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전 여행지/등산 트레킹

⊙ 산악트레킹 - 해운대 장산 너덜지대

허영꺼멍 2015. 7. 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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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점: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1182-75                

부산 '장산' 너덜지대 트레킹

 

해운대와 기장을 잇는 장산(634m)은 해운대구 좌동, 우동을 비롯 재송동, 반여동, 반송, 기장 내리까지 등산로가 형성되어 모두 정상을 향하니 장산에는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정상을 향해 얽혀 있으며, 등산로에서 만나는 장산이 품은 봉우리로는 중봉, 옥녀봉, 위봉이 있다. 또한 장산과 연계할 수 있는 인근 산으로는 감담산(308m)과 구곡산(434m)이 있으며, 달음산-장산-금련산-황령산-영도 봉래산을 잇는 금련산맥 중 장산(634m)이 최고 높으며, 부산에서는 금정산801m),과 백양산(642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 중봉에서 바라 본 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 전경

 

▲ 장산 정상석은 정상보다 군부대로 인하여

정상 아래 철책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장산 안내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북부에 위치한 장산은 해발 634m로 부산에서 세 번 째 높은 산이다.

 

동국여지승람(1418)과 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부산의 전신인 동래의 옛날은 장산국 이었으며, 신라가 이를 취해 거칠산국을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장산을 동래부지에서는 상산이라는 이름으로 장산이라고도 하고 봉래산이라고도 하였으며, 규장각 소장의 동래부지도에는 장산의 위치에다 장산국기라 적혀있고 해동지도에는 상산에다 장산국기라 적혀 있다.

 

동래부읍지 역시 장산이라고 표기하고 기장의 운봉산에서 뻗어내렸다고 했다. 따라서 이 산을 중심해서 장산국이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돼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장산국이 삼국사기의 거도전에서 말한 우시산국인 것으로 전해진다.’

▲ 정상 철책을 따라 돌아가는 탐방로

해운대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 장산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정상에 자리한 군부대로 인하여 등산로가 막혀있다 개방된 지금도 남아있는 지뢰의 위험으로 접근금지 푯말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발목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장산 정상부근은 지뢰매설지역으로 2006년 군에서 지뢰제거를 하였지만 유실, 미 제거 지뢰로 인하여 위험한 지역이자 공군 제8120부대 와 국군 55통신대대 장산 통신소가 위치해 있는 군사보호 지역으로 등산시 탐방로를 이탈하여 철책 근처로 접근하는 것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장산 동국아파트 담장을 끼고

출발을 하다.

 

▲ 장산 동국 아파트 외벽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초입

 

장산은 반송동. 반여동, 재송동, 우동, 좌동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기장읍 안국사를 거쳐 오르는 등산로 등 필요에 따라 등산 출발지점을 잡고 오르면 된다. 오늘 장산을 오르는 등산로 초입은 동국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오르는 장산 현대3차아파트 정문 앞에서 출발을 한다. 등산 초입은 동국아파트를 만들면서 생겨난 경사로를 따라 계곡입구까지 진행하여 다시 계곡 옆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체육공원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장산 탐방이 시작된다.

 

▲ 재송동 동국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오르는 초입 등산로

장산은 해운대 구민의 산이다. 동내에서 올라오는 길목에는 체육공원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장산 동국 위쪽에도 체육공원을 만난다.

 

체육공원에서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진행하면 너덜구간으로 가는 갈림길이나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 위봉을 거쳐 억새밭으로 향하는 길이 나오며, 체육공원을 곧장 관통하여 너덜겅을 따라 오르면 너덜겅 지대를 연이어 통과하는 너덜지역 탐방이 시작된다.

 

▲ 장산 너덜지대에서 정상을 향해 올려다 본 전경

▲ 너덜지역에서 바라 본 수영구 방향 도심

▲ 너덜지대에서 만나는 너덜겅은 다양한 크기가 서로 겹쳐 있다.

 

장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너덜지대는 너덜겅, 스크리(scree), 돌서렁 등으로 불리는 돌로 이루어진 지역을 애추라 한다. 화산작용 그 이후 동결과 융해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암석으로 주빙하기후(周氷河氣候)에 생선된 지형에서 확인되고 있다. 너덜지대가 많은 산으로 경남 밀양군 얼음골, 만어산이 유명하며, 장산도 재송동 지역과 좌동, 우동 지역을 따라 많은 너덜겅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장산은 돌시렁 구간이 재송동에서 우동, 좌동을 돌아나올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특히 해운대 마천루 불빛과 광안대교 야경은 장산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장산에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성불사에서 조금 올라 7부 능선길에 위치한 돌시렁 구간이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돌시렁 계단길 아래 약수물도 넘쳐난다.

 

▲ 장산 너덜지대에서 바라본 다이야몬드브릿지(광안대교) 전경

 

장산 동국아파트를 시작으로 너덜지대 여행은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산 5부 능선 정도 높이를 따라 이동하는 너덜지대 탐방로와 7부 능선길을 통과하는 너덜길이 연이어 아래 위로 통과하는 장산 여행의 백미인 너덜지대 여행은 재송동 지역에서 바라보는 동래구와 수영구, 남구 지역의 주택과 그 사이로 열려 있는 도로의 모습이 현기증이 날 만큼 한눈에 조망된다.

▲ 너덜겅 암괴류 위로 파란 하늘이 흘러가고 있다.

 

동래구 방향에서 돌아 나오면서 가장 큰 너덜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남구와 해운대구가 조망되며, 특히 센텀지역과 다이야몬드브릿지(광안대교) 전경이 묘하게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마천루와 광안대교를 조망하는 너덜구간은 숲길과 너덜지대가 번갈아 가면서 만나게 된다. 햇볕 피할 곳 없는 너덜구간에서 흐른 땀을 솔숲구간에서 땀을 훔치며 쉬어갈 수 있을 만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능선길이 이어져 있다.

 

 

중봉에 오르다

 

▲ 중봉 정상 전경. 작은 암봉이 솟아나 있다.

 

산림감시카메라로 오르는 계단에서 계단을 오르지 않고 조금 진행하면 중봉으로 향하는 쪽길이 나온다. 중봉은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중봉(403m)에서 바라보는 장산의 전경과 산불감시와 신림감시를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조망할 수 있다.

 

 

중봉(403m)은 작은 암산 덩어리를 옮겨 놓은 수석 위에 소나무를 심어 놓은 듯 소나무와 암산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며, 뒤편 해안방향으로는 조망을 할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진 곳이다. 중봉 정상에서 올라온 옆 방향으로 내려서면 옥녀봉으로 향한다.

 

 

옥녀봉에 오르다.

 

▲ 옥녀봉 정상석

 

중봉을 떠나 내리막 구간을 지나면 체육공원에 도착한다. 체육공원에서 올라서는 언덕길 끝자락이 옥녀봉이다.

 

옥녀봉은 장산 마고당에서 바라보면 돌출되어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장산보다 작다하여 꼬장산, 꼬마장산, 바다의 고동을 닮아 고동산으로도 불렀다 한다. 옥녀봉은 해발 383m 이며, 이곳에서 광안대교를 조망할 수 있지만 야경을 찍기 위한 공간의 폭이 좁아 몇 명이 올라서면 자리가 좁다.

 

▲ 옥녀봉에서 바라 본 해운대 신도시와 달맞이언덕 그리고 광안대교

 

옥녀봉(383m) 정상은 숲이 가려져 있지만 조금만 내려서면 틔인 공간을 통해 신도시를 가깝게 조망할 수 있으며, 여름이면 옥녀봉 주변 자리를 펴고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체육공원에서 장산폭포(양운폭포)로 향하는 탐방로 초입

체육공원으로 내려선다. 긴긴 가뭄에 빗방울이 잠시 장산을 적셔 놓았기 때문에 찾아가려 꼭 내려서지 않아도 되는 대천공원까지 이동하기로 하였다. 옥녀봉에서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은 부산 장산의 숨겨놓은 계곡을 만나게 된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다보면 다양한 테마의 숲이 나오며, 숲길 끝자락이 체육공원이다. 옥녀봉 아래 체육공원에서 간비오산 봉수대는 약 2.5km 구간이며, 대천공원은 1.7km, 옥녀봉은 200m 거리이다.

 

▲ 옥녀봉에서 대천체육공원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 대천 체육공원

 

장산폭포를 만나다.

 

부산에는 폭포가 없다 말한다. 장산 신도시에서 올라서면 제일먼저 만나는 폭포가 구시폭포이며, 체육공원 입구에서 양운폭포를 만난다. 이외에도 비록 규모는 적지만 애기폭포와 장원폭포가 있다.

 

▲ 장산 양운폭포 전경

장산폭포에 관하여 향유 정봉조는 봉래형승차산중 수결은하주벽공 / 층애우색주기세 급협풍성벽력웅 / 유객상심춘주백 잔승난매효등홍 / 시지축일무정력 응여천지필경통 이란 시를 남겼다.

 

봉래산보다 나은 곳이 이 산중에 있으니 누가 은하수 잘라내어 푸른 하늘 물 뿌려내는가. 층층벌벽 구슬 같은 물망울 떨어지고 가파른 골짜기 바람소리 벽력처럼 웅장하다. 나그네 서로 찾는 춘주는 백색이요 노스님 잠 못 이루는 새벽 등불은 붉도다. 날 새올 제 멈춘 힘없음을 비로소 알게 될 즈음 하늘과 못이 마침내 한가지로 푸른빛이도다.

 

蓬萊形勝此山中 誰決銀河注碧空 / 層崖雨色珠機細 急峽風聲霹靂雄 / 游客相尋春酒白 殘僧難寐曉燈紅 / 始知逐日無停力 鷹與天池畢竟通

 

부산 유일의 폭포 양운폭포는 옛 해운대에서 가장 일찍 봄이 오는 곳이라 봄내라 이름 붙였다. 장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갯버들을 깨우며 흘러 춘천을 따라 흘러 오늘날 동백섬 앞으로 흘러들었고 그 퇴적층으로 인하여 오늘날 동백섬은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부산 유일의 폭포 장산 양운폭포는 장산계곡과 구곡계곡의 물줄기가 합류하여 하나의 물줄기로 장산 체육공원 앞을 관통하여 크고 작은 낙차를 거친 후 제1 폭포라 부르는 절벽에서 낙차를 하는데 바로 양운폭포이다. 양운폭포는 3단의 단상을 거쳐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둘레 아래는 15m되는 푸른 소가 있어 흡사 가마솥을 닮았다하여 가마소라 불렀으며,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해운팔경 중 제8경으로 양운폭포이다. 부산은 계곡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6경 장지유수와 제7경 춘천악어를 만든 상류 부분에 장산계곡으로 흘러내린 물이 높이 7~8m 절벽을 통해 떨어지는 모습이 흡사 구름이 피어나는 광경과 같다하여 불러지는 곳으로 양운롱, 양운폭, 장산폭이라 불렀다.

 

 

폭포사로 내려서다

 

▲ 폭포사 전경

 

양운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잠시 계곡을 휘감아 나아가는 곳에 위치한 폭포사는 항상 계곡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1986년 대웅전을 확장하면서 절간의 분위기를 갖춘 약 70여년 된 사찰로 동곡스님이 창건 한 후 동곡스님은 200991세로 입적하셨다.

 

 

대천호수공원으로 향하다.

 

▲ 대천호수공원으로 내려서는 길목에서 다양한 테마숲을 만난다.

▲ 햇살을 피해 쉬어가고 있는 탐방객

▲ 대천호수공원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만든 인공 대천호수는 해운팔경 중 제6경 장지유수로 불리던 곳으로 오늘날 해운대도서관 근처 연못이 있었는데 장산과 간비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춘천으로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다하여 불러지는 곳이지만 오늘날 춘천은 복개되고 그 흔적은 몇몇그루 소나무가 전부이다. 7경 춘천귀어는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옛 장지유수로부터 조금 위 대천공원을 만들고 그 앞에 대천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달밤에 물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며 즐겼는데 이를 춘천귀어라 한다.

 

 

장산 폭포사에서 대천공원 잇는 다양한 생태숲길을 지난다. 참여의 숲길은 약 1,93km 구간으로 향일 촛불광장-폭포사-대운폭포-대청체육공원을 통과하며, 배움의 숲길은 3.3km 구간으로 대천체육공원에서 모정원-너덜 학습장-참나무 학습장-춘천 생태 학습장, 그리고 건강의 숲길은 3.83km 구간으로 대천공원에서 옥녀봉-안부-중봉을 잇는 오르막 구간이 있다.

 

 

대천공원은 해운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춘천천을 정비하여 만든 작은 소류지이자 휴식공간을 겸비한 도심의 인공호수로 주변에 신석정, 조지훈 등 유명 시인들의 시를 새겨 놓은 돌과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다시 되돌아

장산 입구 모정원으로 향하다.

 

다시 장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체육공원을 지나 모정원에 도착한다.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의 집에서 잠시 강근호 선생이 누군지 살펴 본다. 강근호(1898-1960) 선생은 함남 정평 출신으로 1916년 학생소요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수배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19193.1만세운동 직후 무장독립군의 산실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6월 이장령 참모장과 함께 북로군정서에 부임하여 사관연성소교관 및 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다.

 

▲ 강근호 선생의 집 '모정원'

 

192010월 청산리전역에서 대한군정서 제1중대장으로, 19215월 시베리아 흑하사변, 192210월 고려혁명군 교관, 1926년 민족적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며 조국 광복이 되자 1947년 귀국하였고 1949252세 나이로 육사에 입교, 장교(군번 13193)가 되어 건국과 6.25를 거쳐 19565월 제103사단 제118연대장으로 전역하였으며, 19602월 영도 영선동에서 63세로 작고 하였다. 이후 유해는 장산으로 모셔왔지만 199012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이장되고 현재는 부인과 함께 일군 옛 가옥이 장산 입구에 남아 있다.

 

장산과의 인연은 부인 이정희 여사 때문이었다. 이시영 부통령의 손자 이상룡 선생의 차녀로 태어나 대전 대동여고 5학년 재학하던 그해 한국전쟁이 나자 대구로 피난하였고 왜관 제2보충대 국군장병 모집하는 선무방송요원으로 활동하다 여군 제2기로 자원입대 후 국군 제1군단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하였고 19534월 강원도 양구에서 연대장으로 있던 강근호 지사를 만나 결혼 남편이던 강근호 선생이 작고하자 미군의 도움으로 성가보육원과 탁아소를 운영하다 1963년 장산에 들어와 장산 개척단장(1963-1970)을 하며 장산에 모정원을 만들고 살았다. 모정원은 자식을 그리는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생각나게 하는 동산이란 뜻이다.

 

▲ 대천공원 입구에 세워진 애국지사 강근호 기념비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비가 공원입구 왼편에 서 있다. 20150605일 제막식을 통해 공개된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강근호(1898-1960) 애국지사는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신흥무관학교 졸업 후, 1920년 대한군정서 보병대 제1풍대장으로 청산리대첩에 참전하여 역사에 빛나는 무공을 세웠고, 광복 후 육사에 입교. 연대장으로 6.25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전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 제53사단 장별들이 장산 모정원에 추모비(현충시설 40-1-22)를 건립하였다. 평생을 항일독립운동과 진충보국에 받친 애국지사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해운대구민의 뜻을 모아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립니다.’

 

 

장산 마고당

 

강근호 선생 집에서 조금 아래 마고단, 천재단으로 향하는 산길이 너덜지대 옆으로 이어져 있다. 마고당과 천제단을 거쳐 중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마고당은 입구 이정표로부터 마고당은 약 1,0km, 천재단은 1,2km, 중봉은 1,8km 이다.

 

▲ 너덜지역 경사지역 아래 위치한 마고당

 

장산 천제단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장산은 하늘의 정기가 아래로 음질한 것이니, 이른바 천산(천신)이다. 장산은 천산으로 마음을 품고 해운대를 진호해 주는 진산으로 삼았다. 체육공원을 지나 왼쪽 오솔길로 1km 쯤 올라가면 마고당에 다다르고, 여기서 200m 쯤 가면 신성바위인 천제단이 있다. 천재단은 지금부터 23백년 전, 장산국이 씨족끼리 형성된 마을공동체로서의 일체감과 수렵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자연숭배사상에서 천신과 산신에게 제천의식을 1년에 두 번(1월과 6)씩 올리던 곳이다. 제사는 하늘의 천신, 지신. 산신께 올리던 것인데, 1월제사는 풍년과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는 제신에 대한 감사제였고, 6월 제사는 풍년에 감사하고 묵은 잡귀를 몰아내어 재난을 구조하고 신성한 다음해를 맞이 하려는 의도의 제천행사 였다. 신선바위에 3개의 선돌은 천신, 지신, 산신의 상징물이다.

 

 

장산 너덜겅을 걷다 보면 너덜겅 주변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제당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마고단으로 마고영신, 신왕대신 신위를 모시고 있다. 모신 신들은 어쩌면 옛 이곳에 터를 잡고 세력을 키웠던 장산국의 시조가 아닐까 싶다. 너덜겅 지대를 조금 더 오르면 하늘에 제를 지내던 천재단을 만나게 된다. 장산에는 다른 산과는 달리 천재단, 마고단, 산신단이 자리하고 있다. 장산에는 장산국이 존재하였다. 오늘날 등산로가 어쩌면 옛 장산국 사람들이 걸어 이동하던 옛길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장산국은 신라 탈해왕에게 토벌되면서 거칠산군으로 합병되며 사라진다.

 

 

장산 억새밭

 

▲ 장산 억새밭 여름 전경.

장산 억새밭 언저리에 벤치 의자가 두개 놓여졌다.

 

 

 

 

 

1960년 말까지 머슴들은 팀을 만들어 장산을 올랐다고 한다.

 

오늘날 장산 억새능선의 억새를 베어 초가집이나 헛간채 등 가을 지붕을 이을 덮개용이나 나무 땔감으로 사용하였다는 구전을 통해 지금보다 상당한 규모의 억새밭이 형성되어 잇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산 탐방로에서 쉬어가는 공간이 억새밭이다. 정상을 앞두고 가장 넓은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억새밭은 산불감시초소와 소나무 숲 그늘이 시원한 휴식터를 제공하며, 반송지역, 재송동, 대천공원 방향에서 올라오는 탐방객이 이곳부터 정상으로 향하는 하나의 산길로 이어지는 합류지점이기도 하다.

 

 

장산 위봉에 쉬어가다.

 

▲ 반송지역으로 내려서다 무덤 위 돌길

 

 

해운대의 진산(鎭山)인 장산(萇山.634m)은 태백산 끝자락이 바다로 향하는 능선으로 기장군 달음산에서 장산~금련산~황령산~영도 봉래산을 잇는 금련산맥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해와 남해바다의 경계와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거칠다는 의미와 거친 돌복숭 나무가 많아 장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 위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반송지역 전경

 

위봉 정상이 아직까지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지만 위봉부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바위가 있는 곳은 위봉 갈림길에서 반송방향으로 내려서다 무덤 옆으로 돌길을 따라 조금 들어서면 반송지역과 건너편 아홉산까지 조망되는 탁틔인 공간이 나온다.

 

 

장산 장자벌 할미이야기

 

장산 장자벌에 마을이 있었다 한다. 마을에는 고선옥(高仙玉) 처녀와 홀어머니가 살았는데 오느날 하늘에서 선인이 내려와 거닐다 바람에 여인의 분 향기에 이끌려 고선옥 집을 찾게되었고 선인은 고선옥의 매혹적인 모습에 반하였다. 이후 혼인하여 아들 열 명과 딸 열 명을 낳아 주변 마을에 흩어져 각자의 성씨를 만들고 살았으며, 선인은 마을에 토성을 쌓고 대족장이 되었지만 옥황상제의 부름으로 등천하자 고선옥은 고씨족을 다스리는 고씨 할매가 되었다. 고씨 할매는 선인이 하강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제단을 만들어 불공을 드렸지만 결국 숨을 거두자 부족민이 바위를 다듬어 상여를 만들고 정상에 묘를 만들어 안장하였는데 오늘날 제왕반 바위, 상여 바위, 영감할매 바위, 고씨 할매 묘 등이 이야기 되고 있으며, 사당을 짓고 수호신으로 매년 정월 보름날 고딩 할머니 제를 올리고 있다.

 

장산 소나무 이야기

 

조선시대(1391~1910) 목재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집을 짓거나 병선을 만들려면 많은 목재가 필요하였고 목재확보를 위하여 나라에서 소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도록 봉산(封山)’제도를 두었다. 부산에도 봉산 구역이 지정되었는데 장산, 운수산, 몰운대, 두송산이 해당된다. 산에서 소나무를 무단으로 10주 이상 채벌 또는 산불을 내면 오늘날 사형으로 다스리며, 9주 이하는 1주에 곤장 60대를 맞아야 했다.

 

장산 봉산 안내글을 옮겨보면 동하면 고문서에 봉산에 관한 내용은 후장(재송1동 산74-4일대) 조선골 및 승당(2) 두 산에서 전선, 진선 등 개조할 때 목재를 운반하는 일 품삯 등은 5개동(재송동, 우동, 중동, 좌동, 해동)이 전담하였다 기록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장산은 62백만~74백만년 전 화산 폭발로 지층이 솟구쳐 생겨난 산으로 장산은 다른 산에 비하여 많은 너덜겅 지역과 정상 주변에는 억새밭 군락지 그리고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사실상 정상은 오를 수 없어 군부대 철책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전망이 좋은 지점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장산(萇山)은 이미 오래전인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와 가야의 경계지역이던 당시 장산을 기반으로 한 장산국(萇山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신라 석탈해왕에 의하여 멸망하자 장산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갓다 한다. 당시 좌동 일대에 5개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존재하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탄약창고를 만들면서 고분이 사라져 오늘날 흔적조차 확인 할 길이 없다.

 

 

억새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삼한시대 장산국이 존재하였다 하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동래부지 산천조에는 상산(上山, 웃뫼)을 장산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의 15리에 있으며, 대마도를 바라보기 가장 가깝다. 산의 정상에 평탄한 곳이 있고, 그 가운데가 저습한데 사면이 토성과 같은 형상이며 둘레가 2천여보가 된다. 전해오기로 장산국기(장산국의 터)라고 한다고 하였다.

 

최근 장산입구에 새로운 시설이 자리했다. 대천공원에서 약 150m 지점에 지상 2층으로 조성된 건물이 바로 산림생태관찰센터로 20141118일 개소하였으며, 2015515일까지 산불방지를 위해 등산로 12곳을 출입통제하고 있으며, 최근 부산 권역 산을 조사한 결과 장산 권역에서 535종류가 확인되는 반면 백양산은 409, 황령산 권역은 405, 영도 권역은 377종이 관찰되면서 부산 장산 권역이 환경생태가 우수한 곳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장산 권역 조사에서 희귀식물 12종이 확인되었고 대천공원에서 150m 오른 지점에 산림생태관찰센터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코스는 장산을 탐방하는 코스를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중봉을 거쳐 옥녀봉 그리고 내려선 후 장산폭포를 거쳐 대천공원까지 내려갔다 입구에서 강근호 선생의 기념비를 보면서 갑자기 모정원이 떠올랐고 모정원을 거쳐 마고단 그리고 천제단을 만난 후 중봉을 거쳐 되돌아 오려 하였지만 마고단에서 천재단을 찾지 못해 길을 헤메다 결국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여 억새밭을 만나면서 위봉을 잠시 돌아 본 후 원점으로 되돌아 오면서 장산을 약 5시간 이상 걸었던 여행길이었다. 장산을 잘 안다고 생각해도 아직 찾지 못한 천제단을 다음에는 꼭 찾아 갈 것이다.

 

상에 서면 도심이 조망된다. 동래구, 수영구, 금정구, 기장군까지 시야가 거침없다. 특히 수영구 방향 광안대교와 해운대 현대 아이파크 고충빌딩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동해바다와 남해바다의 경계를 두루 넘나들며 부산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자 어둠을 불밝힌 도심의 불빛과 광안대교의 야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 장산을 여행 중 만난 산고양이. 한 아주머니가 고양이와 다정스레 있어 여쭈니 산에 사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자주

가져다 준자며 사람을 잘 따른다고 하였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도 달려와 부비 부비하는 고양이

 

장산동국아파트 측면 담벼락 - 너덜지대 - 중봉 - 옥녀봉 - 장산폭포 - 폭포사 - 대천공원 - 마고단 - 억새밭 - 위봉 - 출발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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