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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숨겨진 아름다운 곳으로 경주 ‘서출지(書出池)’가 있다. 사적 제138호이자 삼국시대 인 신라 소지왕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자연형 연못이며, 조선시대 현종 5년(1664)에 임적(任勣)이 못가에 건물을 짓고 자연을 즐겼는데 바로 ‘이요당(二樂堂)’이다. ▲ 목백일홍(배롱나무) 활짝 핀 이요당
제방을 따라 목백일홍(배롱나무)꽃이 붉게 피어있다.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부들(학명 : Typha orientalis) 너머 홍련이 피어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연잎 아래 가뭄으로 메마른 물가에는 모습을 감춘 황소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서출지에는 홍련이 자생하며, 연지를 따라 걷는 탐방로는 약 200m이다. 경주 남산동 삼국시대 당시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작은 연못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 사적 제138호)를 만난다. 삼국유사 기어(紀異) 제1 사금갑조에 의하면 신기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서출지는 신라 21대 소지왕(일명 비처왕) 즉위 10년(488)이 되던 당시 소지왕이 궁 밖 남산 기슭에 위치한 천천정(天泉亭)을 거둥하는데 쥐가 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한다. 왕이 이 말을 따라 연못에 가까이 오니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받쳤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화살로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에 맞고 죽었다 한다. 그 후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며,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 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까마귀밥을 만들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둔다고 한다. 당시 불교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민간신앙과 신흥불교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는 23대 법흥왕 때 비로소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고 그 이전에 불교가 진입하는 과정에 있었다. 서출지에서 만나는 이요당(二樂堂)은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출입을 할 수 없다. 이요당 안내글을 옮겨보면 " 이요당은 조선 현종5년(1664)에 임적(1612~1672)이 지은 건물이다. 연못에 돌을 쌓아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당초에는 3칸 규모였으나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 "ㄱ"자 모양의 구조를 갖추었다. 임적은 가뭄이 심했을 때 땅 밑의 물줄기를 찾아내어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 이오당은 요산요수의 뜻을 취해 편액 하였으며, 남쪽 양피못 언덕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이 지은 산수당이 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 서출지 앞 가을이면 샛노란 은행단풍 가로수길이 연출된다. 서출지로 진입하려면 통일전 주차장으로 들어서야 한다. 통일전에서 왼편 숲 사이에 자리하며, 통일전과 함께 여행하면 된다. 서출지 주변 여행지로 경상북도 산림환경수목원을 비롯하여 남산자락 보리사 마애석불, 옥룡암을 함께 여행하면 된다. 서출지 사계 서출지의 봄은 한 그루의 붉은 박태기나무가 꽃 피우면서 시작된다. 겨울 한 가족의 철새가 머물다 간 흔적 위 연잎이 싹틔우고 여름이면 연꽃과 함께 주변 베롱나무 꽃을 피운다. 가을은 남산자락 단풍과 함께 물들기 시작하며, 겨울에는 적막함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서출지의 밤은 아름다운 조명으로 수놓아 경주의 야경 여행지로도 좋은 곳이다. 주변추천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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