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전여행/03월 여행

[경남 남해] 용문사 매화 그리고 상주 정월대보름

허영꺼멍 2015. 3. 7. 11:37

 

 

 경상남도 남해군                        

경남 남해 호구산 용문사

미국마을 -  용문사 - 가천 다랑이 마을

 

▲ 보물 제 1849호 대웅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용문사는 원효대사가 금산(보광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창건 후 호구산에 첨성각(瞻星閣)을 만든 후 보광사를 호구산으로 옮겨왔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남해향교와 보광사가 면대하고 있다며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청하자 백월당 대사가 용소로 찾아와 절터를 정하고 오늘의 용문사가 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 옛 목장승은 사라지고 석장승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미국마을을 통과하여 용문사로 향하는 도로가 생겨났고 쉽게 용문사까지 진입을 할 수 있다. 2014남해 용문사 대웅전이 보물 제1849호로 지정되었다. 10년 전 자주 들렀던 용문사는 진입로가 말끔하게 정리 확장되고 주차장도 생겨나 절간까지 쉬이 진입을 할 수 있었다.

 

용문사 입구 돌장승이 좌우에 서 있다. 본래 나무로 된 장승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부식되어 1기는 현재 천황각 앞에 작은 장승각 건물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셔놓고 돌로 만든 장승 2기를 배치 한 것이다. 

 

천왕각으로 향하는 천왕교 그 옆으로는 장승각이 있다.

 

장승각에 모셔져 있는 1기의 옛 목장승

 

천왕교 건너 바라 보이는 천왕각 그리고 봉서루를 잇는 사이에 계곡이 흐른다.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천황각은 조선 숙종 28(1702) 세워진 건물로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목조 사천왕상이 2구씩 좌우 배치되어 있다. 천황각 사천왕상은 마귀가 아닌 탐관오리로 보이는 관리를 밟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황각에서 본전으로 들어설 때 직선거리를 유지하지만 이곳 용문사는 완전하게 자로 배치되어 있다. 보통 천황문으로 불리는 반면 이곳 용문사는 문보다 한칸더 격상한 각으로 부를 만큼 양반과 관리에게 신음 받던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중요한 공간임을 엿볼 수 있다.

 

▲ 천왕각 옆 대형 멧돌

 

▲ 호구산 계곡

 

▲ 봉황이 산다는 봉서루

 

봉황이 산다는 봉서루를 지나면 용문사 경내를 통해 정면으로 본전 건물인 대웅전이 있으며 현재는 설법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봉서루에서 경내를 바라보면 관솔불로 어둠을 밝혔던 노주석이 중심에 위치하고 그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 중심전각 대웅전

 

본전 건물인 대웅전은 숙종 29(1703) 성화 스님이 옛 대웅전을 고쳐 지은 건물로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건축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처마에 여의주를 문 용머리를 장식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우수하다. 법당에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을 본존불로 중심에 모시고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은 보물 제1849호로 기록을 통해 조선 현종 7(1666) 일향화상이 건립하고 숙종 29(1703)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는 영조 47(1773)년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19742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1229일 보물 제1849호로 승격된 것이다.

 

▲ 백매 한 그루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용문사의 봄은 봉서루를 지나 들어서면서 만나는 매화 1그루에서 시작된다. 제법 밑동이 굵은 매화나무는 얼마나 이 절과 인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백년은 족히 넘은 오랜 세월 살아 온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백매였다. 방문 당일 이제 갓 꽃을 피우기 시작한 매화는 315일 전후 만개 할 것으로 보인다.

 

산신각 옆 야생녹차.

 

매화와 함께 대웅전 옆으로 올라 산신각에 오르면 뒤편으로 차밭이 곧 연초록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야생 차밭이 잘 관리되어 있었고 주변 숲이 함께 어우러져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 대웅전 용머리 조각이 현실감이 있어 보인다.

 

용문사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백월당 대사는 선당양당(禪堂兩堂)을 짓고 승당은 신운이 모화하여 다음해 준공하였으며, 그 후 6년 뒤 대웅전을 짓고 지해가 윤색하고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 후 태익이 낙성함으로서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창건에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중기 백월당이라는 중이 보광사에서 중살이를 하면서 암자를 찾아 다녔는데 호구산 골짜기에 큰 절터를 찾아내고 운이다 한 보광사를 헐러 옮겨오면서 골짜기의 형상이 용과 같다하여 용문사 라 불렀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호국 사찰로 알려져 있다. 용문사에 전해지는 삼혈포(대포)와 숙종께서 하사한 호국사찰을 증명하는 수국사금패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조선숙종시절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서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목동, 축대, 번 등을 하사하였지만 연옥동과 축대는 일본 강범기에 사라지고 번과 수국사 금패만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때의 불상으로 짐작되는 석불과 조선말엽에 만들어진 목판본이 함께 전해진다. 용문사에 전해지는 삼혈포는 총구가 셋 달린 화승총으로 한번 장전하면 연속으로 3발을 쏘는 것으로 마상에서도 타격이 가능하도록 임진왜란 당시 개발 되어 왜군을 상대로 사용되었다. 이외 법회에서 사용한 괘불대와 나무로 만든 설거지 용도의 구시통, 조선인조때 시인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 52매가 대웅전 주존불 좌대 밑에 보관되어져 있으며, 삼혈포와 촌음집은 공개하지 않는다.

 

▲ 우물터

 

우물터에서 약수물 한 그릇 떠 마시며 옛 용문사를 떠올려 본다. 절집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은 많이 달라져 있다. 좁게만 보였던 공간이 측면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조금은 덜 답답해 보였다. 가끔 만나는 사찰이 답답할 만큼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곳을 만나곤 하는데 이는 권세를 가진자들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공간을 축소하였을 것이라 한다. 그 예로 경남 고성 연화산 자락에 위치한 옥천사 사찰이 그러하다.

 

 

 

 

스쳐가며 만난 가천암수바위가 있는 다랑이 마을

 

▲ 쟁기질 하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

 

▲ 가천 다랑이 마을 전경

 

지금의 가천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그 유명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로 점점 관광화되어 버린 곳이지만 입소문이 나기 그 이전에는 아들하나만 점지해 주길 지성으로 기원하는 아낙네가 남의 눈을 피해 득남하기를 빌던 미륵신앙이 모셔져 있던 우리 백의민족의 전통적인 무속신앙 근원지이다.

 

 

다랭이 마을은 가천마을로 남해지역을 살펴보면 애기가 안고 있는 여자의 형상으로 가천이 회음부에 위치하지만 아쉽게도 양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두 개의 산에서 겨우 입술을 적실정도로 작은물줄기만 흐르니 냇천은 어울리지 않지만 언어비보책으로 가천이라 부른것으로 본다. 가천은 봄이면 계단논에 유채꽃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초록으로 깔린다. 가천암수바위와 함께 바다까지 두루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 상주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올려다 본 남해 금산

 

금산은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온 산을 휘감고 신라 원효에 의하여 보광산으로 불린 이곳에 사찰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성계가 보광산에 머물면서 백일기도를 통해 조선왕조 개국을 염원하면서 훗날 왕이 되면 반드시 금으로 치장해 주겠노라며 스스로 약속을 하였는데 어느 날 이성계는 현몽을 받게 이른다.

 

" 너의 백일기도로 정성을 다해 심불암 두 개가 일으켜 세워지면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이고, 새 개를 세우면 천자를 다스릴 것이다" 금산에는 원래 부처님의 좌상을 닮은 바위 새 개가 누워 있었는데 이 바위가 부처 좌상을 닮았다 하여 심불암이라 불렀다 한다. 이성계가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지만 새 개의 바위 중 두 개만 세워지고 하나는 누워져 있는데 이성계의 치성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성계가 왕이 될 무렵 금산을 찾아 선유제를 지내니 금산에 있는 조선태조기단으로 처음에는 금산의 심장부인 중조봉 아래에 전각을 만들고 전패를 모셨지만 전각이 낡아 1903년 용문사 후원으로 옮기고 의정부 윤정구의 지휘로 비각을 짓고 금산영웅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를 세웠다.

 

▲ 남해 상주해수욕장

 

젊음과 낭만으로 자가용이 드물던 시절 버스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에 도착 그리고 공용버스주차장에서 상주해수욕장으로 완행버스 타고 바닷길을 돌아가던 추억 가득한 낭만의 해수욕장

 

 

     

지금이야 인기가 옛날에 비해 많이 퇴색된 곳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여름 피서지로 남해군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모래질의 백사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해수욕장을 따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하는 곳이다.

▲ 남해 상주군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기

 

상주에서 정월대보름 행사를 해변이 아닌 주차장 무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다른 지방 달집과는 달리 상주군 달집은 네모난 모형에 상단 부분이 없고 흡사 사각 집을 만든 모습이며, 문을 양쪽으로 내어 놓고 안에는 많은 나무를 쌓아 놓았다. 상주는 이런 형태의 달집을 통해 불길이 달집보다 서너배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다.

 

▲ 남해군 경계를 넘어 돌아오는 길

아쉽게도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상주 정월대보름 행사는 다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건강이 최우선이라 철수를 하면서 사천대교를 넘어 본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