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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사촌마을 벽화여행 그리고 만취당~사촌가로숲길

허영꺼멍 2014. 9. 23. 08:57

 

 

 

탱자향 향긋한 여행속으로 

만취당 - 사촌가로숲길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서 고운사 가는 길목 사촌가로숲 못미처 만나는 마을이 사촌마을이다. 안동 김씨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며,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된 사촌가로숲과 보물 제 1825호 목조건물 만취당이 위치한 곳으로 9월 중순 사촌마을 담장안에 주렁주렁 매달린 탱자나무의 향긋한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여행길이다.

 

▲ 점곡초등학교

 

만취당이 위치한 마을은 600년 전통의 역사와 옛 흔적이 남아 있는 마을로 최근 사촌리와 서변리 일대에 선비문화를 주제로 그려낸 약 800m 벽화 거리가 생겨났다. 한때 기와지붕이 바다를 이룬다하여 화해(瓦海)로 불릴 만큼 조선조 당시 대과에 13, 소과에 28명이 합격했던 영남지역 반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의 고택은 한 번의 관광 산업화에 오히려 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촌마을 벽화 탐방길에 나서다.

 

 

 

 

 

 

 

 

 

 

 

 

 

 

 

사촌마을로 들어서다

 

▲ 마을을 관통하는 옛 지방도. 지금은 마을 뒷편으로 외곽도로가 있어 마을길은 일반인은 거의 통과하지 않는다.

 

사촌마을은 삼정승이 나는 명당 터로 신라시대 나정승 이후 두 명의 정승이 더 생길 것이라 믿었는데 유성룡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앞으로 크게 될 아이라 믿으며 친정인 사촌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고 찾았지만 친정아버지는 출가한 딸에게 명당터 기운을 내줄 수 없다며 내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시댁으로 되돌아가는 도중 사촌가로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 전하며, 사촌마을 지명은 1392년 마을 입향조였던 고려 중기 충렬공 김방경의 후예 김자첨 선생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에 터 잡을 당시 중국 사진촌을 의미하는 사촌으로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 이보다 더 풍성할까. 고기와 위로 익어가는 감.

 

금봉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주변 마을을 거쳐 사촌마을 앞 계곡으로 흘러드는데 바로 미천이다. 오늘날 점곡2교에서 바라보면 계곡 위로 정자를 하나 만나는데 바로 영귀정으로 조선 연산군 7(1501) 진사시에 합격한 시인 김광수(1468-1563)가 만든 정자가 오랜 세월 방치된 모습으로 미천과 사촌마을을 내려다보며 있다.

 

▲ 자녀를 데리고 한번은 들러볼 것을 권하는 공간

 

사촌마을 주변에는 사과과수원이 형성되어 있다. 과수원과 마을 경계에 79번 왕복 2차선 국도가 지나간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 도로변에 만취당이 있다. 만취당이라 하여 술을 마시는 곳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만취는 겨울에는 변하지 않는 푸른 이란 의미로 송나라 재상이던 범질이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 소나무는 울창하게 늦게까지 푸르럼을 간직한다는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지지간반송 울울함만취) 글귀에서 따 온 말로 강직한 선비정신을 엿 볼 수 있다.

 

▲ 만취당으로 향하는 입구. 만취당은 지금 건물보수로 막혀져 있다.

 

지방 유형문화재 제169호 이었던 만취당이 보물 제1825호로 격상되었다. 마을로 들어서면 사가로서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한곳으로 알려진 정면 4, 측면 2칸의 만취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만취당은 선조 15(1582) 퇴계 이황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晩翠堂 金士元, 15391601)이 후진 양성을 위해 착공하여 1584년 완공 후 영조 3(1727) 동쪽방향에 2칸 증축하였으며, 영조 40(1764) 서쪽으로 온돌방 한 칸을 만들면서 시대를 달리하여 오늘날 'T'자 형태의 건물이 되었으며, 현판은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한석봉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서애 유성룡을 비롯 시문이 남아 있다. 정확한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취당 건물 기둥은 신라시대 사찰 목재를 옮겨와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관리는 안동김씨 만취당파 문중에서하고 있다.

 

▲ 만취당에서 바라보면 담당 너머 보이는 향나무

 

만취당 뒷켠 쪽문을 열고 나서보면 사촌리향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다. 만취당 뒤편에 송은 김광수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높이 10m 향나무로 경북기념물 제107호이며, 500년 세월을 한 자리에서 버티어 온 나무이다. 사촌마을은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을 올린 고택마을을 이루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이 일어나자 사촌마을 의병장 운산 김상종, 좌산 김수옥이 중심이 되어 전국 의병이 일어나는 병신창의(1896)가 일어나자 왜군은 보복으로 마을을 불 질렀다. 한국동란에서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인민군과 미 해병대가 점곡지서 탈환을 위해 1주일간 전투하는 과정에 미군 장교가 인민군에게 사살되자 미군이 마을에 불을 질러버렸던 것이다. 만취당이 화마로부터 살아난 것은 만취당에 우물이 있어 불길을 그나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마을에서 조성한 연지

 

▲ 자계정

 

▲ 마을 골목이 상당히 넓다.

 

이 마을에서 서애 류성룡 외에도 송은 김광수, 천사 김종덕이 출생하였으며, 조선조 당시 대과에 13, 소과에 28명이 합격하였으니 당시로는 대단한 마을이 아닐 수 없는 곳이지만 오늘날 그 위엄은 사라지고 쓸쓸한 소택만이 남아 오랜 세월을 짐작케 하고 있다.

 

▲ 탱자나무가 정원수로 !

 

사촌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문득 담장너머 마치 유자열매가 열린 듯 모양세를 갖춘 나무에 큰 열매가 노랗게 익어 있었다. 이 계절에 여기서 유자를 만날리 없고하여 궁금해 하였는데 다른집 담장 앞에서 그 노란 열매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탱자였는데 열매 굵기가 내가 그동안 본 탱자 중에서 최고로 큰 품종이며, 울타리 역할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정원수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 탱자나무에 열린 열매 하나가 탁구공보다 조금 더 크다.

 

▲ 담장으로 넘어선 탱자나무

열매가 너무가 탐스러워 호주머니 한가득 따 담고 싶었지만 티없이 깨끗한 탱자 열매에 손을 댄다는게 큰 죄를 짓는거 같아 돌아서야 했다. 울타리 개념으로 줄지어 자라는 탱자나무와 달리 정원수 탱자나무의 모습은 나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족히 백년은 훌쩍 넘긴 듯 보인다.

 

▲ 고택 집집마다 가을이 피어나고 있다.

 

▲ 말이 살찐다는 이 가을날에...

 

▲ 익어가는 호박이 담장 위 올려져 있다.

 

▲ 고택 담장아래 아련한 추억의 채송화가 피어나 있다.

 

 

 

사촌 가로숲길에서

 

 

▲ 사촌가로숲길

 

천연기념물 제405호 의성사촌리의가로숲은 고려 말 안동 김씨 시조인 김자첨이 안동에서 사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만든 비보림이자 방풍림으로 300-600년 되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약 500여주가 1km 숲을 이루고 1592년 유성룡의 모친이 친정인 사촌에 다니러 왔다 이 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사촌가로숲길 전경

 

사촌마을은 삼정승이 나는 명당 터로 신라시대 나정승 이후 두 명의 정승이 더 생길 것이라 믿었는데 유성룡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앞으로 크게 될 아이라 믿으며 친정인 사촌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고 찾았지만 친정아버지는 출가외인에게 명당터 기운을 줄 수 없다며 내치자 다시 시댁으로 가던 중 사촌가로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 전하며, 숲은 안동 김씨 사촌파 문중 소유이다.

 

 

 

 

 

 

 

 

점곡마을은 충의유향(忠義儒鄕)을 강조하는 곳으로 민선 6기 의성군수의 농촌중심지 활력화 사업 일환으로 벽화거리를 조성하였다. 사촌마을 자료전시관에 들어서면 충효예절을 강조하는 코너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촌마을에 살던 송은 선생이 만든 경심잠 십조라는 것으로 첫째 부모에게 효도할 것. 둘째 나라에 충성할 것. 셋째 제사를 잘 받들 것. 넷째 집을 바르게 다스릴 것. 다섯째 동기간에 화목할 것. 여섯째 죄를 짓지 말 것. 일곱째 남을 헐뜯지 말 것. 여덟째, 여색에 빠지지 말 것. 아홉째, 친구를 잘 사귈 것. 열째 분수를 지킬 것을 강조 한 것으로 벽화를 통해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도로를 따라 벽화그림을 둘러보고 거닐다 다시 고택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만취당으로 향한다. 만취당으로 가는 골목길이 마을길 치고는 상당하게 큰 폭으로 당시 재력가들의 권세를 엿볼 수 있다. 만취당을 벗어나면 도로건너 사촌가로숲이 이어진다.

 

지금은 만취당이 기둥을 제외하고 전면 보수에 들어가 있어 접근을 할 수 없다. 가로숲은 숲길을 들어 갈 수 없지만 그 옆으로 작은 길이 이어져 숲길 분위기는 느낄 수 있다. 경남 하동 상림처럼 숲길을 열고 꽃무릇이라도 심어 놓는다면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옛날 권세를 누렸던 고택도 허물어지고 낡았다. 몇 해 전 마을을 체험학습 공간으로 크게 손질하였지만 그것이 실패하면서 더 보기에 흉하다. 마을벽화와 함께 고택을 재정비하여 새로운 의성군 여행지로 부상하기를 희망해 본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