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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아래 해운대해수욕장이 곱기만 하다. 계절을 잃어버린 일부 여행객이 가끔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거나 가을 온화한 햇살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보며 피부를 태우는 모습이 이젠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 가을하늘 아래 코발트빛을 삼킨 해운대해수욕장 전경
‘사포지향(四抱之鄕)'이라 들어 보았는가. 부산은 산과 강 바다를 품고 있어 흔히 삼포지향(三抱之鄕)의 고장이라 부르는데 해운대구는 예부터 온천이 유명하여 삼포지향에 온천을 더해서 사포지향이라 부른다. 사포지향 해운대구 대한팔경 중 "제3경 해운대해수욕장" 해운대의 명성은 1930년대 중반 JODK 경성(京城)방송국은 조선 전역에 산재해 있는 경치가 빼어난 경승지(景勝地) 추천을 받았고 이를 대한팔경(大韓八景) 또는 조선팔경(朝鮮八景)이라 불렀다. 제1경 한라산, 제2경 석굴암, 제3경 해운대, 제4경 지리산, 제5경 백두산, 제6경 묘향산, 제7경 금강산, 제8경 평양 등으로 해운대가 속해 있다. 사포지향 해운대구에는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본 따 붙여졌다는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는 팔경을 따로 두고 있다. 고려 중기 중국 소상팔경을 통해 그림과 시를 읊었으니 우리 자연을 통해 그림과 시를 읊기 시작하면서 빼어난 경치에 팔경(八景)을 만들었는데 부산 해운팔경(海雲八景)은 다음과 같다. ▲ 해운대 장산이 품은 양운폭포 ‘해운팔경(海雲八景)’ 으로 동백섬 남단 위에서 바라보는 해운대의 전경 ‘해운대상(海雲臺上)’, 석양을 지고 오륙도 쪽에서 어선들이 돌아오는 풍경 ‘오륙귀범(五六歸帆)’, 물거품이 구름을 피워내는 것 같은 장산에 있는 폭포 ‘양운폭포(養雲瀑布)’, 신라 말 진성여왕이 휴양하고 약수를 먹었다는 온천 ‘구남온천(龜南溫泉)’, 화산이 치솟는 광경을 연상하게 하는 비오산의 봉화 ‘봉대점화(烽臺點火)’,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달맞이 언덕에서 보는 낙조 ‘우산낙조(牛山落照)’, 못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버드나무가 우거진 풍경 ‘장지유수(長旨流水)’, 해수욕장 뒤 맑은 춘천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 ‘춘천약어(春川躍漁)’ 등이다. 동백섬에서 최치원 선생을 만나다 동백섬이라 하여 여수 오동도 동백군락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동백섬을 따라 산책하는 도로가 생겨났고 동백섬 지명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동백꽃이 피고 지는 것은 오늘날도 변함없다. ▲ 동백섬 정상에 자리잡은 최치원 선생 동상 '동국여지승람(1481)’에는 동백섬에 관하여 '해운대는 동래현의 동쪽 18리에 있고 산이 바다 속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으며, 그 위는 모두 동백 두충 송삼 총롱 창취로 사시가 한결 같다. 봄과 겨울 사이 동백꽃이 땅에 쌓여 지나가는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3∼4치나 된다’ 즉, 동백섬에는 수많은 동백꽃이 피어났고 봄이면 섬을 붉게 수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최치원 선생 관련 비석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최치원(857~?)의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 해운으로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자신의 자를 따서 부르는 해운대와 사찰로는 고운사가 있다. 최치원은 12살(868)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18살(874)에 빈공과 장원급제하여 벼슬을 제수 받았으며, 29살이 되던 해 고향을 그리워하다 부친의 병을 이유로 귀국하였다.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 온 후 진성여왕은 당대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오르는 등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골품제의 한계를 느낀 최치원은 40세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며 가야산에 들어가 신발만 남긴 채 신선이 되었다하여 유선이라 부르는데 그가 전국을 유람하던 시절 달맞이고개 일대의 절경에 심취하여 동백섬에 대를 쌓고 머물렀다 한다. 동백섬 누리마루 그리고 해운대 석각 오늘날에야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장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춘천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 첫 여정의 섬으로 다리미처럼 생겨 ‘다리미산’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2005년 21개국 정상이 모여 제2차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APEC 누리마루 하우스가 최치원이 해운대 석각을 남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누리마루 하우스 지붕은 동백섬 능선을 형상화 하였다. ▲ APEC 누리마루하우스 전경 APEC 누리마루하우스'다. 2005년 21개국 정상들이 제2차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곳이다. 한국 전통건축인 정자를 현대적으로 표현했으며 지붕의 형태는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기념물 제46호 동백섬은 다리미 형상을 하여 ‘다리미섬’으로 불렀다. 해운대 신도시 뒷편, 반여동과 재송동 반송을 잇는 부산의 명산 “장산” 에서 흘러내린 물은 오늘날 동백섬 앞으로 흘러 내렸는데 그 냇천을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 하여 춘천이라 불렀고 춘천에서 흘러 내린 토사가 퇴적층을 이루면서 동백섬은 섬이 아닌 육지화 되었다. 다리미섬에는 동백나무가 많아 사람들이 동백섬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명이 동백섬으로 굳혀진 듯 보인다.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 동상과 시비를 조성해 놓고 매년 4월 17일 향사를 치룬다. APEC 해안 산책길에서 만나는 흔들다리 해운대 황옥공주 인어동상이라는 해안 동상은 황옥공주의 전설이 서려져 있는 동상으로 1974년 처음 설치 하였으나 87년 태풍 셀마로 유실된 후 다시 복원한 청동 좌상인 인어상이다. 해운대가 있는 지역에 옛날 "무궁(실제 없는 나라임)"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왕이 없었다 한다. 어느날 옥황상제가 금상자를 내려주니 그 속에서 황금알을 깨고 나온 어린아이가 십여일만에 성인으로 자라 왕위에 오르고 무궁이란 나라를 만들었다 한다. ▲ 허황옥 공주 동상 인어동상이라는 해안 동상은 황옥공주의 전설이 서려져 있는 동상으로 1974년 처음 설치 하였으나 87년 태풍 셀마로 유실된 후 다시 복원한 청동 좌상인 인어상이다. 해운대가 있는 지역에 옛날 "무궁(실제 없는 나라임)"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왕이 없었다 한다. 어느날 옥황상제가 금상자를 내려주니 그 속에서 황금알을 깨고 나온 어린아이가 십여일만에 성인으로 자라 왕위에 오르고 무궁이란 나라를 만들었다 한다. 하늘이 내려준 은혜로 태어나 왕이 되었다 하여 은혜왕으로 불리면서 무궁은 발전을 하지만 왕비가 또 없어 고민했다 한다. 신하들이 왕비를 간택해 올리지만 하늘에서 내려줄것을 믿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바다 건너 "미란다"라는 나라가 이었는데 바다속 "수정국"나라와 부모가 같은 나라라 한다. 그들은 몸 끝에 고기지느러미를 옷 속에 감추고 살았는데 첫 딸을 낳게 되니 그 이름이 황옥공주다. 황옥공주가 시집갈 나이가 될 무렵 꿈속에서 "은혜왕"에게 시집을 가라고 현몽을 하자 동백섬에 도착하여 자신의 속옷을 꺼내 산신령에게 받치니 완전한 사람이되어 은혜왕과 잘 살 게 되었다 한다. 세월이 흘러 황옥왕비가 되었지만 수정국이 그리워하면 그때마다 황옥공주를 따라온 거북이가 곁에 머물면서 수정국으로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한다. 수정국에서 황옥에게 거울을 하나 선물하게 된다. 보름날이 되면 꺼내 보라고 하여 보름날 거울을 비쳐보니 황옥왕비는 고기 지느러미를 가진 옛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어 동백섬 인근을 잠시나마 헤엄쳐 다녔는데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인어가 있다고 하였으며, 지금도 거북이는 동백섬 주변을 맴돈다 전하고 있다. ▲ 동백섬 누리마루 전망대 ▲ 누리마루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부산의 관문 오륙도와 이기대 ▲ 광안대교 ▲ 동백섬에서 바라 본 달맞이언덕 ▲ 허황옥 동상에서 바라 본 해운대해수욕장과 달맞이 언덕 한우산 전경 ▲ 허황옥 동상에서 바라 본 누리마루 하우스 조형물 등대 ▲ 산책길 전경 ▲ 해운대 해수욕장 양쪽에 조성중인 조형물 ▲ 조선비치 앞 바위에서 낚시하는 감태공 ▲ 해운대해수욕장 낚시 포인트 앞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다. ▲ 해수욕장 전경 ▲ 해운대 등대 앞으로 미포선착장을 출발하여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 ▲ 낚시 삼매경에 빠진 감태공 동백섬에서 미포 선착장 까지 자연발생 해안 해운대해수욕장은 우리나라 피서 여행 일번지이다. 남해바다 올망졸망한 섬들은 오륙도에서 끝이 나고 동해바다의 시작점이기도 해운대해수욕장 앞 한 탁 트인 해안은 오늘도 오륙도를 오가는 유람선과 유람선을 따르는 갈매기 이야기로 꿈틀 꺼린다. 해운대해수욕장을 거닐다.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해운대 해수욕장은 동백섬과 달맞이 고개 중간에 위치한 옛 구남항으로 수영천과 장산에서 흘러내린 춘천천에서 유입된 모래와 조개껍질이 풍화되면서 구남항 일대에 양질의 백사장이 생겨났고 1965년 7월 9일 공설 해수욕장으로 첫 개장을 하였다. ▲ 조선비치에서 바라 본 전경 옛 "구남항"이 오늘날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발전하면서 아쉽게도 주변 건물의 무질서한 신축으로 인해 점점 해운대해수욕장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지만 매년 여름이면 전국에서 많은 욕객이 즐겨 찾는가 하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2013년부터 파도에 깎여나간 옛 모습을 복구 시키고자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중이다. ▲ 가을하늘 아래 물색이 곱게 내려앉았다. ▲ 파도에 밀려온 조개껍질 해운대 지명의 유래는 오늘날 누리마루 등대 아래 작은 바위에 새겨진 ‘海雲臺(해운대)’를 후세에 부르면서 오늘날 해운대로 지명이 굳혀 졌다고 하는데 이 해운대는 신라 말 석학 고운 최치원의 어릴적 자(字) 바다 해(海) 구름운(雲) 즉, 바다 위 떠 있는 외로운 구름인 해운으로 전국에서 자신의 어릴적 이름을 동백섬 벼랑 바위에 음각으로 새기니 오늘날 해운대로 불리게 된 시초가 되었다 전한다. 자신의 또 하나의 호 ‘고운’으로 만든 사찰이 경북 의성군 고운사이다. 이 밖에 신선대 무제등 바위에는 신선이 남긴 발자국이 전해지는데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되어 유람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최치원 선생은 전북 정읍 무성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해운대 지명에 관한 기록은 1740년 동래부지에 실려있다. ‘최치원 선생이 머물렀다는 동백섬에 일찍이 대를 쌓아 유상 하였다는 유적이 아직 남아있다. 최치원의 자는 해운이다.’ 라고 기록을 통해 고증을 하고 있다. 해운대는 한국 8경(景) 중 한 곳이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피서객이 찾는 여름바다로 뻬어난 자연경관과 편리한 접근성으로 인하여 여름이면 전국에서 찾아온 피서객으로 뜨겁게 달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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