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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트레킹 - 함양 선비문화 탐방로에서 만나는 정자여행

허영꺼멍 2017. 8. 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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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거나 드라이빙하기 좋은 그곳 - 함양군

"함양 4경 花林風流"

⊙  2017.082.3 ⊙




선비문화탐방로는 1구간으로 정자를 따라가는 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을 잇는 계곡길 약 6.0km 구간이며, 2구간은 농월정에서 오리숲을 거쳐 광풍루를 잇는 약 4.1km 구간으로 총 10.1km 구간이다. 이 중에서 제1구간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 계류를 따라 이어지는 약 6.2km 선비문화 탐방로는 옛 선비가 계곡을 따라 풍류를 즐기며 걷던 길을 따라 이어 만든 길이다.


▲ 농월정 전경 


▲ 샛노란 가을 280-175-220

여행별점 : ★★★★☆

화림계곡 선비길을 걷다

농월정 주차장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687


안의면사무소 앞 광풍루를 시작으로 출발하면 구로정-농월정-람천정-경모정-동호정-군자정-영귀정-거연정 순으로 이어진다. 꼭 걷지 않아도 도로 반대편 계곡 건너에 위치한 람천정과 경모정, 영귀정을 제외하고는 도로와 인접하여 차량을 이동하면서 잠시 잠깐 만날 수 있으며, 차량 이용시는 용추폭포까지 여행이 가능하다. 정자가 있는 도로변에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이 편리하다.


" 광풍정-거연정-군자정-동호정-농월정- 용추폭포 "



 

현감 전우가 만든 "광풍루"

지방 유형문화재 제92


함양 정자여행 중 스쳐가 버리기 쉬운 곳이 안의에 있는 광풍루이다. 광풍루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밋밋하지만 화림계곡 정자와는 달리 많은 인원이 머물 수 있는 " " 이다보니 주변 운치보다 시원한 바람이 잘 통하는 위치를 고집하면서 금호강 언덕에 수양버들과 느티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 광풍루 전경

조선 태종12(1412)에 현감으로 있던 전우(全遇)가 처음 만든 후 선화루(宣化樓)로 부르다 조선 세종7(1425) 김홍의가 기존위치에서 옮겨오고, 조선 성종25(1494)안의현감인 일두 정여창이 중건하면서 광풍루로 바꾸고. 정유재란 때 소실, 조선선조 34(1601)에 심종침이 복원, 1683년 장세남이 중건, 루각은 정면5,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5량 구조에 팔작지붕 겹처마 목조와가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각 형식을 대변하여 지방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져 있다.





"광풍루"로부터 약 4.0km에 위치한

"농월정"


농월정은 넓은 반석 위 하나의 큰 계곡을 형성하고 지천에 너럭바위가 형성되어 물이 고요하게 너럭바위 위를 펼쳐 놓은 듯 흘러 달을 희롱한다며 많은 묵객과 풍류객이 노닐던 화림계곡의 유명한 안의삼동 88정 중 최고의 정자로 조정에서 물러난 문신 박명부 선생이 너럭바위가 만든 계류가 비단결처럼 흘러 큰 웅덩이를 만들고 그 속에 달을 품고 있는 월연암을 내려 볼 수 있도록 숲을 뒤로 배치하고 초가로 농월정을 세웠다.


▲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놀월정

농월정은 밤나무를 이용하여 12개의 지주 기둥을 세워 농월정에 큰물이 흘러도 썩지 않도록 하였으며, 사람의 왕래가 잦은 상판은 소나무를 사용하여 정면 3, 측면 2칸을 하고 팔각지붕을 올린 12평 공간의 목조정자를 1899년 완성하였지만 20031006일 방화로 소실되었다. 주변에는 상가시설이 잘 갖추어져 여름철피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 선조때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 농월정을 찾아 글씨를 남기니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란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글씨가 월연암에 새기면서 정자를 만들었지만 20031006일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타 버려 농월정의 고풍을 기억 속에서 그려 볼 뿐이다. 농월정 일대는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박명부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이며 호는 지족당, 별칭은 자 여승이다 정한강의 문인으로 1950(선조23) 문과에 급제 후 예조참의 감사를 지내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싸움에서 분전, 장렬히 전사하였다.

 

달을 희롱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농월정이 2003년 방화로 사라진 그 자리에 새로운 농월정이 선보일 예정이다. 소실 그 이후 12년이 지난 2014년 예산 6억원을 투입하여 2015522일 상량제를 통해 복원 현장이 공개되었으며, 곧 영남 정자 문화를 대표하는 팔담팔정(八潭八亭)의 명승을 이어 갈 것으로 보여진다.





농월정으로 부터 약 3.5km 지점에 위치한

자연의 일부 " 동호정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


동호정은 황산마을 앞을 흐르는 화림동 계곡의 넓은 너럭바위를 자랑한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이곳 동호정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갈수 밖에 없을 정도로 평평한 암반 위 넓게 펼쳐놓은 계곡물은 숨 가쁘게 살아오는 우리의 모습마저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한다.


▲ 동호정

선조 당시 성리학자 동호 장만리(()는 문속(文叔), ()는 동호(東湖), 본관(本貫)거창)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왕을 등에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까지 피란하여 공을 세웠는데 189010대 후손 장대운, 장서부, 장서진은 장만리의 선조 16(1583)에 통훈대부 정릉령(通訓大夫定陵令)을 지낸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화림계곡 중 너럭바위가 넓게 형성되어 물결조차 숨죽이고 흐르는 차일암 위 1890년 정자를 세웠다. 주변 암반에는 태양을 가린다하여 타일암, 영가대, 금적암 등 한자가 새겨져 있다.






특히 동호정을 지탱하는 기둥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됨을 보여준다. 동호정 기둥은 다듬지 않은 상태로 건조하여 사용하였으며, 계단은 통나무에 겨우 도끼로 계단을 찍어서 만들었다. 이런 기법은 경상도 서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서원의 형식을 또 사용한 것이 화려한 단청과 정자 안쪽의 대들보다. 화림계곡 일대의 정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대들보에는 두 마리의 용이 마주하고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 함양 동호정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정면 3,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호정은 호반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화림동의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 아래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어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동호정으로 부터 1.6km 구간 소박한

정이찬 선생이 수양하던 " 군자정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3


군자정은 쉽게 찾지 않는다. 주변에 많은 정자들로 인하여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탓도 이유겠지만 정자에 딸린 작은 공간 정도로 이해할 정도로 화림계곡 정자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를 하고 있다. 군자정은 정여창 선생이 수양한곳으로 전세걸, 세택이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02년 정면3, 측면2칸으로 바위 위에 올라앉은 형상을 하고 조선시애 대학자인 정여창이 이곳을 찾아 운치를 즐겼다 하여 사람들은 군자정으로 불렀다.


▲ 군자정

정여창 (1450 - 1504)은 조선 성종 당시 대학자로 그의 본관은 하동(河東), ()는 백욱(), 호는 일두, 시호(詩號)는 문헌공(文獻公)으로 18세에 부친을 여의고 혼자서 학문을 익혀 오다 김굉필과 함께 함양군수로 부임한 김종직 문하생으로 들어간 후 지리산에서 3년간 학문을 매진하여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 춘추(春秋)5(五經)에 밝게 되었고 노론(魯論)에 정통하게 되자 여러 번 벼슬길에 천거되지만 매번 사양하다 1490년 소격서 참봉이 되었으며 그해 문과별시에 합격하여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내며 연산군을 보필하지만 무오사화로 유배되고 1504년 죽음에 이르지만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씨폐비사건을 알게 된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통해 이미 고인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자르는 부관참시를 당해 두 번 죽는 일이 발생, 1506년 중종반정으로 도승지로 증직되고 1517년 우의정에 추정되며, 1757년 문헌공이란 시호가 내려져 명예회복을 하게 되었다.



군자정은 크게 보면 정자이지만 작게 보면 감옥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무모사화에 연류 부관참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정여창을 기리는 후학들은 넓고 화려한 큰 누각 보다 작고 아담한 공간을 통해서 혼자만의 독백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배려로 작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0호 함양 군자정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5현 중 한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이 유영하던 곳으로,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 공의 5대손인 전세걸 세택이 일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으로 칭하였다. 군자정은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이나 정면의 주칸을 5, 측면의 주칸을 4자 정도로 잡아 규모는 작은 편이다. 군자정은 하천내의 자연암반 위에 조성된 정자 건물로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며,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조선후기 정자건축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군자정 바로 옆에 위치한

바위와 노송의 절묘한 조화 "거연정"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3


고려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시복거 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인 진사 전재학, 전민민 등이 1872년에 세웠다. 육십령 고개를 넘어서면 처음으로 만나는 정자로 해발1,509m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남강의 상류인 서상을 거쳐 서하로 흘러 하림동계곡으로 흐르는 계곡의 완만한 지역에 위치한 정자로 아치형 구름다리를 놓고 8각 주초석을 에워 올리니 바위와 노송의 절묘한 조화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 거연정


한 겨울 눈이 내리면 거연정은 더욱 아름답다. 짙은 여름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하나 흰 눈이 내리면 계곡에 널려져 있는 돌 위에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그 위로 거연정이 불쑥 솟아있다. 계곡이라기보다 산등성에 올라선 정자와 흡사한 풍경은 겨울 여행의 새로운 진미를 느끼게 해준다. 함양의 정자는 계곡의 암반층에 명산의 좋은 기를 받기위해 하나같이 초석을 다졌으며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는 여유가 느껴지는 정자이다.





함양을 대표하는 정자가 농월정이라면 정자를 대표하는 곳이 이제는 거연정이다. “거연정기에는 영남의 빼어난 경치는 삼동(三洞·심진동, 원학동, 화림동 등 덕유산 남쪽에 형성된 세 고을)이 최고가 되고, 삼동의 경승은 화림동이 최고가 되나니, 화림동의 경승은 이 아름다운 곳에 세운 이 정자를 최고라 할 것인 바라 기록하고 정자로 향하는 아치형 교량을 화림교라 칭하고 흐르는 물을 방화수류천(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간다)이라 부르며, 여덟개의 못과 여덟개의 정자가 있다 고 해서 팔담팔정이라 불렀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3호 거연정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 선생이 처음 터를 잡은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진사 전재학, 전계진 등이 건립 하였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다. 거연정은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뒷벽)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잇으며, 겹처마에 합각지붕 형식으로 하천내의 자연암반 위에 조성된 정자 건물로 주변의 뛰어난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다.”


▲ 계곡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연정


거연정으로 향하는 아치형 목책교가 그동안 하늘색으로 흡사 천상으로 향하는 구름을 걷는 느낌을 주었는데 올해 방문하여 보니 모두가 밤색으로 채색되어 한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니 운치를 잃어 버렸다. 어두운 밤색으로 인하여 교량의 모습이 숲에 가려져 버렸고 옛 사진과 아무리 대조를 해봐도 분위기가 많이 상실된 느낌이다. 남해대교도 한때 회색으로 도색을 하였다가 이미지를 상실하여 관광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예도 있지 않는가. 주변 운치와 어울리는 채색을 기대해 본다.



 

화림계곡의 정자는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 경관 그리고 자연속 일부가 되어버린 정자의 모습은 우리나라만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쉬어가는 쉼터라 할 수 있겠다. 화림계곡을 따라 잇는 정자여행은 광풍루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도보로 출발하여도 좋은 코스이다. 계곡 안쪽을 따라 나무데크길이 이어져 있어 무더운 날이면 가다 물속에 뛰어들면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코스길이다.





계곡을 따라 여행하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남 정자문화와는 달리 영남 정자는 관리가 너무 소흘하다는 점과 정자 주변이 너무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농월정은 주변이 개인사유지로 시설이 폐가를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주변 아름지기 나무들이 온갖 시설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거연정, 동호정 역시 청소가 되지 않아 신발을 벗고 출입을 하라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만큼 관리가 방치되고 있다. 군에서 하루빨리 각 정자별 조성하게 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주제를 만들고 주변정비를 통해 방문객이 단순한 쉬어가는 곳이 아니라 배우고 가는 정자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함양팔경 중 제4경 화림풍류로 알려진 화림계곡은 우리나라 정자로 잘 알려진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이 계곡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선비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함양군 지곡IC에서 하차 후 24번 국도를 따라 안의면으로 들어서면 다리 건너 광풍루가 보이며, 광풍루 맞은편에 이 지역을 다녀간 수령의 공을 높이 기린 선정비가 있다.


시간적 여유보다 체력적인 부담감이 더하는 걷는 여행을 통해 옛 선비들이 화림계곡을 따라 오르며 감탄과 탄성이 절로 이어지는 그 길을 통해 풍경속 소소한 것들과 대화를 나누며 굽이굽이 산길 돌아 흘러가는 지루한 물길에 발 담근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걷고 싶어지는 날 차를 버리고 걸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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