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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트레킹 - 밀양 표충사 재약산 폭포

허영꺼멍 2015. 7.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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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25-1     

밀양 표충사 & 재약산 폭포여행

 

▲ 밀양 표충사 매표소 옆 계곡

 

비 내린 뒷날 날씨만 도와준다면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오늘 찾아가는 산은 밀양 표충사 뒤편을 감싸고 있는 밀양의 주산 재약산(1,018m) 중에서 표충사 오른편 계곡을 따라 흑룡폭포와 무명폭포, 층층폭포를 찾아 오르는 길과, 사자평을 경유하여 적조암 방향으로 내려서는 코스이다.

 

 

표충사-2km-흑룡폭포 전망대-1.2km-층층폭포-0.5km-사자평-3.8km-표충사

 

 

태풍 영향으로 부산 경남에도 제법 비가 내렸고 밀양천변은 물이 넘쳐흘렀다. 표충사 매표소를 통과하여 계곡 가까이 주차를 한 후 작은 배낭에 꽁꽁 얼려 놓은 생수와 약간의 간식만 들고 계곡을 따라 오르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비가 내려 질퍽한 산길이 염려되어 예비 신발과 양발을 배낭에 넣어 출발을 하였다.

 

 

 

표충사 범종각과 우화루 뒤편 계곡에 도착한다. 계곡을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이 불어나 계곡을 건너는 시멘트 도로는 넘쳐났고 출발부터 양발을 벗어야 했다. 계곡의 우렁찬 소리에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물은 빠르게 스쳐 흘렀다.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굴참나무숲길을 통과한다. 자연과 들숨날숨하며 걷다보면 이따금씩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평일이라 고요한 산속을 걷는 동안 단 한명의 등산객도 스쳐가지 않을 만큼 오직 들리는 것은 계곡이 토해내는 비명소리만 따라 올 뿐이었다.

 

▲ 계곡 건너 본격적으로 좁은 산행길이 시작된다.

 

계곡을 다시 건넌다. 본격적으로 흑룡폭포로 향하는 길이 열리면서 가파른 지그재그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숲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물소리는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따라 온다. 넓은 산길은 계곡을 건너면서부터 좁은 산길로 이어진다. 낙엽이 층을 이루고 있어 혹시나 독뱀이 나올까 내심 두려움에 발걸음이 더뎌진다.

 

 

흑룡폭포 전망대에 서다.

 

▲ 흑룡폭포는 협곡에 위치하여 진입을 할 수 없다.

협곡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전망대

▲ 끝을 알 수 없는 흑룡폭포

▲ 전망대

 

초록빛 자연을 딛고 오르다 보면 바위산 협곡을 따라 기세 좋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만나는데 바로 흑룡폭포이다. 폭포 방향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아찔한 폭포를 보는 순간 힘겹게 올라온 수고로움이 한방에 보상되는 느낌이다.

 

경급사 비탈을 딛고 오른 만큼 자연이 그려낸 한폭의 그림에 감탄과 탄성이 이어지지만 아쉽게도 폭포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없을 만큼 협곡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폭포가 바로 흑룡폭포이다.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장쾌한 흑룡폭포는 참을 수 없는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협곡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 속에 이런 비경이 있다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폭포임음 틀림없다.

 

 

무명폭포를 만나다

 

 

오르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등산로이다 보니 적막감마저 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발길은 전진을 할 뿐이다. 흑룡폭포를 거쳐 층층폭포를 가는 중간에서 깍아지런 듯 넓게 솟아오른 바위를 어루만지며 떨어지는 무명폭포를 만난다. 안내도에도 무명폭포는 표시되지 않았는데 제주도 엉또폭포와 같다고 보면 된다. 비가 내려야 쏟아지는 폭포로 흑룡폭포와 층층폭포에 비하여 물이 많지는 않으며, 폭포 앞으로 흔들다리가 놓여 있다.

 

 

층층폭포 하단폭포

 

무명폭포를 거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 고비 넘기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길을 연다. 약간 멀리서 들려오던 폭포 소리가 다시 웅장한 소리로 가슴을 두드린다. 층층폭포가 가까워 졌다는 것이다. 층층폭포는 상단부와 하단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폭포의 경계에 흔들다리가 놓여 있다.

 

 

층층폭포 하단에 위치한 폭포를 만나기 위해 등산로를 이탈하여 계곡으로 내려선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부상으로 이어질 만큼 계곡은 습기로 샤워 할 만큼 축축하였고 폭포와 마주하자 막막함과 경이로움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폭포가 그려내는 장관 그리고 천혜의 쉼터에서 자연이 빚어낸 무한한 아름다운에 찬사를 보낸다.

 

 

층층폭포는 2단 구조이다. 처음 만나는 것이 층층폭포 하단부분으로 상부 폭포와 하부폭포 중간 절벽지대에 출렁다리가 놓여져 있다. 거침없다.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물길을 열어 놓은 자연의 모습에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 비가 내린 뒷날 폭포를 만나기 위해 질퍽한 산길을 오르는 이유가 바로 장쾌한 폭포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층층폭포 하단폭포가 흑룡폭포로 향하고 있다.

▲ 층층폭포 상단부와 하단부 경계에 놓인 흔들다리

▲ 상단부에서 하단부로 떨어지는 물줄기

 

 

층층폭포 상단폭포

 

 

층층폭포 상단으로 오른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막혀 잇는 듯 가로막은 바위를 딛고 오르면 흔들다리와 함께 하단부에서 만난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를 만나게 된다. 바위를 어루만지며 떨어지는 그 모습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층층폭포 상단은 바위산을 타고 흐르는 폭포로 소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좋다.

 

▲ 사자평으로 향하는 사자교

▲ 자연에서 만난 다람지

▲ 억새평원 사자평

▲ 하산길에서 만난 전경

 

작전도로를 따라 오른다. 진불암을 거쳐 제약산으로 향하려던 길이 공사구간으로 인하여 진입 금지되면서 우회를 하도록 만들어 놓았고 진불암을 300m 남겨 둔 거리에서 되돌아 내려섰다. 더 나아가기는 것도, 정상으로 향하는 것도 산을 오른 이유이겠지만 출발이 느렸고 혹시 늣은 시간 미끄러운 산길로 내려설까 하는 불안감에 하산을 결정했다.

 

 

단독 산행은 무리하게 나아가다 혹시 모를 사고가 생기면 대책이 없는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판단으로 다시 힘겹게 오른 길을 내려 선 후 고사리분교로 내려선다 그리고 적조암 이정표를 따라 약 3.8km 구간을 통과하여 표충사로 하산하였다.

 

 

밀양 표충사

 

▲ 표충사 사리탑

 

삼남금강 푸른 숲 산자락 발꿈치에 유독 풍경소리 요란한 사찰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표충사이다.. 한때는 1천여 명의 스님이 머물렀지만 그 세월도 잠깐이라 폐허가 되니 불심이 사라질 법도 하지만 광해군 2(1610) 혜정이 중창하여 또다시 불심이 부흥을 꾀하지만 현종 연간에 이르러 또다시 폐사 지경에 이르니 영정사의 업보이련가. 신아 흥덕왕 4(829) 서역승이 맑은 물을 이용해 환자를 고쳐주며 주민들이 뜻모아 만든 영정사는 일년스님이 머물기도 하였지만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가 싶더니 현종5(1839) 사명당의 법후손 월파스님이 예조의 승인을 받아 무안의 표충사를 옮겨 "표충사"라 부르니 오늘날 모습을 비로소 가지게 되었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오늘날 극락암 자리에 암자를 만들고 수도하던 어느 날 재약산 기슭 대밭 속에서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오르자 그 자리에 절을 창건 후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 불렀다. 흥덕왕 4(829) 인도스님 황면선사가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시고 한반도를 유람하던 중 재약산 오색서운을 보고 삼층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게 된다.

 

당시 홍덕왕의 셋째 왕자가 풍병으로 고생하며 영산약수를 찾던 중 죽림사에 머물게 되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병이 완쾌되자 왕이 사세를 확장, 절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라 한다. 표충사는 유교서원과 불전이 공존하는 특이한 사찰이다. 표충사 경내에 자리한 표충서원에는 사명대사 유정, 서산대사 휴정, 기허대사 영규 세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592(선조 25)임진왜란으로 사찰은 폐허로 변하자 현종5년 사명당 법후손 월파스님이 무안의 표충사를 표충서원으로 옮겨 임진왜란 당시 의승대장인 사명, 서산, 기허 세분을 모시면서 영정사는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된다. 표충사는 고려시대 일연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탈고 하였으며, 충렬왕은 "과연 천하명산"이라 감탄하여 동방제일의 선찰이라 불렀다 한다.

▲ 표충서원

 

표충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표충사 경내로 진입하는 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서원은 본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당 등 세분 대사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원래는 무안면 중산리 삼강동에 표충사라는 사당으로 세워져 있던 것을, 1839(조선 헌종 5)에 옛 영정사터인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표충서원으로 편액을 걸었다. 이 때 절 이름도 표충사로 고쳤다. 서원은 전통 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대유학자인 선현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표충서원 역시 건물의 구성과 배치뿐만 아니라 제례 절차도 일반 서원과 같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8(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고, 사당도 불전으로 바뀌었다. 1926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대광전과 세 대사의 영정을 모시던 영당 등이 불탔다. 이듬해에 중건할 때 대광전과 함께 서원 건물도 함께 복원되어 영당에 모셨던 세 대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과 서원의 사당이 나란히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승려들의 요구에 따라, 1971년에 표충서원을 경내 서편에 위치한 팔상전 자리로 옮기고 본래의 서원건물을 팔상전으로 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당시의 서원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제례가 행해진다. 이 표충서원은 조선 시대 이후의 유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특이한 사례이다.”

 

▲ 만일루

 

표충사 만일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로 H자로 조성한 보기 드문 건축양식으로 철종11(1860) 당시 방장 월암상인이 조성한 것으로 본래 48칸의 선실을 108평 대지 위 만든 후 "동림고사"로 부르다1962년 소실 후 중건과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만일루는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하신 효봉대종사께서 말년을 보내며 열반에 든 장소이기도 하다.

 

▲ 보물 제467호 표충사삼층석탑

 

보물 제467호 표충사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형식을 하고 있는 높이 7.7m3층석탑이다. 석탑기단은 단층이며 면석은 5매로 구성되고 우주와 탱주1주가 있어 각면을 2구로 구분하고 있으며 보물 제467호로지정되어져 있다. 표충사 석등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로 기둥돌과 등을 넣는 화사석, 화사석을 받쳐주는 위 받침돌, 지붕돌 등을 모두 갖추고 탑 앞에 바짝 붙어 이다. 탑의 조각기법을 통해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 석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3층 석탑이다. 1995년의 해체 보수 때에 나온 많은 유물은 탑과 표충사의 역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탑은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단층이고, 지붕돌의 주름도 한 개가 줄어든 네 개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에는 여러 장식과 함께, 아직도 찰주가 높이 솟아 있고, 지붕 모서리에는 작은 풍탁을 달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다.

 

지붕돌에는 근년의 것이긴 하지만, 2개의 풍탁이 달려 있다. 기단과 지붕돌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보아 통일 신라의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균형 있는 전체적 비례와 우아한 모습은 같은 시기의 석탑 중에서도 뛰어나다.”

 

▲ 명부전

 

표충사 명부전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3호이다. 명부전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를 사찰 속에 옮겨 놓은 법당이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유명계릐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표충사 경내에 관음전과 나란히 있는 이 명부전의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전에 이미 있었던 것 같으며, 당시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대에 복구되지만 숙종대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주지 도한 등에 의해 다시 곧바로 복구가 이루어진다. 헌종대에는 월파 선사가 명부전 자리를 서산, 송운, 기허 삼대사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지금 전하는 것은 1929년에 복원한 것을 1989년에 개축한 것이다.”

 

▲ 표충사 중심건물 대광전

 

표충사 대광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이다. 표충사의 중심불전으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대광전은 표충사의 중심 불전으로 가운데 있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을, 서쪽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각각 봉안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지만, 전란 등으로 불타 버린 것을 1929년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정면 5,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다포계 양식이다. 기둥머리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과 기둥 위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잘 살리고 있다. 건물 네 귀퉁이에는 추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4개의 기둥을 따로 두어 추녀를 받치고 있다. 4개의 기둥 중 앞쪽의 기둥은 팔각형인 데 반해 뒤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매우 특이하다. 건물을 받쳐주는 받침돌은 잘 다듬어져 있으며, 주춧돌 역시 다듬은 돌로 되어 있어 건물의 품위를 높여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건물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 팔상전

표충사 팔상전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이다. 팔상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팔상전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한 탱화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이다. 팔상은 하천, 탁태, 강탄, 출가, 항마, 성도, 전법륜, 입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충사에는 조선 청종대에 환월선사가 지장전 옛 터에 세운 팔상전이 있었으며, 지금의 것은 표충서원이 있던 곳에 1971년 옮겨 온 것으로 그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표충서원은 사명대사 8세 법손 월파당 천유가 서산, 송운, 기허, 삼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를 받들던 곳이다.”

 

 

대표적으로 전해지는 유물로서"사명대사금란가사와 장삼" ,"표충사 삼층석탑, "청동향은향완"이 있다. 표층사에 있는 고려시대 향로인 청동함은향완은 절에서 사절에서 사용되는 향로로 청동향로에 무늬를 음각하고 그 음각 홈 속에 은사를 에워 장식한 은입사 기법으로 중국에서 발달한 기술로 19621220일 국보제75호로 지정되었다. 향로의 예술성은 당시 고려시대의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대법하고 있다. 받침안쪽을 살펴보면 원래 이 향완은 표충사가 아닌 창녕용흉사로 기록되어져 표충사로 오게 된 전래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 우화루

우화루에 올라 여름 바람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자귀나무의 유혹에 나비가 날아든다. 풍탁소리 귓전을 파고 드니 우화루 마루바닥 큰대자로 뻗어 곤한 한숨 자고 싶지만 입구에 떠억 내걸린 눕거나 걸터앉지 말라는 글귀가 신경써인다.

 

다녀온 산길을 넌저시 올려다 본다. 표충사에서 흑룡폭포까지 2,km, 흑룡폭포에서 층층폭포까지 1.2km 올랐으니 일단 3.2km는 기본으로 오른 길이다.

 

여기서 진불암까지 오른다며 1km 정도 올랏고 다시 되돌아 내려선 길이 3.8km 구간이니 사진 찍는다며 계곡을 들락날락 한 것 까지 대략 8키로~9키로 정도 걸었다.

 

 

다음에는 범어사 왼편계곡을 따라 오를 것이다. 사색하며 걷기 제격인 계곡을 따라 오르며 금강폭포와 한계암 이름없는 무명폭포 그리고 서상암을 거쳐 사자봉까지 오른 후 재약산 능선에서 내원암으로 내려서는 길을 따라 하산하는 코스로 아직은 한계암까지 가보지 않았기에 체력이 어느정도 비축되면 도전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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