 타기위해 새벽잠 설쳐 온 장거리 길이라 분천역 앞 식당에서 속풀이 북어국으로 해결
새벽을 가르고 달려온 길이라 배고픔이 밀려왔다. 시간도 보내고 속도 풀 겸 식당에 들어가 속풀이 북어탕을 시켜놓고 주인장과 난로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본래 식당건물이 옛날 지서였던 곳으로 지금도 담장에는 순경이 총을 겨누던 네모난 구멍이 있는 담장을 허물지 않고 두었다며 가리켜 주신다. 한때 이 마을에는 벌목한 나무를 옮기던 목도꾼이 머물던 당시 제법 인구가 있었지만 벌목도 석탄도 화전민도 다 떠난 뒤 공허한 메아리만 들리던 산골에 백두대간 열차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달라졌다며 농담이신지 진담이신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인부들이 지금은 다 분천역 주변에서 식당을 하여 인부를 외부에서 데려와야 할 처지라며 농사짓기 힘들다 하신다.
분천역 둘러보며
▲ 종이로 접어 만든 작은 소품처럼 앙증스런 분천역
한국 스위스 수교 50주년 기념 기차역 자매결연 한 분천역을 끼웃거린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흔적도 남겨 본다. 열차가 없다면 갈수 없다던 그곳, 백두대간 절경을 좁디좁은 협곡을 뚫고 절벽을 관통하면서 느끼는 대한민국 오지로 가는 협곡열차의 애칭이 아기 백호 열차명이 V-train으로 여기서 ‘V’는 vailey(협곡)의 약자이며, 협곡의 모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 분천역에서 만난 호랑이가 소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며 옛 이곳 나무를 나르던 사연을 말해 줄듯
영암선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태백광산지역의 지하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회사와 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철로로 1949년 4월 8일 착공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55년 12월 30일 완공된 철로로 당시 교량 55개소, 터널 33개소 가 만들어졌는데 공사구간의 약 20%를 차지하는 공사였다고 한다.
▲ 분천역 소박한 풍경 매표소 | ▲ 협곡열차 출발 분천역 | ▲ 분천역사 마스코트 백호 |
스멀스멀 기차가 역사로 진입한다. 첫 느낌은 백호무늬를 한 열차와 관광을 위한 열정을 담은 기차의 와인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든 세상을 다 뚫어 볼 듯 큼직한 창문이 달린 기차가 역사로 들어와 출발을 대기한다.
예약을 하지 않은 탓에 서둘러 역사에 들러 '혹 여유 좌석 있나요?' 잠시 후 몇 좌석 있어요~
▲ 협곡열차 운임은 분천~철암 편도 요금이 8,400원으로 총 27.7km 운행하며, 운행시간보다 간이역에서 하차하여 머무는 시간이 더
많고, 달리는 속도가 느려 약 1시간 10분이 소요되며, 매일 3회 왕복 운행을 하고 있다.
역 구내 입환용 기관차였던 4400호대 기관차는 백호의 상징인 줄무늬를 도색하고 여행하면서 조망하기 좋은 창문과 친화적인 열차 내부와 외부는 와인색상을 한 차량 3동을 연결하였다. 친환경 지역을 달리는 만큼 열차에는 현대인의 편리함을 위한 에어컨이나 난방히터와 안락한 의자, 화장실마저 없다. 추위는 석탄난로를 칸마다 놓아두었고, 더우면 사람 앉은키 보다 약간 위쪽에 창을 열도록 만들어 두었다. 화장실은 중간 중간 간이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재미난 것은 열차에 달린 선풍기와 산간지대를 달리다 보니 낙석과 산을 통과하는 터널이 많은데 그때마다 기차 천장 야광스티커가 켜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협곡순환열차
객량이 3칸으로 1호차는 56석, 2호차는 46석, 3호차는 56석이며, 실내로 들어서면 중간에 큰 난로와 함께 의자가 배치되어 있는데 가로, 세로 제각기 독특하게 창문을 바라보며 달리는 열차로 만들어져 있었다. 커피만 들고 탄다면 움직이는 훌륭한 카페가 아닐까 싶을 만큼 분위기는 좋았는데 문제는 좌석을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다. 열차가 화통으로부터 순서가 1-2-3 매겨 있지만 화통이 반환점에서 반대로 달려오면 3-2-1이 되므로 3호차 표를 들고 제일 마지막으로 간 것이 내 실수만은 아닌 듯하다.
▲ 기차를 타면 전면 유리를 설치하여 조망권을 확보하고 중간에는 난로를 피워 난방을 하고 있다. 의자는 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좌석과 일반석이 있으며, 중간에 스넥코너가 있어 간단한 것을 구입하여 먹을 수 있다. 창가를 따라 테이블을 만들고 컵받침이 있는
여행을 위한 전용 설계된 기차이다.
▲ 분천역 전경
▲ 분천역에 때마침 내린 눈으로 고요한 세상을 잠시 펼쳐 놓고 있다.
분천역 출발하다
분천역을 출발한다. 육중한 화차를 이끌던 덜컹 꺼리는 충격이 거의 없었다. 특수 제작된 협곡열차는 분천역을 떠나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간이역을 가진 코스를 따라 이동을 하면서 비경을 덤으로 보여준다. 기차는 느리다. 속도가 겨우 30km 로 이동하여 창가에 앉아서 황지연못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 풍경을 깨알같이 렌즈에 담을 여유가 있다. 곳곳에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작은 터널을 수없이 통과하면서 밤의 정적을 그려낸다. 기차는 야광불빛이 반짝이며 터널을 빠져 나왔다 이내 협곡을 따라 덜컹 꺼리며 달려간다.
양원역 도착
제일 작은 간이역 양원역에서 잠시 정차를 한다. 천막아래 ‘막걸리 한잔 천원‘이 눈에 들어온다. 특산물을 파는 곳이라 하여 승객들이 앞 다투어 장터로 몰려가 보지만 다들 농산물 구입보다 먹거리에 더 성의를 보인다. 막걸리 주인은 시간이 있다며 돈 내고 마시라 흥겹게 외친다.
대충 만들어 놓은 듯 보이는 약 두어 평정도 대합실이 전부인 양원역을 누가 이용하는지 궁금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역을 중심으로 동쪽에 5가구와 서쪽에 40여 가구가 모여 산다고 하니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정식역이 아니라 주민의 편리를 위해 임시로 정차하는 임시역인 것인데 사연이 있었다. 본래 양원역은 존재하지 않은 역사였는데 1988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마을 소년이 탄원서를 보냈고 그 결과 수용되어 기차가 정차하게 되었다 한다.
양원역 출발
양원역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입장한 승객들로 인해 순식간에 먹자여행을 바뀌었다. 가져온 먹거리를 꺼내놓고 먹는 사람, 출발할 때 사들고 온 군고구마를 먹는 사람, 철도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밀감과 김밥 그리고 삶은 계란을 먹는 사람들로 흥겹다.
낙동강을 눈 아래 두거나 곁에 두고 기차는 달린다. 덜컹 덜컹거리며 기차는 본격적인 여행 속으로 점점 매료시킨다. 좁은 협곡을 통과하면서 기차소리는 심장을 쿵 쿵 두들긴다. 짧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농담반 진담반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누군가 터널을 통과할 때는 키스타임이라며 말하였고 거짓말처럼 안내 방송이 나온다. “ 기존 철로 구간에서 가장 긴 터널을 통과 합니다” 그리고 야광별빛 아래 긴 터널을 울림소리가 들렸다.
2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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