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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천관산 그리고 천관사에서 방촌리석장승

허영꺼멍 2014. 10. 22. 10:16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03년 그 후 다시 찾은 천관산 천관사

 

미쳐도 곱게 미치라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이면 회사일이 마치기 무섭게 전국 방방곡곡 여행지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청춘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심이 집중되어 이름 없는 작은 지방유형문화재 하나라도 더 찾아내어 당시 인터넷 공간 천리안을 통해 우리문화를 알려보고는 생각이었고 그러다 보니 석장승까지 찾아 전국을 헤매며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많이 생겼던 그 시절 전남 장흥군에서 방실 웃고 있는 방촌리 석장승을 도로변에서 만나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천관사에서 보물급 석탑 1기를 찾기 위해 산속은 또 얼마나 헤맸던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친구들이 정신병원에 수용시키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길을 더듬어 보았다.

 

▲ 천관산 정상 전경

 

천관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지만 천관산 등반 중 올망졸망한 바위를 만나고 가는 것이 바로 천관산 등반의 가장 큰 재미로 등반코스를 제1 양근암코스로 오른 후 제3 금강굴코스로 하산하는 즉, 이승기코스를 따라 강호등 코스로 내려서기로 결정 하였다. 제1 이승기 코스는 그나마 완만한 코스이지만 제2, 제3 코스는 가파른 코스로 올라가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제1코스를 오른 후 제3코스로 내려서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을 줄여 준다.

 

 

코스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경치로 제1코스 영월정을 시작으로 양근암, 정원석, 연대봉을 거쳐 능선길을 따라 억새능선을 통과한 후 하산을 위해 제3코스 환희대를 시작으로 금강굴을 따라 장천재로 내려서면 된다. 총 코스는 4시간 정도 넉넉잡고 오르면 된다. 장천재 주차장에서는 승용차 2,00원(경차 1,000)을 징수하고 있으며, 장애인 1~3급은 무료 주차이다.

 

 

 

 

정상을 향해

제1코스 이승기 길 선택

 

▲ 1박2일 그 이후 이승기와 강호동 이름이 붙은 길이 열려져 있다.

 

첫번째 갈림길이다. 이승기길은 가파르게 시작하지만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른다. 강호동 길은 초입이 완만하게 보이지만 갈수록 경사도가 급경사로 체력이 갈수록 고갈되는 코스로 등산로도 협소하여 출발보다 하산을 권장한다.

 

▲ 출발은 가볍게 약간의 산길을 따라 오르는 듯 돌무더기를 지나친다. 그러나 갈수록 점점 높이를 더해가는 등산로를 누가 알까.

 

▲ 기묘하게 큰 바위 옆에 또 하나의 바위가 길을 열어 놓은 바위 사잇길로 호기심 유발하는 사람은 등산로를 벗어나 통과를 한다.

바로 옆에 등산로가 있다.

 

▲ 벼랑 위 위태위태하게 올려져 있는 암석 그리고 이승기코스에서 첫번쨰로 바다를 조망하는 곳이기도 하다.

 

▲ 첫번쨰 전망바위에서 제3 코스를 바라 본 구정봉 전경. 우뚝 솟은 바위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 가을 추수가 한창인 논밭

 

▲ 고흥 방향 황금들녘 전경

 

▲ 힘든 코스이지만 중간 중간 전망바위가 있어 쉬어가며 오른다.

 

▲ 독특한 바위모습을 하고 있는 제1코스와 제2코스 중간에 놓인 바위

 

▲ 큰 돌 주변에 작은 돌을 던져 올려 놓았다.

 

▲ 독특한 바위 그리고 주변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 7부 능선 정도에서 바라 본 전경

 

▲ 양근암

 

양근암으로 불리는 바위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 등잔바위 등을 올라 봉황암과의 갈림길 못미친 이 곳에 높이 15척 정도의 깎아 세운 듯 남성을 닮은 큰 돌이 오른쪽 건너편 여성을 연상케하는 금수굴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니 자연의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고 있지만 양근암을 정면에서 약간만 비켜서면 그저 평범한 바위로 보인다.

 

 ▲ 바위가 있는 곳이면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탁틔인 공간이 전망대 역활을 자처하고 있다.

 

▲ 비탈길을 올라 잠시 완만한 능선길이 펼쳐진다. 바위를 돌아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이동하는 탐방객

▲ 정원암은 사모봉쪽 삼십보거리에 있어 흡사 정원석을 방불케 하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 제1코스 경사길을 끝내고 정상을 향해 완만한 길을 남겨두고 되돌아 본 올라온 산자락

 

 

▲ 정상을 앞두고 내려 다 본 전경. 내려서는 등산객

 

▲ 정상에서 바라 본 전경

 

▲ 정상에서 바라 본 올망졸망 시선을 끄는 섬

 

▲ 정상 연대봉

연대봉은 옛 이름은 옥정봉으로 천관산 정상이다. 고려 의종왕(1160년) 때 봉화대를 설치하여 통신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이후 봉수봉 또는 연대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최고로 아름다운데 동쪽으로 고흥의 팔영산, 남쪽으로 완도의 신지 고금 약산도가 시선을 끈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이 조망되며, 월출산과 추월산이 보인다고 안내하고 있다.

 

억새숲사이로 정상에서 능선길 따라

제3 강호동 코스 하산길 억새가 펼쳐져 있다.

 

▲ 어디로? 하산은 장천재로.. 하산길 3.2km

 

▲ 정상에 서 있는 천관산 표지석

 

▲ 제1 코스로 하산하는 길

 

▲ 제1코스를 숨가쁘게 올라와서 제3 코스로 가는 산길에는 억새자 장관을 이룬다.

 

▲ 천관산 탑산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

 

▲ 정상에 자리한 봉수대

 

▲ 제2코스, 제3 코스로 향하는 능선길

 

 

▲ 정상으로 부터 능선길에는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나 있다.

 

▲ 제2 코스 입구에서 바라 본 정상 봉수대

 

▲ 제1 코스 하산길에서 만나는 구정봉

 

구정봉에 관하여 "당번봉 비로봉 등 구봉의 정기가 이곳에 모여 있으므로 이름한 것이다. 귀에는 초벽을 의지하여 바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석천이 기이하여 사산이 비단 병풍을 두른 것 같고 신령스런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어 자연히 정신이 맑아지며 생각이 안정된다. 암자 문밖의 돌틈에 자죽이 있는데 여중이 이 암자에서 공부할 때에 심어놓으니 쓸쓸한 찬 잎새에 맑은 바람 띠었구나. 당년의 모진 고생 옮겨져 심은뜻은 창 앞을 향하여서 바람소리 듣고자 함이었네 하고 하였다."고 안내하고 있다.

 ▲ 능선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바라 본 모습

 

 

 

이제 하산이다.

제3 강호동 코스를 따라

 

▲ 환희대

 

정상에서 능선길을 따라 제3코스 입구에 도착하면 만나게 되는 환희대는 최고의 바위능선길을 조망하는 곳으로 " 책 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치 있어서 만둰의 책이 쌓여진것 같다는 대정봉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이니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고 안내하고 있다.

 

▲ 환희대에 올라 바라본 전경

 

▲ 환희대 옆으로 내려서는 구정봉을 거쳐가는 등산로는 가파르고 협소한 길로 인하여 특별한 안전이 요구되는 코스이다.

 

등산화를 다시한번 졸라본다. 하산길은 바위 아래를 비켜가면서 이어지다보니 등산로 폭이 좁다. 나무데크를 조성할 만큼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등산로는 경사길에 바위 작은 바위가 깔려져 있어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쉽상이다. 특히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 여성은 내리막길에서 꼼짝없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다보면 뒷 사람을 막아 버리는 산길은 정체구간을 만든다.

 

▲ 가을에 푹 빠진 구정봉 전경

 

▲ 당번 . 천주봉

 

안내글에 의하면 "천주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속으로 꽃아 세운것 같다. 불가에서는 깃발을 달아 놓은 조찰이라고 한다. 산동 사람들이 금관봉이라고 부른다."며 안내하고 있다.

 

 

▲ 대세봉

 

안내글에 의하면 대세봉은 "관음봉의 위쪽에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다. 큰 벽이 기둥처럼 서서 하늘을 찌르니 보기에 늠연하여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하며 나는  새도 능히 오르지 못한다. 산동인이 문장봉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 석선

▲ 금강굴

 

석선은 하산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암릉 구간에 서 있다. 안내글에 의하면 석선은 " 진죽봉 아래 있다. 큰돌이 배같아 뱃전밖에 돌가닥이 있어 사람의 팔쭉 만한데 그 끝이 나누어져 다섯 손가락이 되었고 엄지손가락은 길지만 간운데는 적고 차례로 펴지어 구부러져서 자세히 살펴보면 괴상 스럽다.

 

불설에 서축 사공이 돌아감을 고하고 그 한팔을 잘라 관음보살께 시주하고 후세의 신포로 삼겠다고 하니 관음보살이 뱃전에 붙여주라고  명하였다 한다."라 하며. 조금더 내려서면 금강굴이 있다. 금강굴은 종봉의 동쪽 지변 명적암 아래에 있는데 굴의 크기가 대청방 만하여 그 앞에 암자가 있어 서굴이라 한다고 한다.

 

 

 

2003년 옛 기억을 되살려

2014년 찾은 천관사

 

천관산을 내려선 후 다시 천관산 자락을 따라 올라 천관사로 향했다. 2003년 처음 이 절집을 찾았을 당시에는 겨우 꼬부랑길을 따라 오르다 나무판자에 천관사라는 작은 이정표를 찾아내고는 걸어서 산길을 헤맸던 기억이 또렷했던 천관사이지만 지금은 법당앞 까지 도로가 뻥 뚫어져 있어 접근성이 편리해 졌는가 하면, 천관산으로 오르는 쉬운 등산로가 열려져 있어 간편하게 오르고자 하는 가족단위 탐방객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 천관사는 지금 한창 보수중이였다.

 

천관사가 자리한 천관산은 존재 위백규가 "지제지"를 펴냈던 곳이자 천관보살이 머문다 하여 전국의 많은 고승을 비롯한 신도가 몰려드는 산 능선에는 세월이 흘러 진달래와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지천에 피어난다.

 

▲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한 천관사 조감도

 

1. 극락보전. 2. 심층석탑(보물 제795호), 3.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34호) 4, 천관전, 5. 원통전, 6. 명부전, 7. 선원, 8. 종각, 9. 천풍루, 10. 청운당, 11. 삼성각, 12. 나한전, 13, 오층석탑(지방 유형문화재 제135호), 14. 세심당, 15. 청풍당, 16. 안양료, 17. 세면장, 18. 화장실, 19. 수각 등으로 불과 몇 채의 전각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될 전망이다. 어쩌면 이곳도 문화재관람비를 곧 징수할 듯 보인다.

 

▲ 10년 전 찾았을 당시 전경. 당시는 절간으로 향하는 길 조차 잘 알려져 있지않아 숲길을 따라 걸어서 찾았던 곳이였다.

천관사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4동과 석열 2기 그리고 탑지를 확인과 기와를 비롯 청자, 분청자. 백자, 소조나한상 특히 8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높이 14cm, 지름 12cm 유리 도가니가 출토되었는데 이를 두고 신라 왕실과 밀접한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 중심전각을 비롯 앞에는 석탑1기와 석등이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영통화상이 세운 천관사는 천관산 중턱에 자리 잡고 운해와 벗 삼아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사찰로 한때는 무려 89암자, 1,000여명을 거느린 대찰로 당나라 승려가 찾아와 불도를 정진할 만큼 위세를 떨쳤다. 천관사는 창건과 함께 천관보살을 모시면서 천관사로 불리며, 2기의 탑과 1기의 석등을 만날 수 있는데 고려 전기 탑으로 추정되는 천관사삼층석탑(보물 제795)과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천관사오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134) 그리고 통일신라 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천관사석등(시도유형문화재 제134), 1963년 중건한 극락전이 전해지고 있다.

 

▲ 옛 기거하던 공간을 반대편으로 옮긴듯 하다. 새롭게 만든 건물

 

천관사의 옛 지명은 화엄사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며, 통영화상이 천관산 중턱에 보현사, 옥룡사, 탑산사와 함께 신라 애장왕 당시 만들고 극락전 중수 당시인 1706년에 회주의 명기였던 명월이 쌀 백석을 시주했다고 한다.

 

▲ 지방유형문화재 제 134호 천관사 석등

 

천관사석등(시도유형문화재 제134)은 극락보전 아래에 있는 석등은 화강암을 깎아 조성한 것으로 높이 2.52m로 바닥 돌을 제외하고는 8각을 하고 아래받침돌에 연꽃을 대칭으로 새기고 그 사이에 기둥을 세워 가운데 받침으로 이용했다. 석등의 양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종각

가을이 되면 많은 탐방객이 장흥군 천관산으로 오른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억새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천관산 억새는 창녕 화왕산에서 만나는 억새나 울산 영남알프스 능선에서 만나는 억새와는 사뭇 다른데 그것은 바로 천태만상 기암괴석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제각기 이름을 가진 바위와 억새의 어우러짐이 산행을 가볍게 이어주기 때문이지만 천관산을 오른 탐방객이 천관사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 천관사 삼층석탑. 보물 제795호

▲ 천관사 오층석탑. 지방유형문화재 제135호

 

천관사삼층석탑(보물 제795)은 법당 앞 오른편에 위치한 삼층석탑은 2단 기단 위 3층 탑신을 올린 고려 전기 탑으로 탑의 머리장식을 네모난 노반과 둥근 복발로 하였는데 한 돌에 새겼다. 천관사오층석탑(시도문화재 제135)은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양식을 약간 벗어난 고려시대 석탑으로 기단과 탑신부 각 층의 몸돌에 기둥을 새기고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  중심전각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삼층석탑

 

천관보살을 모셔 천관사로 알려졌다는 사찰의 지명과는 달리 천관산은 기암괴석이 있는 산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아 천관산(天冠山)으로 부른다고 하니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천관사에서 억새능선으로 향하는 길은 다른 코스에 비해 짧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대부분 기암괴석을 끼고 오르는 천관산 장안사를 거쳐 봉황봉, 천관산을 거쳐 장천재계곡, 중봉으로 하산하는 길을 이용하기 때문에 천관산 천관사는 가려져 있다.

 

 

 

방촌리석장승을 만나다.

 

스쳐지나치기 쉬운 방촌리석장승을 만나기 위해 잠시 23번 국도 방촌유물전시관으로 향했다. 유물 전시관 입구 못미처 장흥대로 방촌 사거리 지나자 마자 숲속에서 1기와 도로 건너에서 1기를 만날 수 있다. 10년 전 만났던 장승보다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나 살펴 보려는데 지나가는 차들은 여전히 속도를 줄여주지 않는다.

 

▲ 방촌리 남장승

 

장흥군 방촌리 석장승은 전남민속자료 제33호로 고려시대 만든 장승으로 추정되며, 남. 여 장승의 이름이 다른 독특한 장승이다. 남자 장승 진서대장군은 높이 235㎝ 앞면 최대너비 54㎝ 두께 40㎝ 머리 높이 57㎝ 둘레 160㎝로 이름이 정면에 새겨져 있지만 여장승은 높이 197㎝ 앞면 최대너비 48㎝ 두께 48㎝ 머리 높이 92㎝ 둘레 173㎝로 이름이 없어 미륵석불 또는 벅수, 돌부처, 여장승으로 불리며, 두 장승은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도로변 양편에 자리 잡고 해마다 정월 보름날 별신제를 지내고 있다.

 

▲ 방촌리 여장승 

 
두 장승의 공통점은 거의 없고 조각수법 또한 깊이가 차이를 보이며, 진서대장군은 풍수지리적 이유로 서쪽의 허한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세우지만 미륵석불은 알 수 없고, 원종 6년(1265)에 장흥부가 회주목으로 승격되면서 방촌을 보강하고자 상령산성과 회주고성을 축성하면서 세웠다 전하는데 당시 여러 곳에 세운 석장승이 분실되고 두 개만 남아 입구에 세웠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성문을 수호하는 석장승으로 남제주군 대정읍 석장승과 방촌리 석장승 뿐이다.

 

스쳐가기 쉬운 장흥군 여행에서 천관산을 찾은 여행객이라면 천관산을 내려 선 후 잠시 천관산 천관사 및 방촌리석장승을 함께 여행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조금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보림사까지 달려보아도 좋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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