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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트레킹 - 진안 마이산 암릉구간

허영꺼멍 2015. 11. 20.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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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0-21

진안군 마이산 암릉길을 따르다.

 

새벽을 깨워 달린다. 오감명상을 즐기며 적당하게 높은, 적당하게 걷는, 적당하게 즐길 수 있는 늣가을 산행을 겸한 여행지가 어딜까 곰곰생각하다 진안 마이산을 떠올렸고 그렇게 여행일정을 잡아 놓았지만 계속되는 때아닌 가을 빗방울에 발목 잡혀 있다 비가 잠깐 멈춘날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도착하니 일기예보와 달리 함양을 지나면서 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마이산(馬耳山)은 전북 진안군 진안읍과 마령면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국내 신비한 이적여행지 중 한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산 지명은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던 중 말의 귀를 닮은 산을 보고 마아산으로 불렀다.

 

마이산 이전 신라 때 서쪽 산 중에서는 최고로 아름답다하여 서다산으로, 고려시대는 용이 하늘로 솟아 오른 듯 생겼다하여 용출산, 조선 시대는 금을 묶어 놓은 금덩이산이라 하여 속금산이라 불렀다.

 

두 개의 봉우리 중 등산로가 없는 동쪽을 수마이산(680m), 등산로가 열린 서쪽을 암마이산(686m)이라 부른다. 마이산은 1979년 전라북도 도립공원 지정 및 200310월 국가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었다.

 

▲ 매표소에서 매표한 후 마이산 고금당 초입을 시작으로 오른다.

고금당 초입으로 부터 0.6km, 광대봉 3.1km, 전망대 1.4km 구간이다.

 

마이산도 금강산 못지않은 절경을 통해 사계절 부르는 산 이름이 제각각인데 봄에는 안개 위로 솟아난 봉우리가 돛대를 닮았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푸른 산맥이 용의 몽뚱이처럼 뻗어있어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산이 살찐 말로 쌍봉이 그 귀를 닮았다하여 마이봉’, 겨울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쌍봉이 붓을 닮았다하여 문필봉이라고 부른다.

 

고금당(나옹암)에 오르다.

 

▲ 고금당

 

비옷을 입고 고금당으로 오른다. 본격적인 산행 길에 접어들기 전 한적한 시골 같지만 옛 나옹선사가 수도를 통해 득도했다는 나옹암(오늘날 고금당)으로 오르면서 마이산 특징인 독특한 바위 산행길이 시작된다.

 

 

 

 

▲ 나옹암 전경

 

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 (懶翁禪師)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마이산 금색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고금당(古金堂. 옛 나옹암)은 고려말 3대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의 수도처로 알려져 오는 자연암굴이었다 한다. 오늘날 고금당이 자리한 이곳은 옛 나옹암이며, 금당사가 있던 곳이라 한다. 나옹선사는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라는 깨우침을 남겼으며, 1371년 공민왕 왕사로 책봉된 후 우왕 2(1376) 57세 나이로 밀양 형원사로 향하다 몸이 아파 여주 신록사 들런 중병으로 입적하였다. 현재 고금당에는 주불로 아미타불과 협시불로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고금당~ 봉두동을 거쳐 탑사로 내려서다.

 

▲ 마이산 독특한 지형

 

빗속 고금당을 시작으로 비룡대 전망대를 거쳐 봉두봉 그리고 마이산 탑사로 내려선다. 고금당에서 전망대를 지나 첫 번째 금당사, 탑영제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면 두 번째 명려각으로 내려서는 길 그리고 세 번째 봉두봉에서 탑사로 내려서는 동안 암릉구간은 계속 솓아지는 빗방울로 인하여 시야가 주변을 겨우 볼 뿐이었다.

 

▲ 전망대로 향하는 암릉구간

▲ 탑사로 내려서면서 만나는 암봉

 

고려 말 변방을 지키던 장수 이성계는 어느날 기이한 현몽을 꾸게 된다. 한 신인(神人)이 금척(金尺. 금으로 만든 자)을 건네며 이 금척으로 장차 삼한의 강토를 헤아려 보라하였다.

 

꿈을 기이하게 여기던 고려 우왕 6(1380) 이성계는 전라도 운봉지역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가 침입하였고 이성계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소탕하고 개선하다 오늘날 마이산인 용출산을 보면서 얼마전 기이한 꿈을 떠올리게 된다. 꿈 속에서 받은 금척을 묶어놓은 듯 한 산을 보고는 용출산을 속금산이라 불렀다.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이곳에서 30일간 기도를 하였다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 이성계 이씨(李氏)를 두고 오행상 금()과 상극이 되어 세상의 금 기운을 이곳에 묶어두고자 하는 의미로 속금산이라 부른 후 시() 남겼다.

 

동으로 달리던 천마 이미 지쳤는가 / 갈 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 / 연인이 몸통만 가져가고 두 귀는 남겼는가 / 두 봉우리 이루고 하늘로 솟아 있네.

 

 

조선 태종13(1413) 1012일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이 부왕이 남긴 시를 보고 마이산(馬耳山)으로 고치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하며, 이후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오다 대일항쟁기에 중단된 이후 1984년부터 부활하여 매년 1011일 마이산 산신제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태종이 부왕이 불렀던 속금산을 마이산으로 바꾼 것은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빠 산 이름을 격을 낮추어 버린것이라 한다.

 

 

탑사에 도착하다.

 

▲ 비내리는 탑사 전경

마이산의 독특한 지형을 타포니현상이라 한다.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만든 듯 보이는 마이산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 굳은 사질역암으로 바다에서 발견되는 지형인데 마이산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마이산 탑사에서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 조개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호수였던 지층이 충돌로 인하여 솟구쳐 올라 독특한 바위 형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풍수학자들은 산태극물태극형세로 국가적인 제향을 드리던 신성한 곳이라 주장한다 이는 신라 선덕왕이 서다산에서 소사를 지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이다. 서다산(西多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편에 등장하는 신라시대 마이산 지명이다.

 

▲ 마이산 입구에 자리한 이갑룡 처사 좌상

이갑룡(1860~1957)처사는 1860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효령대군 16대손으로 태어나 25세가 되던 해 마아산으로 들어온 후 솔잎으로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

 

역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현몽을 받고 탑을 쌓으면서 상단부분의 돌은 전국 각처에서 돌을 축지법으로 옮겨왔다고 하며, 탑은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의해 올렸다 한다.

 

마이산하면 탑사를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탑사는 이갑룡(李甲用. 본명 경의, 호 석정)처사가 홀로 이곳에 뜻한 것이 있어 들어온 후 돌탑 108기의 탑을 쌓았는데 오늘날 80여기만 전해지며,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 탑사

 

1885년 오늘날의 마이산으로 들어와 생식을 하며 1927년까지 약 30여 년간 치성을 통해 쌓은 108기 탑이 탑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세월의 흐름에 몰려든 관광객의 잘못으로 훼손된 탑이 발생하여 지금은 약 80여기만 남아 전해지는 신비한 공간이다. 탑사는 제1대 이갑룡 처사를 시작으로 제2대 이도생, 3대 이혜명 그리고 제41985년 신벽산큰스님으로부터 출가한 이진성 스님이 관리하고 있다.

 

 

쌓은 탑 중에 중앙탑은 바람이 심한 날이면 흔들리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전한다. 탑은 외줄로 쌓은 탑을 시작으로 탑사 위로 오방탑의 호위를 받고 있는 천지탑을 만날 수 있는데 탑은 1886년을 시작으로 1928년 완성되었다. 마이산에는 탑사 외 겨울이면 생기는 역고드름과 이처사가 신의 계시를 적었다는 신비스런 부적 등이 더욱 이곳을 신비스럽게 하고 있다.

 

▲ 천지탑

 

 

매년 1월이면 탑사와 은수사, 천황문에서 동굴에서 석순이 자라는 것처럼 받아놓은 물이 역으로 하늘을 향해 30cm 까지 자라는 신비한이적현상을 보여주는데 이때 소원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역고드럼이 자라며, 바위가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한 능력의 탑, 이갑룡처사가 수도중 신의 계시를 받아썼다는 신서와 부적 등으로 부적은 재난을 막아주는 신비의 능력으로 알려져 찾는 이가 많다.

 

은수사

 

▲ 안개비 내리는 한국불교 태고종 은수사 전경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갈라지는 분수령에 자리 잡은 은수사는 창건에 관한 정보는 없지만 조선시대 당시 상원사, 정명암 등으로 불린 흔적이 남아져 있다. 오늘날 은수사는 1925년부터 불렸으며, 지금의 건축물은 현대에 조성한 것이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5호로 높이가 18m, 가슴높이 둘레 3m로 청실배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한다. 특히 이 청실배나무 밑에 물을 담아두면 겨울철 역고드름이 자라는 신비한 곳이기도 하며, 청실배나무 씨앗은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서 증표로 씨앗을 심었다 전한다.

 

▲ 화엄굴로 향하는 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중간 협곡에서 수마이봉 근처에 있는 화엄굴은 천황문이라고도 한다. 화엄굴로 들어서면 석간수가 흘러나오며. 불임여성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굴은 낙석의 위험으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화엄굴은 숫마이봉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굴 내에는 석간수가 흐르는 자연동굴이다. 화엄굴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 꿈속에 남성을 상징하는 모습의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중간쯤에서 줄기차게 솟는 물길이 보였다. 부부는 꿈속의 그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전국을 해맨 끝에 찾아낸 곳이 바로 마이산 화엄굴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뒤 돌아가 득남을 한 효험의 부부소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득남 뿐 아니라 숫마이봉에서 뿜어진다고 믿는 강한 기와 그 속에서 솟는 석간수를 마시면 입시와 승진의 기회는 물론 사업의 번창까지 가져온다는 믿음과 바람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화엄굴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상봉이 서로 이어지는 잘록한 부분에서 동봉으로 약 150m 올라간 지점에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굴속에 작은 샘이 있다. 샘물은 아래에서 솟는 물이 아니라 동봉의 봉우리에서부터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석간수이다. 화엄굴이라 함은 예전에 한 이승이 굴에서 연화경, 화엄경 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남녀, 또는 부부로 비견하여 동봉을 속한 숫마이산, 서봉을 암마이산이라 하는데 동봉인 숫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험 생겼다. 이 봉우리 아래 굴에서 나오는 샘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여겨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이 이어온다.” 현재 화엄굴로 오르는 길은 해빙기(낙석)의 위험으로 인하여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마이산 팔경으로 화엄굴, 타포니현상, 역고드름. 은수사, 탑사, 탑영제, 금당사, 이산묘이다. 마이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타포니현상은 마이산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에 폭격을 맞은 듯 한 작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것을 타포니 지형이라고 하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역고드름은 겨울철 마이산에 정화수를 떠 놓으면 하늘로 솟는 얼음기둥이 만들어지는 현상이 있다. ‘은수사청배실나무, 줄사철나무군락과 태조 이성계가 선인으로부터 금칙을 받는 모습의 상상도인 천사금척도가 소장되어 있다. ‘탑사’ (석탑군)는 암마이봉(686m) 봉우리 암쪽 기슭에 1백여개의 석탑들이 세워져 있다. 석탑들은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탑영제는 마이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호수로 마이산의 봉우리가 거울처럼 비춰지며 아늑한 풍광과 10여리에 이어지는 벚꽃터널은 관광객을 붙잡는 곳이다. ‘금당사는 마이산남부에 위치한 사찰로 보물 1266호 괘불태화와 그 외 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산묘는 이승만 전태통령의 친필휘호 비석인 대한광복 기념비와 김구 선생의 휘호인 주필대가 있다.

 

 

마이산은 봉오리가 셋이다. 수마이봉과 암마이봉 그 사이에" 나도 마이산" 이 이란 봉오리가 있는데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마이산에 사는 신선부부는 승천할 때가 되자 남편 신선이 잠을 깨우며 "이제 승천하세.." 그러니 아내 신선은 "조금만 더 자고 새벽에 떠나자 "며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승천할 기회를 놓쳐버린 신선부부는 새벽에 길을 나서다 물 길러 올라온 아낙에게 들켜 하늘로 승천은커녕 바위로 떨어지고 말자 남편신선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앉아 수마이봉이 되었으며, 아내신선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암마이봉이 되었다. 두 봉오리 사이에 아들 봉오리 " 나도 마이산 "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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