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충렬사(忠烈祠) |
| 매화여행 | 부산광역 동래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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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말 충렬사에 활짝 핀 백매 전경 |
호국 충절 정신의 요람지 충렬사(忠烈祠) 봄 여행을 시작해 본다. 몇 일전 충렬사 소줄당 담장 넘어 피어나기 시작한 백매(白梅)를 만나기 위해서 오후에 잠시 들렀다. 충렬사는 정문을 통과하여 두 개의 삼문을 거쳐 본전으로 오르는데 첫 번째 외삼문(충렬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소줄당, 왼편으로 기념관이 있으며, 기념관 앞으로 동백꽃나무와 측면으로 백매가 피어난다. 두 번째 내삼문을 열고 올라서면 왼편으로 의열각 그리고 오른편으로 충렬사 정화기념비가 있으며, 정면으로 계단 위에 본전이 있다. |
본전 오른쪽에 홍매 1그루와 왼편으로 2그루의 매화가 있는데 그 중 한그루에는 백매와 홍매를 접붙이기하여 가지에 제각기 다른 색의 매화를 피운다. 본전 측면 외문으로 나서면 군관청으로 향하는 산길이 열리고 동래읍성을 거쳐 동장대까지 오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매년 11월부터 4월 말까지는 출입을 할 수 없다. 돌아 내려서는 길목에는 매화와 동백꽃이 24공신비 주변과 관리사무소 뒤편을 붉게 수놓고 있다. |
▲ 정면으로 내삼문이 보이며, 내삼문 뒷편으로 외삼문 그리고 청색 기와를 올린 본전 건물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임진왜란 당시 순절하신 선열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선조 38년(1605) 동래부사 윤흰(尹暄)이 송상현 장군을 모시고 제를 지내는 송공사단(宋公祠壇)를 읍성 남문 안에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인조2년(1624)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소청으로 사액을 하사 받은 후 효종3년(1652) 성내에 있는 사우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오늘날 위치로 이전하면서 규모를 확장하여 안락서원(安樂書院)이라 불렀다. 옛 송공사단이 있던 곳은 숙종35년(1709) 별사를 세우고 여러 인문을 배향하였다. 그 후 고종2년(1865) 대원군이 47개 서원 외 철폐령을 내렸을 당시 제외되었으며, 1976년~1978년 성역화를 과정에서 안락서원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에 75위 위패를, 1991년 이후 91위의 신위를 모셨다.
대표적인 배향인물로 충열공 송상현, 충장공 정발, 증병조참판 윤흥신, 증호조참판 조영규, 증도승지 노개방, 충장공 정운, 재생 문덕겸, 증좌승지 이정헌 그리고 별전 24공신과 수영 25의용, 계유병자입절공신 16위, 의열각 신위 4위 등 모시고 있다.
▲ 송상현공명언비
송상현공명언비이다. 왜적의 침입 그리고 목숨을 던지며 지켜야 하는 결의가 잘 나타나는 ‘戰死易假道難(전사이가도난)’ 즉,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내용을 새겨 놓았다. 이는 일본이 저항하지 말고 길을 터라는 답변 내용이다. 내삼문에 핀 백매 |
▲ 대한민국에서 가장 단정한 백매 |
정문으로 들어선 후 외삼문 담장 좌우를 따라 단정하게 단장된 백매가 좌, 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성역공간으로 일반인이 매화나무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없으며 외삼문 입구 오른쪽 제일 바깥쪽 나무는 올해 꽃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매화나무가 동사를 하였거나 아니면 좀 더디게 피어날 수 있기에 지켜봐야 할 일이다.
▲ 내삼문 오른쪽 매화 전경
▲ 내삼문 왼편 백매 전경 . 담장 너머 기념관 기와가 보인다. |
내삼문에는 이미 매화가 만개하였다. 충렬사에는 많은 매화가 자리잡고 있는데 유독 내삼문 담장을 따라 피어있는 매화만 둥근 부채형을 하고 있으며, 내삼문 매화가 가장 일찍 피어나고 그 다음으로 외삼문 주변 그리고 연못주변이다. 본전이 있는 상단은 가장 느리게 매화를 피어내기 때문에 충렬사 봄의 행진은 고도를 달리하면서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한다. |
내삼문을 열고
▲ 소줄당
소줄당은 매년 춘, 추 음력 2월8일 중정일 에 거행되는 안락서원 향사때 시. 중경원장들이 모여 제관 선정 및 제향 준비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1983년 9월 15일 건립된 것이다. 충렬사는 매년 5월 25일 오전 10시 충렬사 본전 및 의열각에서 제향 의식을 치른데 충렬사 안락서원 제향 의식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5호로 등록되어 있다.
▲ 소줄당 내 안락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
소줄당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위국충절의 호국정신과 그 학생을 후세의 사표로 삼기 위해 1652년(효종 3년)에 교육도장으로 건립한 강당이다. 소줄당이라는 당호는 한유의 이제송에 나오는 ‘소호일월 부족위명, 줄호태산 부족위고’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임진란 선열들의 충절은 일월 보다도 밝고, 태산 보다도 높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
▲ 기념관
기념관 내에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그려놓은 기록화 6장면과 당시 갑옷과 투구 외 고서와 유품 102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록 현재 남아 잇지 않지만 안락서원 모형도를 제작해 놓았다. 기념관 왼편 앞 정원에는 1그루의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곳에 동박새가 찾아들었다. |
▲ 동백꽃 사이로 동박새의 몸짓
바람이 불지 않는데 동백꽃잎이 파르르 떨더니 동백꽃이 툭... 떨어진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앙증맞은 새 한 마리와 시선을 주고받는다. 잠시 생각을 하는 찰라 황급하게 몸을 숨겨 버리는 새가 바로 동박새이다. |
▲ 기념관 뒷편 쪽문 너머 백매가 피어있다. |
기념관이 있는 공간에는 담장을 하나 사이로 내삼문 백매와 건물공간 외부로 나가는 쪽문을 나서면 키 큰 백매가 피어나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 백매는 가까이서 향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외삼문을 열고 |
▲ 의열각
의열각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녀들을 모신 사당이다. 동래성전투에서 왜적과 기왓장으로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와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공과 부산첨사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 두 열녀 등 모두 네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충렬사 정화기념비
본전 건물로 오르다 |
▲ 본전 건물
본전에는 선열 89위를 모시고 있다. 본전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부산 지역에서 전사한 선열 22명과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위패 4위, 의병 62명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본당으로 제일 위에 자리잡고 있다.
▲ 본전 오른쪽 홍매는 이제 꽃몽우리를 터트릴 준비하고 있다. |
▲ 본전 왼쪽 매화가 이제 하나씩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 백매와 홍매가 한 뿌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홍매는 아직도 꽃몽우리 상태이다. |
충렬사에는 외삼문 담장 앞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한 백매가 있으며, 내삼문을 열고 들어선 후 기념관 뒤편으로 나가는 쪽문 앞에 백매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충렬사 매화 중에서 가장 압권은 제일 정상에 위치한 본전 좌우에 있는 홍매 1그루와 백매와 홍매를 삽목한 매화나무의 개화로 제일 늦게 피어나는데 올해는 2월 말경이면 꽃을 보기 시작 할 것으로 예상된다. |
▲ 충렬사의 봄 전령사 동백 |
▲ 충렬사 휴게소 뒷편 땅에 떨어진 동백꽃
▲ 충렬사의 봄
충렬사에는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꽃이 전부가 아니다. 길을 따라 숨어있듯 동백꽃이 피고진다. 특히 기념관 앞 외삼문에 담장 안에 피어있는 동백나무에는 동박새가 찾아와 꽃을 떨어뜨리며 벌을 찾고 있다.
충렬사에서 젊은 층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간혹 연인이 찾을 뿐, 충렬사는 일 년 365일 개방되는 공간이며, 입장료도 없다. 엄숙한 공간이지만 주변 주민들이 찾아와 운동을 하는 공간이자 노인분들이 모여 장기를 두거나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공원도 아닌, 충렬사에서 좀 더 신중을 기하여 노인 분들을 위한 공간과 제향공간을 구분하여 부산을 찾는 많은 외지인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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