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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중 여행] 부산 기장군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 - 송정해수욕장 -대변항 -죽성성당

허영꺼멍 2014. 12. 4. 10:13

 

 

 

 

 

기장군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

 

송정해수욕장-대변항-죽성성당

 

 

분침과 초침의 소리가 정적을 깨는 이른 시간 삶의 쉼표를 찾아 떠나는 부산인근 동해자락 기장군은 분주한 일상생활 속에 잠시 고장 난 시계처럼 한 박자 엇나가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특별한 레져타운이 있거나 환상적인 불빛이 유혹하는 도심의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그저 그런 기장군에는 밤을 밝혀 선착장에서 은빛 물보라 일으키는 멸치 터는 모습과 청정지역에서 수확하여 선창에서 손질하는 미역 그리고 다시마와 싱싱한 횟감의 유혹이 도로변에 줄지어 있다.

 

 

송정해수욕장

 

바다의 신선함이 신경을 파고든다. 도심의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 사색에 잠겨 보고픈 날이면 어김없이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해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창문을 조금 열면 파도소리도 덩달아 볼륨 높여 노래한다. 밤이면 차량의 불빛이 빈 주차공간을 찾아 스멀스멀 숨어든다. 송정해수욕장은 입욕기간이 아니면 주차요금을 받지 않는다. 특히 해안을 바라보고 주차를 할 수 있어 연인에게는 더 없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주차장 뒤편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이동형 길 커피가 줄을 잇고 있어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다.

 

 ▲ 송정해수욕장 죽도공원

 

파도소리 낭랑하게 들려오는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해수욕장의 번잡함을 피해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알려지면서 골목길 뒤편에 민박집이 생겨났다. 최근 해안가 횟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브랜드커피숍이 자리 잡는다. 해안길 끝자락 광어골 주변에는 횟집을 비롯하여 양식과 한식 등 미식가를 유혹하고 있다.

 

▲ 송정해수욕장은 사계절 서핑을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부산 해수욕장 중 가장 어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송정해수욕장은 길이 2km, 너비 50m 백사장과 송림 그리고 철도너머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여 연인들에게 더없이 좋은 추억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송정해수욕장의 매력은 해안도로에 바로 주차를 하고 내려서면 바다와 곧장 접할 수 있으며, 차에서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송정해수욕장은 젊다. 패기가 넘치는 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을 젊게 만들고 이국적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은 해수욕장 중간지점에 위치한 윈드서핑학교 때문이다. 윈드서핑을 배우거나 즐기려는 모험가들이 밀려오는 파도를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고 질주하는 모습은 송정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가져다준다.

 

▲ 시원한 조망을 자랑하는 해안라인

 

 ▲ 송장하면 떠오르는 갈매기

 

코발트 물감을 풀어 놓은 청아한 바닷물 사이로 갈매기가 날아들고 연인들이 모래를 딛고 사각사각 은빛 백사장을 걷는다.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리는 사람은 즐거움과 공포가 동시에 몰려온다. 손에서 새우깡이 들려지는 순간 수많은 갈매기의 시선은 무서울 만큼 새우깡에 꽂혀 손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 새우깡을 받아 먹기 위해 바다를 종횡무진 날아 다니는 갈매기

 

살을 에는 바닷바람이 불어와 해변의 흔적을 지워 놓는다. 어둠이 찾아오면서 동해바다는 조금씩 파스텔 톤으로 변해간다. 낚시를 하는 감태공의 뒷모습도 그림이 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꽁지에 불을 뿜고 날아간다. 해안을 따라 생겨난 커피숍도 하나하나 불이 들어오면서 불야성을 이룬다. 송정해수욕장의 밤은 송일정 조명이 켜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 송정해수욕장 근처 일출장면

 

▲ 송정해수욕장 명물 죽도공원

 

죽도공원으로 들어서면 송림숲길이 열린다. 죽도공원 끝자락 송일정에 올라서면 바다 바람, 갈매기 울음소리, 바람을 가르는 윈드서핑 질주, 모터를 단 배가 항구를 드나들며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항구는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가 변함없이 항구를 지키고, 낚시꾼은 방파제를 따라 늘어서 손맛을 즐기고 있다.

 

▲ 죽도공원 송일정, 죽도공원 뒷편 항구 방향에서 본 전경, 죽도공원 앞 등대

 

송정해수욕장에서 오른편으로 달맞이길이 열리는 구덕포 방향과 반대편으로 대변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데 송정해수욕장에서 툭 튀어 나와 앙증맞은 정자를 하나 올려놓은 산이 죽도산이다. 죽도산은 작은 동산 정도이지만 뒤편으로 죽도항을 끌어안고 앞으로 탁 트인 전망대에 송일정으로 불리는 정자를 올려놓고 죽도공원 또는 송정공원이라 불린다.

 

 

해풍에 미역 말리는 '공수마을'

 

송정해수욕장을 출발하여 해안자락을 따라 대변항을 잇는 첫 출발지가 바로 공수마을이다. 공수마을은 푸른 동해바다를 접한 작은 어촌마을로 미역과 다시마 양식이 유명한 곳으로 2001년 어촌체험시험마을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공수는 공수전(公須田)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구려시대 관청의 영선비, 출장 중인 관리의 숙박과 접대비를 충당하기 위해 만든 밭이 있어 불러진 지명이다.

 

▲ 공수마을 항구 주변으로 미역을 자연건조시키고 있다.

 

부산 기장 바다는 지금 미역이 제철을 만났다. 조그마한 공간만 있어도 어김없이 미역을 그물망 위 가지런하게 놓는 손길이 분주하고 한편에서는 소금물을 태양에 증발시킨 잘 건조된 미역과 다시마가 포장을 기다리고 있다.

 

 

▲ 공수마을 사당, 미역을 건조하기 위해 발에 올리는 주민, 공수마을 항구를 나서는 어선

 

공수마을은 홍씨 장씨 부부가 개척하였고 그들을 기원하기 위해 주민들은 매년 음력보름과 615일 부착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제당에서 지내고 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해안자락을 따라 넘어서면 공수마을에 도착하며, 공수마을을 거쳐 시랑대와 용궁사로 향하게 된다. 차량은 공수마을로 진입하여 시랑대로는 갈 수 없으며, 현재는 주변이 개발로 인한 택지조성 중이다.

 

 

해동 용궁사

 

해동용궁사는 옛 천년고찰이 아니지만 부산 여행지 중 빼 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자리잡고 있다. 용궁사는 옛 시랑대 자리 아래평지에 터를 딱고 절집을 올린 덕분에 바다와 어우러진 절집이 생겨났고 용궁사라는 이름과 더불어 바다와 가장 근접한 사찰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동해바다를 마당으로 사용하는 용궁사

 

용궁사에는 용궁사에 관한 창건설화로 고려 우왕2(1376) 공민왕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경주 분황사에서 정진 중이던 꿈속에서 동해의 용왕이 절하고 말하길 " 만인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 하여 뒷날 연화산을 찾아 용궁사터에 이르니 하늘에서 풍악이 울리고 땅에서 오색광명이 솟아 사찰을 창건하였다 한다.

 

▲ 용궁사 전경

 

동해 최남단에 자리한 해동용궁사는 30m 해수관음대불을 모시고 절집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 1930년 통도사 운강화상이 보문사로 중창,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 후 절의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어 오늘날 삼대관음성지로 알려졌다.

 

용궁사 정상에는 30m 높이의 국내 최대 해수관음대불이 자리하고 입구에는 육십갑자 십이지상이 일렬로 서 있고 더 내려서면 탑이 있는데 그곳은 "교통안정기원 탑"이다. 계단으로 접어들면 아들을 점지한다는 득남불의 배 부분이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스쳐갔는지 알 수 있으며, 108계단에는 석등이 호위하고 중간에 탁 트인 바다와 용궁사 불이문과 사리탑 그리고 본존건물인 대웅전이 나온다.

 

 

권적이 즐겨찾던 '시랑대'

 

송정에서 대변항으로 길을 따르면 용궁사가 나온다. 용궁사 바로 뒤편으로 오르면 넓은 바위에 30-40명이 앉을 수 있는 절경 중에 절경이 나오는데 이곳 해안암벽에서 한시 6편이 발견되었다. 시랑대라는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가로 1.5m 세로 3m 정도의 암벽과 가로 3m 세로 1m정도의 암벽에 각 4, 2편을 새겨두었는데 그 상태는 오랜 세월동안 보존을 하지 않은 탓에 글씨가 뚜렷하지 않고 암벽아래 군부대에서 철책보호목적으로 시멘트를 바르고 유리조각을 올려 이미 그 훼손정도는 말이 아니었다.

 

▲ 시랑대

시랑대에는 영조 8년인 1733년 이조참이 기장현감으로 온 권적에 의하여 새겨진 것으로 시랑대 글 옆 바위에 아래와 같이 작은 글로 조각되어져 있으며, 군부대가 관리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 낙서도 보인다.

 

謫居猫得近蓬萊 人自天曹二席來 三字丹書明翠壁 千秋留作侍郞臺'

적거묘득근봉내 인자천조이석내 삼자난서명취벽 천추유작시낭대

謫居穢德近蓬萊 귀양살이를 하지만 오히려 신선이 노는 봉래산을 가까이 두고 있다

人自天曹二聖萊 이 사람은 이조 참의자리에서 여기 왔노라

三字丹書明費壁 세글자의 붉은글을 푸른벽에 새겨

千秋留作侍郞臺 천추의 긴 세월 동안 남아 있게 하리라.

 

당시 좌천당하고 낙향되었던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며 새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여기저기 있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시랑대에서 더 오르면 언제 설치하였는지 몰라도 시랑대 안내판과 제룡단이 위치해 있다.

 

▲ 시랑대 남겨져 있는 한시

 

시랑대(侍郞臺)는 지금의 내무부 국장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이조참의 권적(영조9/1733)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어 천추의 한을 품고 내려와 우연이 해안절경이 뛰어난 원앙대에 매료되어 틈틈이 찾아가 낙향의 아픔을 토로했던 곳으로 권적(1675-1756)의 옛날 벼슬을 따 원앙대를 시랑대로 부르며, "도읍에서 누렸던 벼슬자리보다 산천경계가 빼어난 이곳을 얻게 된 것이 오히려 노년에 새로운 삶을 이루게 되었다"라 기록하고, 중국에서도 해동국 조선의 시랑대를 못보고 죽으면 한이 된다 말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시랑대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시랑대(원앙대)는 용녀와 스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시작된다. 가뭄이 심한 여름 미랑이란 젊은 스님을 마을로 불러 기우제를 올리고 원앙대에 홀로 앉아 바다를 주시하니 해질 무렵 원앙대 밑의 동굴에서 용녀가 나타나고 첫 눈에 사랑을 느낀 스님은 아기까지 잉태하고 용녀는 용궁의 눈을 피해 원앙대에서 해산할 준비를 하니 동해용왕이 이를 알고 산더미 파도를 일으켜 미처 탯줄을 끊지 못한 용녀를 휩쓸어가 버리자 미랑은 용녀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달려들고 목숨마저 잃어 버렸다 한다. 이를 지켜본 옥황상제가 천마를 보내 용녀와 아기를 데려와 천상에서 살 게 하였다 한다.

 

▲ 학사암

 

기장군수 홍문관 교리 출신 손경현(1856-1916) 이 1895년 시랑대를 찾아와 남긴 흔적으로 시랑대 옆 바위에 학사암이라 새기고 그 옆에 '학사암을미중하손경현'으로 기록한 것으로 볼 때 을미년이던 고종 32년(1895) 음력 5월 봄날 손경현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이다. 시랑대는 권적 이후 손강현 현감 외에도 윤학동, 김건, 이근오, 이병연 등 많은 시가 시랑대 암벽에 남겨져 있었으나 상당수가 훼손되고 일부만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음각한 글자 옆 바위 아래에 낙서로 새긴 글자와 함께 하단부에는 기우제 및 풍어제를 빌던 제룡단과 해룡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 하단에 제룡단이 새겨져 있다.

시랑대로 들어가려면 시랑대 정문격인 12지신상 앞으로 나 있는 옛 군부대로 향하는 길을 따라 들어선 후 용궁사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벼랑길을 따라 들어서면 탁틔인 전망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수산과학관

 

수산과학관은 수산해양에 관한 과학기술의 발전과정과 미래성을 소개하기 위하여 1997526일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해양 종합과학관입니다. 해양자원, 어업기술, 수족관 등 15개 주재별 전시영역을 갖춰 참고래, 실물골격, 국내 최대 크기의 산갈치 박제 등 7,3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가 저렴하며, 한번쯤 둘러 갈만 한 곳이다.

 

수산과학관은 해양수산에 관한 과학기술의 발전과정 및 미래상을 소개하는 해양수산 종합과학관으로 1991년부터 6년간 15개 주제별로 전시관을 갖추고 직접 선박 조종을 체험하는 체험실 , 참고래 실물골격 7,384점의 전시물을 수집, 1997526일 지상2지하1, 부지면적 191,804, 건축면적 1,786, 전시면적 4,893수산과학관을 개관하였다.

 

다양한 수중환경을 만날 수 있다.

 

해동용궁사로 진입하는 삼거리 신호대 앞에서 정지선을 통과 후 곧장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수산과학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경비초소를 통과하면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는 무료이며, 수산과학관 내 전시실은 입장하려는 분에 한하여 입장료를 받고 있어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들러면 좋다. 특히 용궁사로 가는 여행객에게 무료로 주차장을 제공하며, 뒤편 해안길로 용궁사로 가는 길이 있어 편리하다.

 

조용한 어촌마을 동암마을

 

 

동암마을은 조용한 어촌마을이지만 바람이 거센 날이면 넘실꺼리며 항구로 몰려오는 파도가 방파제 또는 해안가 큰 바위에 부딪치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그 모습이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며, 동암마을에서 오른편 해안길을 따라 이동하면 해동용궁사로 곧장 이어지고, 왼편으로 향하면 오랑대로 이어지는 부산의 숨겨진 해안길이다.

 

▲ 동암마을 주변 전경

 

동암마을 주변은 지금 개발로 인하여 새롭게 공원과 도심이 재편성을 하고 있는 곳이다. 기존 주택이 모두 철수하였고 비포장 해안길이 울퉁불퉁 이따금씩 찾는 낚시꾼을 반긴다. 해안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차량진입하는 길이 끊어지고 군부대가 나오는데 이때 군부대 길로 들어서면 철책 옆으로 길이 열리고 그 길 끝자락에 오랑대가 위치해 있다.

 

 

전국 최고의 굿당 오랑

 

 

 

무속인이 용왕님을 모신다는 국내 최고의 명당터 오랑대는 민간신앙의 중심에 바다 용왕보살이 존재하듯 오랑대는 용왕을 모시는 무당의 성지에 가까운 곳으로 탁틔인 전망과 함께 해안으로 돌출된 암반 위 암자가 자리잡고 치성을 드리는 무당의 북소리와 방울소리가 해안에 울려 퍼지는 곳으로 지금은 주변 일대를 정비중이다. 특히 부산의 일출장면으로 유명한 곳이자, 해무가 피어오르는 날이면 묘한 장면을 연출하는 곳이다.

 

▲ 오랑대 전경

 

오랑대는 용궁사에서 해안도로를 이용하여 바우덕이 식당가 옆 해광사 이정표를 보고 들어서면 된다. 차량으로 오랑대 끝까지 진입할 수 있으며, 일출을 담거나 파도치는 해안을 만나고 싶은 날이면 이곳 오랑대가 최고지만 무당의 굿판으로 인하여 여행객이 기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연화리 젖등대

 

▲ 젖병등대

 

연화리 젖병등대와 그 앞에 미니 젖병등대 우체통이 있다. 연화리로 접어들면 젖병등대가 반겨준다. 젖병등대 주변으로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돌출된 바위를 점령하고 있다. 갈매기 뒤편으로 장승등대와 멀리 월드컵등대까지 한 눈에 조망된다. 바람이 덜 한 지역상 특징으로 파도가 거의 없어 언제나 잔잔한 바다그림을 그려내는 곳이 연화리로 해안을 따라 횟집이 밀집되어 있으며, 끝자락에는 바다에서 해녀가 건져 올린 다양한 소라와 고동,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연화리 서암항 주변 전경

 

송정 연화리 입구에 있는 젖병등대 바로 옆에 미니 젓병등대가 있다. 미니 젖병등대는 사실 등대가 아니라 사랑고백을 담는 우체통인 셈이다. 아기를 갖기 원하는 분, 젖병등대에 가서 기도해 보셔요 소원이 이루어집니다...라고 국제신문에 나왔던 것. 젖병등대는 어린아이 114명의 손과 발을 프린팅 하여 도자기로 구워 만든 등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인데 사실 출산관련 소원을 비는 것은 그냥 만든 소리이지만 젖병등대 옆 미니 젖병등대에 편지를 넣으면 월 1회 배달되는데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고백을 적어 보내는 곳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

 

▲ 월드컵 등대

 

▲ 서암항 방파제등대

 

▲ 장승등대

 

연화리 진입로를 따라 들어서면 작은 포구 서암항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젖병등대를 찾는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포구 주변 커피전문점이 생겨나고 주차공간도 넉넉하게 생겨났다. 등대공원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재미나는 등대 줄을 잇고 있다. 젓병등대를 시작으로 멀리 월드컵 등대 그리고 마징가 얼굴을 닮았다하여 마징가 등대로 불렀던 장승등대가 지척에 서 있지만 선박을 이용하지 않으면 들어설 수 없는 분리된 방파제 위 양 끝자락에 하얀색과 노란색으로 우뚝 서 있으며, 젖병등대 옆으로 붉은색을 한 서암항 북방파제 등대와 나란히 서 있다.

 

 

대변항 입구 죽도

 

기장팔경에 속하는 죽도로 내려선다. 한동안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죽도 섬을 잇는 연죽교가 생겨나면서 접근이 가능해 졌다. 섬으로 들어서는 숲 근처에는 녹슨 철조망이 아직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섬으로 들어서지만 철책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다. 섬을 중심으로 해안을 한 바퀴 돌아보니 앞쪽에서 보던 섬과는 달리 뒤편에는 상당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 죽도

 

월드컵 등대와 장승등대가 가까이 조망된다. 섬을 잇는 다리가 있어 해안으로 내려왔지만 딱히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없어 내려선 사람들은 곧장 되돌아 나간다. 파도가 머물다 간 바위틈 고여 있는 물속에는 하늘마저 숨어들기를 꺼리고 있었다.

 

▲ 죽도 다리, 죽도 입구, 죽도 앞 해녀촌

 

죽도섬 앞 포장촌에는 해녀가 건져 올린 다양한 해산물을 팔고 있다. 주로 소라, 멍게, 개불, 낙지, 해삼을 팔고 있지만 전부가 다 해녀가 직접 건져 올린 것은 아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게 판매하고 있어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발길이 뜸한 곳이며, 이곳에서 전복죽이 유명하다.

 

끈끈한 삶의 외침이 노래가 되는

대변항

우리나라 미역생산 1번지 기장군 대변항을 찾아가면 항구주변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미역과 다시마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금방 건져 신선도가 좋고 싱싱하여 지나가는 사람마다 가격마저 저렴하여 너나없이 몇 봉지씩 구입한다. 연간 27천여 톤 생산하는 만큼 겨울철이면 대변항 앞 해안에는 미역이 빽빽이 매달려 있는 밧줄을 당기며 수확하느라 배가 기울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죽도에서 바라 본 대변항

 

항구 앞 천막촌 가계에는 대멸치를 다듬는 손길이 분주하다. 손수레 위에 그물을 올려놓고 햇살에 잘 말려지는 생선을 바라보면서 뜬금없이 등신불을 떠올린다. 대변항은 살아있다. 멸치를 그물에서 터는 작업을 할 때면 항구에 일정한 구령소리에 맞춰 은빛 비늘이 허공에 머무는 장관을 연출한다. 겨울에는 항구로 돌아오는 배마다 포대에 갈색미역이 가득 싣고 와서 내려놓는다. 추운 겨울 바다로 나가야 하는 어민들의 시름을 아는지 올해는 미역이 대풍이기를 기원해 본다.

 

▲ 대변항에서 가장 흔한것이 미역과 멸치이다.

 

덜 말린 꾸덕꾸덕해진 오징어를 뜨거운 열판에 올려 숙련된 솜씨로 구워내는 천막촌 뒤에는 햇살에 오징어가 말려지고 있다. 대변항에서 멸치를 사서 곧장 택배로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굵은 소금을 뿌리고는 비닐봉투에 담고 택배를 위해 다시 플라스틱 통에 담아 밀봉한 후 오후에 일괄 택배로 보내는데 가을이 점점 익어 가면 다시 이곳 대변항은 멸치의 비릿함으로 물들 것이다.

 

▲ 봄 가을 멸치 털이하는 어부

 

대변항 앞 동해바다에서 씨알이 굵은 멸치를 봄과 가을 잡는데 멸치 중에서 가장 큰 대멸이다. 봄이 되면 멸치축제를 시작으로 항구는 사람들로 늘어가기 시작한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작은 어선은 미역과 다시마를 가득 싣고 항구에 도착한다. 멀리 상인의 손길보다 먼저 인근을 지나던 여행객의 손길에 의하여 팔려 나간다.

 

 

대변항에는 멸치를 그물에서 터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빛이 허공에 날리면 갈매기들의 시선은 은빛을 쫒아 순식간에 이동한다.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은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을 정도이다.

 

 

대변항에서 만나는 예술혼 '토암'

2002 토우들의 합창

 

토암공원은 고 토암 서타원 선생의 도자기요업으로써 생전선생의 소망인 복합문화 쉼터로 작업터, 작품전시실,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토우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여기 토암공원에 있는 2002개의 토우들은 토암 서 타원 씨의 작품이다. 그는 부산을 중심으로 30여 년간 성공적으로 도예활동을 해 온 예술가이다. 1997년 토암은 암 선고를 받았으나 불치의 병마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장르인 토우의 제작에 온 열정을 불태움으로서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남들이 뭐라든지 자신의 방법으로 투병하는 의지와 용기를 보여 주었다.

 

▲ 건물 뒷편에 자리한 토우

 

토암은 자신의 심정을 귀 없는 토우, 텅 빈 토우, 무심의 상태에서 노래하는 토우의 조형성을 통해서 표출하고 있다. 그는 2002개의 합창하는 토우를 제작함으로써 2002년에 열리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팀과 한국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러면 토우들의 합창을 들어보자.

 

▲ 식당과 함께 토우를 만날 수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당시는 차를 마시기 위해 찾았다. 야외 넓은 무대가 있어 가끔 당시 시낭송회도 하고 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해 있다.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이끼가 자라기 시작하는 토우를 바라보면서 함께 차를 마시던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 레스토랑 아담과 이브로 향하는 길목 군부대 앞 등대

 

▲ 대변항에서 죽성항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만나는 전경

 

  ▲ 아담과 이브 레스토랑 옆 공간에서 바라보는 전경

대변항에 접어들면 우선 첫눈에 큰 멸치배를 만날 수 있으며, 해안끝자락을 따라 멸치액젓과 기장미역을 파는 가계들이 바다로 향하는 시선을 가려놓고 있다. 가계가 끝나는 지점에 큰 등대가 보이는데 등대가 가까이 또 하나가 보인다. 바로 월드컵 기념 등대이자 영화 친구의 촬영지이기도 한 곳이다. 대변항을 떠나 다시 해안길을 따르면 영화 친구촬영지 안내판이 내걸려 있지만 아쉽게도 대변항에서 죽성항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차공간이 거의 없어 스쳐간다.

 

 

월전마을 장어구이

기장군청 방향과 대변항 방향에서 진입하면 만나는 월전항 해안에 낡고 허름한 포장촌과 식당이 즐비하다.

 

▲ 월전항 주변 장어구이집이 유명하다.

 

죽성항에 도착하면 바닷장어구이를 먼저 떠올린다. 항구 옆 낡은 천막촌 앞에 주차를 하고 천막촌으로 들어서면 바닷장어를 연탄불에 구워 먹을 수 있다. 장어구이 천막촌 옆에는 장어를 비롯하여 횟감을 파는데 직접 그곳에서 고기를 사서 옆으로 들고 와 양념가격을 주고 구워 먹을 수 있다.

 

두호마을을 조망하며

 

월전마을에서 곧장 좁은 마을길을 통과하면 두호마을로 연결된다. 마을에는 기장 죽성리 왜성과 죽성리 해송 그리고 황학대가 위치하고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두호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전국적으로 사진 출사지로 알려진 죽성성당이 있다.

 

▲ 죽성 두호마을 전경

 

안내 글에는 셉테드(CPTED) 행복마을은 환경개선을 통해 범죄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사업으로서 주민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조성하였다고 한다. 두호마을의 벽화는 좀 특별하다. 보기위한 작품이 아니라 마을의 치안을 위해 기장군 경찰서에서 주관하여 그린 벽화로 두호마을을 행복마을로 부르며, 담장을 따라 동심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치안올레길로 불린다.

 

죽성항에서 월전회집과 다도해횟집 중간 죽성로를 따라 마을길을 통과한다. 협소한 마을길이라 차량이 마주치면 곤란하기도 하지만 거리가 좁아 쉽게 빠져 나간다. 그리고 만나는 두모포 풍어제터 앞에 선다. 방파제 뒤편으로 거북을 닮은 바위가 숨어 있다. 겨울이면 가마우지가 점령하는 두모 거북바위는 항상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헤엄치고 있다.

 

▲ 두모 거북바위, 두모 풍어제터 표지석, 멸치건조 장면

 

죽성리 두호마을은 두모포 만호영의 성, 또 임진왜란 때의 왜성과 대나무가 많아 죽성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 조선 세종떄까지 두모포로 불렸다 한다. 오늘날 두호마을은 소박한 벽화거리와 함께 해안에는 옛 풍어제터와 드라마 드림세트인 죽성성당과 죽성리 해송 그리고 죽성리 왜성이 있다.

 

 죽성리 드림 세트장 '죽성성당'

 

죽성리 성당은 드라마 "드림" 세트장으로 해안절벽 위 그림처럼 자리 잡고, 마을 뒤편으로는 죽성리 해송나무와 일제가 조성한 왜성이 있다. 죽성리 성당은 세트장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외부를 세트장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지만 바다를 향해 앉은 건물의 전경이 아름다워 기장군에서는 철거를 하지 않고 관리를 하고 있다.

 

▲ 죽성리 죽성성당 세트장

 

SBS 드라마 드림오픈 세트장으로 주인공 김범, 손담비, 주진모의 훈련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그려냈던 곳이다. 성당에 올라서면 툭툭 돌출된 바위섬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두호마을 앞 바다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해안에 널려져 있는데 드림 오픈 세트장에서 마주하는 해안 풍경은 때론 거친 파도가 넘나들면서 장관을 이룬다.

 

▲ 좌우 측면에서 바라 본 성당 전경

해안으로 돌출된 암반 위 사뿐 올려져 있는 죽성성당은 드라마 세트장으로 내부 관람은 할 수 없는 곳이다. 몰런 예배도 볼 수 없는 죽성성당 세트장과 달리 두호마을 내 정말로 죽성성당이 해송나무 아래 마을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 죽성리 해송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50호 기장 죽성리 해송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큰 소나무가 언덕 위에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 보이나 찾아가면 당집을 중심으로 6그루의 해송이 어우러져 흡사 한 그루의 나무 가지가 뻗어 있는 듯 빼어난 수형을 자랑하는데 대략 250~3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송(곰솔)은 높이 20m, 지름 30m이며, 중간에 있는 당집은 풍어제를 지내는 국수당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 황학대

 

죽성리 성당 세트장 옆 선창으로 향하는 막다른 길목에 사뿐 올려진 정자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고산 윤선도(1587~1671) 4년 넘게 머물며 유배생활을 하면서 오르던 황학대이다.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을 하고 있는 황색바위라 하여 황학대로 불러지는 이곳을 조선 3대 가인 중 한명이던 윤선도가 161811~16233월까지 약 44개월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윤선도 귀양살이 중 가장 긴 시간을 머물며 한시 11, 제문 1, 7편의 서()를 남겼다.

 

일본 석성 죽성리왜성

 

기장 죽성리 왜성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8호는 죽성리 해안 마을끝자락 해발 50m 해안가 가장 인접한 봉우리에 조선과 명나라 공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선조 26(1593) 6월경 일본 구로다 나가마사가 일본식 석성을 쌓은 뒤 정유재란 당시에는 가토오 기요마사군이 주둔하기도 한 장소이다.

 

 

▲ 왜성 전경

 

왜성의 규모는 총 면적 2,6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석축 둘레 약 960m, 잔존성벽 높이 약 4~5m3탄 구조를 갖추고 약 70도 경사를 유지하고 는 전형적인 왜성의 축성 방법을 사용하였다. 성은 일본에서는 기장성으로 부르나 조선 후기 기록에는 두모포영성으로 기록된 곳으로 당시 나가마사 지휘로 약 33,000명을 동원, 조선시대 두모포영성을 헐어다가 쌓은 것으로 두모포왜성이라고도 부른다.

 

 

 

기장군 송정해수욕장을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바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식단에 오르는 멸치젓갈과 미역, 다시마 그리고 다양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차량으로 이동해 가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커피 한잔 구입하여 출발하여 해안길을 따라 이동 후 대변항 토우가 있는 토담공원에서 맛깔스런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대변항에서 꾸덕꾸덕 말려지는 오징어 한마리 사서 뜯고 씹고 즐기다 보면 월전항에 도착한다. 월전항에서 곧장 두호마을을 구경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 월전항에서 장어구이 한접시 하면서 여행을 마무리 하면 더없이 좋은 드라이빙 코스길임은 틀림없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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