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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산44 제천시 동산 남근석을 만나다.
무암사 입구 주차장-남근석-성봉-중봉-동산-무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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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이 위치한 바위능선 구간
소백산 줄기 갑오고개와 새목재 중간에 위치한 동산(896.2m)은 바로 옆 작성산(834m)과 함께 골을 이루며 동산(896m)으로 오르는 중봉(886m)과 상봉(825m)을 두고 있다. 동산에서의 조망권 보다 이곳 동산을 찾는 이유는 기묘한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남성의 상징인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품 남근석이 있기 때문이다.
무암사로 향하다.
▲ 성내리 마을을 지나 무암사로 향하는 산길에서 만난 전경 ▲ 대형차는 출입이 어려울 만큼 도로폭이 좁다.
언젠가 한번 찾아 가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동산 남근석을 만나기 위해 제천 청풍호를 돌아 무암사로 향한다. 오늘 여행의 목적은 등산이 아닌, 민간신앙이자 대자연이 만든 훌륭한 조각작품을 만나기 위한 산길이다. 무암사 입구 마을은 1984년 충주댐이 수몰지역이 되면서 이주민이 충주댐 인근 이곳 성내리에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등산길로 접어들다.
▲ 무암사까지 승용차 진입이 가능하며, 성내리 마을에서 2.5km 구간이다. 무암사 입구에서 작성산 1.4km, 남근석 0.6km, 무암사 0.2km 이다,
남근석 방향 이정표를 확인하고 계곡을 건너 숨고르기도 하기 전에 밧줄이 매달린 오르막 등산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쯤이야 애교 정도로 봐야 할 듯. 무암사 입구 출발점에서 남근석까지 600m 구간이었고,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계속 오르막길이다. 밧줄과 나무데크를 번갈아 오르다 보니 예비군 훈련 유격장이 따로 없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건너편 능선에 말로만 듣던 장군바위와 낙타바위 그리고 작성산 배바위가 시선을 끈다.
▲ 남근석 아래 데크계단을 오르다 내려다 본 전경. 무암사를 내려다 본다. ▲ 배바위
배바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작성산 위치한 배바위는 멀리서 볼 때 배의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배바위라 한다. 배바위를 오르고 나면 가까이는 무암계곡과 능선이 온화함을 느낄 수 있으며, 멀리 보이는 월악산과 청풍호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배바위는 암장의 폭 130m, 높이 160m 쯤 된다. 루트을 보면 총 13개의 루트가 소태길 기분좋은 날 폭풍전야를 빼고는 1~10번 까지 숫자로 표기하고 있으며, 루트들은 제1~4 피치까지 길게 이어진다. 배바위의 암질은 검은색이 많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슬랩, 페이스, 오버행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바위의 표면는 화강암이 특징인 돌기부분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화강암에 포켓홀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 남근석 입구에서 바라 본 건너편 능선길 낙타바위와 장군바위 전경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 역광까지 이어지는 시간이라 더욱 건너편 낙타바위와 장군바위는 어둡게만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남근석을 앞둔 마지막 아찔한 구간 밧줄을 잡고 오른다. 장갑과 무릎보호대를 준비하지 않아 진행이 어려운데 카메라 렌즈까지 바위와 부딪혀 가며 올라야 할 만큼 가파르다.
전국 최고 남근석을 만나다.
▲ 무암사 방향에서 올라오면서 만나게되는 남근석
천 길 낭떠러지 기묘한 풍광을 배경으로 굉장히 놀랍고 신비스런 남근석을 마주한다. 자연의 웅대함 그리고 가을을 안고 불어오는 하늬바람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마른침을 꿀꺽 삼켜내며 양물(陽物)을 바라본다. 석공이 돌을 다듬어 만든 순창 산동리 팔왕마을 입구 다산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남근석이 석공의 예술품이라면, 동산 초입 남근석(男根石)은 대자연이 빚어낸 변강쇠 양물이 아닐까 싶다.
▲ 다양한 방향에서 바라 본 남근석
남근석을 뒤로하며 동산을 향해 오른다. 무암사에서 남근석까지 예비군 훈련장을 방불케 하였다면 남근석에서 주능선을 잇는 길까지 특수훈련을 받는 곳이다. 밧줄하나 내려놓으면 또다른 밧줄이 기다리고 있다. 계속이어지는 암릉구간 그리고 제법 날카로운 각도로 인하여 체력소모가 심하였다.
남근석을 떠나 암릉구간을 오르다.
▲ 암릉구간에서 내려다 본 전경
▲ 남근석으로 부터 암릉구간 고사목 한그루가 서 있다. ▲ 건너편 능선에 조망되는 장군바위, 낙타바위 암릉구간 ▲ 남근석이 있는 봉우리부터 암릉구간을 거쳐 오르는 길을 내려다 본 전경
남근석을 출발하여 성내리를 출발하여 장군바위를 거쳐 동산으로 향하는 능선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성내리 3.5km, 동산 2km 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동산을 향하기 위해 성봉과 중봉을 거쳐야 한다. 능선에 도착하였으니 이젠 암릉구간이 끝이나는가 하였는데 성봉까지 밧줄을 잡고 오르지는 않지만 계속 오르막 암릉구간이 이어진다.
성봉에 도착하다.
▲ 성봉 전경
성봉(804m)에 도착한다. 남근석으로부터 1km, 진행하여야 할 동산까지 1.65km 이었다. 오르막을 내려서는 암릉구간을 마지막으로 소나무와 굴참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제법 단풍나무도 있었고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암릉을 벗어나 모처럼 평탄한 육산을 걷는 기분으로 중봉을 향한다.
성봉에서 중봉을 향하다.
▲ 성봉에서 중봉을 잇는 구간 단풍에 물들어 있다.
중봉(892m)에 도착한다. 성봉에서 중봉까지 1.65km 구간으로 표기되었는데 도착해 보니 중봉에서 성봉까지 0.92km 거리로 표기되어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진행하여야 할 동산까지는 0.72km 이었다. 일단 동산까지 가 보리라 마음먹고 걷기 시작하였다. 도착을 늣게 하였고 암릉구간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어둠이 찾아오기전 하산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 중봉 전경
동산에 오르다.
▲ 동산 정상석
동산에 도착하니 전망이 전혀 없다. 뭐 특별한 정상이란 의미도 없을 만큼 애써 동산을 향해 왔는지 되묻고 싶을 만큼 그냥 숲길에 불과하였다. 앞서 성봉과 중봉도 전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산 정상석으로 비석돌을 올려 두었는데 2002년 10월 18일 산림청 헬기의 도움으로 옮겨왔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산에서 다시 새목재 갈림길로 내려선다.
동산에서 무암사로 냐려서다.
▲ 동산에서 내려서는 길 단풍
계곡에 도착하여 무암사로 향하다.
▲ 동산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계곡
계곡에 도착하자 이게 웬 일인가. 이정표에 동산까지 1.5km 구간이며, 무암사까지 1.5km 구간이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분명 동산에서 출발할 때 1.3km 이었는데 계곡에서 앞으로 남은 구간이 1.5km 라니 어찌 산에 이처럼 황당한 이정표를 세워 놓았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무암사로 내려선다.
▲ 메마른 계곡
무암사로 내려서는 길은 상당히 좁고 위태위태하였다. 계곡은 메말라 있었고 가끔 뱀이 바위 밑으로 몸을 숨겼다. 길목마다 쏟아져 있는 도토리가 등산로를 미끄럽게 한다. 그리고 무암사를 300m 남겨두고 부도탑을 만난다.
▲ 무암사 부도
무암사에는 독특한 부도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무암사 입구에서 만나는 2기의 부도는 수월당 부도와 소부이다. 부도 주인이 죽은 소에서 나온 사리를 보관한 소(牛)부도라는 것이다. 무림사를 창건할 때 홀연히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 운반을 도와주었다는 것, 그리고 중창이 마무리 된 후 소가 죽어 화장을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사리탑을 조성하고 무림사를 우암사(牛)岩寺)로, 골짜기를 소부도골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다. 수월당 부도는 조선시대 부도로 1959년 3월 10일 주지 안형경 스님이 땅속에 묻혀있던 부도를 수습하여 1961년 9월 20일 현재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
대한불교 조계종 무암사(霧巖寺)에 들러다.
▲ 무암사 초입 전경
청풍호길 성내리 버스 정류장에서 무암사까지 2.7km 구간 이정표를 따라 진입한다. 신라 문무왕 당시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무림사로 불렀다. 사찰에서 서남쪽을 향해 올려보면 암봉 하나가 보이는데 그 바위가 늙은 노승을 닮아 ‘노장암’이라 부르며, 노장암이 안개가 드리워졌을 때만 보인다하여 무암사(霧巖寺)라 불렀다 한다. 무암사는 작성산을 배경으로 있지만 모산은 금수산이다.
▲ 무암사 입구 전경
지성극락(至誠極樂) 정령암(精靈巖)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만난다. 삼국시무림사기념 갑신2월11일에 만든 금석문으로 언제 어떤 이유로 조성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지성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 부처의 공덕으로 극락세계 연못 연꽃 속에 태어난다는 관무량수경 내용처럼 무암사 초입 이곳이 아마타불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무암사 입구 석굴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 말사로 사찰내 중심전각인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막돌 바른층쌓기 한 기단 위 막돌초석을 두고 그 위에 1,200년 된 사리나무를 다듬어 민흘림기둥을 세워 공포를 받치고 있다. (안내글에는 싸리나무라 하지만 싸리나무는 기둥 목재가 될 만큼 성장하지 않는다. 싸리나무가 아니라 사리나무가 맞는 것 같다. 사리나무는 사리함을 만드는 목재로 사용되는 느티나무 또는 소나무 일 것이다.)
▲ 무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머리가 크고 나발은 흙으로 만들어 붙였으며, 이마 위와 정수리에 계주 장식이 있다. 얼굴은 턱이 넓어서 넓적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상호는 원만하다. 양미간에는 수정으로 만든 백호가 박혀있다. 상체가 길고 다리의 폭이 넓지 않으나 몸 전체에 양감이 풍부하여 생동감이 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반원형으로 가리며 늘어져 있고, 가슴에는 가로로 입혀진 내의의 단이 보인다. 뒷면에는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의 주름무늬가 밑면까지 드리워져 있다. 배꼽부분 가까이에 군의대가 노출되었는데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있어 주목된다. 수인은 왼쪽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외장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가볍게 놓아 상장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인다.”
금월봉에 잠시 들러본다.
▲ 금월봉
금월봉에 잠시 들른다.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지는 신령스런 바위산 금월봉,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그대로 빼어 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고 있다. 금성에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금월봉 휴게소 앞 작은 언덕을 가득 메운 암석은 멀리서 보면 흡사 수석을 전시해 놓은 착각을 불러 온다. 아기자기한 형상을 한 바위를 두고 체천의 만물상 또는 소 금강산이란 별칭에 부합하듯 흙 하나 없는 바위산으로 사극 왕건 촬영 당시 협곡에서 습격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일대 충주호를 끼고도는 드라이브 코스에는 봄이면 아름다운 청풍호반의 만개한 벚꽃과 촬영지, 문화재단지 등이 있다,
▲ 남근석이 있는 봉우리 바위가 독특하다.
동산을 오르고 싶었고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 올해는 가보지 못하거나 가고픈데 미루어 두었는데를 찾아가면서 드디오 동산을 올랐다. 솔직하게 동산을 오르긴 하였는데 실망 그 자체다. 무암사 입구에서 남근석을 지나 성봉까지가 딱 좋다. 남은 중봉과 동산은 전망길이 없는 거의 활엽수 떡갈나무와 침엽수 소나무 군락을 거쳐 갈 뿐이다. 동산을 등산하고 싶다면 차라리 무암사에 주차를 해 놓고 장군바위 진입로까지 내려선 후 장군바위, 낙타바위를 거쳐 주 능선으로 옮겨간 후 다시 남근석으로 내려서는 게 좋을 것 같다. 코스가 짧아 보이지만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구간으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암릉구간 여행을 하는 게 차라리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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