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이적여행 '마이산'
마이산은 봉오리가 셋이다. 수마이봉과 암마이봉 그 사이에 "나도 마이산"으로 불리는 봉오리 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이산에 사는 신선부부는 승천할 때가 되자 남편 신선이 잠을 깨우며 "이제 승천하세" 그러니 아내 신선은 "조금만 더 자고 새벽에 떠나자"며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승천할 기회를 놓쳐버린 신선부부는 새벽에 길을 나서다 물을 길러 올라온 아낙에게 들켜 하늘로 승천은커녕 바위로 떨어지고 말자 남편신선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앉아 수마이봉이 되었으며, 아내신선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암마이봉이 되었다. 두 봉오리 사이에 아들 봉오리 "나도 마이산"도 있다.
보잘 것 없던, 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하고 풀 한포기 뿌리 내리기 힘든 바위산이 오늘날 마이산 도립공원으로, 대한민국 명승문화재 제12호로 지정 된 것은 임실 출신이던 이갑룡 처사(1860~1957)가 1885년 오늘날의 마이산으로 들어와 생식을 하며 1927년까지 약 30여 년간 치성을 통해 쌓은 108기 탑이 탑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세월의 흐름에 몰려든 관광객의 잘못으로 훼손된 탑이 발생하여 지금은 약 80여기만 남아 전해지는 신비한 공간이다.
▲ 탑영제에서 바라본 타포니 전경 봄과 겨울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호수였던 지층이 충돌로 인하여 솟구쳐 올라 독특한 바위 형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풍수학자들은 ‘산태극물태극’형세로 국가적인 제향을 드리던 신성한 곳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신라 선덕왕이 서다산에서 소사를 지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이다. 서다산(西多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편에 등장하는 신라시대 마이산 지명이며, 고려시대는 용출산(湧出山), 조선시대는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리다 조선 태종 때 진안 성묘산에서 바라 본 모습이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 이갑룡처사가 만3년의 고행을 통해 1930년경 완성된 탑으로 축지법이 가장 많이 들었다 전하는 이 탑은
천지탑으로 탑사 내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이산은 산 그 자체 절경과 1885년경부터 이갑룡(李甲龍·1860~1957) 처사가 25살이 되던 이곳 마이산에 들어와 풍수에 의하여 기운이 허한 곳을 보완하기 위해 무려 30년 동안 불규칙한 돌을 기둥 모양으로 120여기의 돌탑을 쌓았는데 그 중 80여기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탑을 쌓을 당시 전해지는 구전으로는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가져와 기단부를 쌓고 상부의 돌은 축지법을 이용하여 각처의 명산에서 가져와 쌓았다 한다.
▲ 돌탑군 사이 탑사가 위치하고 있다.
마이산의 숫마이봉은 680m, 암마이봉은686m이다. 일찍이 부터 마이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이들은 금강산처럼 계절별로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봄이면 안개 속에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를 닮아 돛대봉으로, 여름이면 신록 사이 봉우리가 용의 뿔을 닮아 용각봉, 가을날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여 마이봉, 겨울이면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한다. 오늘날 마이산은 국내 봄소식을 전하는 가장 느린 벚꽃이 피어나며, 겨울이면 역고드름을 보기 위해 많은 탐방객이 즐겨 찾는다.
▲ 탑영제 돌탑, 탑사 이갑룡 처사가 쌓은 탑군, 천지탑에서 내려다 본 전경
▲ 탑사에서 내려다 본 탑군
▲ 탑사 주변 전경
▲ 탑사오르는 탑군 사잇길
마이산 탑사에 도착하면 눈에 보이는 것은 미니 피라미드를 닮은 탑과 비슷한 크기의 돌을 포개어 올린 탑의 위용에 압도된다. 그 사이로 탑을 만들며 머물었을 그리고 그곳에 사찰로 변했을 탑사가 자리 잡고 위로 천지탑이 우뚝 서 있다. 실로 놀라운 모습에 혹시나 탑 사이로 지나다 잘못되어 넘어질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지만 직접적으로 무너뜨리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한다. 그 숱한 태풍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자리한 탑사로 골바람이 불어 왔지만 단 1기도 바람에 쓰러진 것은 없다 전하니 탑을 쌓을 때 얼마나 공들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 겨울 탑군 전경
매년 1월이면 탑사와 은수사, 천황문 에서 동굴에서 석순이 자라는 것처럼 받아놓은 물이 역으로 하늘을 향해 30cm 까지 자라는 신비한 이적현상을 보여주는데 이때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역고드럼이 자라며, 바위가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한 능력의 땅 탑사는 이갑룡처사가 수도중 신의 계시를 받아썼다는 신서와 부적의 일부로 이 부적은 재난을 막아주는 신비의 부적으로 지금도 찾는 이가 많다.
▲ 연초록 가득한 탑군
▲ 타포니 지형에 올려 놓은 불상
마이산 전체를 1983년 전북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후 2003년 10월 31일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만든 돌탑은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매년 10월 11일 날 은수사에서 마이산제를 거행한다.
마이산에 지명에 얽혀 있는 이야기도 있다. 이성계는 고려 우왕5년(1380) 전라도 운봉에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가 칩입하자 왜적을 소탕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출산을 보고 그 모습이 꿈속에서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것 같다 하여서 산 이름을 ‘속금산’이라 부르며, 1413년 태종이 이곳에서 부왕이 남긴 시를 보고 ‘마이산’이라 개명했다 전하며, ‘속금산’의 뜻은 이성계의 이 씨가 목성에 해당되어 금과는 상극이라 세상의 ‘금’기운을 묶어주라는 뜻으로 ‘속금산’이라 불렀다 전한다.
마이산 春
▲ 북부진입로에서 바라 본 전경
마이산은 봄이면 안개 속에서 보이는 봉우리가 흡사 쌍돛배 형상이라 하여 돛대봉으로 불린다. 아무런 생명이 살 수 없을 듯 보이는 마이산 바위 틈틈이 새싹이 자라나는데 탑사 주변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 380호)와 능소화가 암벽을 타고 줄기를 뻗쳐오르는 힘찬 모습은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 마이산 나무데크길, 능소화가 타포니 지형을 따라 자라고 있는 모습
▲ 마이산 탑사 전경
마이산 봄소식은 다른 곳에 비하여 느린데 탑영제를 시작으로 탑사를 잇는 벚꽃나무가 전국에서 가장 늦게 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봄소식이 더딘 곳이다. 벚꽃이 피어나면 전국에서 신비한 탑군과 타포니형상의 바위산을 오르기 위해 많은 상춘객이 찾는 시기이다. 특히 탑영제 호수에서 바라보는 타포니 형상의 바위틈으로 연초록이 그려지고 수면에 비치는 시기이다.
마이산 夏
▲ 초록 둘든 마이산 타포니 지형 바위
여름에는 숲 사이로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이라 한다. 마이산 바위틈 용케 뿌리내린 나무들이 상고머리를 하듯 능선 위쪽을 초록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탑사 능소화가 꽃을 피워 귀여움을 토해내는 시기로 여름 장맛비 내린 뒷날 찾아가면 선명한 색감의 마이산과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 시원한 마이산 전경
마이산 북부 주차장 방향으로 따르다 보면 사양제를 거쳐 오르게 된다. 여름철 사양제를 거닐며 호수에 잠겨 있는 마이산을 만나거나 호수 주변을 따라 여행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나무데크를 이용하여 산책로를 조성해 놓아 마이산을 오르기 전 가볍게 산책을 하듯 찾을 수 있다.
2014년 12월 19일
'마이산 冬'
가을이면 단풍 든 산에 말의 귀처럼 보여 마이봉,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이지 않는데 이를 보고 먹물을 찍은 붓끝을 닮았다하여 문필봉이라 한다. 마이산의 겨울은 골바람으로 인하여 상당히 춥다. 탑사에서 은수사를 잇는 길이 얼어 보행도 힘들만큼 산으로 가려 음지를 이루고 있으며, 탑사 주변 천지탑 옆 바위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얼어 얼음기둥을 만들어 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 마이산 탑사 겨울 전경
마이산 여행에서 겨울을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탑사와 은수사 주변에서 신비한 이적현상을 보이는 역고드름 현상이다. 추운 날 그릇에 물을 받아 놓으면 그릇 중심에서 고드름이 발생하여 솟기를 시작하여 수직 또는 약 15도 정도 기울어서 15cm 정도 자라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신비한 모습을 경험하려는 여행객이 추운 한겨울에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 진안IC 를 앞두고 보이기 시작하는 마이산
날씨가 올해 최고의 추위라는 소식을 접하고 마이산 역고드름 생각이 스쳐갔고 올해는 꼭 만나보자며 마이산으로 향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를 넘어 진안에서 북부주차장으로 진입하여 화엄굴을 시작으로 은수사 그리고 탑사를 거쳐 되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겨울이라 개방된 등산로 구간은 얼음길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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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은수사로 향하는 오르막길 ◀ 북부 주차장에서 바라 본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보니 온통 빙판길이다. 아이젠을 착용할까 잠시 망설이다 긴 나무데크길을 올라야 하는데 아이젠의 날카로운 금속물이 훼손을 줄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녀오자며 아이젠을 차에 두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긴 나무데크를 따라 화엄굴 입구까지 헉헉 소리 내며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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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만난 화엄사 동굴 안에서 바라 본 전경 |
▲ 겨울에 만난 화엄굴 입구 전경
화엄굴도, 개방된 마이산 진입로도 전부 차단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것이라 마이산 화엄굴은 올라가 보자 싶었는데 계단길이 빙판이라 서너 발 옮겨가는 것조차 힘들었고 결국 몇 번의 미끄럼에 포기하고 돌아섰다.
화엄굴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쌍봉이 서로 이어지는 잘록한 부분에서 동봉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에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 샘물은 아래에서 솟는 물이 아니라 동봉의 봉우리에서부터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이다. |
화엄굴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이 이 굴에서 연화경, 화엄경 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남녀, 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을 속한 숫마이산, 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럼 생겼다. 이 봉우리 아래 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
▲ 화엄굴에서 내려서는 은수사 가는 길. 나무데크 끝자락이 은수사이다.
은수사
마이산에 있는 또 하나의 사찰 은수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으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갈라지는 분수령에 자리 잡고 있다. 창건에 관한 정보는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상원사, 정명암 등으로 불린 흔적이 남아져 있다. 오늘날 은수사는 1925년부터 불렸으며, 지금의 건축물은 현대에 조성한 것이다. 화엄굴에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로 나무데크길을 따라 내려서면 은수사에 도착한다. 마이산 타포니지형과 역고드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아쉽게도 역고드름은 만날 수 없을 만큼 날씨가 포근하였다.
▲ 마이산 은수사 전경 및 타포니 지형
은수사에서는 마이산 타포니지형을 관찰 하도록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 마이산 타포니지형에 관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 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여기저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엇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여 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이와 달리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내부가 팽창하면서 밖에 있던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 겨울에 만난 은수사
은수사(銀水寺)에 들르면 불교유적은 없지만 태조 이성계(1335~?)와 관련이 많다. 1380년 남원 운봉에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끄는 왜구가 출몰하자 이성계는 적을 제압하고 돌아가는 중 마이산에 들러 기도하고 잠을 청하는데 꿈에서 산신이 나타나 현몽을 하길 ‘네가 잴 수 있을 만큼 재어 네 땅으로 하라’는 말과 황금으로 만든 자(金尺:금척)을 내렸다 한다. 이후 이성계가 끈 꿈을 상상해 그린 ‘몽금척 상상도’와 금척 모형이 태극전에 모셔져 있으며, 은수사 주변에는 이성계가 심었다는 진안마이산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와 진안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이 있다.
▲ 겨울에 만난 천연기념물 제380호 줄사철나무군락지와 여름에 만난 천연기념물 제386호 은수사청실배나무
은수사청실배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높이가 18m, 가슴높이 둘레 3m로 청실배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한다. 특히 이 청실배나무 밑에 물을 담아두면 겨울철 역고드름이 자라는 신비한 곳이기도 하며, 청실배나무 씨앗은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서 증표로 씨앗을 심었다 전한다. 은수사에서 눈여겨 볼 또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 군락지이다. 천연기념물 제380호로 탑사 주변과 은수사 주변에 자생하는 나무로 깎아지른 듯 한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다. 특히 이곳은 한반도 내륙지역으로 줄사철나무가 가생하는 가장 북쪽지역인데다 어린 나무와 늙은 나무가 여러 그루 모여 있어, 생태학적으로 귀중하게 평가하고 있다.
▲ 마이산을 구성하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지층
은수사를 내려서니 매표소가 있다. 본래 북부주차장을 출발하여 계단입구에 있던 매표소가 보이질 않는다 싶었는데 은수사 아래에서 매표를 하고 있었다. 1인당 3,000원으로 탑사 매표는 아래 금당사와 함께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 마이산 탑사로 내려서는 길목 건너편에서 바라 본 천지탑
탑사로 내려선다. 이번 여행은 역고드름을 만나려고 욕심내어 나섰지만 아쉽게도 만날 수 없었다. 탑사 주변 여기저기 물잔을 끼웃 꺼려 보아도 물이 조금 얼어 있을 뿐이었다. 은수사에서 탑사로 내려서는 길은 얼어붙어 보행이 불편하였고 눈은 치워지지도 않았다. 입장료는 받지만 관람객의 안전은 뒷전이다.
▲ 마이산 암벽을 따라 물이 얼기시작하면서 얼음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천지탑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천지탑 왼편 우뚝 솟은 바위에 물이 흘러내리며 얼음기둥을 만들었고 햇살이 얼음을 녹여내면서 떨어지는 이유였다. 일부 탐방객은 접근금지선을 넘어 다녀오지만 바위에 붙어 있는 얼음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기둥 벽처럼 서 있는 얼음이 떨어지면 하늘에서 주먹보다 큰 얼음 조각이 한순간 돌에 튕겨 사방팔방 떨어지므로 겨울 여행시 반드시 유의하여야 한다.
▲ 타포니 지형 속에 돌탑을 쌓아 놓았다.
▲ 탑사와 탑군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있다.
탑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뒤편 오방탑과 천지탑을 두고 있으며, 앞으로 미륵불과 중앙탑, 영신각을 두었다. 영신각 앞으로 월광탑과 일광탑이 위용을 자랑하며, 그 옆으로 탑사를 만든 이갑룡처사의 좌상을 두었다. 탑사는 본전 건물과 측면 산신각 그리고 앞으로 영신각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 탑사 아래 돌탑 주변을 따라 자라고 있는 줄사철군락지
▲ 탑사에서 내려다 본 전경
▲ 마이산 탑사
▲ 줄사철나무
▲ 보이지 않는 삼단미륵
삼불미륵단으로 불리는 삼불미륵 부처님은 1900년 초에 이갑룡 처사님께서 직접 조각하여 법당에 모시고 기도를 하시던 미륵부처로 알려져 있다. 이갑룡 처사는 탑을 축조 할 당시 불교를 비롯하여 유교와 도교를 삼합하여 중생제도를 위해 기도를 하며 30년 세월 동안 쌓은 탑이다. 삼단미륵은 분실되는 사건 발생 이후 다시 회수하여 지금은 어디에 모셨는지 알 수 없으며, 옛 자리는 비어 있다.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진안IC에서 하차 후 진안로타리에서 북부주차장으로 진행한다. 마이산 여행하면 탑사가 있는 남부주차장을 대부분 선호하는데 이유는 단하나 탑사가 가깝다는 것이다. 과연 남부주차장이 빠를까? 절대 그건 아니다. 오히려 북부 주차장에서 탑사로 내려가면 더욱 가깝다. 상점 활성화 및 금당사 입장료 강제징수를 위해 주차장이 탑사로부터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북부 주차장에서는 그냥 산을 넘어와도 1.2km 정도 산길을 내려서면 도착한다. 여행은 북부 주차장을 이용 할 것을 권장한다. 고속도로 IC 기준으로 보아도 진안IC 기준 북부주차장은 4.4km이지만 남부주차장은 6.8km로 시간이 더 소요되므로 비용부담 역시 늘어난다.
진안IC에서 하차 후 왼편 첫 마을 진안읍 반월리 농업기술센터 옆 반월제에서 바라본 마이산 반영과 30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천의 얼굴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014년 말의 해 말의 형상을 닮은 바위산 봉우리 중 2004년부터 출입이 제한되었던 암마이봉을 10년간 자연휴식제를 마치고 2014년부터 10월부터 개방되어 시험 등반기간 중이다.
그리고 남부주차장으로 진입하면 진입로 오른편에서 병청의동맹지를 만날 수 있다. 호남의 병창의동맹지는 마이동천의 입구 용바위에 호남의병대방 정재 이석용이 해산 전기홍과 함께 호남의 남아 500여명을 규합하여 황단을 쌓고 천지신명께 국권회복을 빌며 군율을 세우고 대오를 정비하여 삽혈동맹의 의로운 깃발을 꼽았던 "호남의병창의"의 터다. 갑오동학혁명 이후 가뜩이나 침체되어 있었던 호남의 사기가 을사조약을 거치면서도 크게 일어나지 않았는데 1907년 가을 "토왜멸적"을 부르짖는 "격중가" 가 드높이 메아리쳐 호남천지에 의로운 뜻이 다시 되 살아난 자리로 호남 최초 자발적인 의병운동의 근원지로 알려져 있다.
추가 자료
마이산 암마이산 등산로
▲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닫혀 있던 문은 2014년 10월 11일 제한적 개방이 허락되었다. 암마이봉으로 오르기 위해 북부주차장으로 길을 잡았다.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은 천황문에서 600m 가파른 암릉길로 느리게 걷고 올라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이지만 많은 등반객이 동시에 몰려들어 정체구간이 자주 발생한다. 앞선 탐방객 중에서 산꾼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다소 오르기 힘든 몇몇 가파른 코스가 복병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 탑영제 방향 |
▲ 화엄굴 |
▲ 숫마이봉 |
화엄굴은 숫마이봉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굴 내에는 석간수가 흐르는 자연동굴이다. 화엄굴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 꿈속에 남성을 상징하는 모습의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중간쯤에서 줄기차게 솟는 물길이 보였다. 부부는 꿈속의 그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전국을 해맨 끝에 찾아낸 곳이 바로 마이산 화엄굴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뒤 돌아가 득남을 한 효험의 부부소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득남 뿐 아니라 숫마이봉에서 뿜어진다고 믿는 강한 기와 그 속에서 솟는 석간수를 마시면 입시와 승진의 기회는 물론 사업의 번창까지 가져온다는 믿음과 바람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화엄굴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상봉이 서로 이어지는 잘록한 부분에서 동봉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에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 샘물은 아래에서 솟는 물이 아니라 동봉의 봉우리에서부터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이다. 화엄굴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이 굴에서 연화경, 화엄경 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남녀, 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을 속한 숫마이산, 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험 생겼다. 이 봉우리 아래 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 현재 화엄굴로 오르는 길은 해빙기(낙석)의 위험으로 인하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암마이봉 정상
마이산의 이름은 시대를 달리하면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신라시대 산이 서 잇는 듯 하여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솟아오르다 는 의미로 용출봉(湧出峰), 조선시대에는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렀다. 속금산에 관한 이야기는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황산싸움을 끝내고 귀경하던 중 꿈에서 신선에게 금자(金尺)를 받던 곳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신선이 내려준 금자를 묶은 모양이란 의미라 한다. 이후 태종은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이라 하였고 이후부터 마이산으로 불리고 있다. 속금산이 마이산으로 불리게 된 이유로 태조 이성계와 아들 태종의 사이가 나빠 산 이름을 격을 낮춰 버렸다고 한다. 북부주차장 매표소 입구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사양제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이산 반영이 아름답다하여 많은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동안 숫마이봉이 약간의 각도를 달리하며 조망된다. 온통 콘크리트를 쏟아 놓은 것 같은 바닥을 딛고 한걸음씩 오른다. 나무계단과 암반길을 번갈아 가며 경사 난이도가 제법 높은 코스를 지나 정상인 암마이봉으로 향하며, 정상아래 전망대에서 숫마이봉을 조망한다. 숫마이봉 협곡 사이로 열린 바위틈이 보이는데 바로 화엄굴이다.
암마이산 정상에서 다시 되돌아 서야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암마이봉은 등산로가 하나로 다시 출발지인 화엄굴 입구까지 내려와야 한다. 단지 하산하는 길이 중간에 일방통행을 시켜 조금 다를 뿐이다. 힘겹게 올라 온 정상에서 반대편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허공다리나 아찔한 수직 난간 하나 있다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내려선다.
마이산 팔경으로 화엄굴, 타포니현상, 역고드름. 은수사, 탑사, 탑영제, 금당사, 이산묘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화엄굴’은 숫마이봉(680m) 봉우리 중턱의 화엄굴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며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타포니현상’은 마이산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에 폭격을 맞은 듯한 작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것을 타포니 지형이라고 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역고드름’은 겨울철 마이산에 정화수를 떠 놓으면 하늘로 솟는 얼음기둥이 만들어지는 현상이 있다. ‘은수사’ 청배실나무, 줄사철나무군락과 태조 이성계가 선인으로부터 금칙을 받는 모습의 상상도인 천사금척도가 소장되어 있다. ‘탑사’ (석탑군)는 암마이봉(686m) 봉우리 암쪽 기슭에 1백여개의 석탑들이 세워져 있다. 석탑들은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탑영제’는 마이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호수로 마이산의 봉우리가 거울처럼 비춰지며 아늑한 풍광과 10여리에 이어지는 벚꽃터널은 관광객을 붙잡는 곳이다. ‘금당사’는 마이산남부에 위치한 사찰로 보물 1266호 괘불태화와 그 외 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산묘’는 이승만 전태통령의 친필휘호 비석인 대한광복 기념비와 김구 선생의 휘호인 주필대가 있다.
개인적으로 마이산 팔경 외 큰 비가 내리면 암마이봉 절벽에서 탑사로 쏟아 내리면서 생겨나는 10여개의 폭포와 전국에서 제일 늦게 피는 벚꽃을 암마이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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