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순천시 500년 피고지는 선암사 선암매 선암사 - 금둔사 - 낙안읍성 - 송광사
|
삼월 마지막 주말 봄바람에 온기를 더해주면 선암사 무우전 돌담이 생각난다. 다람쥐처럼 돌담에 숨어들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곳에 뭘 감추어 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우연한 기회에 선암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꽃비내리는 봄의 향연을 넋 놓고 바라보며 향기에 취했던 추억이 있는데 바로 순천 선암사 3월 마지막 주말에 피어나는 선암매이다.
▲ 무우전 돌담 위 피어난 홍매
선암매를 찾는 이들은 날씨와 싸움을 한다. 아니 흥정을 해야 할 만큼 쉽게 보여주지도 않을 만큼 선암매는 다른 매화에 비하여 조금 느리게 피어난다. 특히 요즘 같이 전국적으로 날씨가 비슷해져 동시다발로 피어날 즈음이면 개화시기를 맞춘다는 게 더 어렵다. 그러다보니 매년 선암매를 찾아 무우전 돌담을 떠올려 보지만 다른 일정으로 미루어지거나 찾아가서 허탕을 치곤하였다.
▲ 선암사로 향하는 길 |
선암사 사계는 변화무상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사찰 속의 정원과 영화 아제바라아제를 비롯하여 태백산맥 조정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경내를 돌다보면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선암매(매실나무)와 사찰 담장너머 곱게 피어난 동백꽃, 호젓한 산길에 만나는 가을 단풍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승선교는 금방이라도 계곡물이 멈추어 버릴 듯하며, 선암사 해우소를 찾아 세상의 모든 근심과 번뇌를 훌훌 벗어 던지고 내려오면 맑은 계곡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
선암사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호법선신(護法善神), 방생정계(放生淨界) 목장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04년 만들어 선암사를 지켜온 목장승은 설선당에 보관하고 1987년 밤나무로 복사품을 만들어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있다. 호법선신은 세 가닥 수염을 둥글게 꼬고 치켜 올린 모습이며, 방생정계는 수염을 꼬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선암사로 출입하는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갈 준비로 몸과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라는 의미로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고 계곡을 따르면 아치형 다리를 만날 수 있다.
▲ 첫번째 아치형 다리에서 바라 본 승선교
▲ 승선교에서 바라본 강선루
선암사승선교(보물 제400호) 는 화강암으로 만든 아치형 다리로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전설에 의하면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만든 것으로 전하며, 임진왜란 당시 파손된 것을 순조24년(1824) 사찰을 중건할 당시 다시 가설하고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다시 해체복원하였다. |
호암화상이 1713년 시작하여 6년에 걸쳐 만든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 다리 승선교가 있다..자연암반 위에 아치형으로 쌓고 정 중앙에 용머리 형상을 한 용두를 박아 다리를 지탱하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던 승선교는 태풍 매미의 피해로 계곡의 물살이 암반석을 기울게 하여 2003년 해체 복원을 통해 일부 석재를 새롭게 교체하였다.
조선 숙종 34년(1698) 호암대사는 백일기도를 드리지만 관음보살을 만나지 못하자 자신의 불심이 미력한 탓으로 돌리며 벼랑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지만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대사는 그 여인이 틀림없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며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다리 옆에는 승선교비명이 새겨져 있다. |
▲ 강선루 |
승선교를 지나면 곧장 선암사 첫 번째 관문인 강선루가 있다. 2층 누각으로 선암사 계곡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노닐다 올라가곤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강선루는 한쪽 방향을 터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중간에 버팀목을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지만 기둥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계곡으로 난 기둥은 흡사 계곡에 기둥이 발을 담든 형상을 하고 있다.
▲ 삼인당
삼인당에 도착하면 비로소 사찰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은 연못과 삼나무 세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삼인당은 길게 연못을 만들고 차밭을 따라 흐른 물이 모여들었다 나가도록 도선국사에 의해 축조되었다. 삼인은 불교사상에서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이다.
선암사 삼인당은 전남기념물 제46호이다. 경문왕 2년(862) 도선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으로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섬을 만들어 놓은 2.2대 1의 비율로 1996년 복원공사를 하였다. 불교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연못 양식으로 선암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밭을 지나면 하마석이 버티고 있다. 사찰로 진입할 때 신분을 막론하고 하마석이 있는 지점부터는 말에서 내려 보도로 부처를 만나야 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출입하는 최종 관문으로 하마석을 지나면 일주문이 열린다. 일주문은 이 선암사에서 유일하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파손되지 않은 것으로 이곳부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법당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를 열거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
▲ 선암사 일주문 현판
선암사는 조계산 자락에 터를 잡은 조계종 다음으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조계종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사찰의 멋을 고루 갖춘 절로 태백산맥의 배경지요 작가 조정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때 선암사는 60여동의 대가람으로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 아도화상이 비로암 자리에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근거가 없고 9세기경 도선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선암사의 하나로 확장 후 고려 선종9년에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대웅전(보물 제1311호) 은 현강왕 5년(875) 선암사 창건과 함께 건축된 후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현종 원년(1660) 중건 되었다가 영조 42년(1766) 화재로 또다시 소실되고 순조 24년(1824) 재중건 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외3줄목, 내 4줄목의 다포식 조선후기 건축양식이다.
▲ 선암사 삼층석탑
선암사삼층석탑(보물 제395호)는 선암사 대웅전 앞 좌우에 있는 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석탑으로 신라 중기 이후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은 장대석을 짜고 하대석과 중대석을 짜고 탑신부를 올렸다.
순천 선암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불교에서의 탑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처소로서 예배의 대상이다. 선암사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것으로 양식과 건립 시기가 같으며 조성 연대는 신라 시대 후기인 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탑은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 양식을 따른 이중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상하 각 밑단에는 면마다 3개의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으며, 위아래 삽석의 수법도 이와 같다. 탑 몸 부분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몸 부분의 각면에는 양 모서리에 2개의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넓으며 받침은 각각 4단으로 되어 있고 모서리의 반전이 경쾌하게 표현되었다. 두 석탑의 조성연대는 신라 시대 후기인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1996년 이 탑을 해체 하여 복원할 때 동쪽 탑 1층 몸 아래에서 사리장치가 출토되었는데, 사리 1과가 들어 있는 금동사리함과 청자, 백자(보물 제955호) 등이 발견되어 있다.’
▲ 대웅전 오른쪽 3월 말 홍매화가 피었다. ▲ 선암사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매화 |
|
|
선암사에는 500년 되는 10여 그루의 홍매와 백매가 봄이면 서둘러 꽃피우고 겨울이면 동백의 화사함이 선암사를 꾸며주고 있다. 선암사는 많은 유적과 유물을 비롯하여 최근 영화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데 아제바라아제의 마지막 촬영을 시작으로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취화선 중 장승업의 젊은 시절 유랑 길을 떠나고 온통 붉게 수놓은 단풍길 거니는 장면이 선암사이다. 최근 영화 동승의 촬영지로 부쩍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불가리스 선전에 나오는 노승과 동자승의 뒷간 이야기도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 선암사 해우소
뒷간 이야기는 이 선암사가 제격이다. 그 이유는 선암사 뒷간을 두고 시집에서 나올 정도라는 부분이다. 정호승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를 통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가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는 부분이다. 선암사 해우소란 말은 이제 더 하지 않아야겠다. 버젓하게 뒤깐이라고 못을 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뒤깐은 온통 열린 공간이다. 앉으면 서로의 뒤통수가 보인다. 남녀의 구분은 있지만 별 다른 칸막이가 없다. 정작 뒤깐에 앉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 입구에서 보면 2층 구조이고 위에서는 1층이니 깊이가 상당 하지만 냄새가 전혀 없다……. 오히려 풀향이 나는데 낙엽이나 볏짚 따위를 넣어 자연발효 시킨 후 밑에서 거두어 거름으로 사용하니 고약한 냄새라곤 맡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해우소에서 일을 보려면 호주머니를 비우고 혹시 모를 사태를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자칫 호주머니에 든 동전이나 중요한 물건이 떨어질 수 있다. 괜히 다리에 힘도 주게 될 만큼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창 사이로 보이는 전경은 마치 의자에 앉아 있는 듯 편안하게 해준다. 한번 도전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
▲ 선암사 대표 매화 선암매 |
▲ 선암사 선암매는 3월 마지막 주말 만개할 것으로 보여진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2007년 11월 26일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경내 안내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한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화 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선암사 중수비
선암사 중수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된 비이다. 정유재란으로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가 중심이 되어 다시 세웠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거북받침과 비 몸 그리고 비 머리(용틀임 머리)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양식의 비석으로 조선시대 석비로는 뛰어난 작품에 속한다. 총높이 5.02m 비신 폭 1.25m 두께 30cm 이다.'라고 표기 어 있다.
▲ 선암사 무우전 돌담길 |
선암사 각황전 입구에 매화 한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선암사 각황전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선암사 경내에서 북쪽 끝지점 무우전 안쪽에 위치한 각황전은 철불을 봉안하고 1900년경 석고로 도색하였다. 정면1칸, 측면 1칸의 다포계약식의 팔작지붕을 올리고 있다. 각황전은 장륙전으로 석가여래의 모습인 장륙존상을 봉안하고 있다. |
현종 원년(1660)에 창건한 공간으로 선암사에서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절집은 ‘丁’자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특히 꽃문살과 국내 사찰에서 찾아보기 드문 토끼가 방아찧는 모습과 파랑새 그리고 삼태극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는 곳이다. 또한 입구 우물천장에는 우아한 학의 모습과 물고기, 자라 조각이 새겨져 있다. 현재 선암사 원통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원통전 어간문은 4분합문으로 중앙 2짝에 모한꽃창호로 모란과 자세하게 보면 새가 조각되어 있으며, 양쪽 바깥문 2짝에는 금강저빗살창호로 하였다. 특히 모란도 아래에 있는 궁판에는 어린시절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놓았으며, 그 옆으로 계수나무와 한쌍의 파랑새가 있어 궁금증을 더하는 곳이다.
▲ 원통전 천장 부분 물고기와 거북 모양 |
독특한 공간으로 현종 원년(1660) 조성 후 숙종 24년(1698)에 호암대사에 의하여 중수된 공간으로 중창할 당시 호암대사가 현몽을 통해 친견한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새겼다고 한다. 원통전에 관하여 다른 이야기로 눌암대사에게 부탁하여 정조가 백일기도를 드려 순조를 잉태하였는데 순조가 12살이 되던 해 그 감사의 의미로 대복전이란 현판을 하사 하였다 한다. |
선암사 대각암으로 향하다. |
선암사에서 산길을 따라 오른다. 남들은 산을 넘어 송광사로 향하는데 그깟 대각암까지야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수고를 해 본다. 조금 길을 따라 오르면 왼편 독특한 모습의 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광무 4년으로 1900년 대한제국 시대에 새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선암사 마애불 |
마애불의 완성도는 매우 낮다. 조각 솜씨도 그러하고 입술부분 바위가 훼손된 탓인지 자비로운 모습을 엿볼 수 없지만 높이 7m 정도의 길쭉한 바윗돌에 약 4.8m 의 마애불을 새겼다. 주변에는 협시불이 없으며, 다른 조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마애불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57로이다.
▲ 대각암 대선루
▲ 대각암 승탑
마애불로부터 조금 더 오르면 탁 트인 공간과 낡은 건물의 절집을 만나게 된다. 바로 대각암으로 건물이야 선암사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지만 보물 제117호 선암사 대각암 승탑이 양지바른 햇살아래 모셔져 있다. 승탑에 관한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
‘승탑은 승려의 사리나 유물을 모셔놓은 일종의 무덤이자 신앙의 대상물이다. 대각암 뒷면 언덕에 세워진 이 승탑은 대각국사 의천(1055-1101)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대각국사가 이 암자에 머물렀기 때문에 대각암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선암사에는 대각국사 영정과 유품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승탑은 상. 중. 하대석으로 구성된 밑단부분과 탑 몸부분 그리고 지붕돌이 모두 8각으로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탑 몸부분에 비해 밑단부분의 중대석이 약화되어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이 맞지 않은 듯 하나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는 매우 정교하고 또한 지붕돌은 장중한 느낌을 준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대각암의 옛 위세를 보여주는 대선루 앞으로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대선루 사각 창 넘어 산수유 서너 그루가 피어 봄을 알리며, 향기에 이끌려 날아든 작박구리는 허전한 공간을 그마나 채우놓고 있다. 열린 문 앞으로 놓여 있는 의자와 다리가 없는 평상처럼 쉴 수 잇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들이 조금은 낯설어 서둘러 절집을 빠져 나왔다.
대각암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는 입장에 이곳저곳 끼웃 꺼리는 것도 큰 실례인지라 조심스레 절간을 나오면서 선암사 겹벚곷이 필 적 다시 선암사를 찾아 올 때 대각암을 조금 더 알아보고 정식으로 대면을 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하며 길을 내려선다. |
.
.
.
이 글은 사진 및 게시물을 복사 ,편집을 할 수 없습니다. 올려진 게시글에는 사진과 글에 저작권이 있으며 무단 사용 할 경우 법적 조치를 받습니다. 단, 본인의 허락이나. 까페, 메일 등으로 스크랩은 무한 허용합니다.
|
.
'2015년 이전여행 > 03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남 광양] 섬진강 홍쌍리 여사 매실농원 매화 만개 (0) | 2015.03.30 |
---|---|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 그리고 수락폭포 (0) | 2015.03.29 |
[경남 거제] 공곶이 마을이 샛노랗다? (0) | 2015.03.29 |
[경남 통영]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 세병관 (0) | 2015.03.27 |
[경남 양산] 통도사 & 서운암 봄향기 (0) | 2015.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