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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을 대표하는 사찰 마곡사는 신라선덕여왕 9년(640) 지장율사에 의하여 창건한 후 고려 명종 때인 1172년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하였으며, 도선국사가 중수하고 순각이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는 창건당시 30여칸의 전각을 갖춘 대사찰이었지만 지금은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이 전해지고 있다. ▲ 산신각에서 바라본 마곡사 전경
한때 충남지방을 통괄했던 마곡사는 조선시대 세조(재위 1455∼1468)가 찾아 영산전 편액과 잡역을 면제하는 교지를 하사하였지만 모두 소실되고 정조 6년(1782) 큰 화재로 1,050칸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하며.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다고 한다.
마곡사 해탈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 해탈문 현재 마곡사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다. 속세를 떠나 불교 세계로 첫 발을 딛는 문으로 해탈하겠다는 마음의 의지를 담아 해탈문이라 한다. 해탈문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 문수 동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마곡사 해탈문은 고종 1년(1864) 중수 기록을 통해 이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곡사 천왕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 ▲ 천왕문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을 만난다. 조선 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건물로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공간이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광할하는 신적 존재들이다. 마곡사 명부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호) ▲ 명부전 극락교 앞이자 천왕문 옆으로 명부전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염라대왕 등 시왕을 모신 공간으로 1939년 조성되었다. 지장보살은 불교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잘못한 죄를 행한 인간을 교화하여 성불하는 역할을 맏고 있다. 마곡사 산신각 ▲ 산중에 떨어져 자리잡은 산신각 산신각이 대부분 대법당 주변에 자리잡는 것과 달리 천왕문을 지나 왼편 산중턱에 위치해 있어 산신각에서 대법당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방향만 천왕문 쪽으로 돌려 앉혀 놓았다. 마곡사 경내로 들어서다. ▲ 해탈교를 지나 천왕문 그리고 극락교를 건너면 법당으로 이어진다. 태화산 자락 춘마곡 추갑사로 불리는 마곡사는 봄이면 수려한 경관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사찰의 모습을 으뜸으로 전하며, 충남지역의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사로서 그 몫을 다하고 있다. 마곡사란 신라보철화상이 법문을 펼칠 때 삼밭의 삼대같이 많이 모인 대중을 두고 마곡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799호) 우리나라 탑 중에서 독특한 탑이다.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통해 세워진 다보탑이다. 탑은 2층 기단 위 5층 몸돌을 올리고 그 위에 아주 희귀한 사례인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 머리장식을 하였다. ▲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이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이 새겨져 있으며, 탑의 끝 부분은 라마탑에서 볼 수 있는 풍마동장식이 달려져 있다. 라마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경천사탑, 원각사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위치는 옮겨온 것으로 화재로 인하여 훼손된 것을 복구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옮긴 것이다. 라마교는 티베트에서 발생하여 원나라 때 크게 융성한 불교의 한 종파로 알려져 있으며, 탑에 보물은 거의 도난을 당했지만 1972년 해체, 복원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나왔다.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5호) ▲ 오층석탑 뒷편으로 보이는 심검당.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이다. 심검당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 집 즉, 스님의 일상공간이다. 대광보전 5층 석탑 동쪽에 위치한 요사채와 고방으로 심검당은 언제 지어졌는지 기록이 없고 단지 정조 21년(1797)보수공사가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그 이전에 있던 심겅당을 철종 7년(1856)고치고 1909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다 한다. 심검당은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1층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올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동향한 본채에서 북단 4칸, 남단 2칸을 동쪽으로 5칸씩 추가하였고 남쪽 중간 사방 2칸을 추가하여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창고로 사용했던 고방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남향건물이다. 마곡사 대광보전 (보물 제802호) ▲ 오층석탑 뒤 자리한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그리고 뒷로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이 자라잡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인 대광보전은 참으로 놀랍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보통 절의 중심문을 열면 부처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비로나불부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는 측면에 자리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3칸의 다포식 건물로 위엄을 최대한 살린 걸작으로 평가되는 조선후기 전통 목조건물로 으뜸이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짜 맞추어 끼워 조립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건물의 탱화는 화려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특이하게 사대천왕이 묘사되어져 있다. 원래의 건물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소실된 후 순조13년(1813)에 다시 지었다. 마곡사 본전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자 순조 13년(1813) 다시 지은 건물로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향해 있는 독특한 모습과 창호에는 꽃살 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조선 후기 건물이다. 마곡사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마곡사 최상단에 자리한 대웅보전은 소실 된 후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다시 만든 전각으로 바깥에서 보면 2층 구조를 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통층구조이다. 본존불로 석가여래불을 모시고 좌, 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두고 있다. 앞에서 보면 1층이 정면5칸 측면 4칸이며, 2층은 정면 3칸 측면3칸을 한 팔작지붕형태를 하고 현판은 신라 명필가인 김생이 적었다고 한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중수기를 통해 대장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곡사 응진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16나한을 모신 곳으로 나한전으로 불린다. 청종 3년(1852) 수리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계방식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백범관 그리고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 명부전을 나와 극락교를 건너면 수많은 잉어가 연못 속을 노닐면서 잉어 밥을 뿌려주길 몸으로 말하고 건너편에는 2층 구조의 종각건물이 있으며 정면으로 마곡사 오층석탑과 법당이 한눈에 들어선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김구선생의 은거지라는 비석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주석인 김구선생이 1896년 민비시해사건 이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 후 은거한 곳으로 광복 후 이곳을 찾은 김구이 심었다는 향나무 한그루가 입구에 서 있고 그 앞에는 마곡사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마곡사 영산전 (보물 제800호)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모셔져 있는 전각으로 천불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으로도 불린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으로 세조가 직접 쓴 현판이 걸려 있다. ▲ 영산전에 모셔진 천불 마곡사 영산전은 마곡사 내 가장 노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 각순대사가 다시 세웠으며, 판액은 조선 세조가 이곳에 왔을 당시 쓴 것이라 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많은 제자를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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