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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트레킹 - 호남의 금강산 대둔산 & 태고사

허영꺼멍 2016. 1. 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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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금강산 둔산(873m)

| 여행일자 : 2016년 01월 15일

 

 

대둔산 주차장 - 케이블카 - 금강구름다리(흔들다리) - 삼선계단 - 대둔산 주차장 - 태고사 

 

▲ 주차장으로 부터 음식점 상가 골목을 지나면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한다

어딜 갈까 망설이다. 잠시 대둔산을 들러 보기로 하였다.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색과 어우러지기 위해 배낭 짊어지고 오르던 산길을 하얀 눈길을 상상하며 대둔산 입구에 도착해 올려다보니 눈이 거의 없어 아쉬움이 앞서갔다.

 

주차장에 주차 후 조용한 상가를 거쳐 케이블카 매표소에 도착하여 매표 후 탑승을 기다린다.

 

겨울 탑승객이 거의 없어 전세를 내다 시피 텅 빈 공간으로 상부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한다. 탑승장 내에는 기다리는 시간 아트벽화그림을 보며 즐길 수 있다. 케이블카 탑승 요금은 대인 9,000원 장애복지 8,000, 소인 6,000원이다. 환불의 경우는 대인 3,000원이며, 장애복지는 2,500원이다.

 

 

호남의 금강산이란 별칭처럼 노령산맥 북부에 위치한 대둔산(873m)1977년 전라북도에, 1980년 충청남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으로 충남 금산군 진산면과 논산시, 완주군을 경계로 멀리 호남평야와 서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낙조대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낙조,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 침봉들 사이로 울긋불긋 수놓은 활엽수의 고상한 색감이 살아 용트림하는 곳이 바로 대둔산이다.

 

▲ 상부승강장

▲ 장군바위

 

전망대에 오른다. 왼편으로 장군바위가 조망되며, 오른쪽으로 동심바위가 조망된다. 앞서 올라 온 팀들이 내려와 쉬어가며 장군바위를 가리키며 농을 하였고 주변 사람들이 한순간 크게 웃었다. 장군바위 보다 남근석이 어울린다는 것이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탓인지 정말 그리 보이는 게 아닌가. 장군바위는 임진왜란 당시 나주목사 권율장군이 배고개에서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바위 모습이 갑옷을 입은 장군을 닮아 장군봉이라 불렀으며, 장군봉에 근처 흡사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절하고 있는 형상의 바위를 장군바위라 한다고 한다.

 

▲ 동심바위

 

동심바위는 신라 문무왕 당시 원효대사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를 보고 3일간 머물며 기도를 드렸데 오늘날까지 올려져 있어 2,000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바위이다.

 

 

전망대에 오른다. 케이블카로 오른 탐방객이 제일 먼저 산하를 굽어보며 즐기는 공간으로 팔각정을 두고 있다. 산정상이나 흔들다리까지 오르지 않는 탐방객은 팔각정에서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를 조망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내려서면 된다.

 

▲ 전망대에서 금강구름다리로 오르는 길이 처음부터 험하다

 

▲ 대둔산의 자랑 금강구름다리

 

다시 길을 부여잡고 오른다. 마지막 케이블카 시간이 임박하여 정상인 마천대는 포기해야 하였고 삼선계단까지는 빨리 다녀오자며 서둘렀다. 가파른 철책계단을 딛고 오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금강구름다리를 만나다. 대둔산에서 즐겨 찾는 곳으로 공중가교인 금강구름다리가 있다. 길이 50m, 1m, 높이 80m로 아찔한 절벽을 통과하는데 좁은 폭과 흔들림으로 인하여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운 곳이다.

 

▲ 금강구름다리 건너 바라 본 삼선계단과 정상 마천대

삼선계단  옆으로 대둔산 간이주점이 조망된다

▲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철계단

 

 

 

삼선계단 앞에서 한 노부부를 만났는데 할아버지가 남성을 과시하기 위해 단독으로 몇 번을 시도하다 내려섰다.

 

삼선계단의 가장 아찔함은 여럿 함께 오르면 중간 지점에서 흔들린다는 것이다. 순간 얼마나 공포로 다가오는지는 올라가지 않고는 모른다. 같은 남자가 아닌가. 할아버지에게 함께 오르자며 제안하였고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다시 올랐다.

 

계단을 딛고 오르는 동안 할아버지는 다왔냐며 연신 물었고 돌아보니 눈을 아예 감은 상태로 올라오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계단을 딛고 다 오른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멋쩍은 폼을 보여주며 하산하신다. 할아버지 홧팅!

 

▲ 삼성계단을 딛고 오르면 만나는 정상부

 

금강구름다리를 건너 조금 더 오르면 삼선계단을 만난다. 정상으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삼선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산은 이 길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심장이라면 도전해 볼만 하다. 삼선계단은 길이 36m, 경사 51, 127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거의 수직상승에 가까워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고려 말 나라가 망해가자 어떤 재상이 딸 셋을 데리고 이곳으로 숨어들었는데 딸이 선인으로 돌변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의 형태가 선인이 능선아래를 지켜보는 모습과 같아 삼선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대둔산 지명은 한듬산으로 인근에 있는 계룡산과 지세를 겨루다 패하여 한이 맺힌 산이란 뜻으로 한이 큰 산이란 뜻으로 볼 수 있는데 조선 말기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이 대둔산으로 숨어들어 일본군과 마지막 항전을 치룬 곳으로 삼선계단 초입 길에 대둔산 동학군 최후항전지 표석이 남아 있다.

 

태고사에서 머물다

 

▲ 태고사로 오르는 산길이 매우 가파르다.

▲ 석문 표석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태고사는 대둔산 마천대 동쪽 능선 낙조대 아래 해발고도 878m 지점에 자리한 천년고찰터에 새로 중건한 사찰이다.

 

석문을 통해 오를 수 있는 독특한 사찰로 이곳에 조선 후기 문신 성리학자이자 철학자 정치가이자 시인이던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 수학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사찰입구 주차장에 주차 후 철도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오르면 큰 바위를 만나는데 바위 사이 입구 왼편에 큼직하게 석문(石門)이라 새겨놓았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 태고사에 머물며 수학하였는데 당시 남긴 흔적이라 하며, 석문은 위가 열린 상태이다.

 

▲ 금강문 전경

석문으로 들어선 100m 산길을 따라 진입하면 금강문을 통과한다. 사천왕상이 없는 대신 금강역사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금강문을 통과하는 계단 길을 오르면 좌측으로 보현당과 우측으로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방향이며, 정면으로 지장전과 석벽을 쌓고 만든 독특한 구조물 그리고 벼랑위 아슬아슬 한 자리에 자리잡은 종각을 올려다보며 절집을 둘러본다.

 

절집은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되고 최근 불사한 건물이며, 그 중 대웅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집 중건은 주지 김도천(金道川) 스님이 1974년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 중심전각인 대웅전 현판 대신 태고사 현판을 내걸고 있다

대웅전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아 잠시 주춤하니 중심건물 현판이 태고사 현판을 내걸고 있었다.

 

태고사 대웅전 현판에 절 이름인 사명을 내건 경우는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태고사(太古 寺)현판은 소헌 정도준의 글씨라 한다. 대웅전 내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협시불인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태고사 대웅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태고사는 대둔산 마천대 동쪽 능선 낙조대 밑의 위치한 절로,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이 절터를 본 원효대사는 주변 경관이 너무도 빼어나서 기쁜 마음에 세세생생 도인이 끊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3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태고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삼창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에서 조선시대의 학자 우암 송시열이 수학하였으며 절 입구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 이라는 글씨도 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으며, 이후 1962년에 도천대사께서 주지를 맡으셔서 3칸 규모의 작은 집을 지어 불상을 모셔오다가 1976년에 무량수전, 관음전과 함께 정면 7, 측면 2.5칸 좌측 3칸 규모의 자형 건물로 복원 되었다.’

 

 

 

전국 12승지(勝地) 중 한 곳인 이곳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당시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원효(元曉)가 절터를 만난 후 그 기쁨에 세세생생 도인이 끊이지 않으리라며 삼일간 춤을 추었다 할 만큼 명당지이며,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은 대둔산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 할 만큼 절터로서는 좋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대웅전과 달리 한때 태고사 대웅전의 크기가 72칸이라 하니 상상을 할 수 없다. 전국 많은 사찰을 다녀보았지만 72칸은 지금도 없을 만큼 짐작조차 어려운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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