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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트레킹 - 연꽃과 부용화 그리고 무궁화

허영꺼멍 2016. 7. 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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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부용화가 헷갈린다?

| 여행일자 : 2016년 00월 00일

 



연지에서 만난 부용화[芙蓉花]

 

부용(芙蓉)은 흡사 무궁화 꽃을 닮았다. 하와이 무궁화보다 더 크고 꽃잎이 가냘프다. 특히 흰색으로 핀 꽃이 점점 분홍으로 물드는 모습이 흡사 술에 취한 것 같다하여 취부용이라 부르기도 하며, 멀리서 보면 코스모스를 닮은 듯하나 가까이서 보면 접시꽃을 닮기도 하였다.


▲ 7월 초 활짝 피어나는 연꽃


비슷비슷한 꽃 때문에 가끔 난감한 경우가 있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꽃은 부용(芙蓉)이다. 우선 부용은 연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 그리고 연꽃과 다른 부용이라는 식물로 이를 부용화라 부르는데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연꽃은 물에서 뜬 상태로 꽃피운다하여 수부용(水芙蓉)’, 화초로 자라는 부용을 목부용(木芙蓉)’이라 한다.


▲ 수부용(水芙蓉. 연꽃)

목부용(木芙蓉. 부용화)


연꽃을 한문으로 해석하면 부용(芙蓉)’이 된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는 연지이며, 부용정을 만들면서 연지에 두 개의 기둥다리를 연못에 담근 연꽃을 형상화하여 수중 누각구조로 만들고 부용정(芙容亭)이라 불렀으며, 안동 하회마을을 한 눈에 조망하는 높이 64m 부용대 절벽 역시 하회마을이 연꽃형상이라 하여 연꽃을 바라보는 바위 즉, 부용대이다. 또한 불교에서 살아도 죽고, 죽어도 사는 것 즉, 부용(연꽃)이라하며, 불교에서 부용은 윤회를 의미한다.


▲ 연꽃

21세기를 접어들면서 부용이란 단어는 중고등학교 한문시간이 사라지듯 함께 사라져 버리고 연꽃으로 통칭되어 불린다. 그런데 꽃이 전혀 닮지 않은 물근처에도 자라지 않는 부용화가 있어 혼란을 준다.


▲ 흰색이 붉게 변해가는 부용화 중 취부용

▲ 무궁화

▲ 부용화

▲ 접시꽃


부용화(芙蓉花)는 연꽃보다 무궁화꽃을 뻥튀기 해 놓은 꽃이라 해도 될 만큼 닮아도 너무 닮아 있다. 또한 부용화를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접시꽃을 닮거나 하와이무궁화를 닮고 있어 이들의 꽃이 혼란을 줄 수 있다. 특히 부용화는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는데 그 중 흰색으로 핀 부용이 점점 분홍으로 물드는 모습이 흡사 술에 취한 것 같다하여 취부용이라 부르기도 한다.


▲ 여러가지 색으로 피어나는 부용화(절대 무궁화가 아니다.)

부용화(芙蓉花)는 아욱과 무궁화속 낙엽관목이다. 부용화의 다른 이름으로 산부용, 땅부용, 부용목연, 목부용 등이며, 꽃말로 섬세한 미모이다. 학명으로 Hibiscus mutabilis L.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무궁화

무궁화(無窮花·無宮花·舞宮花로 불리기도 하였다.)는 아욱과 무궁화속 낙엽관목이다. 무궁화(無窮花))의 다은 이름으로 근화(槿花)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훈화초(薰華草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번리초(藩籬草)라 하며, 학명으로 Hibiscus syriacus L 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궁화를 심고 가꾸었던 것으로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는 기록이 춘추전국시대 저술된 산해경(山海經)을 통해 알 수 있다. 군자국이 우리나라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이다. 신라 효공왕은 최치원에게 당나라 국서를 보내는데 그 내용중에 근화향(槿花鄕)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는 기록을 통해 이미 신라 효공왕 당시 무궁화 나라였다.


▲ 다양한 색과 모양의 무궁화 종류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로 사랑받았지만 조선조 왕실화가 오얏나무(자두)로 정해지면서 무궁화는 점점 잊혀졌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무궁화가 다시 전국적으로 심어지게 되었다.


무궁화와 부용화를 닮은 하와이무궁화


▲ 하와이 무궁화

 

하와이무궁화는 1731년 유럽으로부터 들어왔다. 학명이 ‘Hibiscus rosea-sinensos’이며,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남몰래 간직한 사랑이다. 하와이 무궁화도 아욱목 상록관목이며, 속씨식물로 중국남부와 인도 동부가 원산지이다.



이왕 내친김에 무궁화에 관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민족인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부터 대표하는 꽃 무궁화 그리고 애국가 이 모든게 국가상징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그냥 계속 뜻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 한마디로 상표권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 중국의 괘를 사용한 태극기, 친일파 노래 애국가,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 인지 모르겠다는 무궁화 등 초등학교부터 배우고 강제주입하다 시피 했던 이 나라 국기, 국화, 애국가 모든게 오늘날 현재 무허가 사용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 무궁화


우리나라 국화(國花)가 무엇인가요? 라며 물어 본다면 대한민국 국민 100%무궁화꽃이라 답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무궁화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 한마디로 나라꽃에 관한 헌법이나 법률상 국화로 지정되지 않은 무허가라는 것. 그러면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꽃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왕실의 상징으로 오얏나무 즉, 자두꽃이다.

 

고려 말 서울 도봉구 번동 일대 오얏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이()씨가 흥할 징조라는 소문이 퍼졌다. 고려 조정은 즉시 벌리사를 보내 오얏나무를 베어 버릴 것을 명하였고 조선개국과 함께 오얏나무는 조선 상징이 되면서 왕실 문장에 사용되었다. 무궁화는 조선왕실보다 앞선 우리 민족의 꽃으로 근화라 하였다. 구당서(舊唐書) 199권 신라전(新羅傳)에는 성덕왕 36(737)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사용되었을까? 조선 왕실이 오얏나무꽃를 상징물로 사용했다면 신라시대 사용하던 무궁화는 이미 오얏나무꽃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조선의 격동기에 애국가를 만들 당시 조선은 국화라는게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조선왕실의 오얏꽃이 있지만 당시 조선의 몰락과 함께 오얏꽃이 나라를 대표하지 못했고 당시 이전부터 알려진 무궁화 삼천리로 표현하면서 이후 정식절차없이 나라꽃이 된 듯 싶다.


▲ 다양한 무궁화꽃이 심어져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친일파가 만든 애국가로 정의당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아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데 애국가가 공식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그동안 애국가 부르지 않는다며 빨간색으로 보던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화와 애국가가 아직까지 정식으로 공인된 것이 아니라 임시 땜방으로 관습적으로 사용을 해 오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허무한가. 우리나라 국회는 뭘 하는 곳인가. 자기들의 세비와 특권만 주장 할 것이 아니라 서둘러 무궁화와 애국가를 지정해야 될 것이다. 혹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는 게 국화로 사쿠라를 지정하고 싶어 그런건가?


본 게시물은 무조건 개인적 생각임을 밝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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