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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청도 운문사 북대암

허영꺼멍 2017. 4. 2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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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 정원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경북 청도 '운문사'

⊙ 2017년 04월 19일 ⊙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560)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암자를 만들어 3 년간 수도한 끝에 득도하여 7년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고 진평왕 30(608) 원광국사가 중창한 후 보양이 중창하면서 오갑사로 부르다 943년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해 도왔던 보양의 공에 보답하기 위해 운문선사라 사액하고 전지 50결을 하사하면서 오갑사는 중 천문갑사를 운문사라 불렀다.


▲ 청도 운문사 암자 북대암에서 내려다 본 운문사 전경


▲ 운문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

천문갑사 '운문사'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6-1

★★★★★


예정에 없는 발걸음을 했다. 매년 봄 벚꽃이 만개하면 찾아가던 청도 운문사를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어졌고 우연히 청도 운문사 인근을 지나가는 길이라 잠깐 들러 마음의 위로를 받고 가고자 했다.





▲ 운문사로 가는 국도변에서 만난 거리 풍경

 

운문사는 비구승이 있는 곳으로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이 개설되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된 후 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1277년 일연선사가 운문사 주지로 있을 당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운문사 상처난 소나무

'솔바람길'

 

봄이면 운문사는 화원으로 변한다. 벚꽃을 시작으로 봄바람은 서둘러 봄꽃을 흔들어 깨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운문사 매표소를 통과하면 오래된 소나무 숲을 통과하게 되는데 바로 운문사 솔바람길이다.

▲ 운문사로 진입하는 길목에는 오랜세월 신도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 소나무가 길을 터 놓고 있다.


상처난 소나무 숲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길에서 만나는 소나무 허리춤은 온통 송진을 채집하기 위해 크고 작은 나무와는 상관없이 죄다 상처가 있었다. 일제말기였던 1943~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로 동원하여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끔 산속에서 만나는 송진 채취를 위해 큰 나무 몇 그루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규모 채취한 흔적을 딛고 자연이 그린 산수화 사이로 길을 터놓았다.

 

우거진 풀숲너머 운문사에 접어들면 묵묵하게 고요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고개들어 올려보면 겹겹 솔숲 너머 소나무와 어우러진 암반들이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깨어 있으라. 붓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 수행의 길로 들어 선 여승이 머무는 운문사에 발을 내 딛는다.




봄의 정원 운문사


서부해당화


절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연분홍색꽃이 시선을 끈다. 서부해당화라는 이름을 가진 봄꽃이지만 미니 사과나무꽃을 닮아 있다. 화창한 봄날 꽃을 날아든 벌의 부지런함 그리고 날아든 새소리가 조용한 절간의 정적을 깨트린다.


▲ 서부해당화(사월 말이면 꽃이 활짝 만개한다.)





서부해당화(학명 Malus halliana)는 매혹적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꽃말로 산뜻한 미소이며, 꽃사과나무를 개량한 품종이다. 서부해당화 또는 수사해당화라 부르며 벚꽃이 떠나가고 겹벚꽃이 피기 전 흰색 또는 연분홍색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꽃산딸나무


▲ 꽃산딸나무

미국과 멕시코 분포하는 꽃산딸나무(Cornus florida ''Pendula'')는 층층나무과로 새하얀 꽃이 마치 흰두건을 쓴 스님같다하여 산법화라고도 부른다. 꽃말로 답례, 내마음을 받아줘이다.


모과나무


▲ 모과나무





모과나무의 꽃말은 괴짜, 조숙이다. 진한 핑크빛 봉우리가 아름다운 모과나무는 다른 꽃에 비해 쉬이 눈에 띄지 않아 꽃을 못보고 스쳐가는 수 있다.


가침박달


▲ 가침박달





한국 중부이북에 분포하는 가침박달(Exochorda serratifolia S.Moore) 나무는 장미과이며, 봄에 순백색의 아름다운 꽃과 함께 향기를 전하는 꽃이다. 꽃말은 청순, 순결, 숨겨진 아름다움이다.


겹벚꽃


▲ 겹벚꽃





벚꽃이 떠나가면 연이어 겹벚꽃이 꽃 피운다. 꽃잎이 여러 겹으로 피는 겹벚꽃 꽃말은 단아함, 정숙이다. 사월 말이 되면 통도사는 겹벚꽃이 절간을 화사하게 수놓는다. 우리나라 절간 중에서 서산 개심사 청겹벚꽃 그리고 선암사 홍겹벚꽃이 알려져 있으며, 비록 오랜 세월 자란 나무는 아니지만 운문사 경내에도 서너 그루의 홍겹벚꽃이 화사함을 뽐내고 있다.





운문사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호


체력보강을 위해 사람이 링거를 주사하듯 소나무에도 주사를 놓거나 거름을 주어 나무의 건강을 지켜낸다. 청도 운문사는 매년 막걸리를 소나무에 공양하는 좀 특별한 행사를 한다. 명품 소나무로 알려진 운문사처진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80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년 12말의 막걸리와 12말의 감로수를 소나무 주위에 뿌려 400년 건강을 지키는 특별한 공양이다.



소나무 높이가 9.4m, 둘레 3.37m에 불과하지만 땅에서 약 2m 정도에서 가지를 사방으로 펼쳐 놓는데 한결같이 나무줄기가 땅으로 향한다. 일반 소나무와 달리 청도 지방에는 처진 소나무가 몇 그루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독특한 처진 소나무가 운문사 경내에 자리한 소나무이며, 자라는 모습이 반송나무를 닮아 반송소나무라 부르기도 하였다.




운문사 불교유적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절집에서 스쳐가기 쉬운 곳이 바로 원응국사비이다. 원응국사비는 보물 제316호이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중기의 승려인 원응국사 학일의 운문사 중창과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고려 인종 22(1144) 학일왕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인종은 국사로 책봉하고 원응이라는 시호를 내려 비를 세우게 하였다.


▲ 원응국사비

이 비는 높이 2.3m, 0.9m로 비석머리와 받침돌은 없어졌고 현재는 3편으로 절단되어 있는 비편을 연결하여 하나의 비신으로 구성하였다. 해서체로 쓰여진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비문의 작성자는 윤언이이며 글씨는 고려중기의 명필, 탄연스님이 썼다.’


운문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


운문사 석조 석가여래좌상은 보물 제317호이며,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은 살상투가 뚜렷하며, 네모진 상체와 하체에 법의가 수직으로 무겁게 내려져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6각 불상 받침 대좌의 특이한 형태는 다소 딱딱한 느낌을 보여준다.



▲ 운문사 석조여래좌상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서 다소 어색한 감이 있고 결가부좌 한 양 발 사이에는 부채꼴의 주름이 잡혀 있다. 이 불상은 부피감이 없고 상 자체가 나약하고 위축된 점, 조각에서 형식화가 많이 진전된 점으로 보아 신라말에서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보물 제 318호)



▲ 운문사 사천왕석주


운문사 삼층석탑(보물 제678호)


운문사에는 쌍탑이 있다. 대웅보전 앞 동.서로 서 있는 탑은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는 듯 보여질 만큼 넓은 공간을 두고 한쪽에 몰려 있다. 특히 서탑 상층 기단 모서리 기둥인 우주가 분실되고 동탑 하층 기단 갑석에는 일제 강점기 복원이 잘못 이루어져 있는 전문가의 견해가 보고되고 있을 만큼 탑을 두고 원형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탑은 통일신라 9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쌍탑이 아니라 동탑을 먼저 조성하고 훗날 서탑을 만들 당시 동탑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가능성과 1919년 탑을 옮겨오는 과정에서 쌍탑으로 복원 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운문사 경내를 걷다


고려 숙종 10(1105) 원응국사가 중창하면서 전국 제2의 선찰로 자리 잡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후 임진왜란 당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숙종 16(1960) 설송대사가 중창을 하였다. 그 후 중창은 1835년 운악대사를 거쳐 1912년 긍파대사, 1913년 고전선사를 이어 지금의 모습은 1977년 명성스님이 대웅보전과 범종루 및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였다.




▲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극락교 건너 봄이 머물러 있다.

 

운문사에는 두 개의 대웅전이 있다. 옛 부터 전해오던 중심법당과 새롭게 신축한 법당으로 뜻밖에 대웅보전이 두곳이나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있다. 절집에 대웅보전을 두곳 거느린 운문사의 사연은 이러하다. 기존 법당에는 비로나자불을 모시고 있어 누가봐도 비로전이 되어야 하지만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새롭게 대웅보전을 만들고 옛 대웅보전을 비로전으로 교체 하려자 문홰제청이 건물이 문화재로 이름 변경이 불가하다는 주장에 간판을 새롭게 달지 못하고 두개의 대웅전이 된 것이다.


▲ 운문사 대웅전 측면 전경

고려 숙종 10(1105) 원응국사가 중창하면서 전국 제2의 선찰로 자리 잡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후 임진왜란 당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숙종 16(1960) 설송대사가 중창을 하였다. 그 후 중창은 1835년 운악대사를 거쳐 1912년 긍파대사, 1913년 고전선사를 이어 지금의 모습은 1977년 명성스님이 대웅보전과 범종루 및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였다.




운문사보다 오래된 가장 높은 곳 암자

'북대암'


북대암으로 오른다. 땀을 흘리며 오르는 옆으로 승용차도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급경사로 올라야 하는 산중 암자로 가는 길이다 보니 사람이나 승용차나 힘겹지만 매한가지 인 듯싶다. 그렇게 산길을 오르다 보면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세상을 보는 시선은 더 넓어져 간다.


▲ 북대암 오르는 길에서 올려다 본 호거산





운문사 북대암은 운문사 주차장 못 미처 호거산 운문산성(지룡산성) 기암절벽 아래 자리한 아담한 절집으로 신라 진흥왕 18(557) 초창했다 전하나 구전 일 뿐으로 1851년 운익대사가 중수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는 곳이다.





주불로 아미타불과 협시불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이곳은 법당을 비롯, 뒤편으로 칠성각과 산신각이 위치해 있으며, 최근 북대암 입구까지 길을 터어 놓아 접근성이 편리하다. 전국에 수많은 사찰이 있으며, 사찰을 내려다 보는 조망지점이 있지만 북대암에서 내려다 보는 운문사의 가을 풍경은 전국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풍 두그루와 기와지붕의 대비는 언제봐도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낸다. 특히 가을에 만나는 색의 아름다움에 한번 빠지만 북대암으로 오르는 힘겨운 수고로움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북대암 전경





운문사보다 먼저 생겨난 북대암은 주변의 거대한 암석지대를 평풍삼아 불법수호를 위해 비탈진 경사면을 절묘하게 깎고 고정시켜 만든 작은 암자로 북대암에서 내려다보는 전경과 올려다보는 풍경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 청도 운문사 전경

▲ 북대암 대웅전 기와

▲ 북대암 장독대


운문사 여행은 북대암에서 시작하는게 좋다. 북대암 아래까지 차량이 진입가능하지만 워낙 경사가 급하여 운전미숙한 여행객이라면 중간에 주차하고 걸어서 북대암에 올라도 좋다. 북대암에서 운문사를 내려다 본 후 다시 운문사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운문사를 여행하고 운주가 외곽길을 따라 끝까지 진입하면 사리암이 나온다. 사리암으로 30분 가까이 등산을 하여야 하므로 체력이 가능한 여행객만 올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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