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해바라기와 고래를 만나다.
선암공원으로 네비에 입력하고 출발!! 그런데 길이 이상하였지만 일단 최첨단 시대이고 보면 문명인 답게 도구 사용이 능숙해야 하는 법이라 믿고 따르면서도 계속 이상하지 않는가.. 결국 선암공원으로 가자던 네비는 나를 성암공원에 세워 놓았다. 그 순간 답답함이람.. 결국 네비를 뒤로하고 스스로 길을 찾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네비로는 선암저수지 또는 선암호수공원이라고 입력해야 된다는 사실) 그리고 도착한 선암호수공원!
▲ 선암공원 호수를 배경으로 피어있는 해바라기
선암호수공원을 찾은 이유는 몇 해 전 공원 내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끌리기 시작하였지만 매년 찾았을 때 해바라기는 없었고 올해는 해바라기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다 한통의 연락에 냉큼 떠났다.
▲ 햇살에 씨앗이 여물고 있다.
해바라기는 큰 규모가 아니다. 선암호수 진입로 주변 산책길 일부에 심어진 해바라기를 찾는 이유는 국내 해바라기 단지 대부분이 꽃대가 여럿인 계량종이지만 이곳 선암호수공원 해바라기는 어린 시절 밭둑에 심어지거나 장독대 뒤에서 키만 멀대같이 쑥쑥 자라 하나의 큰 꽃을 피우고 해를 따라 움직이던 그 해바라기라는 게 호감을 키웠다.
▲ 좁게 화면에 담아 본 해바라기
도열하듯 줄지어 서 있는 해바라기는 딱 좋을 만큼 꽃을 피웠고 사람들이 내려서지 못하는 탓에 해바라기도 훼손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방끗 웃어 보였다. 해바라기가 있는 입구를 출발하여 조금 더 안으로 이동하면 연꽃단지가 나온다. 올해는 백련만 피어나 고요함을 자아낸다. 연꽃단지 옆으로 습지지역이 이어지며, 선암호수공원을 돌아오는 산책길과 습지지역을 따라 작품을 만나며 여행을 하는 짧은 코스로 이어진다.
▲ 선암호수공원 연꽃단지
▲ 하얀 백련이 곱게 피어나고 있다.
▲ 습지지역으로 향하는 나무데크 길
▲ 탐방로 옆에 있는 꺼꾸로 집
▲ 귀신고래 모형
▲ 선암호수공원 탐방로
▲ 습지지역
▲ 습지지역 작품 전시
▲ 제8회 한마음미술대전 특별상. 유현후
▲ 고래를 꿈꾸다 / 차지만 수면위로 솟아 오르는 고래의 역동적인 모습을 입체화한 작품
▲ 축복의 합창 / 조무현 울산의 자랑인 장생포는 포경의 근거지로 유명했던 곳으로 생태도시 울산을 표현하였다.
▲ 고래의 꿈 / 쩌우용(중국) 지구를 품고서 평화와 사랑을 꿈꾸는 고래를 형상화 함.
선암호수공원은 40년간 철조망을 제거하고 호수를 돌아오는 산책로를 열어 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종교를 주제로 만든 테마공원, 서바이벌장, 운동장 등 시민공원으로서 역활을 해내고 있는 공원이기도 하다. 특히 차량진입이 호수 내 가능하여 산책하기 좋다.
▲ 울산 고래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포경선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
선암호수공원에서 약 7.2km 더 달리면 장생포 고래박물관이 나온다.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인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1986년 포경금지 이후 잊혀져가는 포경의 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2003년 12월 설계를 완료 및 2004년 1월 착공하여 2005년 5월 31일 지상4층, 부지면적 6,610㎡, 연면적 2,611㎡에 1층 어린이체험관, 2층 포경역사관, 3층 귀신고래관. 고래해체장. 복원관, 4층 전망대를 개관하고 야외에는 포경선 실물을 전시하고 있다. 고래박물관 옆에는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 고래박물관 전경
전시중인 수염고래 종류인 브라이드 고래뼈 표본은 길이 12..4m, 머리 3m, 무게 850kg으로 2000년 일본 고래연구소가 북태평양에서 잡아 연구용 표본으로 일본 교토 니시오 제작소에 의뢰하여 2001년 8월부터 2년간 모래속에 묻어 살을 제거하고 4개월간 섭씨 40-45도의 물에서 기름을 제거한 표본 및 1962년 2월 일본 와카야마현 타이지 앞바다에서 수컷 범고래를 포획하여 1970년 타이지박물관에서 조립한 것으로 일본에서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
▲ 고래박물관 전경
▲ 장생포항 전경
▲ 야외 고래관련 작품
▲ 포경선에서 고래를 향해 작살을 날리는 모형
▲ 고래 작품
▲ 제6 진양호 포경선
포경선 제6진양호는 실제 고래 잡던 포경선으로 1977년 1월 15일 건조되어 1985년 12월 13일 까지 고래를 잡다 고래포경이 어려지며 방치되던 선박을 2005년 6월 복원 수리하여 박물관 옆에 전시하고 있다. 배는 길이 30M, 너비 5,4M, 높이 2.6M, 무게 89.54톤이다.
▲ 채프맨 앤드류스
로이 채프맨 앤드류스(1884.1.26.-1960.3.11.)는 미국 출신으로 뉴욕 박물관에 근무하며 고고학자를 꿈꾸던 중 1912년 장생포에서 1년간 머물며 울산 앞바다를 회유하는 고래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한국명 한국계 귀신고래로 명명되었다.
박물관 입구 천장에는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고래를 잡아온 포경국가였음을 말해주는 반구대암각화를 실물크기로 재현하였고, 야외에는 1985년까지 직접 장생포를 거점으로 고래를 잡던 포경선 제6진양호(1977년 건조)가 전시되어 직접 승선을 하여 체험하도록 하였으며, 뒤편으로는 우리나라에 고래가 회유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천연기념물 제126호 울산극경(쇠고래)회유해면 비석이 있다.
▲ 울산 귀신고래 회유 해면 상징비
안내글을 옮겨보면 “ 귀신고래는 해안 가까이 살면서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처럼 나타난다 하여 귀신고래로 불리운다. 울산 귀신고래 회유 해면은 한국계귀신고래를 비롯한 대형고래류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정보가 1962년 12월 3일 문교부 고시 제167호로 [울산극경해유해면]을 국가지정문화재호 명칭하고 지정문화재 소재지를 강원도, 경상남북도 해안일원으로, 관리자도 강원도, 경상남북도로 지정하였고, 이 당시 지금의 비석이 세워졌다.
이후 울산광역시는 2008년 9월 19일 “극경”이 귀신고래를 뜻하는 일본 한자어 표기로 우리 국민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칭 “극경”을 “귀신고래” 로 소재지와 관리자도 울산광역시로 포함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건의하였다. 마침내 2008년 11월 18일 [울산 귀신고래 회유 해면]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소재지를 강원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해안 일원으로 하여 문화재청 고시 제2008-16호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명칭 등 변경을 고시하였고, 2009년 2월 6일에는 관리단체를 강원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로 하여 문화재청 고시 제2009-9호로 변경을 고시함으로써 한국게귀신고래가 회유하는 해면의 이름을 제대로 찾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을 관람하려면 고래박물관과 따로 매표를 해야 한다. 4D영상관과 같이 위치해 있는 별관은 고래박물관 입장료 어른 기준 2,000원이며, 고래생태체험관은 5,000원 그리고 영상관은 3,000원으로 이 세 곳을 다 돌아보는 패키지 입장료는 9,000원이다. 무료입장은 65세 이상 노년층, 36개월 이하 유아,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애인 3급은 국가나 지자체에서는 보호자 1인까지 무료이지만 여기서는 장애인에 한하여 무료를 시행하고 있다. 나라법이 무시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고래생태체험관에는 고아롱, 장꽃분, 고다롱, 장두리 등 4마리의 돌고래는 고래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다. 고래주민등본표를 보면 고아롱(091008-3850801)과 장꽃분(091008-4850802)은 부부이며, 고다롱(091008-3850804)은 아들 그리고 장두리(120322-4850802)는 처제로 표기되어 있다.
▲ 고래 주민등록증
고래와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포경역사를 말하려면 동해바다에서 큰 고래가 회유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해야 되지만 어디를 찾아봐도 우리나라에 고래에 관한 최근 기사가 없다. 단지 그물에 걸려 붙잡혀 끌려나온 고래나 간혹 무리에서 이탈한 고래가 육지 가까이서 발견되는 것이 대부분으로 그것조차 가뭄에 콩나듯 어렵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고래이기 때문에 감히 우리나라가 포경국가라고 한목소리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반구대암각화에는 선사시대 당시로 추정되는 엄청난 암각화가 벽면을 자리 잡고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주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암각화가 고래라는 점과 고래의 종류가 정확하게 분간된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 우리나라는 포경국가의 선두주자였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고래암각화는 세계에서 몇 곳 발견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노르웨이, 일본이 있지만 고래그림은 겨우 몇 마리에 불과하며 그 종류도 알아보기 힘들다.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우리는 고래를 통해 아이를 낳고나면 미역국을 먹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회유하는 대부분의 고래가 동해안 해안에서 새끼를 낳고 바다속 미역 해초를 먹는 모습을 보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산 후 미역을 먹는 나라가 되었지만 고래는 어부로부터 천대받기 시작했다. 고래를 잡으면 나라에 진상하거나 높은 양반이 고래 해체작업을 시키는 노동 때문에 고래잡이는 힘든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고래를 잡지 않으니 동해는 많은 고래가 확인되었고 외국인 눈에는 그것이 곧 돈이었다. 1899년 일본 나가사끼항에 있던 러시아 태평양포경회사(께이제를 링그 백작 설립)는 장생포에 고래 해체장을 만들고 고래를 포획하기 시작한 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패하자 일본이 러시아를 대신하여 1905년 국내 포경업을 독점하고 동해안의 고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였고, 해방과 함께 일본인에게 월급대신 받은 포경선을 이용하여 만든 조선포경회사 및 1962년 포경조합 설립(11개 회사)을 하였지만 1978년 미국을 비롯한 축산대국은 국제포경위원회인 I. W. C 가입을 압력행사하기 시작하였고 1982년 제3차 I. W. C에서 일시적 상업포경금지를 통과시킨 후 1986년 1월 1일부터 5년간 상업포경 전면금지 모라토라움을 선언한 후 지금까지 상업포경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의 고래를 멸종단계로 만든 장본인 일본은 국제포경협회(IWC)로부터 포경 허가를 받아 연간 2만 t까지 고래를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포경선은 62년-15척, 66년-29척, 78년 이후-21척 이후 마지막 남은 단 1척이 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이다. 귀신고래가 10월이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무려 6,500여 마리의 고래를 포획하였고 해방 후 일본선주로부터 받은 포경선으로 15,000여 마리를 포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고래를 잡아 식용으로 대처하고 하는 상업포경을 허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기간을 통해 이미 포경국가였음을 말하는 것이고, 포경에 관하여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의 반대라 하여, 환경파괴라하여 힘없는 나라만 받아들이는 주장이라면 그 주장은 이미 무효나 다름없다.
장생포고래박물관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고래 고기를 파는 가계가 즐비하다. 옛날 포경선을 타는 사람이라면 자랑삼아 고래이빨로 담배 파이프를 만들어 다니던 그런 시절은 흘러갔지만 아직도 12가지 맛을 낸다는 고래 고기를 찾아 장승포를 찾는 사람이 있으며, 박물관 건너편이 옛날 고래를 해체하는 곳이며, 안쪽으로 장생포항이 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546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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